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 지휘자 주빈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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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은퇴한 인도 출신의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는 몬트리올 교향악단,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이스라엘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의 음악 감독을 역임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의 모어인 구자라트어로 그의 이름은 ઝુબિન મહેતા Jhubin Mahētā ‘주빈 마헤타’로 쓰고 힌디어로는 ज़ुबिन मेहता Zubin Mēhtā ‘주빈 메타’로 쓴다. 힌디어 고유 어휘에는 /z/ 음소가 쓰이지 않지만 페르시아어, 영어 등에서 차용한 어휘에서 [z]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데바나가리 문자 자모 ज j [ʤ]에 점을 붙인 ज़ z로 나타낸다. 대신 힌디어 화자 가운데는 이를 그냥 j로 적은 것처럼 [ʤ]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Zubin은 원래 고전 페르시아어 남자 이름 زوبین Zōbīn ‘조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고전 페르시아어의 ō가 ū로 변한 현대 이란 페르시아어로는 Zūbīn ‘주빈’이다. 첫 음이 유성 후치경 마찰음 ژ zh [ʒ]인 ژوبین Zhōbīn/Zhūbīn ‘조빈/주빈’, 무성 후치경 파찰음 چ ch [ʧ]인 چوبین Chōbīn/Chūbīn ‘초빈/추빈’이나 b 대신 p를 쓴 زوپین Zōpīn/Zūpīn ‘조핀/주핀’ 같은 이형도 보인다.

590년부터 591년까지 잠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왕위를 차지했던 بهرام چوبین Bahrām Chōbīn ‘바람 초빈’이라는 인물이 있고 중세 페르시아어식으로는 𐭥𐭫𐭧𐭫𐭠𐭭 Wahrām Chōbēn ‘와람 초벤’이니 아마도 ch를 쓴 형태가 원형에 가까울 것이다. چوب chōb ‘초브’는 고전 페르시아어로 ‘나무’ 또는 ‘나무 막대기’, ‘나무 지팡이’ 등을 뜻하는데 여기서 무기 ‘창’을 뜻하는 chōbīn이 나오고 이게 별명으로 쓰이게 되었을 수 있겠다.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한 가즈니 왕조가 11세기에 인도 북부를 정복한 이후 언어·문화적으로 페르시아화된 튀르크계 통치자들이 인도에 여러 왕국을 세웠기 때문에 인도는 오랫동안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했다. 가즈니 왕조를 비롯해서 델리 술탄국, 무굴 제국 등의 공용어는 페르시아어였으며 영국의 동인도 회사도 초기에는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쓰다가 1837년에 영어로 이를 대체했다.

그러니 인도에서 페르시아어식 이름이 쓰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주로 이슬람교도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도 집안 출신인 인도의 테니스 선수 사니아 미르자(Sania Mirza, ثانیہ مرزا Sānyah Mirzā)는 이름 전체가 페르시아어식이다. 우르두어 ثانیہ Sānyah ‘사니아’는 아랍어 ثانية thāniyah ‘사니야’가 페르시아어 ثانیه sāniyah ‘사니야’를 거쳐 전해진 형태이고 우르두어 مرزا Mirzā는 페르시아어 경칭 میرزا Mīrzā에 해당한다.

하지만 주빈 메타는 이슬람교도가 아니다. 그는 1936년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에서 파르시 가정에 태어났다. 파르시는 7세기에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에 정복된 이후 인도로 건너가 오늘날의 인도 서부인 구자라트 지역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인의 후손이다.

구자라트어 પારસી Pārsī ‘파르시’는 원래 이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후에 의미가 변화하여 이 종교·민족 집단을 일컫게 되었다. 이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이란 서남부 파르스(پارس Pārs) 지역 사람을 뜻하는 پارسی Pārsī ‘파르시’와 계통이 같다. 파르스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파르사(𐎱𐎠𐎼𐎿 Pārsa)라고 하였으며 여기서 고대 그리스어 Περσίς(Persís) ‘페르시스’, 라틴어 Persia ‘페르시아’가 나왔다. 그런데 파르스 지역뿐만 아니라 이란 전체를 다스린 옛 나라를 페르시아라고 부르는 것처럼 구자라트어에서는 이란 사람을 모두 파르시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편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에 정복된 후 /p/ 음소가 따로 없어 /f/로 대체한 아랍어의 영향으로 파르스는 오늘날 페르시아어로 فارس‎ Fārs ‘파르스’라고 하고 ‘페르시아의’, ‘페르시아인’, ‘페르시아어’는 فارسی Fārsī ‘파르시’라고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영어 화자들 사이에서 페르시아어를 전통 이름인 Persian 대신 Farsi라고 부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란의 페르시아 어문학회에서는 Persian을 올바른 영어 이름으로 본다. 인도의 파르시는 예전에 영어에서 Parsee라고 썼다가 요즘에는 보통 Parsi라고 쓴다.

파르시는 전통적으로 인도·유럽 어족 인도 어파에 속하는 언어인 구자라트어를 쓰는데 오늘날 많은 수가 구자라트 지역으로부터 바로 남쪽에 있는 뭄바이와 그 주변에 산다. 뭄바이에서는 역시 인도 어파에 속한 마라티어가 공용어이며 주민 가운데 마라티어 사용 인구가 35% 정도로 가장 높은데 구자라트어 화자도 11% 정도이며 교외에서는 마라티어 37%, 구자라트어 31%로 구자라트어 사용 비율이 올라간다. 주빈 메타도 구자라트어가 모어로 알려져 있다.

한편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 경전에 쓰인 고대 이란어인 아베스타어를 아직도 예식의 언어로 쓴다. 아베스타 경전은 오랫동안, 어쩌면 천 년 가량이나 구전되다가 사산 왕조(226~651) 때 기록되었는데 옛 언어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고대 언어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일상적으로는 구자라트어나 영어 등을 쓰더라도 파르시 가운데는 페르시아어식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영국 보호령이었던 동아프리카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의 일부) 태생으로 영국 록 밴드 퀸(Queen)의 리드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ˈfɹɛd.i ˈmɜːɹk.jᵿɹ.i]) 역시 파르시 출신으로 본명은 Farrokh Bulsara이다. 영어 발음은 [fə.ˈɹuːk bəl.ˈsɑːɹ.ə] ‘퍼루크 벌사라’이고 구자라트어로 이를 ફારુખ બલસારા Phārukh Balsārā ‘파루크 발사라’로 적은 것도 보이는데 올바른 철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름은 원래 아랍어 이름인 페르시아어 فاروق Fārūq에서 나온 것이고 성은 예전에 Bulsar로 알려졌던 인도 구자라트주 도시 발사드(વલસાડ Valsāḍ) 출신이라는 뜻이다.

‘메타’는 원래 ‘칭송되는’, ‘존경받는’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महित Mahita ‘마히타’에서 나왔으며 파르시뿐만이 아니라 인도에서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시크교도 등도 쓴다. 구자라트어로는 મહેતા Mahetā ‘마헤타’, 펀자브어로는 ਮਹਿਤਾ Mahitā ‘마히타’, 힌디어로는 मेहता Mehtā ‘메타’인데 로마자 표기는 힌디어 형태를 따른 Mehta이다. 힌디어 발음은 [ˈmeːɦtaː]로 h가 발음되지만 한글 표기에서 자음 앞의 h는 원어에서 음가가 있더라도 묵음으로 처리하므로 ‘메타’로 쓴다.

영어로는 [ˈmeɪ̯t.ə] ‘메이타’로 발음하는데 철자 eh가 [eɪ̯]로 실현되는 것은 그냥 ‘에’로 적어서 ‘메타’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Zubin Mehta를 영어 이름으로 취급하더라도 영어 발음 [ˈzuːb.ᵻn ˈmeɪ̯t.ə]에 따라 ‘주빈 메타’로 적을 수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자서전을 독일어로 썼을 정도로 독일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데 독일어 발음은 [ˈzuːbɪn ˈmeːta] ‘주빈 메타’이다.

주빈 메타의 이름에서 인도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고전 언어인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가 만난 것이 재미있다. 참고로 인도 북부에서 쓰는 인도 어파 언어인 힌두스탄어를 산스크리트어식으로 표준화한 것이 힌디어, 페르시아어식으로 표준화한 것이 우르두어이다. 힌디어의 고급 어휘는 산스크리트어식, 우르두어의 고급 어휘는 페르시아어식이다. 문자도 힌디어는 데바나가리 문자를 쓰고 우르두어는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를 쓴다. 본바탕은 같은 언어이지만 어휘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구문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말하는 주제에 따라 서로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이다.

주빈 메타는 구자라트어 외에 이른바 ‘봄베이 힌두스탄어(Bombay Hindustani)’도 구사한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정통 힌디어는 배우지 못했지만 서로 다른 모어를 쓰는 뭄바이(옛 이름은 봄베이) 주민들이 교통어로서 쓰는 독특한 힌두스탄어를 구사한다는 설명이다. 뭄바이는 발리우드(Bollywood)라고 불리며 인도 영화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발리우드 영화에서 쓰는 언어는 힌디어나 우르두어 가운데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힌두스탄어여서 힌디어 화자와 우르두어 화자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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