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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타운 연극제(Williamstown Theatre Festival)에서 초연되었고 지난 4월 14일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뮤지컬 《렘피카(Lempicka)》는 폴란드 출신의 아르 데코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의 극적인 삶을 소재로 한다.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어도 자화상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Tamara en Bugatti verte)》 같은 그의 작품은 본 적이 있는 이가 많을 것이다.
렘피카는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프랑스 무역회사의 변호사로 일하던 러시아 유대계 아버지와 부유한 폴란드 집안 출신의 사교계 명사이던 어머니 사이에 타마라 로잘리아 구르비크구르스카(Tamara Rozalia Gurwik-Górska)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사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895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학자도 있으며 원래 이름이 Tamara ‘타마라’, Maria ‘마리아’, Rozalia ‘로잘리아’ 가운데 무엇이었는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주하여 거기서 폴란드인 변호사 타데우시 웸피츠키(Tadeusz Łempicki, 1888~1951)를 만나 1916년에 혼인하여 남편 성을 따서 타마라 웸피츠카(Tamara Łempicka)가 되었다. 폴란드어를 비롯한 슬라브어권 성씨는 남성형과 여성형이 다른 것이 많은데 폴란드어 성씨 가운데 남성형 -ski ‘-스키’, -cki ‘-츠키’는 여성형 -ska ‘-스카’, -cka ‘-츠카’에 해당되므로 웸피츠키의 남편은 웸피츠카가 되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던 부부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를 탈출하여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였다. 거기서 1919년에는 딸 키제트(프랑스어: Kizette [kizɛt])를 낳았고 타데우시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부터 미술을 공부했던 타마라는 생계를 위해 화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속 갤러리를 통해 살롱 데 쟁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 [salɔ̃ de-z‿ɛ̃depɑ̃dɑ̃]), 살롱 도톤(Salon d’Automne [salɔ̃ dɔ⟮o⟯tɔn]) 등의 미술 전람회에 출품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현대 장식 미술·산업 미술 국제전(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렘피카는 주요 개최지인 살롱 데 튈르리(Salon des Tuileries [salɔ̃ de tɥilʁi])와 살롱 데 팜 팽트르(Salon des femmes peintres [salɔ̃ de fam pɛ̃ːtʁ])에서 전시하여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입체파의 현대적인 자유분방함과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적인 우아함을 결합하여 딸 키제트나 당대의 신여성을 그린 인물화로 아르 데코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미술사에서 Art déco [aːʁ deko] ‘아르 데코’라고 부르는 양식은 현대 장식 미술·산업 미술 국제전에 출품된 모더니즘 성향의 작품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장식 미술’을 뜻하는 arts décoratifs [aːʁ dekɔʁatif] ‘아르 데코라티프’의 준말이다. 건축과 디자인, 장식 미술 분야에 가려졌지만 아르 데코의 영향은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중심에 선 렘피카는 ‘아르 데코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 에스파냐의 조제프 마리아 세르트(Josep Maria Sert, 1874~1945) 등 다른 아르 데코 화가는 대규모 벽화에 치중했지만 렘피카는 주로 부유한 귀족의 초상화, 여성 누드화 등 인물화를 그렸다.
작품뿐만이 아니라 빼어난 미모와 양성애자로서 다양한 남녀와 연애 경험을 한 사생활로도 주목을 받은 렘피카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39년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말년은 멕시코에서 보냈다. 그의 다채로운 생애는 이번 뮤지컬 이전에도 연극과 소설의 소재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초기 작품에 T. de Lempitzki [də lɛmpitski] ‘T. 드 렘피츠키’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했다. 남편 성씨의 러시아어 형태인 Лэмпицкий/Lempitskii ‘렘피츠키’를 프랑스어식 철자로 적은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폴란드어식 철자에 가깝게 T. de Lempicka라고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어로 Tamara Łempicka는 [taˈmara wɛmˈpiʦka] ‘타마라 웸피츠카’로 발음되지만 Tamara de Lempicka는 프랑스어로 [tamaʁa də lɛmpika] ‘타마라 드 렘피카’로 발음된다. 그는 1928년 웸피츠키와 이혼하고 두 차례 재혼하면서도 계속 이 이름으로 활동했다.
폴란드어 철자에서 ł은 연음 l에 대응되는 경음으로서 원래 이른바 ‘어두운 l’인 연구개화 설측 치경 접근음 [ɫ]로 발음되었다. 아직도 폴란드 동부 및 리투아니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의 폴란드어 방언에서는 이 발음이 일부 남아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방언에서는 [w]로 발음이 변했으며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이 발음을 따라 ł를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와’, ‘웨’ 등으로 적는다.
그런데 이처럼 폴란드어 ł를 [w]로 발음하는 것은 프랑스어, 영어 등 다른 언어 화자들의 입장에서 생소하기 마련이다. 그냥 l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영어에서는 잘 알려진 이름에 한해서 원어 발음을 흉내내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데 미국보다는 영국에서 쓰는 발음에서 더 흔히 관찰된다.
폴란드 중부의 도시 Łódź [ˈwuʨ] ‘우치’는 영국 영어에서 흔히 폴란드어 발음을 흉내내어 [ˈwʊʧ] ‘우치’로 발음하지만 미국 영어에서는 그냥 특수 문자를 무시한 Lodz를 영어식으로 읽어 [ˈloʊ̯dz] ‘로즈’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고 기껏 원어 발음을 흉내내어도 [ˈluːʤ] ‘루지’ 정도로 발음한다.
폴란드 정치가 Lech Wałęsa [ˈlɛx vaˈwɛ̃sa] ‘레흐 바웬사'(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따른 표기는 ‘바웽사’이지만 관용 표기인 ‘바웬사’가 표준으로 인정된다)는 영국 영어에서 [vɑː.ˈwɛns.ə] ‘바웬사’ 등 원어 발음을 흉내낸 발음을 듣기 쉽고 미국 영어에서 [wɑː.ˈlɛns.ə] ‘왈렌사’ 등 각 자음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을 듣기 쉽다.
그런데 프랑스어에서는 폴란드어의 ł를 웬만해서는 그냥 [l]로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Łódź는 [lɔdz] ‘로즈’, 기껏해야 [ludʒ] ‘루지’로 발음하며 Wałęsa는 보통 [valeza] ‘발레자’가 된다. 모음 사이의 s도 프랑스어식으로 [z]로 발음한다.
따라서 Łempicka의 특수 문자를 버리고 Lempicka로 쓴 것은 프랑스어로 읽을 때 첫 자음을 [l]로 발음한다. 또 폴란드어로 c는 [ʦ] ‘ㅊ’로 발음되지만 그냥 프랑스어식으로 읽어서 [lɛmpika]가 되는 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발음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프랑스어로 이 발음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본명이 조지안 마리즈 피비달(Josiane Maryse Pividal [ʒozjan maʁiːz pividal])로서 타마라 드 렘피카의 이름을 딴 가명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이자 향수 제작자인 롤리타 렘피카(Lolita Lempicka [lɔlita lɛmpika], 1954~)도 같은 발음을 쓴다.
더구나 그는 프랑스어의 전치사 de [də] ‘드’를 붙여 Tamara de Lempicka ‘타마라 드 렘피카’라고 썼다. 더 귀족적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원래 프랑스어 귀족 성씨에 de가 많이 들어갔는데 19세기 이후에는 귀족 출신이 아니더라도 이를 흉내내어 성씨에 de를 붙이는 일이 흔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발자크(Honoré Balzac [ɔnɔʁe balzak])는 de를 붙여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ɔnɔʁe də balzak])라는 필명을 썼다.
그래서 영어로도 Tamara de Lempicka를 프랑스어식 이름으로 취급하여 [tə.ˈmɑːɹ.ə də lɛm.ˈpiːk.ə] ‘터마라 더 렘피카’로 발음한다. 에스파냐어로도 [taˈmaɾa de lemˈpika → taˈmaɾað̞elemˈpika] ‘타마라 데 렘피카’로 발음한다.
뮤지컬 《렘피카》의 개막곡 공연 장면을 보니 주인공 렘피카를 맡은 배우가 쓰는 발음도 역시나 ‘렘피카’이다(듣기). 뮤지컬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니 혹시 웸피츠키와 처음 혼인했을 때는 Tamara Łempicka ‘타마라 웸피츠카’로 발음하다가 프랑스로 이주한 후에 Tamara de Lempicka ‘타마라 드 렘피카’로 발음이 바뀌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