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인도네시아 갑부 로우툭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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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석탄 채굴 회사 바얀리소시스(Bayan Resources)의 창립자로서 인도네시아 최고의 갑부 가운데 한 명인 억만장자 Low Tuck Kwong의 한글 표기가 ‘로우 툭 퀑’으로 심의되었다. 5월 27일의 25-4차 외래 고유 실무위원회의 결정이다(외래 고유 실무위원회에 대해서는 후술).

그런데 Tuck의 ck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이름은 영어식 철자를 썼다. 이 인물은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화교로 Low Tuck Kwong은 원래 刘德光(간체자)/劉德光(번체자)의 광둥어 발음 Lau⁴ Dak¹gwong¹ [lɐ̭u.tɐ́k.kwɔ́ːŋ] ‘라우닥궝’을 영어식 철자로 나타낸 것이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성장한 화자가 영어로 그를 소개하면서 이름은 광둥어식으로 발음한다.

Lau⁴ Dak¹gwong¹은 홍콩 언어학 학회에서 개발한 광둥어 로마자 표기법인 월어 병음(粵語拼音, 광둥어식 약칭 粵拼 Jyut⁶ping³ ‘윗핑’)을 따른 표기인데 첫소리 d와 g는 무성 무기음 [t]와 [k]를 나타낸다. 그런데 관용 로마자 표기에서는 보통 이들을 무성 유기음 t [tʰ]와 k [kʰ]와 동일하게 t와 k로 적는다.

같은 광둥어의 영어식 철자라도 홍콩에서 쓰는 방식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관습적으로 쓰는 방식이 조금 다른데 홍콩식으로는 같은 이름을 Lau Tak Kwong으로 쓰겠지만 말레이시아의 국제 수배자 조 로(Jho Low)에 대한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는 Lau 대신 Low로 흔히 쓴다.

중국어의 무성 무기음은 특히 높은 성조일 때 한국어의 된소리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표준 중국어의 한글 표기에서 北京[Běijīng]을 ‘뻬이찡’ 대신 ‘베이징’, 臺北[Táiběi]를 ‘타이뻬이’ 대신 ‘타이베이’로 적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예사소리로 흉내낸다. 그러니 광둥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 표기에서도 ‘라우딱꿩’보다는 ‘라우닥궝’으로 적는 것이 좋다. 참고로 刘德光/劉德光의 표준 중국어 발음 Liú Déguāng에 따른 한글 표기도 ‘류더광’이다.

광둥어 발음 ‘라우닥궝’에 가깝게 영어로 흉내내면 [ˈlaʊ̯-ˈtʌk-ˈkwɒˑŋ] ‘라우턱퀑’이 된다. 영어의 STRUT 모음 /ʌ/ ‘어’는 중설 근저모음 [ɐ]나 중설 저모음 [a]로 ‘아’에 가깝게 발음하는 방언이 많은데 싱가포르 영어 발음에서는 특히 [p, t, k] 등 무성 폐쇄음 앞에서 STRUT 모음 /ʌ/와 PALM 모음 /ɑː/의 구별이 사라지는 일이 흔하다. luck [ˈlʌk] ‘럭’과 lark [ˈlɑːɹk] ‘라크’가 둘 다 [ˈlak] ‘락’ 비슷하게 발음되는 식이다. 광둥어의 운모 -ak [ɐk] ‘악’의 모음도 비슷한 중설 근저모음이기 때문에 영어의 STRUT 모음으로 인식하기 쉽다. 광둥어 點心[dim²sam¹] [tǐːm.sɐ́m] ‘딤삼’이 영어 dim sum [ˈdɪm-ˈsʌm] ‘딤섬’이 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중설 저모음 [a]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언어에서 찾을 수 있는 모음이다. 보통 단순히 [a]로 나타내지만 엄밀히 말하면 국제 음성 기호에서 [a]는 전설 저모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정의되었기 때문에 중설 중모음을 나타내려면 중설음화를 뜻하는 부호를 붙여서 [ä]로 써야 한다.하지만 입을 가장 크게 벌려서 발음하는 저모음의 경우 혀의 앞뒤 위치에 따른 차이가 그리 크지 않고 [a]와 [ä]를 구별하는 언어도 거의 없으니 웬만하면 그냥 [a]를 써도 무방하다. 한국어의 ‘아’도 중설 저모음 [a] 또는 그보다는 입을 약간 덜 벌린 [ɐ]로 발음된다.

그런데 보수적인 영국 표준 영어 발음에는 [a]로 발음되는 단일 모음이 없었다. TRAP 모음 /æ/ ‘애’도 음가 차이가 났고 PALM 모음 /ɑː/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아’로 적지만 후설 모음이고 영국 발음에서는 장모음이라서 다른 언어의 짧은 모음 [a]를 흉내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영국 발음에서 TRAP 모음 /æ/가 [a] 정도로 하강되었고 미국 발음에서는 PALM 모음 /ɑː/가 전진하여 음가가 [a]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다른 언어의 [a]를 흉내낼 때 쓴다.

그래서 다른 언어의 [a]는 영어의 STRUT 모음 /ʌ/로 받아들이고 영어식 철자 u로 적는 일이 많았다.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오만의 수도는 아랍어로 مسقط Masqaṭ [ˈmasqatˤ] ‘마스카트’인데 영어로는 Muscat으로 적고 [ˈmʌskæt] ‘머스캣’ 또는 [ˈmʌskət] ‘머스컷’으로 발음한다. 원어의 [a]를 STRUT 모음 /ʌ/로 흉내낸 것인데 공교롭게도 포도 품종의 하나인 머스캣(muscat)과 발음이 같지만 어원이 다르다. 포도 품종 muscat은 프랑스어 muscat [myska] ‘뮈스카’에서 빌린 말이다.

오만의 수도는 독일어 Maskat [ˈmaskat] ‘마스카트’, 프랑스어 Mascate [maskat] ‘마스카트’ 등 대부분의 언어에서 원어에 가깝게 쓰지만 덴마크어·루마니아어 Muscat ‘무스카트’, 스웨덴어 Muskat ‘무스카트’, 아이슬란드어 Múskat ‘무스카트’, 네덜란드어 Muscat ‘뮈스카트’, 그리스어 Μουσκάτ(Mouskát) ‘무스카트’처럼 영어식 철자를 받아들이면서 첫 모음의 발음을 둔갑시킨 언어도 많다. 한국어로도 ‘무스카트’가 표준 표기이다.

흥미롭게도 인도네시아어로는 오만의 수도를 Muskat ‘무스캇’이라고 부르는데 말레이어로는 Masqat 또는 Maskat ‘마스캇’이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어는 인도네시아어에서 교통어로 쓰이던 말레이어를 표준화시킨 것으로 근본적으로는 같은 언어이고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말레이인도네시아어라는 하나의 언어로 취급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식민지 시절 역사 때문에 유럽 언어 계열 차용어에서 차이를 많이 볼 수 있고 외국 고유 명사 표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오히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쓰이는 말레이어에서 원어와 가까운 ‘마스캇’을 쓰고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어에서 영어식 철자에서 비롯된 ‘무스캇’을 쓰는 것이 재미있다. 영어 구사율이 높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Muscat의 올바른 영어 발음을 알았기 때문에 ‘무스캇’으로 오해할 염려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어에서는 영어식 철자에서 u가 원어의 [a]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하지 않아서 철자는 영어식으로 받아들이되 일반적인 u와 마찬가지로 /u/ ‘우’로 발음하는 듯하다. 인도네시아어로 Low Tuck Kwong은 Tuck의 영어식 철자 ck만 k로 치환하여 마치 Low Tuk Kwong으로 쓴 것처럼 [lɔw.tʊʔ.kwɔŋ, -tʊk-] ‘로우툭퀑’으로 발음되는 것이 관찰된다. 인도네시아어에서 음절말 철자 k는 보통 성문 폐쇄음 [ʔ]로 발음되지만 차용어에서는 원어 발음을 살려 [k]로 실현하기도 하는데 어차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한글 표기에서는 받침 ‘ㄱ’으로 적으니 따질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뒤따르는 음절의 첫 음이 [k]라서 Tuck의 끝소리가 [ʔ]인지 [k]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원래의 광둥어에 가깝게 마치 Lau Tak Kwong으로 쓴 것처럼 [lau̯.taʔ.kwɔŋ, -tak-] ‘라우탁퀑’으로 발음한 동영상도 발견했다.

보통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에서 쓰이는 이중 모음으로는 ai [ai̯] ‘아이’, au [au̯] ‘아우’, ei [ei̯] ‘에이’, oi [oi̯] ‘오이’, ui [ui̯] ‘우이’를 든다. ‘오우’에 해당하는 이중 모음은 없다. 말레이어에서는 영어의 GOAT 모음 /oʊ̯/ ‘오’를 그냥 단순모음 o [o]로 받아들인다. 말레이시아인 조 로(Jho Low)의 성 Low도 말레이어에서는 마치 Lo로 적은 것처럼 [lo] ‘로’로 흔히 발음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어에서는 Low의 발음이 언뜻 ‘러우’ 비슷하게 들리는 [lɔw] ‘로우’로 관찰된다.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의 말레이어에는 드문 후설 원순 중저모음 [ɔ]를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빨리 말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활음 [w]가 들리지 않는 [lɔ.tʊ(ʔ).kwɔŋ] ‘로툭퀑’으로 발음한 경우도 관찰된다.

영어로는 어떻게 발음할까? 다음 동영상에서 싱가포르 화자는 Low Tuck Kwong을 [ˈloʊ̯-ˈtʌk-ˈkwɒˑŋ] ‘로턱퀑’으로 발음한다. 싱가포르 억양이라서 사실 [ˈlo-ˈtak-ˈkwɔŋ] ‘로탁퀑’에 가깝게 들린다.

말레이시아인 조 로(Jho Low)에 대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포함하는 영국령 말라야 연방에서 Low는 성씨 刘/劉의 호키엔어(주류 민남어) 발음 Lâu ‘라우’ 또는 광둥어 발음 Lau⁴ ‘라우’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헷갈리게도 성씨 罗/羅의 호키엔어 발음 Lô ‘로’ 또는 광둥어 발음 Lo⁴ ‘로’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래서 Low라는 철자만 봐서는 원래의 ‘라우’에 해당하는지, ‘로’에 해당하는지 알 길이 없다. 영어로 말할 때는 원래의 성과 상관없이 영어 단어 low처럼 그냥 [ˈloʊ̯] ‘로’로 발음하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말레이시아 스쿼시 선수 Low Wee Wern은 영어로 본인 이름을 [ˈloʊ̯-ˈwiː-ˈwɜːɹn] ‘로위원’으로 발음한다. https://youtu.be/SzMWVv2QCYQ?t=4 그의 중국어 이름 刘薇雯/劉薇雯은 호키엔어로 Lâu Bî-bûn ‘라우비분’, 광둥어로 Lau⁴ Mei⁴man⁴ ‘라우메이만’, 표준 중국어로 Liú Wēiwén ‘류웨이원’에 해당하므로 Low Wee Wern은 호키엔어 발음에 따라 로마자로 적은 Low와 표준 중국어에 가까운 발음을 흉내낸 Wee Wern을 합친 표기로 보인다. 그런데 호키엔어로는 ‘라우’인 성을 영어로는 ‘로’로 발음하는 것을 주목할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Low를 영어로 언제나 ‘로’로만 발음하지는 않는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Low Tuck Kwong의 딸인 Elaine Low의 성을 [ˈlaʊ̯] ‘라우’로 발음한다.

또 다음 동영상에서는 싱가포르 정치가 Low Thia Khiang을 ‘라우티아키앙’으로 발음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Wuwgn2dxLM 그의 이름 刘程强/劉程強은 민남어에 속하는 말씨인 차오저우어로 Lâu Thiâⁿ-khiâng ‘라우탸컁’으로 발음된다(주류 민남어인 호키엔어로는 Lâu Thiâⁿ-kiâng ‘라우탸꺙’).

그런데 Low Tuck Kwong은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아서 본인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영어 발음에 따른 표기를 ‘로턱퀑’으로 쓸지, ‘라우턱퀑’으로 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외래 고유 실무위원회에서는 가장 많이 관찰되는 인도네시아어 발음에 따라 ‘로우 툭 퀑’으로 적기로 결정한 듯하다. 인도네시아어에서 널리 쓰이는 발음이 어원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물론 싱가포르 출신 인물이니 싱가포르에서 쓰는 발음에 따라 적는 것이 낫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동영상을 찾아보면 대부분 인도네시아어로 된 것들이다.

대신 한자 이름은 붙여 쓰는 관습을 따르면 ‘로우 툭 퀑’보다는 ‘로우툭퀑’으로 쓰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로마자 표기에서 각 자 사이를 띄어 쓴다고 해서 한글 표기에서도 이를 따를 필요는 없다(Hong Kong, dim sum은 ‘홍 콩’, ‘딤 섬’으로 적지 않는다). 물론 광둥어 이름이 ‘라우닥궝’이라는 추가 정보도 제시했다면 더욱 나았을 것이다. 다만 외래 고유 실무위원회에서 로우툭퀑이 한자 이름이라는 것을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좀 불규칙한 인도네시아어 이름이라고 보고 띄어 썼을 수도 있다.

1991년부터 외래어 표기 심의를 담당해왔던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는 2023년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더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활동을 중단하여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외래어와 외국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 심의를 위한 심의위원회로 대체되었다. 예전의 외래어 심의회와 실무소위에 대응되는 것으로 보이는 심의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개최하는데 ‘로우 툭 퀑’이라는 표기는 실무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다.

여담으로 실무위원회 결정 내용에서 로우툭퀑이 창립한 회사인 Bayan Resources는 한글로 표기하지 않고 원어 철자로 남겨두었는데 이 글에서는 ‘바얀 리소시스’로 표기하기로 했다. Bayan은 인도네시아어로 취급하여 ‘바얀’으로 적으면 되는데 Resources의 표기가 문제이다. 미국식 발음으로는 첫 음절에 강세를 준 [ˈɹisɔːɹsᵻz] ‘리소시스’와 [ˈɹizɔːɹsᵻz] ‘리조시스’, 둘째 음절에 강세를 준 [ɹi⟮ᵻ⟯ˈsɔːɹsᵻz] ‘리소시스’와 [ɹi⟮ᵻ⟯ˈzɔːɹsᵻz] ‘리조시스’가 혼용된다. 영국식 발음에서는 둘째 음절에 강세를 준 [ɹi⟮ᵻ⟯ˈzɔːɹsᵻz] ‘리조시스’와 [ɹi⟮ᵻ⟯ˈsɔːɹsᵻz] ‘리소시스’가 혼용된다. 미국식으로는 ‘리소시스’가, 영국식으로는 ‘리조시스’가 우세한 듯하다. resource의 한글 표기는 심의된 적이 없지만 민간에서는 ‘리소스’가 더 흔하고 일반적으로 [s]와 [z]가 엇비슷하게 혼용되는 철자 s는 [s]로 취급하여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니 Resources는 ‘리소시스’로 적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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