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Ed Ruscha는 ‘에드 루샤’가 아니라 ‘에드 루셰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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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미술계에 등장하여 팝 아트를 대표하는 거장이 된 미국의 화가 에드 루셰이(Ed Ruscha [ˈɛd ɹu.ˈʃeɪ̯]) 또는 에드워드 루셰이(Edward Ruscha [ˈɛd.wəɹd ɹu.ˈʃeɪ̯])는 한국에서 흔히 ‘에드 루샤’라고 부른다. Ruscha라는 철자로부터 ‘루셰이’라는 올바른 발음을 짐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니 한국에서 잘못된 발음으로 알려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철자만 봐서는 마치 [ˈʁʊʃa] ‘루샤’로 발음되는 독일어 이름인 것으로 추측하기 쉽다. 아무리 영어에서 철자와 발음의 관계가 복잡하다고 해도 Ruscha가 ‘루셰이’로 발음되는 것처럼 제멋대로인 예는 찾기 힘들다. 어째서 이런 발음이 쓰이는 것일까?

1937년에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루셰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그는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의 한 광고 대행사에서 레이아웃 작업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 문화와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 건축 구조물 등을 소재로 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주유소를 소재로 한 사진집과 주유소를 유화로 그린 연작이 대표적이다. 직접 디자인한 글꼴로 쓴 문자를 그림에 포함시키는 독특한 ‘문자 회화(word painting)’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남들이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데서 착안하여 1965년부터 1969년까지 Eddie Russia [ˈɛd.i ˈɹʌʃ.ə] ‘에디 러샤’라는 가명으로 미술 월간지 《아트포럼(Artforum)》에서 레이아웃 디자이너로 활동하도 했다. 한국어에서 쓰는 국호 ‘러시아’는 Russia의 영어 발음에서 따온 것이지만 철자 si가 나타내던 원래의 조합이 [ʃ]로 축약된 실제 영어 발음 [ˈɹʌʃ.ə]에 따라 외래어 표기법 규정대로 적으면 ‘러샤’이다.

영어 화자는 Ruscha라는 철자를 보고 독일어식 발음을 짐작하여 흉내낸 [ˈɹʊʃ.ə] ‘루샤’ 또는 [ˈɹʌʃ.ə] ‘러샤’로 짐작하기 쉽다. 영어에서 이른바 짧은 u 모음은 단어에 따라 STRUT 모음 [ʌ] ‘어’ 또는 FOOT 모음 [ʊ] ‘우’로 발음되는데 cut [ˈkʌt] ‘컷’과 put [ˈpʊt] ‘풋’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철자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차용어에서는 보통 원어 발음에 더 가까운 FOOT 모음이 많이 쓰이고 영어 고유 어휘에서는 STRUT 모음이 더 흔하다. 그래서 다른 언어에서 기원한 이름의 경우 외국어 이름으로 보느냐, 영어 이름으로 보느냐에 따라 발음이 갈릴 수 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Bruckner [ˈbʁʊknɐ] ‘브루크너’는 영어로도 독일어 발음을 흉내내어 [ˈbɹʊk.nəɹ] ‘브루크너’로 발음하지만 Bruckner를 성씨로 쓰는 미국인을 이를 때는 [ˈbɹʌk.nəɹ] ‘브러크너’로 발음할 수도 있다.

1972년에는 미니애폴리스 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s, 현 이름 Minneapolis Institute of Art)에서 열린 단독 전시회 도록을 Edward Ruscha (Ed-werd Rew-shay) Young Artist라는 제목으로 냈다(표지에서 제목은 모두 대문자로 썼다). ‘젊은 예술가 에드워드 루셰이(Ed-werd Rew-shay)’를 뜻하는 제목의 문구를 그대로 쓴 명함도 만들어 도록과 함께 나누어줄 수 있도록 했다. 오죽했으면 이런 방법으로 성씨의 올바른 발음을 널리 알리려 했을까?

Leave Any Information at the Signal: Writings, Interviews, Bits, Pages라는 제목의 에드 루셰이 선집에 실린 루셰이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의 집안은 원래 보헤미아·독일 혈통(Bohemian/German extraction)으로 다른 성씨를 썼다고 하며 아마 Rusiska였을 것이라고 기억한다. 오늘날의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는 체코어와 독일어를 썼고 체코어에는 Růžička [ˈruːʒɪtʃka] ‘루지치카’라는 흔한 성씨가 있는데 독일어로는 Ruzicka, Ruschitschka, Ruzitschka, Ruschitzka, Rusiczka, Rusitschka 등의 철자로 받아들였다. 인터뷰에서 Rusiska라고 적은 성씨도 원 철자는 확실하지 않으니 원래는 Ruzicka 또는 그 이형 가운데 하나였을 수 있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지명인 치커셰이(Chickasha [ˈʧɪk.ə.ʃeɪ̯])와 각운이 맞도록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아마도 선조 가운데 누군가가 거기 있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Chickasha라는 지명은 치카소(Chickasaw [ˈʧɪk.ə.sɔː])족을 이웃하는 촉토(Choctaw [ˈʧɒk.tɔː])족의 언어인 촉토어로 이른 이름인 Chikashsha [ʧikaʃʃa] ‘치카샤’에서 왔다. 치카소족과 촉토족은 미국 동남부 삼림 지대, 오늘날 미시시피주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던 원주민 민족으로 체로키족, 머스코기족(규범 표기는 ‘무스코기족’), 세미놀족 등과 함께 이른바 문명화된 다섯 부족(Five Civilized Tribes)로 불렸다. 기독교와 문자를 비롯하여 미국 백인 문화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고 각각의 중앙 정부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문명화된 다섯 부족’이라는 명칭은 미국 백인 문명을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므로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문제가 있으며 실제로 미시시피강 유역의 원주민은 유럽인이 들여온 전염병으로 쇠퇴하기 전까지 곳곳에 대규모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튼 백인들은 이들을 ‘문명화된 다섯 부족’이라고 불렀다.

미국 연방 정부는 이들을 주권국으로 대하여 여러 차례 협정을 맺었지만 주 정부와 백인 정착민들은 이들의 영토를 계속해서 탐하여 법적 분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백인 정착민을 대변하는 반원주민 정책을 표방한 앤드루 잭슨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1830년 미시시피강 동쪽으로부터 원주민을 쫓아내는 인디언 이주법이 시행되었다. 그리하여 문명화된 다섯 부족은 미시시피강 서쪽, 오늘날의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인디언 영토(Indian Territory)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를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부르며 그 과정에서 질병과 추위 등으로 적어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촉토족은 1831년에 이들 가운데 제일 먼저 강제 이주되었고 치카소족은 1837년에 강제 이주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치카소족과 촉토족은 대부분 오클라호마주에 산다. 오클라호마주에 치카소족의 이름을 딴 지명이 생긴 것은 이런 역사 때문이다.

치카소어와 촉토어는 머스코기 어족에 속하며 계통상 꽤 가깝지만 서로 의사 소통이 되는 정도는 아닌 듯하다. 치카소어의 화자는 수십 명만 남았지만 촉토어 화자는 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머스코기어도 물론 머스코기 어족에 속하는데 영어로는 Muscogee 또는 Muskogee로 쓰고 [mʌ.ˈskoʊ̯ɡ.i, mə-] ‘머스코기’로 발음한다. 머스코기어 전통 로마자 철자로는 Mvskoke라고 쓰는데 v는 [ə~a]로 발음되는 모음이며 특히 s 같은 혀끝 자음 근처 또는 폐음절에서는 [ə]로 발음된다. 또 o는 [oː~ʊ~o]로, e는 [ɪ]로 발음된다. 또 k는 [k]를 나타내지만 모음 사이에서 [ɡ]로 유성음화하므로 Mvskoke의 실제 발음도 ‘머스코기’와 비슷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무스코기-족(Muskogee族)’으로 표기하지만 이는 u의 음가를 오해한 것이니 여기서는 과감하게 ‘머스코기’로 적었다.

오만의 수도인 ‘무스카트(Muscat)’도 이와 비슷하게 영어식 로마자 철자에서 u의 음가를 오해한 표기로 영어로는 [ˈmʌsk.ət, -æt] ‘머스컷/머스캣’이라고 발음하며 아랍어로는 مسقط Masqaṭ [ˈmasqatˤ] ‘마스카트’이다. 이것도 ‘마스카트’로 부르는 것이 맞겠지만 일국의 수도로서 지명도가 높은 이름이라 함부로 바꾸기 어렵다. 덴마크어·노르웨이어·스웨덴어에서도 영어식 철자를 받아들인 Muscat 또는 c만 k로 바꾼 Muskat를 쓰고 ‘무스카트’로 발음한다.

촉토어로 ‘치카샤’ 비슷한 발음을 나타낸 Chickasha는 어떻게 ‘치커셰이’로 발음되게 되었을까? 미국 지명을 보면 어말 -a가 [eɪ̯]로 발음되는 예가 아주 가끔 보인다. 예를 들어 같은 오클라호마주 지명인 Neodesha는 [ni.ˈoʊ̯d.ə.ʃeɪ̯] ‘니오더셰이’로 발음된다.

또 플로리다주의 Alachua [ə.ˈlæʧ.u.eɪ̯] ‘얼래추에이’로 발음되며 뉴욕주의 Ischua는 [ˈɪʃ.u.eɪ̯] ‘이슈에이’ 또는 [ˈɪʃ.weɪ̯] ‘이슈웨이’로, 워싱턴주의 Skamokawa는 [skə.ˈmɒk.ə.weɪ̯] ‘스커모커웨이’로 발음된다. Neodesha, Alachua, Ischua, Skamokawa 등은 모두 원주민 언어에서 나온 이름으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원주민 언어에서 나온 이름인 Iowa도 아이오와주를 이를 때는 [ˈaɪ̯.ə.wə] ‘아이어와’로 발음되지만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소도시 Iowa는 [ˈaɪ̯.ə.weɪ̯] ‘아이어웨이’로 발음된다.

원주민 언어에서 나온 이름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만토바(Mantova)의 영어 이름인 Mantua는 [ˈmænt.ju‿ə] ‘맨튜아’ 또는 [ˈmænʧ.u‿ə] ‘맨추아’로 발음되지만 여기에서 이름을 딴 오하이오주의 Mantua 및 오하이오주 Mantua에서 이름을 딴 유타주의 Mantua는 [ˈmænt.u.eɪ̯] ‘맨투에이’, 실제로는 무강세 모음 [u]가 다른 모음 앞에서 [əw]로 변하여 [ˈmænt.ə.weɪ̯] ‘맨터웨이’ 정도로 발음된다. situation [ˌsɪʧ.u.ˈeɪ̯ʃ.(ə)n] ‘시추에이션’이 미국 영어에서는 보통 [ˌsɪʧ.ə.ˈweɪ̯ʃ.(ə)n] ‘시처웨이션’으로 발음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중세 영어의 긴 모음 a [aː] ‘아’는 대모음 추이(Great Vowel Shift)를 겪으면서 오늘날 FACE 모음 [eɪ̯] ‘에이’로 음가가 변했다. 하지만 대모음 추이는 17세기에는 마무리되었으니 이들 지명에서 어말 a를 ‘에이’로 발음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영국 지명 가운데는 철자에서 발음을 짐작하기 힘든 것이 많아 악명이 높지만 어말 -a를 ‘에이’로 발음하는 예는 찾기 힘들다. 애초에 어말의 -a는 약화된 모음 [ə]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경우 한글로 표기할 때는 ‘아’로 적는다. 또 드물게 긴 모음 a가 어말에 오더라도 Papa의 영국식 발음 [pə.ˈpɑː] ‘퍼파’에서처럼 PALM 모음 [ɑː] ‘아’로 발음되기 일수이다(미국식으로 Papa는 [ˈpɑːp.ə] ‘파파’로 발음된다).

그러니 미국 지명에서 가끔 어말 -a가 ‘에이’로 발음되는 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낯선 이름을 보고 철자를 바탕으로 발음을 짐작할 때 단순히 a에 ‘에이’ 발음을 대입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원주민 언어에서 나온 이름을 글로 접할 때는 원어에서 어떻게 발음되는지 모르니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이것이 다수가 쓰는 발음을 정착하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날 이처럼 어말 -a를 ‘에이’로 발음하는 이름은 영어 화자가 철자로부터 올바른 발음을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국 농구 선수 Monta Ellis는 [ˈmɒn.teɪ̯ ˈɛl.ᵻs] ‘몬테이 엘리스’로 발음되는데 NBA 관계자들조차 [ˈmɒnt.ə] ‘몬타’로 잘못 발음하거나 거꾸로 발음을 먼저 듣고 이름을 Monte로 잘못 적는 일이 많았다.

영어를 외국어로 접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황당한 발음은 일일이 외우는 수밖에 없다. Ed Ruscha는 ‘에드 루샤’로 읽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니 한국에서 그렇게 알려진 것을 탓하기 힘들다. 이 이름의 표준 한글 표기가 심의된 적은 없다. 하지만 본인의 발음을 존중하여 ‘에드 루셰이’ 또는 ‘에드워드 루셰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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