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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나이지리아 축구 선수 Victor Osimhen ‘빅터 오시멘’의 한글 표기를 다루면서 나이지리아 에산(Esan)어 이름의 로마자 표기에 나오는 mh가 한 음을 나타내고 방언에 따라 m과 교체가 가능하므로 ‘ㅁ’으로 적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mh의 정확한 음가를 밝히지 못한 것이 걸렸다.
그래서 자료를 더 찾아보다가 나이지리아 언어학자 벤 오히오마메 엘루그베(Ben Ohiọmamhẹ Elugbe)가 1989년에 펴낸 《에도 어군 비교: 음운론과 어휘 목록(Comparative Edoid: Phonology and Lexicon)》에서 mh의 발음에 대한 설명을 발견했다. 에산어는 에도 어군에 포함된다.
엘루그베에 따르면 에도 어군 언어에서는 양순 비음으로 연음(lenis) mh, 비연음(non-lenis) m, 유성 유기음(breathy voice) m̈이 구별될 수 있다(에도 어군에 속하는 모든 언어가 셋을 다 구별한다는 것은 아니고 실제 구별 양상은 언어·방언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치경 비음도 연음 ṇ, 비연음 n, 유성 유기음 n̈도 구별될 수 있으며 설측 접근음도 연음 ḷ, 비연음 l, 유성 유기음 l̤로 구별될 수 있다. 이들 기호는 국제 음성 기호를 따른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에서 쓰는 로마자 철자 표기를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여기서 ḷ로 쓴 연음을 엘루그베는 경우에 따라 lh로도 쓰는 듯하다.
에도 어군 언어에서 이런 3계열 대립은 비음과 설측음에서만 나타나고 폐쇄음과 마찰음은 2계열 대립만 보인다. 폐쇄음으로는 연음 bh, th, dh, kh, gh, kph, gbh 등과 비연음 b, t, d, k, g, kp, gb가 구별될 수 있으며 마찰음으로는 유성 유기음 또는 연음인 v̈, z̈, ʒ̈와 비연음인 f, v, s, z, ʃ, ʒ가 구별될 수 있다. 그러나 언어에 따라서 비연음 폐쇄음에 대응되는 마찰음이 있거나 연음 폐쇄음이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치경음을 제외한 위치에서 비연음 폐쇄음, 연음 폐쇄음, 마찰음을 모두 구별하는 경우는 없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에산어 자음 목록에 따르면 에산어에서는 b [b], k [k], g [ɡ]에 대응되는 마찰음 bh [β], kh [x], gh [ɣ]가 쓰인다. 엘루그베의 위 분석에서는 마찰음 [x], [ɣ]를 언급하지 않지만 그는 에도(Ẹdo)어 외에 아오마(Aoma)어, 에루와(Ẹrụwa)어, 고투오(Ghotuọ)어 등 개별 언어의 자음 목록을 제시할 때 마찰음 [x], [ɣ]를 포함시킨다(아쉽게도 에산어는 따로 다루지 않았다). 엘루그베는 또 이빌로(Ibilo)어와 예케(Yẹkhee)어 방언에서는 연음 폐쇄음과 마찰음의 자유 변이가 일어난다는 언급도 한다. 같은 음소를 연음 폐쇄음으로 발음하기도 하고 마찰음으로 발음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넓게 봐서는 연음 폐쇄음 외에 마찰음도 비연음 폐쇄음에 대응하는 연음으로 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식 로마자 표기에서 bh, th, dh 등 h를 붙여서 연음(연음 폐쇄음 또는 마찰음)을 나타내는 방식을 m에도 적용하여 m에 대응하는 연음을 mh로 적는 듯하다.
언어학에서 연음(lenis)은 흔히 경음(fortis)의 반의어로 쓰는 개념인데 일반적으로 연음이 경음보다 약하게 발음된다는 것 외에 그 기준이 엄밀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 언어에 따라 구별 방식이 차이가 있다. 엘루그베는 에도 어군에서 연음과 비연음의 구별은 지속 시간(duration)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연음이 비연음에 비해 더 짧고 약하다(shorter and weaker)고 설명하며 연음과 비연음 가운데 연음이 유표적(marked)이라고 본다. 언어학에서 유표성은 두드러지는 자질을 말하는 개념이다.
엘루그베는 연음을 유표적으로 보는 이유로 연음의 대응형으로 재구되는 에도 조어 형태가 비연음의 대응형보다 음성학적으로 다양하다는 통시적인 근거 외에 비연음이 다른 언어에 나타나는 자음과 더 음성학적으로 비슷하며 어린이나 외지인은 연음보다 비연음 발음을 더 빨리 습득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엘루그베는 경음(fortis) 대신에 비연음(non-lenis)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비연음이 무표적인 기본 음이고 연음이 특이한 경우라는 것이다.
한국어의 예사소리 [ㅅ]와 된소리 [ㅆ]의 구별은 세계 언어 가운데 드문 쪽에 속하는데 더 약하게 발음되는 [ㅅ]을 연음, 더 세게 발음되는 [ㅆ]을 경음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ㅆ]이 일반적으로 다른 언어에서 쓰는 [s]와 더 음성학적으로 비슷하다. 이 기준만 놓고 보면 비슷한 논리로 예사소리 [ㅅ]이 유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신 예사소리 또는 평음이라는 용어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한국어에서는 보통 내부 분석에 따라 [ㅅ]와 같은 연음이 무표적이라고 본다. 사실 유표성이란 것도 기준 선택에 따라 언어마다 어느 자질을 유표적으로 볼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이 반드시 일치되지는 않는다.
유표성은 최적성 이론과 같은 언어학에서 쓰는 이론적인 분석에서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지만 한글 표기를 결정하는 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으니 이쯤에서 유표성 논의는 일단락하자. 에산어 등 에도 어군의 mh는 마치 한국어에서 [ㅅ]이 [ㅆ]보다 약하게 발음되는 것처럼 m보다 약하게 발음되는 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국제 음성 기호로 나타내기가 애매하지만 연음 mh는 일반 m보다 지속 시간이 짧다는 것을 반달표로 표시하여 [m̆] 정도로 적을 수 있겠다. 참고로 엘루그베가 m̈으로 적은 유성 유기음은 국제 음성 기호로 [m̤] 또는 [mʱ]로 나타낼 수 있다.
물론 한글로는 일반 m [m]와 연음 mh [m̆]를 구별할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둘 다 ‘ㅁ’으로 적으면 된다. 따라서 Osimhen은 ‘오시멘’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이름에서 비음화된 모음 en [ɛ̃]을 그냥 받침 ‘ㄴ’을 써서 ‘엔’으로 적는 문제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