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avi Hernández, Carles Puyol, Gerard Piqué, Joan Capdevila, Sergio Busquets.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이다. 이들은 스페인 외에도 또 다른 대표팀 선수로 활약한다.
바로 카탈루냐 대표팀이다. 국제 축구 연맹의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카탈루냐 대표팀은 정기적으로 여러 국가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벌인다. 작년 12월에는 바르셀로나 캄 노우(Camp Nou) 경기장에서 아르헨티나를 4-2로 꺾었다.
이들이 카탈루냐인들이라는 것은 대부분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Xavi, Carles, Gerard, Joan은 카탈루냐어 이름이다. 이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이름은 Javi (하비), Carlos (카를로스), Gerardo (헤라르도), Juan (후안)이다. Sergio Busquets는 카탈루냐어식인 Sergi (세르지) 대신 스페인어식 Sergio (세르히오)가 더 널리 쓰이는 경우이다.
지금까지 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지 않고 원 철자대로 적었다. 카탈루냐어 이름의 한글 표기를 다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이름 표기를 심의하여 발표했다. (당연한 얘기인지 몰라도 홍보는 별로 되지 않은 듯하다. 국립국어원과 SBS는 2010년 월드컵 표기 공동 연구를 위한 협약식까지 개최했었는데 정작 SBS 방송 화면을 보니 심의된 표기를 거의 따르지 않았다.) 이들이 결정한 표기는 다음과 같다.
사비 에르난데스, 카를레스 푸욜, 헤라르드 피케, 호안 캅데빌라, 세르히오 부스케츠
2024. 5. 27. 추가 내용: Gerard Piqué는 제129차 외래어 심의회(2016. 10. 19.)에서 표기가 ‘제라르 피케’로 심의되었다.
철자에 외래어 표기법의 스페인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카탈루냐어 이름인 Busquets의 어말 파찰음 [ts]를 ‘츠’로 적은 것은 스페인어 규정에는 없는 것으로 어느정도 융통성을 보인 결과일 수도 있겠다(물론 외래어 표기법의 스페인어 규정에서 [ts]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별 생각 없이 영어 등 다른 언어에서 유추하여 정한 표기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스페인어 이름이 아닌 이름에 스페인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니 결국 원 발음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들의 카탈루냐어 발음을 살펴보자.
Xavi [ˈɕaβi], Carles Puyol [ˈkaɾɫəs puˈjɔɫ], Gerard Piqué [ʑəˈɾaɾ(t) piˈke], Joan Capdevila [ʑuˈan kəpdəˈβiɫə], Busquets [βusˈkɛts]
내 카탈루냐어의 한글 표기안을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적도록 되어있다(스페인어 이름인 Hernández와 Sergio는 스페인어 표기 규정을 따름).
샤비 에르난데스, 카를레스 푸욜, 제라르트 피케, 조안 캅데빌라, 세르히오 부스케츠
카탈루냐어 모음을 표기하는 문제는 ‘주제프 과르디올라’와 카탈루냐어의 모음 표기에서 다룬 바 있다. 카를레스 푸욜 같은 경우는 스페인어 표기 규정을 따라도 별 문제가 없지만 스페인어에서 쓰지 않는 [ʑ]음 따위가 들어간 이름인 경우 차이가 심하다.
Xavi의 발음
논란이 될 수 있는 Xavi의 발음 문제부터 정리하자. Xavi의 발음은 [ˈɕaβi]이다(한국어의 ‘샤’는 [ɕa]로 발음된다). 하지만 카탈루냐 남부와 발렌시아에서는 /ɕ/가 어두 또는 자음 뒤에서 파찰음 [ʨ]로 실현된다. 그러니 이들 방언에서는 ‘차비’ 비슷한 발음이 들릴 수 있다.
더구나 카탈루냐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스페인어 화자들은 [ɕ] 발음을 하지 못한다. 스페인에서 쓰이는 스페인어에는 [ɕ] 내지 [ʃ]에 해당하는 음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어에서 ch로 나타내는 파찰음 [ʧ]가 있으며 [ʨ]와 유사한 음이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많은 이들은 Xavi를 마치 Chavi라고 쓴 스페인어 이름인 것처럼 ‘차비’로 발음한다. 이 발음은 영어권에서도 많이 쓰인다.
2024. 5. 27. 추가 내용: 철자 x로 적는 어두 /ɕ/를 파찰음 [ʨ]로 실현하는 것은 카탈루냐 남부와 발렌시아뿐만이 아니라 이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쓰이는 중앙카탈루냐어 발음에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니 ‘차비’라고 적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글 표기의 기준으로는 철자에 따라 tx로 적는 /ʨ/만 ‘ㅊ’으로 적고 x /ɕ/는 화자에 따라 [ɕ]로 실현되든 [ʨ]로 실현되든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샤’, ‘셰’ 등으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카탈루냐어에 대해 전혀 모르고 Xavi라는 철자만 본 스페인어 화자들은 정말 외래어 표기법 스페인어 규정에서처럼 Savi라고 쓴 이름인양 ‘사비’로 발음할 수도 있는 일이다. 스페인 사람이라면 스페인 대표팀 선수 이름 발음은 다 알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천만이다. 보통 영국인들이 웨일스어 이름의 발음을 잘 모르듯 보통 스페인 사람들은 카탈루냐어나 바스크어 발음을 잘 모른다. 카탈루냐인 대부분은 스페인어를 구사하지만 스페인 다른 지방 이들에게는 카탈루냐어는 낯선 ‘외국어’이다. 카탈루냐에서도 학교 교육은 카탈루냐어로 진행되고 스페인어는 일주일에 한두 시간 배우는 ‘외국어’일 정도로 같은 나라 안에 큰 언어 장벽이 존재한다.
어쨌든 Xavi 본인은 바르셀로나 주 테라사(Terrassa) 출신이다. 표준 동부 카탈루냐어 발음을 따라 ‘샤비’라고 적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카탈루냐어 이름을 스페인어 규정대로 표기하는 현실
이번 월드컵 선수명 표기 심의 내용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유난히 오류가 많아 국립국어원에 이를 지적하면서 카탈루냐어 이름 표기에 대한 문제 제기도 했다. 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카탈루냐어 표기에 대해서는 전에도 지적이 나왔는데, 카탈루냐 어 표기를 위한 무언가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스페인어 표기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작년만해도 심의위에서는 Josep Guardiola를 카탈루냐어 발음에 따라 ‘주제프 과르디올라’로 표기하도록 결정했었다. 그 후로 무엇이 달라졌기에 잘못된 발음이라는 것을 알면서 스페인어식 억지 표기를 고집하는가? 사실 이번 월드컵 선수명 표기 확정안은 원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융통성을 보였던 예전의 표기 전례마저 뒤엎는 등 전체적으로 오히려 후퇴한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
내가 마련한 카탈루냐어 표기안을 인터넷으로 올린지도 2년이 넘었고 국립국어원에 이를 몇 번 알린 적도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 표기안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고 추가 연구를 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들은 적이 없다. 국립국어원에서 자체적으로 카탈루냐어 표기를 연구한다는 소식도 들을 적이 없다.
‘사비’, ‘헤라르드’, ‘호안’ 등 위의 심의위 표기를 보면 카탈루냐어나 축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라틴아메리카 스페인어권 사람이 철자만 보고 스페인어 이름인양 발음하는 것이 연상된다.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인명을 네덜란드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사람에게 철자만 보고 프랑스어 이름인양 발음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에서 정말 카탈루냐어 이름 표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2024. 5. 27. 추가 내용: 지금 입장은 에스파냐어 이외의 지역어로 된 에스파냐 인명을 표기할 때는 에스파냐어 발음에 따른 표기와 원어 발음에 따른 표기 가운데 유연하게 고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에스파냐어 발음은 원어 발음을 무시하고 에스파냐어 이름인 것처럼 철자식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실제 원어 발음을 에스파냐어의 음운 체계 내에서 흉내낸 발음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이름들은 에스파냐어로도 카탈루냐어 발음을 흉내내어 발음하는데 그래도 두 언어 발음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언어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한글 표기도 살짝 달라진다. Xavi Hernández는 카탈루냐어 발음에 따라 적으면 ‘샤비 에르난데스’이지만 가장 흔한 에스파냐어 발음에 따라 적으면 ‘차비 에르난데스’이다. 다만 에스파냐어 발음 가운데 ‘샤비 에르난데스’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카탈루냐어 이름으로 취급하여 ‘샤비 에르난데스’로 통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Gerard Piqué는 카탈루냐어 발음 [ʒəˈɾaɾt piˈke]에 따라 적으면 ‘제라르트 피케’이지만 에스파냐어에서는 카탈루냐어와 달리 어말 유성 장애음의 무성음화가 일어나지 않으니 [ɟ͡ʝeˈɾaɾ(ð̞) piˈke] ‘제라르드 피케’로 적을 수 있다(여기서 [ɟ͡ʝ]는 /ʝ/의 변이음이며 카탈루냐어의 [ʒ]나 [ʤ]를 흉내내는 데 쓰인다). 그런데 에스파냐어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어말 d가 흔히 탈락하며 특히 자음군은 단순화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Gerard의 실제 발음은 보통 [ɟ͡ʝeˈɾaɾ] ‘제라르’이다. 2016년에 심의된 표기인 ‘제라르 피케’는 이를 따른 듯하다. 하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d의 탈락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인물은 카탈루냐어 발음을 흉내낸 에스파냐어 발음을 기준으로 ‘제라르드 피케’로 적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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