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캔화파의 미국 화가 로버트 헨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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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빈민가를 포함한 도시 생활의 현실적인 면을 그린 애시캔화파(Ashcan school)를 주도한 대표 인물로 로버트 헨라이(Robert Henri, 1865~1929)라는 화가가 있다.

현재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서는 ‘로버트 헨리’로 표제어를 쓰고 있으며 《메리엄·웹스터 인명 사전》에도 Henri, Robert 항목에서 Henri의 발음을 \ˈhen-rē\ 즉 [ˈhɛnɹi] ‘헨리’로 제시한다. 《롱맨 발음 사전》, 《케임브리지 영어 발음 사전》에서도 미국인 성씨로는 발음을 ‘헨리’로 제시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Henri를 [ˈhɛnɹaɪ̯] ‘헨라이’라고 발음했다.

그의 이름은 원래 로버트 헨리 코재드(Robert Henry Cozad [ˈɹɒbəɹt ˈhɛnɹi ˈkoʊ̯zæd])였다. 그의 아버지 존 잭슨 코재드(John Jackson Cozad [ˈʤɒn ˈʤæksən ˈkoʊ̯zæd])는 1873년에 오하이오주에서 네브래스카주로 옮겨 코재드(Cozad)라는 이름의 소도시를 건설했다. 지명 Cozad의 발음은 [ˈkoʊ̯zæd] ‘코재드’로 관찰된다(동영상).

그런데 1882년에 아버지 존 잭슨 코재드는 앨프리드 피어슨(Alfred Pearson [ˈælfɹᵻd ˈpɪə̯ɹs(ə)n])이라는 목장 주인과 토지 분쟁 끝에 그의 안면에 총을 쏘고 말았다. 피어슨은 두 달 후 사망했고 코재드 식구는 처벌을 피해 도주했다.

그들은 이 일 때문에 이름도 바꾸었다. 아버지는 리처드 헨리 리(Richard Henry Lee [ˈɹɪʧəɹd ˈhɛnɹi ˈliː])로 개명하였고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로버트 헨리 코재드는 Robert Henri로 개명하여 아버지의 양아들 행세를 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처벌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새 이름을 평생 쓰게 되었다.

부모가 둘 다 프랑스 혈통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식 이름인 Henri를 택한 듯하다. 실제 Cozad는 프랑스어 성씨 Cozart [kozaʁ] ‘코자르’에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Henri는 프랑스어로 [ɑ̃ʁi] ‘앙리’라고 발음하며 영어권에서도 보통 프랑스어 발음을 흉내내어 영국식 [ˈɒnɹi, ˈɒ̃ɹi, -ɹiː] ‘안리/앙리’, 미국식 [ɑːnˈɹiː] ‘안리’ 등으로 발음한다(외래어 표기법에서 [ɒ]는 ‘오’로 적지만 프랑스어 [ɑ̃]을 흉내낸 [ɒn, ɒ̃]의 경우는 ‘안/앙’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로버트는 단순히 Henri의 프랑스어 발음을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본인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혈통을 인지하여 일부러 영어식으로 발음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성을 ‘헨라이’로 발음했다. 영어의 어말 -i는 약화된 모음 [i] ‘이’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지만 라틴어식 alibi [ˈælə⟮ᵻ⟯baɪ̯] ‘앨리바이’, cacti [ˈkæktaɪ̯] ‘캑타이’, rabbi [ˈɹæbaɪ̯] ‘래바이’나 이름 Levi의 발음 가운데 하나인 [ˈliːvaɪ̯] ‘리바이’, 오스트레일리아 지명 Bondi [ˈbɒndaɪ̯] ‘본다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약화되지 않은 [aɪ̯] ‘아이’로도 발음될 수 있다.

그런데 Henri는 영국 성씨로도 쓰이며 이 경우는 이름 Henry와 동일하게 [ˈhɛnɹi] ‘헨리’로 발음된다. 《BBC 영국 이름 발음 사전》에 이 발음이 실려있으며 《라우틀리지 발음 사전》에서도 영어 성씨(English surname)로 이 발음을 제시한다.

정작 Henri라는 성씨를 쓰는 영국인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한데 오페라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한 잉글랜드의 루이 헨리(Louie Henri [ˈluːi ˈhɛnɹi], 1864~1947) 정도가 검색된다. 그의 본명은 루이자 웨버(Louisa Webber [luˈiːzə ˈwɛbəɹ])였고 Henri는 예명이었다. 《BBC 영국 이름 발음 사전》에서 Henri의 발음을 ‘헨리’로 실은 것은 루이 헨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Henri는 영어 이름으로 취급한다면 Henry의 이철자로 보아서 ‘헨리’로 발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메리엄·웹스터 인명 사전》에서는 로버트 헨라이의 성의 발음을 ‘헨리’로 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 발음이 ‘헨라이’였다는 것은 여러 출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대해서 아는 이들도 ‘헨라이’라고 발음한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애니메이션 작가 월트 디즈니(Walt Disney [ˈwɔːlt ˈdɪzni])가 Robert Henry를 ‘로버트 헨라이’로 발음한다(동영상).

로버트 헨라이 미술관 관장도 같은 발음을 쓴다(동영상).

코넬 미술관 큐레이터도 그에 대한 강연에서 같은 발음을 쓴다(동영상).

‘헨라이’라는 발음은 각종 발음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이처럼 본인이 선호했던 발음으로 확인이 가능하고 지금도 미술계에서 쓰는 발음이니 Robert Henri는 ‘로버트 헨리’ 대신 ‘로버트 헨라이’로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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