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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누리집에 실린 타이어 지명 표기 용례를 찾아보다가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Suannok Thammachat/สวนนกธรรมชาต ‘수안녹탐마찻’은 ‘앙통에 있는 천연 새 공원’으로 실려있다.
그런데 สวน suan ‘수안’은 ‘공원’, นก nok ‘녹’은 ‘새’, ธรรมชาติ thammachat ‘탐마찻’은 ‘자연’이라는 뜻이다(용례에서는 ธรรมชาติ을 ธรรมชาต으로 잘못 적었다). 그러니 타이어 สวนนกธรรมชาติ suannok thammachat은 그냥 ‘천연 새 공원’을 뜻하는 말이다.
찾아보니 타이 관광 웹사이트에 의하면 타이 앙통(อ่างทอง Ang Thong)주의 리우와 사원(Wat Riwwa, วัดริ้วหว้า Wat Rio Wa)에 자연 조류 정원(natural bird garden)이 있어서 각종 새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처음 올릴 때는 ‘리오와’로 적었지만 ‘리우와’로 적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수정하고 이어지는 글에서 설명한다). 타이어판에서는 suannok thammachat이라는 말을 쓴다.
구글 지도에 리우와 사원은 나오지만(거기서는 Wat Rew Wa라고 부른다) 그 근처에 자연 조류 정원이 따로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나 해서 구글 스트리트 뷰로 사원 주변 지역을 찾아보았지만 따로 공원이 조성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단순히 사원 주변의 녹지에서 새를 많이 관찰할 수 있다고 해서 자연 조류 정원이라고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공원 이름이라고 해도 영어판에서 natural bird garden이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suannok thammachat은 고유 명사로 취급하기 어려울 듯하다. 타이 앙통에 ‘수안녹탐마찻’이라는 천연 새 공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영어로 한국 김포에 Joryu Saengtae Gongwon이라는 조류 생태 공원이 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수안녹탐마찻’이라는 용례는 2004년 외래어 표기법에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타이어, 베트남어 표기 규정이 추가되면서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동남아시아 3개 언어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 실려있다. 거기서는 Suannok Thammachat/สวนนกธรรมชาติ으로 철자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고 실제 공원으로 조성된 것인지조차 불확실한 곳이 어떻게 해서 이 용례집에 들어갔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이처럼 일반 명사를 마치 고유 명사인 것처럼 취급하여 한글로 표기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 3개 언어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또 Akhane/อาคเนย์ ‘아카네’가 ‘타이 동남부를 이르는 말’로 실려있다(국립국어원 누리집에 실린 용례에서는 Akhane/อาคเนย로 철자가 잘못 적혀 있다). 그런데 อาคเนย์ akhane ‘아카네’는 타이어로 단순히 ‘동남쪽’을 뜻하는 명사 및 형용사이다.
타이어로 ‘동북쪽’을 뜻하는 อีสาน isan ‘이산’은 타이 동북 지역을 이르는 고유 명사 Isan ‘이산’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영어에서도 Isan 또는 Isaan이라는 철자로 흔히 쓰고 이산인(Isan people), 이산어(Isan language) 또는 이산 방언(Isan dialect), 이산 음식(Isan cuisine)을 논할 수 있다. 이른바 이산어는 타이에서 공식적으로 타이어의 방언으로 보지만 언어학적으로는 라오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크메르 제국의 몰락 이후 타이 동북 지역은 라오계 왕국인 란상(ລ້ານຊ້າງ Lan Xang)이 다스렸고 주민도 라오계가 대부분이지만 17세기 이후에 시암(타이의 전 이름)의 지배에 들어갔다. 그래서 라오스의 일부가 아니라 타이의 동북 지역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20세기부터 ‘이산’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타이 동북부의 이산을 비롯하여 시암 왕국에 비교적 최근에 편입된 타이 북부와 타이 남부는 문화적으로도 구별된다. 그러나 각각 ‘북부’, ‘남부’를 뜻하는 말로서 타이 북부와 타이 남부를 이르는 이름인 ภาคเหนือ Phak Nuea ‘팍느아’와 ภาคใต้ Phak Tai ‘팍따이’는 용례집에 실려있지 않다. 타이 북부에 있던 왕국 이름으로서 아직도 타이 북부를 흔히 일컫는 이름인 ล้านนา Lanna ‘란나’도 따로 실려있지는 않다.
대신 Lanna Thai/ล้านนาไทย ‘란나타이’가 ‘수코타이 왕조 이전에 존재했던, 타이의 고대 왕조’로 실려 있는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오늘날의 타이 중북부에서 나타난 수코타이 왕국은 1238년에 건국되었으며 람캉행(รามคำแหง Ram Khamhaeng) 왕 때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는 1279년부터 1298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런데 란나 왕국은 1292년에 오늘날의 타이 북부에 건국되었다. 수코타이는 1438년에 아유타야 왕국에 합병되었고 란나 왕국은 1558년에 버마의 따웅우 왕조의 종속국이 된 후에도 명목상 존속했으니 란나 왕국이 수코타이 왕국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은 거꾸로 된 설명이다.
‘란나타이’라는 이름도 란나 왕국이 타이 역사의 일부라는 타이 중심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완전히 객관적인 용어는 아니며 타이어에서도 그냥 ‘란나’라고 부르는 일이 더 흔하다. 참고로 สุโขทัย Sukhothai ‘수코타이’는 고문체 크메르어 សុខោទ័យ Sukhodaya ‘수코다야’에서 나온 이름으로 궁극적으로 산스크리트어 सुख sukha ‘수카’와 उदय udaya ‘우다야’에서 유래했으니 민족명 ไทย Thai ‘타이’와는 관련이 없다. 타이어 철자를 봐도 수코타이의 -ทัย -thai는 다르게 쓴다.
어쨌든 문화 역사적인 이유로 독자적인 지역으로 다뤄지는 타이 동북부, 북부, 남부와 달리 일찌감치 아유타야 왕국 등 타이 중부 여러 왕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었던 타이 동남부는 순전히 지리적인 구분으로만 언급된다. 영어로 이를 Akhane라고 부르는 예는 검색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아카네’가 용례집에 포함되었는지도 수수께끼이다.
《동남아시아 3개 언어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또 Srisawat/ศรีสวัสดิ์ ‘시사왓’과 Srisawit/ศรีสวีสดิ์ ‘시사윗’이 둘 다 ‘깐짜나부리에 있는 지명’으로 나온다. ศรีสวัสดิ์ Si Sawat ‘시사왓’은 분명히 깐짜나부리주의 하위 행정 구역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 맞다. 그런데 타이어판 위키백과에도 ศรีสวีสดิ์ Si Sawit ‘시사윗’은 검색되지 않으며 구글 지도에서도 깐짜나부리주에서 이 지명은 찾아볼 수 없다. 단순 오타를 시사왓과 구별되는 다른 지명으로 오해하여 용례집에 수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편 《동남아시아 3개 언어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Wangthong Luang/วังทองหลวง ‘왕통루앙’이 ‘방콕의 지명’으로 나오는데 วังทองหลาง Wang Thonglang ‘왕통랑’을 잘못 읽은 것이다. 타이어 철자는 올바르게 썼는데 로마자 표기와 한글 표기를 그르쳤다.
이처럼 기존 한글 표기 가운데 ‘시사윗’처럼 원어를 잘못 파악하거나 ‘왕통루앙’처럼 표기 규정을 잘못 적용한 것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안녹탐마찻’, ‘아카네’처럼 애초에 용례로 포함시킬 이유가 없던 것은 과감히 삭제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재심의를 통해 표기 용례가 수정되는 것은 종종 보았지만 기존 표기 용례가 삭제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다.
물론 기존 표기 용례를 삭제하려면 왜 삭제했는지 이유를 기록에 남기고 표기 용례를 검색할 때 삭제된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해야 하겠다.
그런데 각종 오류로 고쳐야 할 표기 용례도 당장 산더미 같이 쌓였고 이들을 재검토할 인력도 없는 듯하니 건의를 하더라도 불필요한 표기 용례 삭제는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릴 듯하다.
핑백: 외래어 표기법에서 명시하지 않은 타이어 음절말 [w]의 표기 – 끝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