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hôtel de ville)을 호텔(hôtel)로 오인, 하룻밤을 보낸 영국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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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 tourist trapped in French hall (BBC 보도, 영어)
Elle passe la nuit à l’hôtel… de ville (Europe1 보도, 프랑스어)

한 30대 여성 영국 관광객이 금요일 저녁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 단마리(Dannemarie)에 도착했다. 투숙할 곳을 찾던 그는 Hôtel de Ville이라는 간판의 아름다운 건물을 발견했다.

단마리의 시청 건물. (사진 출처)

프랑스어로 ‘오텔(Hôtel)’이면 ‘호텔’ 아닌가? 영어의 Hotel도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이다. ‘빌(Ville)’은 ‘도시’란 뜻이니 Hôtel de Ville은 ‘도시의 호텔’이란 뜻으로 짐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관광객은 체크인하기 전에 우선 화장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Hôtel de Ville은 프랑스어에서 ‘시청’이란 뜻이다. 단마리 시청 직원들은 관광객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회의를 끝내고 모두 퇴근하면서 건물 문을 잠그고 나갔다.

혼자 건물 안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관광객은 불을 켰다 끄면서 바깥에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바깥에서는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짧은 프랑스어로 ‘여기 갇혔습니다. 문 열어주실 수 있나요?’라고 쪽지를 정문의 유리창에 남기고 대기실의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9시 반에 한 약제사가 그 쪽지를 발견하여 건물 관리인에게 알려 비로소 관광객은 ‘구조’될 수 있었다. 폴 묑바크(Paul Mumbach) 시장에 의하면 관광객은 프랑스어를 잘 못했지만 진짜 호텔을 찾아달라는 의도를 확실하게 전달했고, 시장은 멀리 떨어진 마을에 있는 호텔을 알려주어 관광객은 겸연쩍은 모습으로 단마리를 떠났다. 스위스와 독일 국경 근처의 인구 2500의 작은 마을인 단마리에는 당시 영업 중인 호텔이 없었던 것이다.

묑바크 시장은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시청’을 영어와 독일어로도 써붙여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호텔과 호스텔

우리가 보통 ‘호텔’로만 아는 프랑스어 hôtel은 현지에서 여러 다른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자.

고급 여관을 뜻하는 ‘호텔’과 상대적으로 값이 싼 숙박 시설을 뜻하는 ‘호스텔’은 각각 영어의 hotel과 hostel에서 온 외래어이다. 요즘에는 배낭여행을 하는 이들이 많아져 젊은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인 ‘유스호스텔(youth hostel)’도 친숙해졌다.

‘대접이 좋은’이란 뜻의 라틴어 hospitalis에서 유래한 후기 라틴어 단어 hospitale는 ‘숙박소’라는 뜻으로 쓰였다. 주로 환자나 죽음을 앞둔 이들을 수용하는 숙박소라는 의미에서 오늘날 ‘병원’을 뜻하는 프랑스어 ‘오피탈(hôpital)’과 영어 ‘호스피털(hospital)’이 유래했다. Hospitalis의 어근인 라틴어의 hospes는 ‘주인’ 또는 ‘손님’을 뜻하는데 여기서 프랑스어와 영어의 hospice가 유래했다. ‘호스피스’는 ‘죽음에 가까운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을 뜻하는 외래어이다. 한국어에서는 ‘호스트바’나 ‘호스티스’ 등 술집에 관련된 이미지만 있지만 원래 ‘주인’을 뜻하는 영어의 host와 hostess, 프랑스어의 hôte와 hôtesse도 hospes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에서 hospitale는 hostel로 형태가 변했다. 프랑스어에서 라틴어의 h는 묵음이 되었으니 ostel로 적는 경우도 많았다(오늘날 프랑스어에서는 h 발음 자체가 쓰이지 않는다). 이 hostel은 점차 오늘날과 같이 ‘여관’이란 뜻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고, 이 의미와 형태로 영어에도 전해졌다.

그 후 프랑스어에서 hostel의 s는 발음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어에서 모음 뒤, 자음 앞의 s가 묵음이 된 사례는 꽤 많은데, 해당 모음에 ^와 같이 생긴 부호, 즉 악상 시르콩플렉스(accent circonflexe)를 붙여 원래 s가 있다가 사라진 것을 철자에 나타내게 되었다. 그래서 hostel은 hôtel로 표기하고 [ɔtɛl]이라고 발음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태가 변화한 단어는 또다시 영어에 전해져 영어에서는 hostel과 hôtel 두 단어가 공존하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hôtel은 좀더 고급스런 여관을 뜻하는 것만 다를 뿐. Hôtel은 영어화되는 과정에서 부호가 생략되어 hotel로 쓰이게 되었다. 지금도 고풍스럽게 보이려고 영어에서도 hôtel이라고 쓰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의 복잡한 역사 때문에 hôtel은 프랑스어에서 ‘호텔’ 뿐만이 아니라 ‘관저’, ‘저택’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 hôtel de ville은 ‘시청’이란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텔디외(hôtel-Dieu)’, 즉 ‘신의 hôtel’은 예전에 ‘시립 병원’이란 의미로 많이 쓰였고 지금도 프랑스의 오래된 병원 가운데는 hôtel-Dieu라고 불리는 것이 많다.

프랑스 파리 중심 시테섬(Île de la Cité)의 시립 병원. Hôtel-Dieu라는 간판이 보인다. (사진 출처)

프랑스어에서 들어온 영어 단어의 h 발음

영어에서 hostel은 [ˈhɒst(ə)l]로, hotel은 [hoʊˈtel]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따르면 hostel은 사실 ‘호스틀’ 또는 ‘호스털’로 적어야 하지만 이미 굳어진 표기인 ‘호스텔’을 표준으로 정했다. 이들이 처음 영어에 들어왔을 때는 프랑스어 발음을 흉내내어 h 발음을 하지 않았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history, humble, herb 등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의 h는 묵음이었다. 하지만 후에 표기에 이끌려 이런 단어에서도 h 발음을 하기 시작해서 오늘날 hostel과 hotel의 h는 묵음이 아니다. 대신 영국식 발음에서 hostel의 h는 언제나 발음하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에 들어온 hotel의 h 발음은 하지 않고 ‘오텔’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history의 h는 언제나 발음하지만 거기에서 파생된 historic, historical은 특히 영국에서 h를 묵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관사 a 대신 an을 써서 an historic, an historical이라고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약이나 향료로 쓰는 식물을 뜻하는 외래어 ‘허브’의 어원인 herb를 발음할 때 영국에서는 h 소리를 내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h 소리를 생략한다. Honour/honor, honest, hour 같은 일부 단어에서는 프랑스어에서처럼 영어에서도 h 발음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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