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과 ‘바슈롱 콩스탕탱’

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한국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표기를 쓰는 스위스의 고급 시계 회사 이름을 일부 언론 보도에서 Vacheron Constantin의 프랑스어 발음인 [vaʃʁɔ̃ kɔ̃stɑ̃tɛ̃]에 맞게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바슈롱 콩스탕탱’이라고 불러서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원칙적으로 외국어 고유 명사를 한글로 표기할 때는 외래어 표기법을 써야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등록된 상호나 상표의 경우는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 지사에 국한된 얘기이고 다른 나라에 있는 본사나 다른 지사를 이를 때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도 있어서 딱히 어느 쪽만 옳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바슈롱 콩스탕탱(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식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표기와 한국에서 쓰이는 표기를 병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마도 여러 한국어 화자에게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이름 자체가 꽤 생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표기를 우선시했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또 ‘바쉐론 콘스탄틴’에 익숙했던 이들에게는 반발감을 줄 수 있으니 난감하다. 일단 나름 타당한 표기가 두 가지 이상 공존하는 경우 처음 소개할 때는 괄호를 써서 병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편 이런 이름의 띄어쓰기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냥 한국에서 쓰이는 표기의 띄어쓰기를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전 글에서 다룬 Van Cleef & Arpels는 보통 언론에서 프랑스어 발음인 [van-klɛf— aʁpə⟮ɛ⟯ls]에 따른 ‘반클레프 아르펠스’ 대신 한국에서 쓰는 표기인 ‘반클리프 아펠’을 그대로 쓰는데 왜 ‘바쉐론 콘스탄틴’은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표기로 대체하는 언론이 많을까? Van Cleef & Arpels의 올바른 발음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표기가 원래의 프랑스어 발음과 특히 차이가 많이 날 뿐만이 아니라 ‘쉐’가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상대적인 거부감이 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외국어 표기에서 ‘쉐’를 쓰는 문제는 초창기 블로그 글에서 다룬 적이 있다.

‘쉐’는 [ɕ~ʃ~ʂ] 등의 자음 뒤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에’, ‘애’, ‘외’ 등으로 적는 모음이 따르는 조합의 민간 표기에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셰’, ‘섀’, ‘쇠’ 등의 표기를 쓰지 ‘쉐’를 쓰는 일은 없다. 중국어 음절 xue [ɕɥɛ]의 표기에 ‘쉐’를 쓸 뿐이다. 원칙적으로 한국어에서 ‘쉐’는 사실 ‘수에’를 짧게 발음한 음절이며 ‘멍게’의 다른 이름인 ‘우렁쉥이’에서 드물게 쓰이며 ‘ㅚ’를 ‘ㅞ’와 동일하게 발음하는 대다수 화자들은 ‘쇠’와 ‘쉐’가 발음이 같아야 한다.

어쩌면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도입 이후 교육을 받은 세대일수록 ‘쉐’로 [ɕ~ʃ~ʂ] 등의 자음을 나타내는 것이 어색할수도 있겠다. 이들에게 ‘쉐’가 들어간 말은 좀 낡은 표기 방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세대에 따라 ‘쉐’를 쓴 표기가 익숙한 화자도 많을 것이다. 남한의 외래어 표기법에 대응되는 북한의 외국말적기법에서는 실제로 영어의 [ʃe]를 ‘쉐’로 적도록 하고 있다. 영국 지명 Sheffield [ˈʃɛfiːld]는 남한에서 ‘셰필드’로 적지만 북한에서는 ‘쉐필드’로 적는다.
한국에서 ‘쉐’를 쓰는 외국에서 온 상호 및 상표는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자.

미쉐린‘ Michelin 프랑스어: [miʃlɛ̃] ‘미슐랭
흥미롭게도 프랑스 타이어 회사 이름의 한글 표기는 오랜 관용에 따라 미쉐린으로 정해졌지만 같은 회사에서 발행하는 가이드북을 이를 때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미슐랭’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가이드북은 프랑스어로 Guide Michelin [ɡid miʃlɛ̃] ‘기드 미슐랭’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어에서는 영어 어순 및 발음에 따라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라고 흔히 부른다.

부쉐론‘ Boucheron 프랑스어: [buʃʁɔ̃] ‘부슈롱
프랑스의 보석·시계 상표이다. Vacheron과 비슷하게 발음되는데 한국에서 쓰이는 표기도 비슷하게 원어 발음과 차이가 난다.

쉐라톤‘ Sheraton 영어: [ˈʃɛɹətən] ‘셰러턴/셰러튼
미국의 호텔 체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명시하지 않지만 국립국어원에서 따르는 지침으로는 -ton [tən]을 ‘턴’으로 통일하고 있는데 사실 모음이나 r 뒤에 오는 -ton [tən]은 ‘튼’으로 쓰는 것이 관용 표기에 더 가깝다(예: button [ˈbʌt(ə)n] ‘버튼’, Eton [ˈiːt(ə)n] ‘이튼’, cotton [ˈkɒt(ə)n] ‘코튼’). 그러니 ‘셰러턴’보다는 ‘셰러튼’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쉐르보‘ Chervò 이탈리아어: [ʃerˈvɔ] ‘셰르보
이탈리아 골프웨어 상표이다. 이탈리아어 철자법에 따르면 Chervò는 ‘*케르보’로 적어야 할 것 같은데 마치 프랑스어 이름 Chervo [ʃɛʁvo] ‘셰르보’인 것처럼 발음된다. 이탈리아어로 ‘사슴’을 뜻하는 cervo [ˈʧɛrvo] ‘체르보’를 프랑스어식으로 발음을 변형시켜 만들어낸 상표이기 때문이다(출처).

쉐보레‘ Chevrolet 영어: [ˌʃɛvɹəˈleɪ̯] ‘셰브럴레이/셰브롤레‘, 프랑스어: [ʃəvʁɔlɛ] ‘슈브롤레
미국의 자동차 상표인데 원래 스위스의 프랑스어권 출신인 루이 슈브롤레(Louis Chevrolet [lwi ʃəvʁɔlɛ], 1878~1941)가 미국에서 세운 회사 이름에서 나왔다. 영어 발음인 [ˌʃɛvɹəˈleɪ̯]에 외래어 표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셰브럴레이’로 적어야 하겠지만 음절말 [l, m, n]이 뒤따르지 않는 어중 o [ə]를 ‘오’로 적고 철자 e로 나타내는 [eɪ̯]는 ‘에’로 적는 융통성을 발휘하면 ‘셰브롤레’가 더 자연스러운 표기일 것이다.

쉐브론‘ Chevron 영어: [ˈʃɛvɹə⟮ɒ⟯n] ‘셰브론
미국 석유·가스 회사이다. 영어로 chevron은 브이(V)자 모양의 장식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ˈʃɛvɹən] ‘셰브런’으로 발음하지만 둘째 모음을 약화시키지 않은 [ˈʃɛvɹɒn] ‘셰브론’ 발음도 가능하므로 한글 표기는 후자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쉐이크쉑‘ Shake Shack 영어: [ˈʃeɪ̯k-ˈʃæk] ‘셰이크섁
미국 햄버거 체인이다. 밀크셰이크(milkshake [ˈmɪlkʃeɪ̯k])의 준말인 shake와 ‘오두막’을 뜻하는 shack을 조합한 이름이다.

‘ Shell 영어: [ˈʃɛl] ‘
영국의 석유·가스 회사이다. 원래는 네덜란드 왕립 석유 회사가 Shell이라는 이름을 쓰던 영국 회사와 합병하여 탄생하였다.

페레로 로쉐‘ Ferrero Rocher 이탈리아어/프랑스어: [—ʁɔʃe] ‘페레로 로셰
이탈리아의 초콜릿 상표인데 Ferrero [ferˈrɛːro] ‘페레로’는 이탈리아인 성씨이지만 rocher는 ‘바위’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왔고 이탈리아어로도 프랑스어 발음을 흉내내어 [roʃˈʃe] ‘로셰’로 발음한다(즉 이탈리아어식 철자인 것처럼 ‘로케르’로 읽으면 안 된다).

포르쉐‘ Porsche 독일어: [ˈpɔʁʃə] ‘포르셰
독일 자동차 회사이다. 영어에는 보통 한 음절 [ˈpɔːɹʃ] ‘포시’로 발음하지만 원어 발음에 더 가깝게 두 음절 [ˈpɔːɹʃə] ‘포셔’로 발음하기도 한다.

여기서 Chevrolet를 비롯하여 Michelin, Vacheron, Boucheron, Porsche 등은 모두 회사를 설립한 이의 성씨에서 따왔다. 회사 이름은 한국에서 쓰는 상호에 따라 표기한다고 해도 설립자나 그 친척의 성씨, 나아가서 같은 성씨를 쓰는 동명이인의 한글 표기까지 똑같이 통일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예를 들어 2020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프랑스의 조정 선수 Hugo Boucheron [yɡo buʃʁɔ̃] ‘위고 부슈롱’을 그와 아무 상관이 없는 보석·시계 상표 Boucheron에 이끌려 ‘위고 부쉐론’으로 적는 것은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

Sheraton은 회사를 창립했을 때 초기에 구입한 호텔의 대형 간판에서 이미 Sheraton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서 이를 교체하기보다는 모든 계열 호텔 이름을 Sheraton으로 통일하기로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의 호텔은 아마도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였던 토머스 셰러튼(Thomas Sheraton [ˈtɒməs ˈʃɛɹətən], 1751~1806)의 이름을 딴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호텔 이름에 이끌려 그를 ‘토머스 쉐라톤’으로 적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 등록된 상호나 상표라도 예외를 두기보다는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표기를 통일하려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정작 언중은 이유가 어찌되었건 익숙한 표기를 선호하기 마련이니 어떻게 표기할지 정하기가 쉽지 않다. 되도록이면 합리적인 표기를 모두 제시하여 그 가운데서 언중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고 병기를 한다고 해도 어느 표기를 우선시할지가 문제가 된다. 어느 표기가 친숙하고 어느 표기가 어색한지도 개개인의 배경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 무조건 획일적인 표기를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표기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고 너그럽게 인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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