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테니스 선수 ‘얀니크 신네르’는 ‘야니크 지너’로 표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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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은 세계 4위인 이탈리아 출신의 야니크 지너(Jannik Sinner)가 차지했다. 세트 스코어 0대2를 뒤집어 3대2로 역전승했다. 스물 두 살인 그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은 그의 이름을 ‘얀니크 신네르’라고 표기하고 있다. 2022년 3월 4일 제160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그의 이름을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여 ‘신네르, 얀니크’로 심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Jannik Sinner는 독일어권인 남티롤 자치주 출신으로 이름은 이탈리아어식이 아니라 독일어식이다. 원칙적으로는 표준 독일어 발음인 [ˈjanɪk ˈzɪnɐ]에 따라 ‘야니크 지너’로 적는 것이 낫다.

이탈리아어로 Alto Adige ‘알토아디제’, 독일어로 Südtirol [ˈzyːtti⁽ˈ⁾ʁoːl] ‘쥐트티롤’이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의 남티롤 자치주는 역사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나중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티롤 백국의 일부였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9년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 티롤 백국의 북부는 오스트리아의 티롤(Tirol [tiˈʁoːl])주가 되었지만 그 남부는 이탈리아령이 된지 이제 백 년이 넘었다.

독일어명 Südtirol은 ‘남티롤’이라는 뜻이다. 한편 이탈리아어명인 Alto Adige는 아디제(Adige)강의 상류 지역이란 뜻으로 ‘높은’을 뜻하는 alto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남티롤 자치주는 원래 독일어권이었기 때문에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둘 다 공용어이다.

지너는 이탈리아 남티롤 자치주의 이니헨(Innichen [ˈɪnɪçn̩])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주의 젝스텐(Sexten [ˈzɛkstn̩])에서 자라났다. 동계 종목에 강한 남티롤 출신답게 여덟 살 때 알파인 스키 전국 대회 우승을 한 유망주였지만 그 후 테니스로 전향하였다.

그는 독일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중학교까지 독일어로 수업을 했고 고등학교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수업을 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에 이탈리아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고생했다고 한다.

특히 동계 종목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선수 가운데는 독일어식 이름을 쓰는 이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남티롤 출신이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바이애슬론 혼성 계주 동메달을 획득한 이탈리아의 Dominik Windisch [ˈdoː⟮ɔ⟯minɪk ˈvɪndɪʃ] ‘도미니크 빈디슈’, Karin Oberhofer [ˈkaːʁiː⟮ɪ⟯n ˈoːbɐhoːfɐ] ‘카린 오버호퍼’, Dorothea Wierer [doʁoˈteːa ˈviːʁɐ] ‘도로테아 비러’, Lukas Hofer [ˈluːkas ˈhoːfɐ] ‘루카스 호퍼’는 전원이 남티롤 출신이다.

또 올림픽 2관왕인 루지 선수 Armin Zöggeler [ˈaʁmiːn ˈʦœɡəlɐ] ‘아르민 최겔러’와 역시 루지 선수인 Domink Fischnaller [ˈdoː⟮ɔ⟯minɪk ˈfɪʃnalɐ] ‘도미니크 피슈날러’,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Carolina Kostner [kaʁoˈliːna ˈkɔstnɐ] ‘카롤리나 코스트너’도 남티롤 출신이다. 이들은 기존 외래어 심의회에서 독일어 이름으로 취급한 ‘최겔러, 아르민’, ‘피슈날러, 도미니크’, ‘코스트너, 카롤리나’로 표기를 심의했다.

그러니 Jannik Sinner도 독일어 이름으로 취급하여 ‘야니크 지너’로 적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 표준 이탈리아어에서는 쓰지 않는 자모인 j와 k가 들어간 것만 봐도 순 이탈리아어식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는 Jannik Sinner를 [ˈjannik ˈsinner]로 발음한다. 표준 표기를 ‘얀니크 신네르’로 심의한 것은 이탈리아어 발음을 따른 것이다. Ghirlandajo ‘기를란다요’, Jacopo ‘야코포’, Juventus ‘유벤투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탈리아어 구식 철자나 방언 표기, 라틴어에서 차용한 어휘 등에 나타나는 j는 반모음 [j]로 발음된다. 물론 이탈리아 여자 테니스 선수 가운데 현재 랭킹 1위인 Jasmine Paolini [ʤaˈzmin paoˈliːni] ‘자스민 파올리니’처럼 차용어에서 j를 영어식으로 [ʤ]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탈리아어식이 아닌 이름에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 이름은 2022년 4월 29일 실무소위에서 ‘파올리니, *자스민’으로 표기가 심의되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로 발음할 때에도 독일어 발음을 흉내내어 Sinner를 좀 더 ‘시너’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도 종종 관찰된다. 아무래도 이탈리아어식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원어 발음을 흉내내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Jannik Sinner의 표준 독일어 발음은 [ˈjanɪk ˈzɪnɐ] ‘야니크 지너’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표준 독일어 발음은 두덴(Duden) 또는 데그로이터(De Gruyter) 등에서 펴낸 발음 사전에 실린 독일식 표준 독일어 발음을 말한다. 독일어는 지역마다 표준 독일어 발음이 약간식 차이가 난다.

남티롤 자치주의 독일어에서는 모음이 따르는 어두 s를 비롯하여 독일식 표준 독일어에서 [z]로 발음되는 s는 [s]로 발음된다. 또 지역색이 짙은 발음에서는 어중 겹자음이 약하게나마 실현된다. 그러니 남티롤 현지 독일어로 Jannik는 [ˈjanɪk~ˈjannɪk] ‘야니크~얀니크’, Sinner는 [ˈsɪnɐ~ˈsɪnnɐ] ‘시너~신너’ 정도로 발음된다. 남티롤 현지 독일어 방송에서 쓰는 발음은 겹자음이 없는 [ˈsɪnɐ] ‘시너’로 관찰된다.

지너가 자라난 곳인 Sexten도 독일식 표준 독일어 발음은 [ˈzɛkstn̩] ‘젝스텐’이지만 현지에서는 [ˈsɛkstn̩] ‘섹스텐’이다.

어두 s를 [s]로 발음하는 것은 남티롤뿐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남부에서 폭넓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의 도시 Salzburg는 표준 독일어로 [ˈzalʦbʊʁk] ‘잘츠부르크’이지만 현지에서는 [ˈsalʦbʊʁk] ‘살츠부르크’로 발음한다. 스위스의 St. Gallen (Sankt Gallen)은 표준 독일어로 [zaŋkt ˈɡal(ə)n] ‘장크트갈렌’이지만 현지에서는 [saŋkt ˈɡalən] ‘상크트갈렌’으로 발음한다.

남티롤뿐만이 아니라 스위스에서도 어중 겹자음이 약하게 실현된다(오스트리아에서도 어중 겹자음이 흔히 실현되지만 [n] 같은 유성음은 잘 해당되지 않는다). 여자 이름 Johanna는 표준 독일어로 [joˈhana]로 발음하지만 스위스식으로는 [joˈhanna] ‘요한나’이다.

하지만 Salzburg의 표준 표기는 ‘잘츠부르크’, St. Gallen의 표준 표기는 ‘장크트갈렌’이며 《하이디(Heidi)》의 작가인 스위스 소설가 Johanna Spyri는 표준 독일어 발음 [joˈhana ˈʃpiːʁi]에 따라 ‘요하나 슈피리’로 적는다. 독일어 발음은 지역에 따른 자잘한 차이가 많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할 때는 독일식 표준 독일어 발음을 기준으로 통일한다. 따라서 Jannik Sinner는 ‘야니크 지너’로, Sexten은 ‘젝스텐’으로 적는 것이 좋다. 그런데 Sinner의 첫 자음을 [s]로 발음하는 것을 보고 혹시 독일어식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탈리아어로 취급하여 ‘신네르’로 심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Jannik는 원래 Jan ‘얀’의 저지 독일어 또는 덴마크어 애칭에서 나온 이름으로 독일어권에서는 원래 독일 북부에서 주로 쓰이므로 남티롤 출신 테니스 선수의 이름에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경우이다. 프랑스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쓰인 켈트 어파 언어인 브르타뉴어에서 Yann [ˈjãnː] ‘얀’의 지소형으로 쓰이는 Yannig [ˈjãnːik] ‘얀니크’에서 나온 프랑스어 Yannick [janik] ‘야니크’도 우연히 의미와 형태가 비슷한 이름이다. 1983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프랑스 테니스 선수이자 가수인 Yannick Noah [janik nɔa] ‘야니크 노아’가 유명하다. 브르타뉴어는 겹자음을 발음하기 때문에 ‘얀니크’인데 프랑스어에서는 형태소 내부의 철자상 겹자음을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야니크’이다.

Sinner라는 성씨는 원래 독일어권 남부에서 도량형 검사관를 뜻하는 직업 이름에서 비롯되었거나 Sinn [ˈzɪn] ‘진’이라는 곳 출신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일 수 있고 ‘곰곰히 생각하다’를 뜻하는 sinnen [ˈzɪnən] ‘지넨’에서 비롯된 별명일 수도 있다. 영어로 종교적인 의미에서 ‘죄인’을 뜻하는 sinner [ˈsɪn.əɹ] ‘시너’와는 물론 관계가 없다. 하지만 본인도 영어로는 성씨를 영어 단어와 동일하게 ‘시너’로 발음한다.

Jannik Sinner는 그나마 이탈리아어 발음대로 적어도 j와 k만 적당히 발음대로 적으면 외래어 표기법의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을 적용한 것과 일치한 ‘얀니크 신네르’가 된다. Carolina Kostner도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을 무리해서 적용하면 ‘카롤리나 코스트네르’가 되어 이탈리아어 발음 [karoˈliːna ˈkɔstner]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독일어식 이름의 철자에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Fischnaller는 이탈리아어 발음이 독일어 [ˈfɪʃnalɐ] ‘피슈날러’를 흉내낸 [ˈfiʃnaler] ‘피슈날레르’ 정도인데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에서는 ch가 자음 앞에 올 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모음 앞에서는 ‘ㅋ’으로 적고 있으니 엉뚱하게 ‘*피스크날레르’ 정도로 실제 발음과는 다르게 적게 된다. Wierer는 이탈리아어 발음이 독일어 [ˈviːʁɐ] ‘비러’를 흉내낸 [ˈviːrer] ‘비레르’인데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에서는 w에 대한 언급조차 없고 이를 ‘ㅂ’으로 적는다고 해도 Wierer는 ‘*비에레르’가 되니 실제 발음과 달라진다. Zöggeler [ˈʦœɡəlɐ] ‘최겔러’ 같은 경우는 이탈리아어 화자마다 흉내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서 이탈리아어에는 원래 없는 모음 [ø] ‘외’를 쓴 [ˈʦøɡɡeler] ‘최겔레르’ 또는 [ˈʦɛɡɡeler] ‘체겔레르’ 등으로 발음한다.

그러니 독일어가 공동 공용어로 쓰이는 남티롤 자치주 출신 인물의 독일어식 이름은 무리해서 이탈리아어 이름인 것처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2년 전에도 심의 결과를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가 첫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것을 보면서 이름 표기가 ‘신네르, 얀니크’로 심의된 것이 두고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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