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주니어 육상 선수 보아지 응크루미의 특별한 이름

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지난 3월 30일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중고등부 체육 대회에서 만 19세의 보아지 응크루미(Bouwahjgie Nkrumie)가 100미터를 9.99초만에 달리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하여 2004년생의 응크루미는 주니어 선수로서 10초 벽을 깬 사상 세 번째의 선수이자 최초의 자메이카 주니어 선수가 되었다.

주니어 선수로서 100미터를 10초 아래로 완주한 공인 기록은 2014년 미국의 트레이본 브로멜(Trayvon Bromell)의 9.97초가 처음이었고 작년에는 2003년생인 보츠와나의 레칠레 테보호(Letsile Tebogo)가 9.91초를 기록했다.

카리브해의 영연방 국가인 자메이카의 공용어는 영어이다. 자메이카 방송에서 Bouwahjgie Nkrumie의 영어 발음은 [boʊ̯.ˈɑːʤ.i (ə)ŋ.ˈkɹuːm.i] ‘보아지 응크루미’로 관찰된다.

Bouwahjgie라는 철자 때문에 둘째 음절의 첫머리에 [w]를 집어넣은 [boʊ̯.ˈwɑːʤ.i] ‘보와지’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발음에서는 이런 [w]가 따로 들리지 않고 첫째 음절의 후반부 [ʊ̯]만 아주 약하게 들린다. 그러니 순전히 발음을 기준으로는 ‘보와지’가 아닌 ‘보아지’로 쓰는 것이 낫겠다.

Bouwahjgie라는 특이한 이름은 어떻게 나왔을까?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가 라디오 방송에서 Dr Bouwahjgie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들어서 아들 이름으로 붙였다고 한다.

물론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다면 ‘닥터 보아지’라고 발음한 것만 들었지 원래 이름의 철자는 몰랐을 것이다. 영어는 철자와 발음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불규칙하기로 악명이 높은데 그 점을 활용하여 발음에 맞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독특한 철자를 고른 듯하다.

그럼 닥터 보아지의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Ash라는 한 트위터 사용자는 그의 이름이 가나 이름인 Boakye와 비슷하게 발음된다고 지적했다.

Boakye는 가나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인 아칸어 이름인데 ky는 대부분의 방언에서 구개음화하여 [ʨ]로 발음되고 철자상의 e는 복잡한 모음 조화 규칙 때문에 마치 i로 적은 것처럼 발음되기도 하기 때문에 Boakye는 한국어 화자에게 ‘보아치’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니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이름은 Dr Boakye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Aboagye ‘아보아제~아보아지’라는 형태도 있으니 Dr Aboagye였을 수도 있다.

Nkrumie도 아칸어 이름인 Nkrumah를 연상시킨다. 가나 초대 총리이자 대통령인 Kwame Nkrumah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은크루마(Nkrumah, Kwame)’로 실려있다. 아칸어에는 접두사 m-, n-이 쓰이는데 뒤따르는 자음에 동화하여 연구개음인 k 앞에서는 연구개 비음 [ŋ̍]이 되므로 ‘응크루마’로 쓰는 것이 실제 발음에 더 가깝다.

Nkrumie는 영어에서 [(ə)ŋ.ˈkɹuːm.i]로 발음이 관찰된다. 즉 n-을 성절 자음으로 발음한 [ŋ̍.ˈkɹuːm.i] ‘응크루미’ 또는 발음하기 쉽도록 그 앞에 모음 [ə]를 삽입한 [əŋ.ˈkɹuːm.i] ‘엉크루미’이다(외래어 표기법에서 [ə]를 ‘어’로 적는 규칙을 따라서 그렇지만 이 발음에서도 [ə]가 꽤 고모음으로 실현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응크루미’에 가깝게 들린다). 그러니 Nkrumie는 ‘응크루미’로 적을 수 있다.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보츠와나의 공용어는 영어와 츠와나어이다. 주민 대부분이 츠와나어를 구사하므로 Letsile Tebogo도 츠와나어 이름으로 취급할 수 있다. 츠와나어에서 ts는 치경음 [ʦ]를 나타내는데 tš는 후치경음 [ʧ]를 나타낸다. Letsile의 ts가 전자인지 아니면 tš에서 특수 기호를 생략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ʦ]이든 [ʧ]이든 한글 표기는 어차피 ‘ㅊ’이므로 Letsile는 ‘레칠레’로 적을 수 있다.

츠와나어에서 철자 g는 무성 구개수 마찰음 [χ]를 나타낸다(무성 연구개 마찰음 [x]로도 묘사된다). 츠와나어에는 [ɡ] 발음이 따로 쓰이지 않는다. 보츠와나의 수도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보로네(Gaborone)’로 적지만 첫 자음은 [χ]이므로 ‘하보로네’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더 가깝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츠와나어식 지명 Gauteng은 2010년 5월 17일 실무소위에서 표준 표기가 실제 발음에 가깝게 ‘하우텡’으로 정해졌다. 츠와나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츠와나어는 1806년에 로마자로 처음 기록되었으며 1930년대에 보츠와나 및 남아프리카 여러 주의 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철자법에 따라 [χ]를 g로 적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g가 마찰음을 나타내는 네덜란드어와 아프리칸스어 철자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Tebogo도 ‘테보호’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깝다.

Trayvon Bromell의 영어 발음은 [ˈtɹeɪ̯.vɒˑn bɹoʊ̯⟮ə⟯.ˈmɛl] ‘트레이본 브로멜’ 정도로 관찰된다. Bromell은 첫 음절이 약화된 [bɹə.ˈmɛl] ‘브러멜’이 약화되지 않은 [bɹoʊ̯.ˈmɛl] ‘브로멜’보다 더 흔하게 관찰되지만 한글 표기는 약화되지 않은 발음을 본음으로 취급하여 ‘브로멜’로 적는 것이 좋다.

트레이본 브로멜은 이미 정상급 단거리 달리기 선수이고 보아지 응크루미와 레칠레 테보호도 장래가 촉망되므로 한글 표기를 미리 고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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