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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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와 환경 분야 과학자 출신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전 멕시코시티 시장이 차기 멕시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53년에 멕시코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지 71년만에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셰인바움은 10월 1일 취임하여 현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의 뒤를 이어 6년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기후 과학자이자 운동가로서 유엔 정부 간 기후 변화 위원회(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공동 수상했을 당시 보고서 저자로 기여하기도 했다.

그의 본디 이름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파르도(Claudia Sheinbaum Pardo)로 셰인바움(Sheinbaum)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제1성씨, 파르도(Pardo)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제2성씨인데 보통 제1성씨만 쓴다. 그런데 이들은 유대인 성씨이다. 그의 친조부모는 리투아니아 출신 아슈케나지 유대계이고 외조부모는 불가리아 출신 세파르디 유대계이다. 셰인바움 본인은 비종교적 유대인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어려서 조부모 집에서 유대교 명절을 기념했다고 한다. 그러니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동시에 최초의 유대계 집안 출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한다(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라틴아메리카에 정착한 이베리아반도 출신 이주민 가운데는 유대인 후손이 많으니 먼 혈통까지 따지면 최초는 아닐 것이다).

전통적으로 라인강 유역에서 나타난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중세 고지 독일어에서 갈라져 나온 이디시어를 쓰고 이베리아반도에 뿌리를 두는 세파르디 유대인은 중세 에스파냐어에서 갈라져 나온 라디노어를 쓴다. 후에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옛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권역(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포함)으로 많이 퍼졌고 세파르디 유대인은 1492년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후 북아프리카와 옛 오스만 제국의 권역인 발칸반도와 튀르키예로 많이 퍼졌다.

본인은 Claudia Sheinbaum을 에스파냐어로 [ˈklau̯ð̞ja ˈʃei̯mbau̯m] ‘클라우디아 셰임바움’이라고 발음한다.

여기서 n /n/이 /b/ 앞에서 자음 동화로 인해 [m]으로 실현되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셰인바움’으로 쓴다. 그런데 여기서 철자 sh로 쓴 [ʃ]는 원래 에스파냐어에 없는 음이다. 그래서 화자에 따라 이를 ch로 쓰는 [ʧ]로 대체하여 [ˈʧei̯mbau̯m] ‘체임바움’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카탈루냐어 이름 Xavi는 정통 카탈루냐어 발음으로 [ˈʃaβ̞i] ‘샤비’로 발음되지만 에스파냐어에서는 흔히 [ˈʧaβ̞i] ‘차비’로 흉내내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그런데 카탈루냐어도 방언에 따라 어두의 x /ʃ/ ‘시*’를 [ʧ] ‘ㅊ’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여기서 ‘시*’는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샤’, ‘셰’ 등으로 적는다는 약식 표기이다).

중세 에스파냐어에서는 철자 x가 오늘날의 카탈루냐어나 포르투갈어에서처럼 [ʃ] ‘시*’를 나타냈는데 후에 [x] ‘ㅎ’로 음가가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중세 에스파냐어에서 [ʒ] ‘ㅈ’를 나타냈던 철자 j 또는 e, i 앞의 g도 [x] ‘ㅎ’로 음가가 바뀌었다. 그 후 에스파냐어의 철자 개혁으로 [x]로 발음이 바뀐 x는 j로 대체했는데 국명 México [ˈmexiko] ‘메히코’에서는 옛 철자가 보존되었다.

예전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México라는 지명은 아스테카 문명의 언어인 고전 나와틀어 Mēxihco [meːˈʃiʔko] ‘메시코’에서 나왔다. 에스파냐의 아스테카 정복은 1521년에 완성되었는데 16세기 에스파냐어에서는 x가 아직 [ʃ]를 나타냈기 때문에 이런 철자를 썼다. 영어에서 Mexico를 [ˈmɛks.ɨ.koʊ̯] ‘멕시코’라고 발음하는 등 유럽 여러 언어에서는 라틴어식으로 x를 [ks]로 읽는 습관을 따르지만 에스파냐어에서는 원래 ‘메시코’로 발음되었던 México가 발음 변화에 따라 오늘날 ‘메히코’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나와틀어에서는 x [ʃ]가 쓰인다. 나와틀어는 멕시코 중부에 아직 170만 명 정도의 화자가 있으며 멕시코의 에스파냐어는 나와틀어에서 전해진 어휘에서 x [ʃ]나 tl [t͡ɬ] 같이 원래 에스파냐어에 없는 음을 쓰기도 한다. 고전 나와틀어로 ‘꽃’을 뜻하는 xōchitl [ˈʃoːtʃit͡ɬ] ‘쇼치틀’에서 유래한 여자 이름 Xóchitl은 [ˈsoʧitl] ‘소치틀’로 보통 발음되지만 나와틀어와 가깝게 [ˈʃoʧit͡ɬ] ‘쇼치틀’로 발음될 수도 있다. 꼭 [t͡ɬ]을 발음하지 않더라도 멕시코 에스파냐어에서는 /tl/이 마치 한 음소처럼 취급된다. 에스파냐 대부분에서는 보통 Atlántico ‘아틀란티코’ 같은 단어에서 t와 l 사이에 음절 경계를 넣어 /t/가 변이음 [ð̞]로 약화되어 /atˈlantiko/ [að̞ˈlantiko]로 발음되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보통 /tl/이 같은 음절에 놓여 약화 없이 /aˈtlantiko/ [aˈtlantiko]로 발음된다.

Xóchitl에서는 x가 보통 [s]로 발음되지만 멕시코시티의 지명인 Xola [ˈʃola] ‘숄라’에서는 x가 [ʃ]로 발음된다.

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마야 문명의 언어인 마야어에서도 x [ʃ]가 쓰인다. 옛 마야 도시 가운데 하나인 Uxmal [uʃˈmal] ‘우슈말/우시말’은 유카테크 마야어 Óoxmáal [óˑʃmáˑl] ‘오슈말/오시말’에서 나온 에스파냐어 이름이다. 자음 앞의 [ʃ]를 어떻게 적느냐가 문제인데 유카테크 마야어의 [ʃ]는 세밀하게 따지면 구개음화된 [ʃʲ~ɕ]로 묘사되므로 일단 ‘우시말’과 같이 ‘시’로 적는 것이 나아 보인다.

어쨌든 멕시코 에스파냐어에서는 이처럼 [ʃ]가 낯선 음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멕시코 화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Sheinbaum을 [ˈʃei̯mbau̯m]으로 발음할 수 있다.

원래 에스파냐어에서는 sh라는 철자를 쓰지 않으니 외래어 표기법만 봐서는 Sheinbaum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에스파냐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를 보면 s는 모음 앞에서 ‘ㅅ’, 자음 앞에서 ‘스’로 적도록 하고 있는데 h는 자음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적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규정을 문자 그대로 따르자면 ‘*스에인바움’으로 적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말이 되지 않는다. 멕시코 에스파냐어에서 [ʃ]로 발음되는 것으로 보고 ‘셰인바움’으로 적는 것이 합리적이다.

Sheinbaum은 폴란드어식 철자 Szejnbaum ‘셰인바움’으로도 검색되는 아슈케나지 유대인 성씨이며 첫부분은 이디시어로 ‘아름다운’을 뜻하는 שיין sheyn ‘셰인’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독일어 schön [ˈʃøːn] ‘쇤’에 해당한다.

그런데 뒷부분은 ‘나무’를 뜻하는 이디시어 בוים boym ‘보임’이 아니라 같은 뜻의 독일어 Baum [ˈbaʊ̯m] ‘바움’에 가깝다. 아마도 이디시어 성씨 שיינבוים Sheynboym ‘셰인보임’을 부분적으로 독일어화시킨 형태가 아닌가 한다. 이 해석이 맞다면 이 성씨는 원래 ‘아름다운 나무’를 뜻하며 독일어식 성씨 Schönbaum/Schoenbaum [ˈʃøːnbaʊ̯m] ‘쇤바움’에 해당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성씨를 로마자로 쓸 때 이디시어보다는 독일어 형태를 따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Apfelbaum [ˈap͜fl̩baʊ̯m] ‘아펠바움'(‘사과나무’), Kirschenbaum [ˈkɪʁʃn̩baʊ̯m] ‘키르셴바움'(‘벚나무’), Rosenbaum [ˈʁoːzn̩baʊ̯m] ‘로젠바움'(‘장미 나무’) 등은 독일어식 철자로 적었다(단 현대 독일어식으로는 Kirschenbaum 대신 Kirschbaum [ˈkɪʁʃbaʊ̯m] ‘키르슈바움’). 이디시어 עפּלבוים Eplboym ‘에플보임’, קאַרשנבוים Karshnboym ‘카르슌보임’, רויזנבוים Royznboym ‘로이즌보임’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형태가 다르다(이디시어도 방언에 따라 모음 발음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형태를 뽑았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유대계 피아니스트·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성씨는 ‘배나무’를 뜻하는 이디시어 באַרנבוים Barnboym ‘바른보임’에서 나왔는데 나무 이름에서 나온 성씨 가운데 이처럼 독일어 대신 이디시어에 가까운 형태로 적은 경우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드물다. 참고로 독일어로 ‘배나무’는 Birnbaum [ˈbɪʁnbaʊ̯m] ‘비른바움’이다.

Pardo [ˈpaɾð̞o]는 ‘수표범’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πάρδος(párdos) ‘파르도스’, 라틴어 pardus ‘파르두스’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세파르디 유대인 성씨이다. 에스파냐어에서는 pardo가 표범을 뜻하는 시적인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회갈색의’, ‘어두운’을 뜻하는 형용사로 주로 쓰인다. 오늘날 에스파냐어로 표범은 보통 leopardo [leoˈpaɾð̞o] ‘레오파르도’라고 하는데 이는 ‘파르도스’/’파르두스’를 ‘사자’를 뜻하는 말인 λέων(léōn) ‘레온’/leo ‘레오’와 합친 고대 그리스어/라틴어 λεόπαρδος (leópardos) ‘레오파르도스’/leopardus ‘레오파르두스’에서 유래했다. 영어 leopard [ˈlɛp.əɹd] ‘레퍼드’도 유래가 같다.

Pardo는 이베리아반도에서 발생한 세파르디 유대인 성씨로서 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하여 에스파냐어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1492년의 유대인 추방령 이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신대륙 식민지에 많이 정착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멕시코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유럽과 중동에서 유대인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 또는 오스만 제국령 시리아 지역의 유대인이 대부분이었다. 1492년에 이베리아반도에서 추방된 세파르디 유대인이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 유입되면서 이곳에 이미 있던 유대인 사회는 예배 의식을 비롯한 세파르디 유대인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 시리아 유대인을 세파르디 유대인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아랍어를 모어로 썼으니 라디노어를 쓴 발칸반도와 튀르키예의 세파르디 유대인과는 구별된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발칸반도가 격변을 겪으면서 라디노어를 쓰는 그곳의 세파르디 유대인 가운데도 멕시코에 이주한 이들이 있었다. 셰인바움의 외조부모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0년대 초기에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멕시코로 피난한 경우이다. 라디노어는 아직도 에스파냐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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