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거리 달리기 강국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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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에서 에티오피아는 남자 마라톤 금메달과 여자 마라톤 은메달을 비롯하여 육상 중·장거리 종목에서만 네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또 여자 마라톤 금메달을 비롯하여 5000m와 10000m 달리기에서도 메달을 따는 대기록을 세운 네달란드의 하산 시판(Hassan Sifan)도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났고 남자 1500m 달리기에서 동메달을 딴 미국의 야레드 너구스(Yared Nuguse)는 부모가 에티오피아 출신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씨를 쓰지 않는다. 가장 흔한 명명법은 개인 이름 뒤에 부칭 즉 아버지 이름을 쓰는 것이다. 드물게 개인 이름과 아버지 이름 뒤에 친할아버지 이름까지 붙이기도 한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에티오피아 시사이 레마(Sisay Lemma)가 부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체 선수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딴 탐라트 톨라(Tamirat Tola) 선수는 이름이 Tamirat Tola Abera로 나오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식 명명법을 따른 것이라면 여기서 Tamirat가 선수 본인의 이름, Tola는 그의 아버지 이름, Abera는 그의 친할아버지 이름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시사이 레마도 Sisay Lemma Kasaye로 나오는데 Sisay는 본인 이름, Lemma는 아버지 이름, Kasaye는 친할아버지 이름이다.

하지만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마치 Tola가 성인 것처럼 탐라트의 이름을 TOLA Tamirat로 쓰고 있다.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프랑스 수영 선수 레옹 마르샹(Léon Marchand)을 MARCHAND Leon으로 적는 등 성을 먼저 모두 대문자로 쓰고 나머지 이름은 첫글자만 대문자로 쓴다.

여자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티기스트 아세파는 ASSEFA Tigst, 남자 10000m 은메달리스트 베리후 아레가위는 AREGAWI Berihu, 여자 800m 은메달리스트 치게 두구마는 DUGUMA Tsige 등으로 쓰는 등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다른 에티오피아 선수 이름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버지 이름을 성씨처럼 취급하고 있다.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뿐만이 아니라 세계 육상 연맹에서도 Tamirat TOLA로 써서 Tola를 성씨처럼 취급하고 있고 영어권을 비롯한 서방 언론에서는 그를 줄여서 Tola로 부른다. 물론 에티오피아에서는 언제나 그의 개인 이름을 써서 그를 ታምራት Tamrat ‘탐라트’라고 부른다.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 언어에서는 누구나 성씨가 있고 줄여 부를 때 성씨로만 부른데 익숙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를 비롯하여 소말리아, 아이슬란드 등 성씨가 흔하지 않은 사회의 인물을 이를 때 부칭을 성씨로 오해해서 현지 방식과 달리 부칭으로 줄여 부르는 일이 흔하다.

한국 언론에서도 서방 언론을 그대로 따라서 ‘톨라’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편집 중인 2024 파리 올림픽 입상 선수 한글 표기 문서에서는 ‘탐라트 톨라’의 ‘탐라트’를 굵은 글씨로 써서 줄여 부를 때는 ‘탐라트’라고 부르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나타냈다.

왜 로마자 표기는 Tamirat인데 ‘탐라트’라고 부르고 있는지 궁금한 이가 많을 것이다. 원어 철자 ታምራት에서 게에즈 문자(에티오피아 문자)를 전통 방식으로 나열했을 때 제4열에 속하는 ታ와 ራ는 모음 a [a]를 쓰는 ta [ta] ‘타’, ra [ra] ‘라’이지만 제6열에 속하는 ም와 ት는 모음 ǝ [ɨ]를 쓰는 mǝ [mɨ] ‘므’, tǝ [tɨ] ‘트’를 나타낼 수도 있고 모음이 없는 m [m] ‘ㅁ’, t [t] ‘ㅌ’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니 원어 철자만 봐서는 발음이 ‘*타므라트’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ɨ]를 ǝ로 적는 학술적인 로마자 표기를 따랐지만 미국지명위원회·영국지명위원회(BGN/PCGN)의 1967년 표기법에서는 같은 모음을 i로 적으며 에티오피아 인명의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흔히 따른다. 경구개음 뒤에서는 실제 변이음 [ɪ]로 흔히 발음되는 것과 관련되었을 수 있다. 즉 ‘*타므라트’라는 발음은 이 방식에 따라 Tamirat라고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은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기적’을 뜻하는 ተአምር täʾamr [tǝ(ʔ)amr]의 복수형인 ተአምራት täʾamrat [tǝ(ʔ)amrat]를 줄인 말에서 나왔으며 에드윈 로슨(Edwin D. Lawson)이 편집하여 미국 CIA에서 작성한 암하라어 이름 안내 문서에서도 Tamrat라는 형태로 제시된다.

동영상에서도 그의 이름은 두 음절 [tamrat]로 관찰된다.

게에즈 문자에서 같은 기호가 자음만을 나타내기도 하고 [ɨ]가 따르는 음을 나타내기도 해서 그런지 이 이름은 로마자 표기가 Tamrat와 Tamirat가 혼용된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에티오피아 총리를 지냈던 탐라트 라이네(ታምራት ላይኔ Tamrat Layne)는 로마자 표기로 Tamrat Layne와 Tamirat Layne를 둘 다 볼 수 있다.

물론 방언에 따라 발음이 다를 수도 있고 비슷한 다른 언어에서는 정말로 m 뒤에 모음이 따를 수도 있다. 에티오피아는 공용어인 암하라어 외에 암하라어처럼 셈 어파에 속하는 티그리냐어, 구라게어 등 외에 오로모어, 소말리어, 시다마어 등 쿠시 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가 많이 쓰인다(셈 어파와 쿠시 어파는 둘 다 아프리카·아시아 어족에 속한다). 이들은 공용어인 암하라어 및 전통적으로 문자 언어로 쓰였던 셈 어파 언어인 게에즈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꽤 복잡한데 암하라어나 게에즈어식 이름을 쓰면서도 발음은 살짝 다르게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보가 부족하니 로마자로 Tamrat 또는 Tamirat가 혼용되는 에티오피아 이름의 한글 표기는 관찰되는 암하라어 발음에 따라 ‘탐라트’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마찬가지로 통용 로마자 Tigst로 쓰는 이름 ትዕግሥት는 ‘인내’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으며 본인 발음을 비롯하여 Təʿgəśt [tɨ(ʔ)ɡɨst]로 발음이 관찰된다. 같은 이름은 Tigist라는 로마자 표기로도 흔히 볼 수 있다.

암하라어의 [ɨ]는 한국어의 ‘으’와 비슷한 음이므로 원어 발음에 가깝게 쓰면 ‘트그스트’가 되겠지만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 ə [ɨ]를 i로 적는 것을 고려하면 ‘티기스트’로 쓰는 것이 현실적이다. 마찬가지로 여자 800m에서 은메달을 딴 ጽጌ ዱጉማ Ṣəge Duguma는 Tsige Duguma로 통용되므로 ‘츠게 두구마’ 대신 ‘치게 두구마’로 적는 것이 좋겠다. 암하라어의 ṣ는 방출 마찰음 [sʼ]로 실현되기도 하지만 보통 방출 파찰음 [ʦʼ]로 실현되며 BGN/PCGN 1967년 표기법이나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 ts로 적으니 ‘ㅊ’으로 적는 것이 좋다.

ə [ɨ]를 ‘이’로 적는 것과 비슷하게 ä [ə]는 ‘어’가 실제 발음에 가깝지만 BGN/PCGN 1967년 표기법이나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 e로 쓰는 것을 고려하면 ‘에’로 쓰는 것이 현실적이다. Tigst Assefa의 부칭은 አሰፋ Asäffa [asəffa]로 ‘아서파’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깝겠지만 ‘아세파’로 적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자 10000m에서 은메달을 딴 በሪሁ አረጋዊ Bärihu Arägawi는 ‘버리후 아러가위’가 원어 발음에 가깝겠지만 Berihu Aregawi로 통용되므로 ‘베리후 아레가위’로 적는 것이 현실적이다. BGN/PCGN 1967년 표기법에서는 특수 기호를 써서 i [ɨ]와 ī [i], e [ə]와 ē [e]를 구별하지만 통용 로마자에서는 구별 없이 i와 e로 각각 통일하여 적고 언제나 원어 철자를 확인하기도 어려우니 현실적으로 한글 표기도 ‘이’와 ‘에’로 통일할 수밖에 없다.

원어에서는 Asäffa [asəffa]로 발음되는데 통용 로마자 표기 Assefa에서는 s를 겹쳐 쓰고 f는 겹쳐 쓰지 않았다. 모음 사이에서 s를 겹치는 것은 [z]가 아닌 [s]로 발음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기이다. 여러 유럽 언어에서 모음 사이에 s 하나가 오면 [z]로 발음하기 쉽다.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네덜란드의 Sifan Hassan은 오로모어로 Siifan Hasan ‘시판 하산’, 암하라어로 ሲፋን ሐሰን Sifan Ḥasän ‘시판 하센’이고 그 어원이 되는 아랍어 حسن Ḥasan ‘하산’도 [s]가 겹치지 않는데 로마자로는 흔히 Hassan으로 적는다.

부상으로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참가하지 못한 ሲሳይ ለማ Sisay Lämma는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도 m의 겹침을 나타내서 Sisay Lemma로 적는다. 하지만 Assefa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원어의 겹자음이 통용 로마자 표기에 꼭 드러나지는 않는다. BGN/PCGN 1967년 표기법에서는 아예 겹자음을 무시한다. 게에즈 문자 철자에서는 겹자음을 따로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 같은 자료를 참고하지 않으면 어느 음이 겹쳐서 발음되는지 알 길이 없다.

1960년 에티오피아 최초의 마라톤 금메달을 따며 ‘맨발의 아베베’로 널리 기억되는 전설적인 마라톤 선수는 Abebe Bikila로 통용되지만 암하라어로는 አበበ ቢቂላ Abbäbä Biqila로 첫 b가 겹친다. 물론 한글 표기에서는 이런 겹자음은 무시하고 ‘아베베 비킬라’로 적을 수 있지만 m, n 등이 겹칠 때는 한글 표기가 달라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ለማ Lämma는 겹자음을 반영하느냐에 따라 ‘렘마’ 또는 ‘레마’로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원어 철자에 겹자음이 나타나지 않고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도 겹자음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언제나 원어 발음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암하라어의 겹자음은 무시하고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레마’로 적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당초 여자 1500m 동메달을 땄다가 금·은메달 수상자들의 도핑 실격 처리로 금메달리스트로 격상된 바레인의 중거리 달리기 선수 마리암 유수프 자말(مريم يوسف جمال Maryam Yūsuf Jamāl)은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오로모계 선수로 본명은 ዘነበች ቶላ Zännäbäč Tola인데 Zenebech Tola로 통용된다. 이것도 원어의 겹자음을 반영한 ‘젠네베치 톨라’ 대신 ‘제네베치 톨라’로 적는 것이 현실적이다. Zännäbäč는 ‘그녀가 비를 내렸다’를 뜻하는 암하라어식 이름인데 이처럼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인 가운데도 암하라어식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에티오피아계 미국 선수 Yared Nuguse는 올림픽 웹사이트에 실린 본인 영어 발음이 [ˈjɑːɹ.ɛd nə.ˈɡuːs] ‘야레드 너구스’로 관찰된다.

그의 부모는 에티오피아의 티그라이 지방 출신으로 로마자로 Alem Nuguse와 Mana Berhe로 표기된다. 아마 원래 부칭인 Nuguse를 미국에 이주하면서 성씨처럼 써서 아들에게 물려준 것 같다. 즉 원래 야레드의 친할아버지 이름이었던 것이 성씨가 된 거으로 보인다. 성씨가 되었으니 이 인물은 ‘너구스’로 줄여 부르는 데 하자가 없다.

티그라이 지방에서는 티그리냐어를 주로 쓴다. 미국의 소리(VOA) 티그리냐어 방송 보도에서는 그의 이름을 ያሬድ ንጉሰ Yared Nəgusä로 쓴다.

Yared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 이름 יֶרֶד Yered ‘예레드'(한국어 성경 ‘야렛’)에 해당되는 에티오피아 이름이다. Nəgusä는 게에즈어로 ‘왕’을 뜻하는 ንጉሥ nəguś에서 왔다. 같은 철자로 쓰는 암하라어 nəguś는 [nɨɡus]로 발음되니 ‘느구스’로 쓰는 것이 가장 가깝고 이미 설명한 방식에 따르면 ‘니구스’로 적게 되지만 이 단어는 원래 게에즈어 역사 용어이기 때문에 영어에서는 암하라어식 *nigus가 아니라 학술적인 표기 nəguś에 가까운 negus로 흔히 적는다. 학술적인 로마자 표기의 ə는 특수 문자 없이 쓸 때 보통 e로 대체한다. 그러니 게에즈어 단어로 보면 ‘네구스’라고 적는 것이 무난하다.

대신 이름인 ንጉሰ Nəgusä는 보통 Niguse로 통용되니 현대 에티오피아 인명으로는 ‘니구세’로 적을 수 있다. Nuguse는 뒤따르는 u의 영향으로 불분명할 수 있는 모음 [ɨ]를 u로 적은 이철자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게에즈어의 nəguś를 에티오피아 남부의 시다마어로는 nugusa ‘누구사’로 차용했다.

그런데 본인은 Nuguse의 e를 영어 철자식으로 묵음으로 취급하여 두 음절 [nə.ˈɡuːs] ‘너구스’라고 발음하니 Nəgusä보다는 오히려 nəguś에 더 가깝게 들린다. 그러니 이 선수 이름은 본인의 영어 발음에 따라 ‘야레드 너구스’로 적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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