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프랑스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2007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Brian Joubert가 있다. 언론과 방송에서 쓴 한글 표기를 살펴보면 ‘브리앙 쥬베르’, ‘브라이언 쥬베르’, ‘브라이언 주베르’ 등 다양한데 어느 것이 맞을까?
프랑스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브라이언 주베르
일단 Joubert [ʒubɛːʁ]는 ‘주베르’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 등의 표기를 쓰지 않는다. ‘텔레비젼’이 아니라 ‘텔레비전’, ‘챠트’가 아니라 ‘차트’가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이다. 한국어에서는 ‘쟈’와 ‘자’, ‘챠’와 ‘차’ 등이 발음상으로는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3. 8. 2. 추가 내용: 원문에서는 [ʒubɛʁ]와 같이 적었지만 프랑스어에서 구의 마지막 음절이 /ʁ/로 끝나는 경우 그 앞의 모음이 길게 발음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ʒubɛːʁ]로 수정하였고 이하 프랑스어의 표기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였다.
그런데 Brian은 어떨까? 철자만 보고 프랑스어의 발음 규칙을 따른다면 발음이 [bʁiɑ̃]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브리앙’이란 표기는 이런 짐작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Brian의 발음은 [bʁiɑ̃]이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어 이름 같지 않은 ‘브라이언’이란 표기가 실제 프랑스 방송에서 쓰는 발음에 가깝다.
(프랑스어 발음을 확인하고 싶으면 이 동영상을 보라. 프랑스 방송에서 진행자가 0:10 부분에서 Brian Joubert를 발음한다.)
‘브리앙’은 발음을 잘못 안 표기
흔히 알다시피 Brian은 원래 영어에 흔한 이름이다. 원래 이 이름은 아일랜드의 성왕(聖王) 브리언 보루(Brian Boru) 때문에 많이 쓰이게 되었다. 사실 아일랜드어에서 Brian은 [ˈbʲɾʲiən̪ˠ]으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아일랜드어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브리언’ 정도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보통 [ˈbɹaɪ̯.ən], 즉 ‘브라이언’으로 발음된다.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 따르면 아일랜드어 발음에 더 가까운 [ˈbɹiː.ən], 즉 ‘브리언’도 가끔 쓰인다고 하는데 나는 실제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일랜드의 성왕 브리언 보루
2023. 8. 2. 추가 내용: 원문에서는 아일랜드어 원어를 Brian Bóruma ‘브리언 보러머’라고 썼지만 이는 중세 아일랜드어 형태이며 현대 아일랜드어로는 Brian Bóramha로 쓴다. 아일랜드어는 방언마다 amha의 발음이 다른데 얼스터 방언으로는 [uː], 코노트 방언으로는 [ə(w)], 먼스터 방언으로는 [əw]로 발음되므로 이에 따라 ‘보루’, ‘보러’, ‘보러우’ 등으로 적을 수 있다. 따라서 영어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철자인 Brian Boru로 쓰고 한글 표기는 ‘보루’를 골랐다. 한편 중세 아일랜드어는 발음을 짐작하여 한글로 표기하기가 곤란하며 영어에서조차 어말 a [ə]를 ‘어’ 대신 ‘아’로 적는 것을 보면 Bóruma에서 u와 a가 [ə]로 약화된다고 짐작한 ‘보러머’도 썩 마음에 드는 표기는 아니다. 차라리 철자식으로 읽은 ‘보루마’가 나을 수 있다.
Brian이란 이름은 영어를 통해 프랑스에 전해졌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영어식 발음을 흉내내게 되었다. 프랑스어에서 Brian의 발음은 [bʁajœn] 내지는 [bʁajən]으로 적을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규정을 적용하면 [bʁajœn]은 ‘브라이왼’이 되는데 [bʁajən]은 확실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말의 [j]는 ‘유’로 적는 것에서 [jə]도 ‘유’로 적는다고 유추하면 ‘브라윤’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원래 [ajə] 같은 발음은 프랑스어 토박이말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따로 이 경우를 명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브라이왼’이나 ‘브라윤’이나 썩 만족할만한 표기는 아니다. 오히려 영어 이름 Brian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인 ‘브라이언’이 프랑스어 발음에도 더 가까운 것 같다.
프랑스어의 [œ]와 [ø]는 현실 프랑스어에서 무강세 음절에 오는 모음 [ə]와 발음이 거의 같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œ]와 [ø]는 ‘외’로, [ə]는 ‘으’로 적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어의 [ə]는 강세가 없는 e에 쓰이는데, 이 모음은 탈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어의 [ə]는 ‘어’로 적는데 반해 프랑스어의 [ə]는 ‘으’로 적게 한 것이다.
이런 외래어 표기법 규정은 프랑스어의 토박이말을 적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Brian처럼 다른 언어에서 온 말의 발음에서 원어의 [ə]를 흉내내기 위해 [œ] 내지는 [ə]를 쓴 경우는 상당히 애매해진다.
프랑스어의 한글 표기에도 ‘어’를 사용해야 할까?
아마 가장 흔한 예는 영어, 독일어 등에서 온 이름이 -er로 끝나는 경우일 것이다. 프랑스 가수 Mylène Farmer는 ‘밀렌 파르메르’로 보통 쓰지만 사실 Farmer는 영어식 예명으로 발음은 [faʁmœːʁ]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발음에 상관없이 [ɛʁ]로 끝나는 것처럼 ‘에르’로 적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워낙 이런 예가 많고, 하나하나 발음을 확인하기도 어려우며 사람에 따라 [œʁ]로 발음하기도 하고 [ɛʁ]로 발음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Léon Warnant의 프랑스어 발음 사전 Dictionnaire de la prononciation française dans sa norme actuelle에서는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Eisenhower)를 [ajzənɔwœːʁ]로 발음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흔히 [ɛzɛnɔ(w)ɛːʁ]로 발음된다고 적고 있다.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프랑스어에 들어온지 오래된 단어일수록 프랑스어식인 [ɛʁ]로 발음하고 최근 들어온 단어일수록, 또 발음하는 사람이 영어 발음을 더 잘 알수록 영어 발음을 흉내낸 [œʁ]를 쓰는 듯하다.
기존 외래어 표기 용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면 Kouchner를 ‘쿠슈네르’, Honegger를 ‘오네게르’로 표기하도록 하는 등 영어·독일어에서 온 이름의 -er는 대체로 ‘에르’로 적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œʁ]보다는 [ɛʁ]로 발음되는 경우이겠지만 앞으로도 ‘에르’로 통일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본론에서 벗어나는 얘기지만 외래어 표기 용례를 찾아보다가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Althusser를 ‘알튀세’로 표기하도록 정한 것을 보았다. Althusser는독일어에서 온 이름으로 [altusɛːʁ]로 발음되며 ‘알투세르’라고 적어야 원래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맞다. 발음을 잘못 안 표기가 이미 널리 알려져서 기존 표기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정해진 것인지 용례를 정한 사람들도 잘못 안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Brian 같은 경우는 이런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아무래도 이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 프랑스어의 한글 표기에도 ‘어’를 허용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아니면 Brian은 프랑스인의 이름이라도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 이름으로 보고 표기하기로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지 모르겠다.
덴마크에도 Brian이…
덴마크의 축구 선수 브리안 라우드루프
Brian이라는 이름은 덴마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덴마크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라우드루프 형제 중 동생인 브리안 라우드루프(Brian Laudrup)가 대표적이다(흔히 쓰는 ‘라우드럽’은 영어에 이끌린 잘못된 표기이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영어 발음을 흉내내지 않고 Brian이라는 철자를 덴마크어식으로 읽은 발음을 쓰는 듯하다. Brian Mikkelsen이란 다른 덴마크인 이름을 발음을 들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외래어 표기법의 덴마크어 규정을 적용하여 ‘브리안’이라고 쓰면 그만이다.
같은 Brian이 프랑스에서는 영어식으로 ‘브라이언’으로 발음되는데 덴마크에서는 덴마크어 발음 규칙에 맞게 ‘브리안’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외국어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복잡한 예를 들자면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지역 출신의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경우 어머니가 영어를 사용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인이기 때문에 Roger를 영어식으로 ‘로저’로 발음한다. 하지만 보통 독일어권에서는 Roger를 독일어식으로 ‘로거’로 발음하며 다만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지역에서는 Roger를 프랑스어식 ‘로제’를 흉내내어 ‘로셰’로 발음한다. 이와 같이 이름의 발음에는 국가, 지역, 개인에 따라 차이가 다양하게 날 수 있으니 사실 본인이 직접 발음을 확인해주지 않는 한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핑백: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브라이언 주베르(Brian Joubert)의 이름 표기 문제 – 끝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