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장대높이뛰기 선수 아르만드 두플란티스 혹은 아만드 듀플랜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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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도쿄 올림픽에 이어 파리 올림픽에서도 남자 장대높이뛰기 금메달을 따내며 또다시 자신의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스웨덴 선수 아르만드 두플란티스/아만드 듀플랜티스(Armand Duplantis)는 미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케이전(Cajun [ˈkeɪ̯ʤ.ən])인 즉 미국 루이지애나주를 중심으로 사는 프랑스계 주민이다(민간에서는 ‘케이준’이라고 흔히 쓰지만 이렇게 표기할 근거는 없다).

케이전인들은 원래 북아메리카 동북부, 즉 오늘날의 캐나다 연해주와 퀘벡주 일부, 미국 메인주 일부에 있던 프랑스 식민지 아카디(Acadie [akadi])에 정착했던 프랑스인들의 후손이다. 칠 년 전쟁의 일부였던 이른바 프렌치·인디언 전쟁 중인 1755년부터 1764년 사이 영국에 의해 아카디의 프랑스 주민들이 강제 추방되면서 많은 이들은 미시시피강 유역에 있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이름을 딴 프랑스 식민지 루이지안(Louisiane [lwizjan])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전쟁 중인 1762년 이 영토는 에스파냐에게 넘어가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의 루이시아나(Luisiana)주가 되었다. 오늘날 그 이름을 딴 미국의 주는 원래의 루이지애나 영토보다 훨씬 크기가 작다.

아카디인을 프랑스어로 Acadien [akadjɛ̃] ‘아카디앵’, 영어로 Acadian [ə.ˈkeɪ̯d.i‿ən] ‘어케이디언’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발음이 변화하여 루이지애나에 정착한 아카디인의 후손들을 ‘케이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물론 배경이 조금 다른 루이지애나 주민들에게도 같은 이름이 붙었기 실제 케이전 정체성 문제는 꽤 복잡하다). 이들 상당수는 아직도 루이지애나 프랑스어 또는 케이전 프랑스어라고 불리는 프랑스어 방언을 구사한다.

Duplantis는 원래 프랑스어로 [dyplɑ̃tis] ‘뒤플랑티스’로 발음되는 프랑스어 성씨이다. Armand 역시 프랑스어로 [aʁmɑ̃] ‘아르망’으로 발음되는 프랑스어 이름이다. 배경 지식 없이 Armand Duplantis라는 철자를 본다면 영락없는 프랑스어 인명이다.

그런데 영어로는 Duplantis를 [dju.ˈplæˑnt.ᵻs] ‘듀플랜티스’로 발음한다. 이것은 영미 발음을 둘 다 대표하려 적은 표기이고 실제로는 미국 발음으로 [du.ˈplænt.əs] ‘두플랜터스’, 영국 발음으로 [dju.ˈplɑːnt.ɪs] ‘듀플란티스’로 발음된다.

미국 발음에서는 [d, t, n] 뒤의 [juː, jʊ]에서 [j]가 보통 탈락한다([u]는 [uː] 또는 [ʊ]로 발음되는 약화된 모음을 나타내는 약식 표기이다). 그래서 duet [dju.ˈɛt] ‘듀엣’, tube [ˈtjuːb] ‘튜브’, new [ˈnjuː] ‘뉴’는 미국 발음에서 보통 [du.ˈɛt] ‘두엣’, tube [ˈtuːb], new [ˈnuː]로 실현된다. 한편 영국 발음에서는 new가 언제나 [ˈnjuː] ‘뉴’로 실현되는데 요즘은 [ʤu.ˈɛt] ‘주엣’, [ˈʧuːb] ‘추브’와 같이 구개음화가 일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보수적인 발음에 따라 ‘듀엣’, ‘튜브’, ‘뉴’와 같이 쓴다. 그래서 Duplantis에서도 ‘듀-‘로 표기한다.

영어로 plant [ˈplæˑnt]는 이른바 BATH 모음에 속하며 이 모음은 미국 발음에서 TRAP 모음과 동일한 [æ] ‘애’이고 잉글랜드 남부 기준의 표준 영국 발음에서는 PALM 모음과 동일한 [ɑː] ‘아’이다. 대신 잉글랜드 북부 발음에서는 [æ] ‘애’이다. 다만 영국에서는 TRAP 모음 [æ]가 미국 발음에서보다는 저모음인 [a] 정도로 발음되기 때문에 한국어 화자에게는 [ɑː] 대신 [æ]를 쓴 경우에도 ‘아’에 가깝게 들리기 쉽다. 여기서는 BATH 모음을 약식 표기 [æˑ]로 나타낸다.

Duplantis의 -plant-는 아마 plant처럼 라틴어 planta ‘플란타’에서 나왔을 것이다. last [ˈlæˑst] ‘라스트’, implant [ˈɪm.plæˑnt] ‘임플란트’처럼 영어의 BATH 모음 [æˑ]를 ‘아’로 적은 용례도 있지만 dance [ˈdæˑns] ‘댄스’, pass [ˈpæˑs] ‘패스’, plant [ˈplæˑnt] ‘플랜트’ 등 ‘애’로 적은 용례가 더 많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애’로 표기하는 것이 좋다.

Duplantis의 본인 영어 발음을 들으면 아예 [t]도 탈락한 [dʊ.ˈplæn.əs] ‘두플래너스’ 정도로 관찰된다. 미국 영어에서 /n/과 모음 사이의 /t/는 음절의 첫 음이 아닌 이상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해서는 비음화된 탄음 [ɾ̃]로 실현되거나 아예 [n]에 흡수된다. 물론 한글로 표기할 때는 /t/를 밝혀서 적는다.

마지막 모음 [ᵻ]는 [ɪ] 또는 [ə]로 발음되는 약화된 모음을 나타내는 약식 표기이다. 보통 Alice [ˈæl.ᵻs] ‘앨리스’, Francis [ˈfɹæˑns.ᵻs] ‘프랜시스’, Lewis [ˈluː‿ᵻs] ‘루이스’ 같은 이름에서 표준 영국 발음은 [ɪ]를 쓰지만 미국 발음에서는 [ə]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적어도 철자 i로 적는 [ᵻ]는 ‘이’로 통일한다. impossible [ɪm.ˈpɒs.ᵻb.(ə)l]을 미국 발음 [ɪm.ˈpɑːs.əb.(ə)l]을 기준으로 ‘*임파서블’로 적는 민간 표기도 더러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영국 발음에서도 [ɪm.ˈpɒs.əb.(ə)l]로 보통 실현되지만 원칙적으로는 ‘임포시블’로 적어야 한다.

그런데 Duplantis의 본인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Armand보다는 Mondo [ˈmɒnd.oʊ̯] ‘몬도’를 이름으로 쓴다. 미국 발음으로는 LOT 모음 [ɒ] ‘오’가 PALM 모음 [ɑː] ‘아’와 합쳐졌기 때문에 [ˈmɑːnd.oʊ̯] ‘만도’로 실현된다.

본인은 보통 Mondo라는 이름만 쓰기 때문에 Armand의 본인 발음은 찾기 힘들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어 이름 Armand [aʁmɑ̃] ‘아르망’에서 온 이 이름은 영어로 다양하게 발음될 수 있다.

영국의 롱맨 발음 사전에 따르면 영국식 발음은 [ˈɑːɹm.ənd] ‘아먼드’, 미국식 발음은 [ɑːɹ.ˈmɑːn] ‘아만’이다. 미국식 발음이 좀 더 프랑스어를 흉내내서 d도 묵음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미국의 메리엄·웹스터 인명 사전에서는 영어 이름 Armand의 발음을 [ˈɑːɹm.ənd] ‘아먼드’ 또는 [ˈɑːɹ.ˌmɑːnd] ‘아만드’로 제시했다. 다음 동영상에서도 미국 영어에서 [ˈɑːɹ.mɑːnd] ‘아만드’로 발음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Mondo는 [ˈɑːɹ.mɑːnd] ‘아만드’ 같은 발음에서 나온 별명으로 짐작할 수 있다. LOT 모음과 PALM 모음이 합쳐진 미국 발음에서는 [ˈɑːɹ.mɑːnd]의 둘째 음절과 Mondo의 첫째 음절이 동일하게 실현된다. 그러니 Armand는 둘째 모음이 약화되지 않은 [ˈɑːɹ.mɑːnd]로 발음되는 것으로 보고 ‘아만드’로 적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참고로 스웨덴어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ˈarmand dʉˈplantɪs] ‘아르만드 두플란티스’ 정도로 발음하는 것이 관찰된다.

그런데 2021년 7월 2일 제156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Armand Duplantis의 표기를 ‘듀플랜티스, 아먼드’로 심의하였다. Armand의 발음을 [ˈɑːɹm.ənd]로 본 것이다. 본인 발음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관찰 발음과 Mondo라는 별명을 고려하면 이 인명에서는 Armand가 [ˈɑːɹ.mɑːnd]로 발음되는 것으로 보고 ‘아만드’라고 적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두플란티스/듀플랜티스는 스웨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스웨덴어로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사실 스웨덴 대표로 활약하는 선수이고 애초에 영어식 이름이 아니라 프랑스어식 이름이라서 영어 발음이 중구난방인 것이니 스웨덴어 인명으로 취급하여 ‘아르만드 두플란티스’라고 적으면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인물의 성장 배경을 고려하여 영어 이름으로 취급하는 것이 낫다고 본 듯하다. 물론 일반 한국어 화자에게 스웨덴어보다 영어가 친숙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스웨덴어로 취급하여 적으면 쉽게 한글 표기를 정할 수 있는 이름을 영어 발음을 복잡하게 따져가면서, 그것도 Armand의 발음을 잘못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게 한글 표기를 정한 것을 보면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국어 이름의 원어로 간주할 수 있는 언어가 둘 이상이면 어느 것을 원어로 삼아 한글로 표기할지 고를 때 고려할 점이 여럿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글 표기를 통일하기 쉬운 쪽으로 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르만드 두플란티스’라고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을 어렵게 영어 발음을 따져서 표기를 정하다가 좀 그르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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