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소수민족 공식 문자로 한글 채택
印尼에 ‘한글섬’ 생긴다…세계 첫 사례 (동영상 포함)
추가: Bahasa Cia-Cia dalam Abjat Korea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추가(2차):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 교수 인터뷰
알림: 원 글은 위 인터뷰 내용을 보기 전에 썼으며 부톤 섬에서 아랍 문자를 썼고 찌아찌아어 역시 문자로 기록된 적이 있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문자가 없는 종족에게 한글을 보급한다는 보도 내용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담당한 이호영은 예전에 부톤 섬에서 문자를 쓴 적이 있지만 지금 사용하는 이는 극소수이고 특히 현재 찌아찌아어를 문자로 적지 않는다고 인터뷰에서 설명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언어 사용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예전에 문자로 기록된 적이 있느냐, 일부 언어학자들이 문자로 기록한 적이 있느냐의 문제보다는 현재 그들이 자신의 언어를 문자로 쓰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므로 원 글의 비판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호들갑 떠는 보도 내용만 접했을 때 예전에 엄연히 로마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라후족을 문자 없는 종족으로 둔갑시켜 한글 보급을 추진했던 사건이 생각나서 적은 글이니 위의 인터뷰 내용까지 다 읽고서 판단하시기 바란다.
인도네시아 부톤(Buton) 섬의 소수민족 찌아찌아(Cia-Cia)족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기로 하고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적은 교과서와 표지판을 보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찌아찌아어는 7만 9000명의 화자가 있으며 남도 어족(오스트로네시아 어족) 말레이·폴리네시아 어파 술라웨시 어파(Celebic)에 속하는 언어이다. 인도네시아의 공용어인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역시 말레이·폴리네시아 어파에 속한다.
찌아찌아어는 부톤 섬에서 쓰이는 부톤 어군의 일부이며 부톤 섬 남부에서 쓰이므로 남부톤어라고도 한다. 보도에서 한글을 공식으로 택했다고 전하는 바우바우(Bau-Bau)시는 부톤 어군 가운데 월리오(Wolio)어 사용 지역이라고 한다. 월리오어는 옛 바우바우 술탄의 조정에서 사용했으며 공식 지역 언어이고 아랍 문자로 표기된다.
이 ‘한글 수출’ 사업은 훈민정음학회가 주도했다. 훈민정음학회는 훈민정음을 비롯한 세계 글자를 연구하고 글자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2007년 창립한 학회라고 한다.
훈민정음 전파를 통한 문맹 타파라,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 찌아찌아족이 정말 한글수출론자들이 말하는 미문자 종족일까? 적어도 연합뉴스 동영상(위 둘째 링크)에서는 찌아찌아어는 문자가 없어서 사멸할 위기에 놓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놀로그는 찌아찌아어의 사용 실태에 대해 “Vigorous. All ages. (모든 연령대에서 활발하게 쓰인다)”라고 적고 있다.
또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전세계 종족에 대한 자료를 모은 조슈아 프로젝트(Joshua Project)에 실린 찌아찌아족에 대한 소개를 보자.
부톤 사회에서는 남녀 어린이들의 교육을 귀중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교육에 대한 강조로 인해 문예가 번영하였으며 책과 긴 시가 쓰여 부톤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Education is highly valued for both boys and girls in Butonese society. This emphasis on education has caused their literary art to flourish,resulting in the writing of books and long poems which have become apart of Butonese culture.
(중략)
4%가 기독교도이지만 찌아찌아족이 쓸만한 그들의 언어로 쓴 기독교 자료는 적다.
Despite being 4% Christian, the Cia-Cia have few Christian resources available to them in their own language.
인용한 첫 부분은 찌아찌아족에 한정하지 않고 부톤 섬 전체에 대해 설명한 듯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부톤어군 가운데 월리오어는 아랍 문자를 사용하여 표기한다. 그러니 찌아찌아족은 문자 생활을 찌아찌아어가 아니라 월리오어로 한 전통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부분만으로는 찌아찌아어를 문자로 적은 적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찌아찌아족이 쓸만한 그들의 언어, 즉 찌아찌아어로 쓴 기독교 자료가 적다는 말은 찌아찌아어로 쓴 자료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기독교에서는 전세계 ‘미선교’ 종족에게 선교사를 파견하는데 문자가 없는 종족일 경우 언어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문자 체계를 개발해 성경을 그 언어로 번역한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선교사들은 언어학을 배우며, 전세계 언어에 대한 자료도 이와 같이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축적된 것이 많다. 위에서 인용한 에스놀로그도 기독교 비영리 단체인 SIL에서 펴내는 자료집이다. 예전에 쓴 피라항어에 관한 글에 나오는 언어학자 대니얼 에버렛도 원래는 기독교 선교사로 아마존 밀림에 들어간 예이다.
겨우 수백 명인 피라항족도 선교사가 찾아갔는데 과연 수만 명이 되는 찌아찌아족을 지금껏 기독교 선교사가 찾은 적이 없을까?
그리고 아랍 문자로 쓰이는 월리오어, 또 예전에는 아랍 문자, 오늘날에는 로마 문자로 쓰이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오랫동안 접했던 찌아찌아족이 과연 지금껏 자신들의 언어를 문자로 적어본 적이 없을까? 문명과 차단되어 문자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라면 모르겠다. 기사에서는 지역 표지판에 로마자와 함께 한글을 병기하도록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건 이미 로마자 표지판이 쓰이고 있다는 얘기이다. 표지판에서 쓰는 언어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겠지만 찌아찌아어 고유 지명도 표지판에 적고 있을 것 아닌가?
예전에도 한글 수출론자들이 타이 북부의 소수민족 라후족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미문자 종족’이라고 불렀지만 라후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로마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사실 오늘날 진정한 ‘미문자 종족’은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다른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것이 소원이라면 문자 없는 불쌍한 이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전수한다는 식의 사기는 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직하게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언어를 쓰는 문자가 있지만 교과서까지 지원해가며 한글을 대신 쓰도록 설득시켰다”라고 알려달라.
추가 내용:
부톤 현지의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보도 내용도 링크에 추가했다. 번역기를 통해서 읽으면 거기서도 찌아찌아어를 적는 문자가 현재 없다는 인용문이 보인다. 그러니 적어도 현재 찌아찌아어를 글로 적는 활동이 왕성하지는 않은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찌아찌아어를 문자로 적은 적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무튼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가 내용(2차):
이 사업을 담당한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추가했다. 바우바우 시장이 한국 마니아여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자기 문자가 있는 언어는 전혀 없고 주정치세력인 올리오족만 15세기 이슬람의 영향으로 아랍문자로 고유어를 표기한 적이 있지만, 사용인구는 극소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일부러 현지의 문자 사정에 대해 거짓으로 알리는 것 같지는 않고, 다만 예전에 문자로 적힌 적이 있는지와는 상관 없이 지금 쓰이지 않으니 문자가 없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표준화된 체계를 준비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그래도 이 작업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핑백: 찌아찌아어 한글 채택에 대한 분석 – 끝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