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나무 대신 천연 고무 생산에 쓸 수 있는 관목 ‘과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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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치와와 사막에서 자라는 관목인 과율레(Parthenium argentatum, guayule)는 천연 고무를 채취할 수 있는 대체 자원 가운데 하나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령 말라야(현 말레이시아)의 고무나무에서 생산되는 고무 수입이 일본군에 막히자 미국에서는 과율레를 재배하여 부족한 고무를 충당하기도 하였다.

천연 고무는 보통 고무나무, 대표적으로 브라질 파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아마존강 유역이 원산지인 파라고무나무(Hevea brasiliensis, Pará rubber tree)에서 추출하는데 오늘날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열대 지역에서 널리 재배된다. 영국은 말라야를 식민지로 다스리면서 인도와 중국 출신 노동력을 동원한 고무 생산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현 인도네시아)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현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에서도 고무 산업이 중요한 재원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무나무 재배는 기존 열대 강우림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고무나무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물 순환에도 악영향을 끼쳐 장기간에 걸친 재배는 물 부족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반면 과율레는 경작하기 어려운 건조한 기후의 황무지에서 잘 자라며 영양분과 살충제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과율레에서 나온 고무로 제작한 라텍스(탄성 고무)는 일반 고무나무에서 나온 라텍스와 달리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자극 성분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대신 자연 상태의 과율레는 추출할 수 있는 고무 분량이 미미하기 때문에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이를 늘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과율레’라는 이름을 썼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과율(guayule)’이라고 쓴다. 아마도 영어에서 뒷부분이 yule [ˈjuːl] ‘율’처럼 발음되는 것으로 짐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어에서도 마지막 e를 따로 발음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영국 발음은 [ɡwaɪ̯.ˈuːl.i] ‘과이울리’ 또는 [hwaɪ̯.ˈuːl.i] ‘화이울리’라고 한다(원문에서는 /ɡwʌɪˈuːli/, /hwʌɪˈuːli/라고 썼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는 사전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는 발음 표기 방식을 한가지로 통일하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화이울리’는 guayule가 why-yoo-lee로 발음된다는 설명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why [ˈ(h)waɪ̯]는 대부분의 영어 화자들이 [h] 없이 [ˈwaɪ̯] ‘와이’로 발음하므로 ‘와이울리’의 첫 음을 why로 적은 것인데 이것을 [ˈhwaɪ̯] ‘화이’를 의도한 설명으로 착각한 것이다.

미국의 《메리엄·웹스터 사전》에서는 [ɡwaɪ̯.ˈuːl.i] ‘과이울리’ 또는 [waɪ̯.ˈuːl.i] ‘와이울리’로 발음을 제시한다(원문 gwī-ˈü-lē, wī-). 《롱맨 발음 사전》과 《케임브리지 발음 사전》에는 guayule이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라우틀리지 시사 영어 발음 사전(The Routledge Dictionary of Pronunciation for Current English)》에서는 guayule의 영국 발음을 [(ɡ)wɑː.ˈ(j)uːl.i] ‘과율리/와율리/과울리/와울리’로, 미국 발음을 [(ɡ)wɑː.ˈjuːl.i] ‘과율리’로 제시한다(원문 BR (ɡ)wɑːˈ(j)uːl|i, -ɪz / AM (ɡ)wɑˈjuli, -z). 한편 《콜린스 영어 사전》에서는 발음을 [ɡwə.ˈjuːl.i] ‘궈율리’로 제시한다(원문 ɡwəˈjuːlɪ).

영어에서는 원어에서 모음 사이에 반모음 [j]가 들어가는 VjV 조합을 차용할 때 가급적이면 앞의 Vj 부분을 이중 모음으로 발음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앙아메리카의 Maya도 영어로는 [ˈmaɪ̯‿ə] ‘마이아’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앞의 모음이 원어에서 [a]인 경우 [ɑː]로 흉내내어 [ˈmɑː.jə] ‘마야’로 발음하기도 한다. 그래서 guayule의 발음에서도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aɪ̯]를, 《라우틀리지 시사 영어 발음 사전》은 [ɑːj]로 갈리는 것이며 《콜린스 영어 사전》에서는 또 후자의 [ɑː]가 무강세 음절에서 [ə]로 약화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라우틀리지 시사 영어 발음 사전》은 [ɑː]를 쓰면서 영국 발음에서 [j]가 탈락 가능한 것처럼 괄호 안에 표기하여 마치 ‘과울리/와울리’로 발음될 수 있는 것처럼 적은 것은 잘못으로 보인다. 영국 영어에서는 특히 [ɑː] 뒤에 그냥 모음이 따르는 것을 꺼려서 자음을 삽입한다. ‘환호하다’를 뜻하는 동사 hurrah [hə.ˈɹɑː] ‘허라’에 -ing을 붙인 hurrahing도 영국 영어에서는 [hə.ˈɹɑːɹ.ɪŋ] ‘허라링’으로 발음할 정도이다(미국 영어에서는 [hə.ˈɹɑː.ɪŋ] ‘허라잉’이다). 아마도 [(ɡ)waɪ̯.ˈ(j)uːl.i]에서 앞에 이미 [aɪ̯]가 있으므로 [j]가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가 앞의 모음을 [ɑː]로 바꾸면서 뒤의 [(j)]는 깜빡한 것 같다.

사전마다 제시하는 발음은 이처럼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마지막 e가 [i]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에스파냐어를 거쳐서 영어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율레의 원산지는 예전에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다. 에스파냐어로는 guayule [ɡwaˈʝule] ‘과율레’라고 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에스파냐어의 gua는 ‘과’로 적기 때문에 ‘과율레’가 된다.

메소아메리카, 즉 멕시코를 포함한 광의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올메카 문명 시절인 기원전 1600년 무렵에 이미 천연 고무로 만든 공을 공놀이에 썼으며 아스테카 문명에서는 그 외에도 옷감을 방수 처리하는데 고무의 원료가 되는 용액(이것도 ‘라텍스’라고 하는데 탄성 고무를 이르는 ‘라텍스’와는 다른 뜻이다)을 쓰기도 했다. 아스테카인들은 주로 고무나무에서 나온 고무를 썼지만 과율레에서 나온 고무로 공을 만들기도 했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여러 언어가 쓰였지만 아스테카 제국을 지배한 아스테카인들은 나와틀어를 썼고 후에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된 후에도 나와틀어가 한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현지 동식물이나 문화와 관련된 말은 나와틀어 형태로 에스파냐어에 전해진 것이 많다.

guayule의 어원도 나와틀어 cuauhōlli ‘콰우올리’라고 한다(여기서 cu는 [k]가 순음화한 음인 [kʷ], uh는 음절말의 [w]를 나타내는 철자이다). ‘나무’를 뜻하는 cuahuitl ‘콰위틀’과 ‘고무’를 뜻하는 ōlli ‘올리’가 합친 말이다. 또는 앞부분이 ‘비름속(Amaranthus) 식물’을 뜻하는 huauhtl ‘와우틀’인 huauhōlli ‘와우올리’라는 얘기도 있다(여기서 hu는 [w]를 나타내는 철자이다). 어원이 cuauhōlli라면 첫 음을 [kw]로, huauhōlli라면 [w]로 받아들였을 텐데 guayule가 되었으니 순전히 발음만 따지면 후자가 더 유력해 보인다고 하겠다. 나와틀어는 [ɡ] 음을 쓰지 않지만 에스파냐어에서는 차용어에서 원어의 [w]를 /ɡw/로 흉내내는 일이 많으니 나와틀어에서 차용한 에스파냐어의 gu /ɡw/는 원어 [w]에 대응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아보카도로 만든 소스를 이르는 나와틀어 āhuacamōlli ‘아와카몰리’는 에스파냐어 guacamole [ɡwakaˈmole] ‘과카몰레’가 되었다. 또다른 중남미 지역 언어의 예를 들자면 타이노어 또는 카리브어 iwana는 에스파냐어에서 iguana [iˈɣ̞wana] ‘이과나’로 받아들여 다른 여러 언어에 전해졌다. 한국어에서는 ‘이구아나’로 굳어져 표준어가 되었는데 영어 발음도 [ɪ.ˈɡwɑːn.ə] ‘이과나’ 또는 영국식 [ˌɪɡ.ju.ˈɑːn.ə] ‘이규아나’이니 영어 발음이 아닌 철자식 표기 혹은 일본어 イグアナ[iguana] ‘이구아나’에 따른 표기로 봐야 하겠다.

물론 발음만 따져 볼 때 원어가 [w]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고 guayule는 고전 나와틀어 cuauhōlli나 huauhōlli와는 조금 다른 방언 형태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으니 어원에 대해 섣불리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에스파냐어에서는 어말 무강세 [i]를 꺼리기 때문에 나와틀어 ōlli [ˈoːlli]의 마지막 모음을 [e]로 받아들였는데 영어에는 어말에 올 수 있는 [e] 모음이 따로 없기 때문에 어말의 무강세 [e]를 [i]로 받아들여서 guayule의 마지막 모음이 다시 [i]가 된 것이 재미있다. guacamole도 영어로 [ˌɡwɑːk.ə.ˈmoʊ̯l.i] ‘과커몰리’라고 발음한다. 또 옥수수 가루와 다진 고기, 고추 등으로 만든 요리를 이르는 나와틀어 tamalli [taˈmálli] ‘타말리’는 에스파냐어 tamale [taˈmale] ‘타말레’를 거쳐서 영어 tamale [tə.ˈmɑːl.i] ‘터말리’가 되었다. 한국어에서는 에스파냐어식 ‘과카몰레’보다 오히려 영어 발음을 흉내낸 ‘*과카몰리’가 더 많이 쓰이는데 ‘*타말리’보다는 ‘타말레’가 더 많이 보인다. 이들의 표준 표기는 심의된 적이 없다.

어쨌든 guayule은 영어 발음이 ‘과이울리’인지 ‘와이울리’인지, 또는 ‘과율리’나 ‘와율리’인지, 심지어 ‘궈율리’인지 따질 필요 없이 에스파냐어 단어로 보고 ‘과율레’로 적는 것이 낫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과율’로 적은 것은 일본어에서는 영어의 발음을 잘못 파악하여 グアユール[guayūru] ‘구아유루’로 쓰는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Dejitaru Daijisen])》에 이렇게 수록되어있다. 하기야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발음을 엉뚱하게 ‘화이울리’로 제시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처럼 낯선 식물 이름 발음에서는 권위있는 사전도 실수를 낼 수 있다.

비록 잘못된 표기라도 ‘이구아나’처럼 널리 쓰여서 사회성이 있는 것이라면 관용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데 ‘과율’이 그만큼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다. 한자어 ‘과율’도 있어서 guayule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만 인터넷에서 검색하기는 까다롭지만 어림잡아 1000여 건만 나오는 듯하며 ‘과율레’, ‘구아율’, ‘과율리’ 등의 이표기도 검색 결과 상단에 많이 보인다. 이왕이면 ‘과율레’로 표기를 바로잡을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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