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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에서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 화가 Edvard Munch는 외래어 표기 용례에 ‘에드바르 뭉크’로 나와있지만 표기 규정에 따르면 ‘에드바르드 뭉크’로 적는 것이 맞다는 얘기를 했다. 노르웨이어 표기 규정에서 장모음+rd의 d는 적지 않고 단모음+rd의 d는 어말에서 ‘드’로 적도록 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노르웨이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에 Edvard의 a가 장모음인 것처럼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Edvard는 a가 단모음인 [ˈedvɑɖ~ˈedvɑrd]로 발음되므로 ‘에드바르드’가 맞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이 이름을 ‘에드바르’도, ‘에드바르드’도 아닌 ‘에드바르트 뭉크’로 적는 일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노르웨이어에서는 Edvard가 전통적으로 [ˈedvɑʈ~ˈedvɑrt] ‘에드바르트’로 발음되었고 오늘날에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발음이다. 뭉크에 관한 다음 동영상에서 Edvard의 마지막 d를 t로 발음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노르웨이어에서 단일 단어에 속한 /rd/, /rt/는 방언에 따라, 차용어 여부에 따라 권설음 [ɖ], [ʈ]로 축약되기도 한다. 노르웨이 동부의 도회 지역 발음에서는 보통 이런 축약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난 글에서는 발음을 [ˈedvɑɖ]로만 제시했지만 여기서는 다른 지역 발음도 다루고자 하니 [ˈedvɑɖ~ˈedvɑrd], [ˈedvɑʈ~ˈedvɑrt]로 쓰기로 한다. 방언에 따른 실현 양상은 꽤 복잡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 현상을 무시하고 d, t 앞의 r도 그냥 ‘르’로 쓰므로 한글 표기에는 영향이 없다. 노르웨이어에는 성조 구별도 있지만 한글 표기에 영향이 없으므로 발음 표기에서 생략하였다.
외래어 표기 규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노르웨이어의 rd는 짧은 모음 뒤에서 보통 [ɖ~rd]로 발음된다. ‘살인’을 뜻하는 mord는 [ˈmʊɖ~ˈmʊrd] ‘모르드’로, ‘검’을 뜻하는 sverd는 [ˈsvæɖ~ˈsværd] ‘스베르드’로 발음된다. 왜 Edvard는 전통적으로 마치 Edvart로 쓴 것처럼 발음되었던 것일까?
Edvard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영어의 Edward [ˈɛdwəɹd] ‘에드워드’와 뿌리가 같다. 노르웨이어와 영어는 둘 다 인도·유럽 어족의 게르만 어파에 속한다. 노르웨이어는 덴마크어·스웨덴어·아이슬란드어 등과 함께 북게르만 어군, 독일어는 영어·네덜란드어·아프리칸스어 등과 함께 서게르만 어군에 속한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기에 공통된 게르만어 이름이 노르웨이어에서는 Edvard로, 영어에서는 Edward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게르만 제어의 공통된 뿌리인 게르만 조어에서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 Edvard의 원형은 *Audawarduz로 재구되며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Auðvarðr ‘아우드바르드(르)’가 되었고 여기서 나온 노르웨이어 형태는 Edvard가 아니라 Audvard이다. 매우 드문 이름이라서 발음에 관한 설명은 찾기 어렵지만 [ˈæʉ̯dvɑɖ~ˈæʉ̯dvɑrd] ‘에우드바르드’로 짐작할 수 있다. 단, 예전 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외래어 표기법에서 ‘에우’로 적도록 하는 노르웨이어 이중 모음 au [æʉ̯]는 ‘아우’로 적는 것이 더 현실적이므로 ‘아우드바르드’로 적는 것이 낫겠다.
그런데 같은 게르만 조어 원형이 고대 영어에서는 Eadweard ‘에아드웨아르드’ 또는 Eadward ‘에아드와르드’의 형태로 변했고 이 형태가 다른 언어에도 전해졌다. 고대 노르드어에서도 고대 영어형에서 나온 Játvarðr ‘야트바르드(르)’가 쓰였으며 중세에는 Jatvard ‘야트바르드’, Jedvard ‘예드바르드’, Jædword ‘예드보르드’ 등의 노르웨이어 형태가 쓰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Edvard는 중세 영어 이후에 쓰인 형태인 Edward에서 따온 것이다. 16세기경에야 노르웨이어에서 Edvard의 첫 기록이 나타난다(덴마크에서는 12세기에 이미 쓰였다).
영어에서 들어온 이름이라면 어말 d를 t처럼 발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Edvard를 마치 Edvart처럼 쓴 것처럼 발음하게 된 것은 아마도 독일어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민간에서 Edvard Munch를 ‘에드바르트 뭉크’로 흔히 적는 것도 노르웨이어 발음을 직접 접한 것이라기보다는 독일어 이름의 한글 표기에서 유추한 것일 수 있다(다만 정말 Edward의 독일어식 발음 [ˈɛtvaʁt]를 따른다면 ‘에트바르트’여야 한다).
표준 독일어나 한자 동맹 시대에 북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저지 독일어에서는 어말 무성음화가 일어난다. 즉 어말 /d/는 [t]로 발음된다. 독일어에서는 영어에서 직접 들여온 Edward ‘에트바르트’보다는 프랑스어를 거쳐 받아들인 Eduard가 가장 널리 쓰이는 형태이고 [ˈeːdu̯aʁt] ‘에두아르트’로 발음한다(현대 프랑스어에서는 어말 d가 묵음이 된 Édouard [edwaʁ] ‘에두아르’이다).
노르웨이어에서 쓰는 독일어식 이름 가운데는 이처럼 어말 무성음화의 흔적이 남은 것이 몇 개 있다. 노르웨이어 이름 Richard는 [ˈrɪkːɑʈ~ˈrɪkːɑrt] ‘리카르트’로 주로 발음된다. 표준 독일어 Richard [ˈʁɪçaʁt] ‘리하르트’와 비교할 수 있다. [ˈrɪkːɑɖ~ˈrɪkːɑrd] ‘리카르드’나 [ˈrɪkːɑr] ‘리카르’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리카르트’가 단연 우세한 듯하다.
독일어식 이름으로 Ludvig도 있다. 노르웨이어 표기 규정에서 ig의 g는 적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Ludvig는 ‘루드비’로 적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 발음은 [ˈlʉdvɪk] ‘루드비크’와 [ˈlʉdvɪɡ] ‘루드비그’가 혼용되며 전자가 전통적인 발음, 후자가 철자의 영향을 받은 발음으로 취급된다. 표준 독일어 Ludwig [ˈluːtvɪç] ‘루트비히’와 비교할 수 있다. 표준 독일어에서 -ig는 보통 [-ɪç] ‘-이히’로 발음하게 되었지만 지역에 따라 [-ɪk] ‘-이크’도 쓰이기도 한다.
한편 Konrad는 오늘날 노르웨이어에서 [ˈkʊnrɑd] ‘콘라드’로 발음되지만 19세기에는 독일어 [ˈkɔnʁaːt] ‘콘라트’를 흉내낸 [ˈkɔnrɑt] ‘콘라트’로 발음되었다고 한다.
노르웨이어의 Edvard는 독일어에서 들여온 이름이 아니더라도 마치 비슷한 시기에 유입된 Richard, Ludvig, Konrad 같은 독일어식 이름인 것처럼 유추하여 발음한 것이 아닐까 한다.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지배를 받은 것을 생각할 때 Edvard는 덴마크어를 거쳐 들어왔을 수 있는데 오늘날 덴마크어에서는 Edvard가 [ˈeðvɑːd̥]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rd의 d를 적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에드바르’로 적는 것이 표준이지만 실제 발음에서는 d가 발음된다. 그런데 덴마크어에서 어말 d는 보통 [ð]로 발음되는 반면 어말 t는 [d̥]로 발음되므로 Edvard는 마치 Edvart로 적은 것처럼 발음되는 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혈통’을 뜻하는 byrd [ˈb̥yɐ̯ˀd̥] ‘뷔르드’나 라틴어 leopardus ‘레오파르두스’에서 유래하여 ‘표범’을 뜻하는 leopard [leoˈpʰɑˀd̥] ‘레오파르드’, 영어 record [ˈɹɛkɔːɹd] ‘레코드’에서 차용한 rekord [ʁεˈkʰɒːd̥] ‘레코르드’에서 볼 수 있듯이 어말 rd의 d가 드물게 발음되는 경우에는 꼭 [ð]가 아닌 [d̥]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는 덴마크어에서 어말 rd의 d가 발음되는 경우 rd와 rt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Richard도 덴마크어로는 [ˈʁikʰɑːd̥] ‘리카르드’로 발음된다. 덴마크어에서 Edvard나 Richard를 발음하는 것만 봐서는 독일어의 무성음화를 흉내내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Konrad는 덴마크어에서 일반적인 어말 d의 발음을 써서 [ˈkʰʌnʁɑð] ‘콘라드’로 발음하므로 적어도 이 경우에는 독일어의 어말 무성음화를 흉내내지 않고 있다.
한편 Ludvig는 덴마크어로 어말 g가 아예 묵음이 되어 [ˈluðˀvi] ‘루드비’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덴마크어의 어미 ig의 g는 적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규정을 따르면 ‘루드비’로 적게 된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 용례집을 보면 Holberg, Johan Ludvig를 ‘홀베르, 요한 루드비그’로 적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홀베르(Holberg, Johan Ludvig)’라는 표제어로 실려있고 ‘노르웨이 태생의 덴마크 극작가(1684~1754)’로 풀이된 인물의 전체 이름을 용례집에서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이 인물의 활동하던 시기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덴마크어를 문어로 썼는데 Holberg는 덴마크어 표기 규정에 따라 적으면 ‘홀베르’, 노르웨이어 표기 규정에 따라 적으면 ‘홀베르그’이므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표제어를 ‘홀베르’로 쓴 것은 Holberg를 덴마크어로 봤기 때문이다. 덴마크어에서 berg의 g를 적지 않는 이유는 예전 글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러므로 Johan Ludvig도 덴마크어로 본다면 ‘요한 루드비’로 쓰는 것이 맞다. 노르웨이어로 봐도 규정상은 ‘요한 루드비’이지만 실제 발음에 따르면 ‘요한 루드비크’ 또는 ‘요한 루드비그’가 된다.
한편 스웨덴어에서는 Edvard를 [ˈedvaɖ, ˈeːdvaɖ, ˈɛdvaɖ] ‘에드바르드’로 발음하고 Richard [ˈrɪkːaɖ] ‘리카르드’, Ludvig [ˈlɵdvɪɡ] ‘루드비그’, Konrad [ˈkɔnrad] ‘콘라드’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어의 어말 무성음화를 흉내낸 경우를 찾기 힘들다.
그러면 노르웨이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어떻게 써야 할까? Edvard와 Richard는 현행 규정을 적용하여 ‘에드바르드’, ‘리카르드’로 각각 적고 Ludvig는 규정에 어긋나더라도 실제 발음 가운데 철자에서 더 예측하기 쉬운 ‘루드비그’로 적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외래어 표기 규정에서 Edvard를 마치 장모음 뒤에 rd가 온 예로 보고 ‘에드바르’로 적게 한 예시는 잘못된 것으로 간주해야 하겠다. Edvard는 ‘에드바르트’에 가까운 발음으로도 관찰되며 Richard는 오히려 ‘리카르트’에 가까운 발음이 더 우세하더라도 철자에서 예측하기 쉬운 발음에 따른 표기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Konrad의 발음이 예전의 ‘콘라트’에서 ‘콘라드’로 바뀐 것처럼 노르웨이어에서도 앞으로 철자식 발음이 더 많이 쓰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노르웨이어는 지역에 따라 발음 차이가 있어서 표기를 통일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 일례로 표기 규정에서 ld, nd의 d는 묵음으로 처리하여 Harald [ˈhɑrːɑl, ˈhɑːrɑl] ‘하랄’, Aasmund [ˈoː⟮ɔ⟯smʉn] ‘오스문’과 같이 적도록 하고 있지만 일부 서부 지역에서는 d를 살려 Harald [ˈhɑːrɑld] ‘하랄드’, Aasmund [ˈoː⟮ɔ⟯smʉn] ‘오스문드’ 같은 발음을 쓴다. 그러니 노르웨이 어딘가에서 Edvard의 어말 d나 Ludvig의 어말 g를 발음하지 않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웬만해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발음을 기준으로 표기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