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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라틴어 &#8211; 끝소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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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라틴어 &#8211; 끝소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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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16;리스보아(리스본)&#8217;와 &#8216;구스망&#8217;: 포르투갈어 유성 자음 앞 s의 표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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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끝소리]]></dc:creator>
		<pubDate>Mon, 14 Nov 2016 08:10:24 +0000</pubDate>
				<category><![CDATA[표기 용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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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언덕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전차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영어로 Lisbon [ˈlɪzbən] &#8216;리즈번&#8217;, 독일어로 Lissabon [ˈlɪsa⁽ˈ⁾bɔn] &#8216;리사본&#8217;, 프랑스어로는 Lisbonne [lisbɔn → liz-] &#8216;리스본&#8217;으로 불리지만 포르투갈어 이름은 Lisboa [포르투갈: ɫiʒˈβ̞oɐ, 브라질: ɫizˈboɐ], 에스파냐어 이름도 Lisboa [lizˈβ̞oa]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8216;리스본&#8217;의 원어 표기를 영어식으로 Lisbon이라고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지면 &#8216;리스본&#8217;은 오히려 프랑스어 Lisbonne을 따른 표기와 일치한다. 물론 &#8216;리스본&#8217;이 프랑스어에서 왔다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span style="font-size:0.9em; color:#5C78C6;">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span><br>
<span style="color:#C5D2DB">—</span>
<p>언덕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전차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영어로 Lisbon [ˈlɪzbən] &#8216;리즈번&#8217;, 독일어로 Lissabon [ˈlɪsa⁽ˈ⁾bɔn] &#8216;리사본&#8217;, 프랑스어로는 Lisbonne [lisbɔn → liz-] &#8216;리스본&#8217;으로 불리지만 포르투갈어 이름은 Lisboa [포르투갈: ɫiʒˈβ̞oɐ, 브라질: ɫizˈboɐ], 에스파냐어 이름도 Lisboa [lizˈβ̞oa]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8216;리스본&#8217;의 원어 표기를 영어식으로 Lisbon이라고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지면 &#8216;리스본&#8217;은 오히려 프랑스어 Lisbonne을 따른 표기와 일치한다. 물론 &#8216;리스본&#8217;이 프랑스어에서 왔다는 것은 아니고 영어식 Lisbon을 철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비슷한 경우인 일본어 이름 リスボン <em>Risubon</em> &#8216;리스본&#8217;의 영향도 받은 관용 표기로 볼 수 있다.</p>
<figure id="attachment_10715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153" style="width: 51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153"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3ed21ca.png" alt="" width="511" height="566"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3ed21ca.png 511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3ed21ca-271x300.png 271w" sizes="(max-width: 511px) 100vw, 511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153" class="wp-caption-text">리스본의 문장. mui nobre e sempre leal cidade de Lisboa는 &#8216;매우 고귀하고 언제나 충성스러운 도시 리스본&#8217;을 뜻한다(<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03534">Wikimedia</a>: Sérgio Horta, CC BY-SA 3.0).</figcaption></figure>
<p>이 지명은 고전 라틴어의 Olisīpō &#8216;올리시포&#8217;에 대응되는 속(俗)라틴어 Olisipona &#8216;올리시포나&#8217;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Ὀλισσιπών(Olissipṓn) &#8216;올리시폰&#8217; 또는 Ὀλισσιπόνα(Olissipóna) &#8216;올리시포나&#8217;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라틴어로 Ulixēs &#8216;울릭세스&#8217;라고 하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오디세우스(Ὀδυσσεύς <em>Odysseús</em>)와 관련된 지명이라는 설, &#8216;잔잔한 만(灣)&#8217; 또는 &#8216;안전한 항구&#8217;를 뜻하는 페니키아어 𐤏𐤋𐤉𐤑 𐤏𐤁𐤀 <em>ʕLYṢ ʕBʔ</em> (히브리 문자로 쓰면 עליץ עבא)에서 왔다는 설이 있었지만 민간 어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타르테수스어(<small>영어:</small> Tartessian) 등 지금은 사라진 옛 언어에서 온 이름일 수 있다.</p>
<p>속라틴어의 Olisipona에서 모음 사이의 p가 b로 유성음화하고 무강세 음절의 모음이 탈락한 형태는 *Lisbona 정도인데 끝부분이 라틴어 bonus &#8216;좋은&#8217;의 여성형 bona와 형태가 같다. 포르투갈어에서는 라틴어 bona가 bõa를 거쳐 boa가 되었으며 프랑스어에서는 bona가 bonne이 되었는데 *Lisbona도 비슷한 발달 과정을 거쳐 옛 포르투갈어 Lisbõa를 거쳐 현대 포르투갈어로는 Lisboa가 되었고 프랑스어로는 Lisbonne이 되었다. 그런데 에스파냐어에서는 bona가 buena가 되었으니 에스파냐어의 Lisboa는 같은 뿌리에서 자체적으로 발달한 형태가 아니라 포르투갈어 형태를 딴 것으로 설명해야 하겠다.</p>
<p>2000년 12월 18일에 열린 제37차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회의에서는 포르투갈어 Lisboa의 표기를 &#8216;리스보아&#8217;로 결정하였다. 물론 도시 이름으로는 관용 표기인 &#8216;리스본&#8217;을 계속 쓰되 포르투갈어 이름을 특별히 부를 일이 있을 때는 &#8216;리스보아&#8217;로 쓴다는 것이다.</p>
<p>한편 2003년 12월 17일에 열린 제55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 Xanana Gusmão (1946년 태생)의 표기를 &#8216;구스망, 샤나나&#8217;로 결정하였다. 이 이름은 포르투갈어 이름이다. 동티모르는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며 이듬해 인도네시아에 점령당하여 포르투갈어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2002년 독립하면서 현지 공통어인 테툼어와 함께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삼았다. 이런 역사로 인해 동티모르에서는 포르투갈어 인명이 많이 쓰인다. 포르투갈어로 Xanana Gusmão은 [<small>포:</small> ʃɐˈnɐnɐ ɡuʒˈmɐ̃ũ̯, <small>브:</small> ʃɐ̃ˈnɐ̃nɐ ɡuzˈmɐ̃ũ̯]으로 발음된다.</p>
<figure id="attachment_107154"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154" style="width: 489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154"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7617a5e.jpg" alt="" width="489" height="6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7617a5e.jpg 489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7617a5e-245x300.jpg 245w" sizes="(max-width: 489px) 100vw, 489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154" class="wp-caption-text">2002년 당시 동티모르 대통령이던 샤나나 구스망(<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resident_gusmao.jpg">Wikimedia</a>: Darwinek, Public Domain).</figcaption></figure>
<p>Gusmão은 포르투갈어 성으로 에스파냐 북부의 지명인 Guzmán [ɡuðˈman] &#8216;구스만&#8217;에서 왔다. 에스파냐어 성으로도 Guzmán [ɡuðˈman] &#8216;구스만&#8217; 또는 de Guzmán [de-ɣ̞uðˈman] &#8216;데구스만&#8217;이 쓰인다.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요나탄 더구스만(Jonathan de Guzmán)은 아버지가 한때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출신이라서 에스파냐어 성을 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 선수명 표기 용례에는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을 적용한 &#8216;요나탄 더휘즈만&#8217;으로 실렸지만 네덜란드어에서도 에스파냐어 발음을 흉내내어 [ˈjoːnatɑn də-ˈɡusmɑn]으로 발음하므로 이에 따라 &#8216;요나탄 더구스만&#8217;으로 쓰거나 아예 성에는 에스파냐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여 &#8216;요나탄 데구스만&#8217;으로 적는 것이 좋다.</p>
<p>Xanana는 미국의 로큰롤 그룹 &#8216;샤나나(Sha Na Na)&#8217;에서 딴 별명이다. 포르투갈어의 x는 영어의 sh처럼 무성 후치경 마찰음 [ʃ]를 나타낸다.</p>
<p>외래어 심의회에서 Lisboa &#8216;리스보아&#8217;와 Xanana Gusmão &#8216;구스망, 샤나나&#8217;를 표준 표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아직 외래어 표기법에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이 없었다. 2005년 12월 28일에야 네덜란드어, 러시아어와 함께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이 외래어 표기법에 추가되었다.</p>
<p>그런데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 제9항에서는 s를 무성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8216;스&#8217;로 적고 유성 자음 앞에서는 &#8216;즈&#8217;로 적도록 하고 있다. Lisboa의 b와 Gusmão의 m은 유성 자음이다. 그러니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면 Lisboa는 &#8216;리즈보아&#8217;로, Gusmão은 &#8216;구즈망&#8217;으로 적는 것이 원칙에 맞다. 이 규정은 철자 s가 유성 자음 앞에서 유성음 [ʒ] (포르투갈) 또는 [z] (브라질)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p>
<p>2005년 포르투갈어 표기법 제정과 함께 발간된 《외래어 표기 용례집: 포르투갈어·네덜란드어·러시아어》에서는 Lisboa의 표기를 예전 결정과 마찬가지로 &#8216;리스보아&#8217;로 적고 &#8216;포르투갈의 수도인 &#8216;리스본(Lisbon)&#8217;의 포르투갈어 이름&#8217;으로 풀이하였다. 이 용례집에서는 표기법을 적용하지 않고 관용을 인정한 경우에 Rio de Janeiro &#8216;*리우데자네이루&#8217;와 같이 한글 표기 앞에 별표(*) 표시를 하였지만(포르투갈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8216;히우지자네이루&#8217;) Lisboa &#8216;리스보아&#8217;에는 별표 표시가 없다. 더구나 이 용례집에는 앙골라 지명인 Nova Lisboa가 역시 별표 표시 없이 &#8216;노바리스보아&#8217;로 수록되었다. Nova Lisboa는 &#8216;새 리스본&#8217;을 뜻하며 1975년 앙골라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뒤 본래의 이름인 우암부(Huambu [ˈwɐ̃mbu])로 불린다. Xanana Gusmão은 이 용례집에 실리지 않았다.</p>
<p>그러니 포르투갈어 표기법이 새로 추가된 후에도 이에 따라 Lisboa와 Gusmão의 표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예전에 결정된 표기를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재심의 대상에서 단순 누락된 것이다.</p>
<p>그러면 이처럼 헷갈리게 왜 새 포르투갈어 표기법에서는 유성 자음 앞의 s를 &#8216;즈&#8217;로 적도록 한 것일까? 이 규칙을 꼭 지킬 필요가 있을까? 물론 유성 자음 앞에서 s가 유성음 [ʒ] (포르투갈) 또는 [z] (브라질)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지만 비슷한 현상은 에스파냐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나타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반영되지 않는다.</p>
<h2>에스파냐어</h2>
<p>에스파냐어에서 desde /ˈdesde/, rasgo /ˈrasgo/처럼 음절말 /s/ 뒤에 유성 폐쇄음 /b, d, ɡ/이 따를 경우에는 /s/는 유성음 [z]로 실현되고 /b, d, g/는 접근음 [β̞, ð̞, ɣ̞]로 실현된다. 즉 [ˈdezð̞e], [ˈrazɣ̞o]로 실현되는 것이다.</p>
<p>한편 isla /ˈisla/, mismo /ˈmismo/처럼 음절말 /s/ 뒤에 유성음 /l, ʎ, m, n, ɲ, ʝ, w/ 등이 따를 때는 /s/가 유성음 [z]로 실현되기도 하고 [s]가 유지되기도 하는데, 보통 에스파냐에서는 [ˈizla], [ˈmizmo]와 같이 [z]로 실현되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ˈisla], [ˈmismo]와 같이 [s]가 유지된다. 에스파냐에서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할 때는 [s]를 유지시켜 [ˈisla], [ˈmismo]로 발음한다.</p>
<p>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음절말 /s/가 유성 자음 앞에서 [z]로 발음되더라도 &#8216;스&#8217;로 표기를 통일하여 &#8216;데스데&#8217;, &#8216;라스고&#8217;, &#8216;이슬라&#8217;, &#8216;미스모&#8217; 등으로 적는다. <a href="https://pyogi.kkeutsori.com/%ed%98%84%ed%96%89-%ec%99%b8%eb%9e%98%ec%96%b4-%ed%91%9c%ea%b8%b0%eb%b2%95/%ed%91%9c%ea%b8%b0%ec%9d%98-%ec%9b%90%ec%b9%99/#i">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a> 가운데 하나는 &#8216;외래어의 1 음운은 원칙적으로 1 기호로 적는다&#8217;는 것인데 이에 따라 음소 /s/는 변이음 [z]로 발음되더라도 &#8216;스&#8217;로 표기를 통일한 것이다. 에스파냐어에서 [z]는 음소 /s/의 변이음으로만 나타나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 따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p>
<p>한편 Guzmán의 z는 에스파냐 발음에서 원래 무성 치 마찰음 /θ/를 나타내며 라틴아메리카 발음에서는 /s/를 나타내는데 이것도 s /s/와 실현 양상이 비슷하다. 즉 에스파냐에서는 [ɡuðˈman]으로 흔히 발음되고 또박또박 말할 때는 [ɡuθˈman]이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보통 유성음화 없이 [ɡusˈman]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8216;구스만&#8217;으로 적는 것이다.</p>
<h2>이탈리아어</h2>
<p>이탈리아어에서 sbaglio [ˈzbaʎʎo], Slovenia [zloˈvɛːnja], cosmo [ˈkɔzmo], svagato [zvaˈɡaːto] 등 유성 자음 앞의 /s/는 언제나 유성음화하여 [z]로 발음된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8216;스발리오&#8217;, &#8216;슬로베니아&#8217;, &#8216;코스모&#8217;, &#8216;스바가토&#8217;와 같이 이탈리아어의 s를 언제나 &#8216;ㅅ&#8217;, &#8216;스&#8217;로 적는다.</p>
<p>에스파냐어에서와 달리 이탈리아어에서는 /s/와 /z/가 각각 독립적인 음소인 것으로 보통 본다. 유성 자음 앞에서는 [z]만 쓰이고 무성 자음 앞에서는 [s]만 쓰이지만 모음 사이에서는 [s]와 [z]가 구별된다. 예를 들어 &#8216;보이다, 내놓다&#8217;를 뜻하는 presentare의 1인칭 단수 presento는 [preˈzɛnto], &#8216;예감하다&#8217;를 뜻하는 presentire의 1인칭 단수 presento는 [preˈsɛnto]로 발음하여 구별한다. 하지만 철자만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 [s]를 쓰고 언제 [z]를 쓰는지도 방언과 화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8216;집&#8217;을 뜻하는 casa는 전통적으로 [ˈkaːsa]로 발음되었지만 요즘에는 [ˈkaːza]로 흔히 발음된다. 또 이탈리아 남부의 발음에서는 아예 모음 사이의 s를 모두 [s]로 발음한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탈리아어의 s가 [s]인지 [z]인지 구분하지 않고 모두 &#8216;ㅅ&#8217;, &#8216;스&#8217;로 통일해서 적는 것이다.</p>
<p>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 민간 표기에서는 [z]로 발음되는 s를 &#8216;ㅈ&#8217;으로 적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식 이름인 lasagna [laˈzaɲɲa], risotto [<small>전통:</small> riˈsɔtto, <small>현대:</small> riˈzɔtto]는 각각 &#8216;라자냐&#8217;, &#8216;리조토/리조또&#8217;로 흔히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각각 &#8216;라사냐&#8217;, &#8216;리소토&#8217;로 적어야 한다. 사실 이탈리아어에서는 음식을 이를 때는 단수형 lasagna보다는 복수형 lasagne를 쓰므로 &#8216;라사녜&#8217;가 원어의 용법에 맞다(단수형 spaghetto 대신 복수형 spaghetti &#8216;스파게티&#8217;를 쓰는 것 참조). 하지만 미국 영어에서는 복수형 lasagne 외에도 단수형 lasagna가 음식 이름으로 흔히 쓰이게 되어 한국에서는 이에 따라 &#8216;라자냐&#8217;라는 형태로 널리 알려졌다. 아직 lasagne/lasagna의 표준 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8216;라사녜&#8217;가 너무 생소하다면 &#8216;라자냐&#8217;를 관용 표기로 인정해도 별 탈은 없을 듯하다.</p>
<h2>포르투갈어</h2>
<p>포르투갈어에서는 /s/와 /z/가 확실히 각각 독립적인 음소일 뿐만 아니라 같은 철자 s가 /s/와 /z/를 둘 다 나타내는 이탈리아어와 달리 /z/를 나타내는 철자 z가 따로 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포르투갈어의 z를 &#8216;ㅈ&#8217;, &#8216;즈&#8217;로 적도록 하고 있다. 다만 /s/와 /z/는 어두와 모음 사이에서만 구별되고 음절말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포르투갈 전역을 비롯하여 브라질 일부(리우데자네이루 주변)에서는 음절말의 /s, z/가 후치경음 [ʃ, ʒ]로 변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브라질 대부분에서 쓰는 발음에 따라 /s, z/인 것처럼 &#8216;스&#8217;, &#8216;즈&#8217;로만 적도록 한다. 어말의 /s, z/는 무성음 [ʃ] 또는 [s]로 발음되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어말의 -z를 &#8216;스&#8217;로 쓴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어 성인 Moniz는 -z가 무성음화하여 포르투갈에서 [muˈniʃ]로, 브라질에서 [mõˈnis]로 발음되므로 &#8216;모니스&#8217;로 적는다.</p>
<p>어중 음절말의 /s, z/는 뒤따르는 자음이 무성음이면 [ʃ] 또는 [s]로, 유성음이면 [ʒ] 또는 [z]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유성 자음 앞의 s를 &#8216;즈&#8217;로 적도록 하고 있으므로 Francisco [<small>포:</small> fɾɐ̃ˈsiʃku, <small>브:</small> fɾɐ̃ˈsisku] &#8216;프란시스쿠&#8217;, Gustavo [<small>포:</small> ɡuʃˈtavu, <small>브:</small> ɡusˈtavu] &#8216;구스타부&#8217;에서는 s를 &#8216;스&#8217;로 적지만 Lisboa [<small>포:</small> ɫiʒˈβ̞oɐ, <small>브:</small> ɫizˈboɐ], Gusmão [<small>포:</small> ɡuʒˈmɐ̃ũ̯, <small>브:</small> ɡuzˈmɐ̃ũ̯]에서는 s를 &#8216;즈&#8217;로 적어 각각 &#8216;리즈보아&#8217;, &#8216;구즈망&#8217;으로 쓰는 것이 원칙에는 맞다.</p>
<p>그런데 포르투갈어 표기법 제정과 함께 나온 용례집에서 브라질 지명 Venceslau Bráz [<small>포:</small> vẽsɨʒɫau̯-ˈbɾaʃ, <small>브:</small> vẽsezɫau̯-ˈbɾas]는 &#8216;벤세슬라우브라스&#8217;로 적는다. 또 2007년에 심의된 동티모르 인명에서 Estanislau [<small>포:</small> ʃtɐ̃niʒˈɫau̯, <small>브:</small> istɐ̃nizˈɫau̯]를 &#8216;*에스타니슬라우&#8217;로 적고 있다(어두 무강세 음절의 e를 표기법에 따른 &#8216;이&#8217; 대신 &#8216;에&#8217;로 적었기 때문에 관용 표기를 나타내는 별표를 쓴 듯하다). 포르투갈어 l은 유성음 /ɫ/을 나타내므로 표기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각각 &#8216;벤세즐라우브라스&#8217;, &#8216;이스타니즐라우&#8217;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s.ɫ/ 대신 /.sɫ/로 음절 구분을 달리하면 /s/가 더이상 음절말이 아니므로 무성음으로 유지되어 Venceslau [<small>포:</small> vẽsɨˈʃɫau̯, 브: vẽseˈsɫau̯], Estanislau [<small>포:</small> ʃtɐ̃niˈʃɫau̯, <small>브:</small> istɐ̃niˈsɫau̯]와 같이 발음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실제 관찰해보면 예상대로 어중 sl의 s는 보통 유성음 [ʒ] 또는 [z]로 발음되는 듯하다.</p>
<p>포르투갈어 표기법에서 s는 포르투갈어 음운 규칙에 따라 /z/으로 발음되는 모음 사이에서는 &#8216;ㅈ&#8217;으로 적고 어중 유성음 앞에서는 &#8216;즈&#8217;로 적도록 했다. 그래서 Lisboa, Gusmão, Venceslau, Estanislau 등은 기존 용례에서 어떻게 적었든 표기법대로 각각 &#8216;리즈보아&#8217;, &#8216;구즈망&#8217;, &#8216;벤세즐라우&#8217;, &#8216;이스타니즐라우&#8217;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는 가깝다. 이 외에도 표기 용례에는 Cosmo [<small>포:</small> ˈkɔʒmu, <small>브:</small> ˈkɔzmu] &#8216;코즈무&#8217;, Quaresma [<small>포:</small> kwɐˈɾɛʒmɐ, <small>브:</small> kwaˈɾɛzmɐ] &#8216;쿠아레즈마&#8217;와 같이 표기법을 그대로 따른 것들이 있다.</p>
<figure id="attachment_107155"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155" style="width: 397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155"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908bdec.jpg" alt="" width="397"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908bdec.jpg 397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2785908bdec-199x300.jpg 199w" sizes="(max-width: 397px) 100vw, 397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155" class="wp-caption-text">포르투갈 대표 축구 선수 히카르두 쿠아레즈마(<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icardo_Quaresma_(cropped).jpg">Wikimedia</a>: Fanny Schertzer, CC BY 3.0)</figcaption></figure>
<p>하지만 과연 실제 발음과 가깝다고 해서 유성 자음 앞의 s를 &#8216;즈&#8217;로 적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8216;리스보아&#8217;, &#8216;구스망&#8217;, &#8216;벤세슬라우&#8217;, &#8216;*에스타니슬라우&#8217; 등의 기존 용례에서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지킨 경우보다 많을 정도이니 자음 앞의 s는 &#8216;스&#8217;로 통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다른 언어의 경우도 살펴보자.</p>
<h2>프랑스어</h2>
<p>프랑스어도 /s/와 /z/가 독립적인 음소이고 철자 z가 /z/를 나타내며 모음 사이의 s는 보통 /z/를 나타낸다는 점이 포르투갈어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런데 어중 유성 장애음 /b, d, ɡ, v/ 앞의 s는 [z]로 발음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천천히 발음할 때는 [s]가 유지되며 사전에서는 보통 [s]를 기본 발음으로 제시한다. Gainsbourg [ɡɛ̃sbuʁ → ɡɛ̃zbuʁ] &#8216;갱스부르&#8217;, Strasbourg [stʁasbuʁ → stʁazbuʁ] &#8216;스트라스부르&#8217; 등의 기존 용례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의 s를 &#8216;스&#8217;로 적는다. 한편 Sisley [sislɛ] &#8216;시슬레&#8217;, orgasme [ɔʁɡasm] &#8216;오르가슴&#8217;처럼 유성 공명음 /l, m, n, ɲ, ʁ/ 앞의 s는 언제나 [s]로 발음하는 것을 표준 발음으로 친다(다만 방언에서는 [z]로 발음될 수 있다).</p>
<p>그러므로 프랑스어에서 어중 유성 자음 앞의 s /s/는 &#8216;스&#8217;로 표기를 통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리스본의 프랑스어 이름 Lisbonne [lisbɔn → liz-]도 &#8216;리스본&#8217;으로 표기된다.</p>
<h2>네덜란드어</h2>
<p>네덜란드어도 /s/와 /z/가 독립적인 음소이고 철자 z가 /z/를 나타내며 모음 사이의 s는 보통 /z/를 나타낸다. 하지만 네덜란드어에서 음절말 자음은 일단 무성음화했다가 뒤따르는 유성 폐쇄음에 의해 유성음이 될 수 있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어중 유성 폐쇄음 /b, d/ 앞의 s는 보통 [z]로 실현되지만 이 역시 천천히 발음할 때는 [s]가 유지된다.</p>
<p>그런데 현 네덜란드어 표기법에서는 철자 s가 /z/를 나타내는 경우에도 &#8216;ㅅ&#8217;, &#8216;스&#8217;로 적는다. 그러니 Doesburg [ˈdusbʏr<small>(ə)</small>x → ˈduzbʏr<small>(ə)</small>x] &#8216;두스뷔르흐&#8217;, Ruysdael [ˈrœy̯sdaːl → ˈrœy̯zdaːl] &#8216;라위스달&#8217; 등의 어중 자음 앞 s는 보통 [z]로 실현되더라도 &#8216;스&#8217;로 적는다. 한편 Friesland [ˈfrislɑnt] &#8216;프리슬란트&#8217;, Tasman [ˈtɑsmɑn] &#8216;타스만&#8217;에서처럼 유성 공명음 /l, m, n, r, ʋ/ 앞의 s는 언제나 [s]로 발음되며 Sven [ˈsfɛn] &#8216;스벤&#8217;, misgaan [ˈmɪsxaːn] &#8216;미스한&#8217;에서와 같이 s 뒤에 유성 마찰음 /v, ɣ/가 따르면 오히려 뒤쪽 자음이 /f, x/로 무성음화된다. 하지만 현 네덜란드어 표기법에서 앞뒤 자음에 의한 유성음화나 무성음화는 반영하지 않는다.</p>
<h2>영어</h2>
<p>영어도 /s/와 /z/가 독립적인 음소이고 철자 z가 /z/를 나타내며 모음 사이의 s는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z/를 나타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어에서 어중 유성 자음 앞의 s는 [z]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newspaper [ˈnjuːzˌpeɪpəɹ, ˈnjuːs-] &#8216;뉴즈페이퍼/뉴스페이퍼&#8217;에서와 같이 합성어에서 앞부분의 -s가 /z/일 때 뒷부분이 무성 자음으로 시작하더라도 천천히 발음할 때는 [z]가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이다.</p>
<p>영어에서는 newspaper 외에도 transgender [ˌtɹæˑnz⟮s⟯ˈʤendə<i>ɹ</i>] &#8216;트랜즈젠더/트랜스젠더&#8217;, Wesley [ˈwɛs⟮z⟯li] &#8216;웨슬리/웨즐리&#8217;, Glasgow [ˈɡlæˑz⟮s⟯ɡoʊ̯, ˈɡlæˑskoʊ̯] &#8216;글래즈고/글래스고/글래스코&#8217;, jasmine [ˈʤæz⟮s⟯mᵻn] &#8216;재즈민/재스민&#8217;, Chrysler [ˈkɹaɪ̯z⟮s⟯lə<i>ɹ</i>] &#8216;크라이즐러/크라이슬러&#8217; 등 [z]와 [s] 발음이 혼용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 실제 용례 또는 많이 쓰는 표기를 보면 &#8216;뉴스페이퍼&#8217;, &#8216;트랜스젠더&#8217;, &#8216;웨슬리&#8217;, &#8216;글래스고&#8217;, &#8216;재스민&#8217;, &#8216;크라이슬러&#8217; 등 어중 자음 앞 s를 &#8216;스&#8217;로 쓴다. 하지만 어중 자음 앞 s가 [z]로만 발음될 경우는 보통 Disney [ˈdɪzni] &#8216;디즈니&#8217;, lesbian [ˈlɛzbiən] &#8216;레즈비언&#8217;, Queensland [ˈkwiːnzlə⟮æ⟯nd] &#8216;퀸즐랜드&#8217;에서와 같이 &#8216;즈&#8217;로 쓰며 드물게 Carlsberg [ˈkɑː<i>ɹ</i>lzbɜː<i>ɹ</i>ɡ] &#8216;칼스버그&#8217;처럼 그냥 &#8216;스&#8217;를 쓰는 경우도 있다(덴마크 회사 Carlsberg의 덴마크어 발음은 [kʰɑːˀlsb̥æɐ̯ˀ] &#8216;카를스베르&#8217;이다).</p>
<p>이처럼 영어에서 어중 유성 자음 앞 s의 표기는 까다로운 문제이지만 [z]로만 발음되고 합성어라는 인식이 없을 때에만 &#8216;즈&#8217;를 쓰고 나머지 경우에는 &#8216;스&#8217;를 쓰는 것이 어떨까 한다. &#8216;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8217;에 따라 영어에서 news [ˈnjuːz] &#8216;뉴스&#8217; 등 어말의 -s는 [z]로 발음되더라도 &#8216;스&#8217;로 적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p>
<h2>현대 그리스어</h2>
<p>그리스어에서 /s/와 /z/는 독립적인 음소이며 그리스 문자에는 기본적으로 /s/를 나타내는 &#8216;시그마&#8217; σ(s)와 /z/를 나타내는 &#8216;제타&#8217; ζ(z)가 따로 있다. 그런데 σ s는 보통 유성 자음 /v, ð, ɣ; m, n, r/ 앞에서 [z]로 유성음화한다(다만 /l/ 앞에서는 [s]로 유지된다).</p>
<p>따라서 Λέσβος(Lésvos) [ˈlezvos] &#8216;레스보스&#8217;, Πελασγός(Pelasgós) [pelazˈɣos] &#8216;펠라스고스&#8217;, κόσμος(kósmos) [ˈkozmos] &#8216;코스모스&#8217;, Ισραήλ(Israíl) [izraˈil] &#8216;이스라일&#8217; 등에서는 σ(s)가 [z]로 발음된다. 하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8216;스&#8217;로 쓴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그리스어 표기 규정이 따로 없지만 &#8216;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8217;에 포함된 <a href="https://pyogi.kkeutsori.com/%ed%98%84%ed%96%89-%ec%99%b8%eb%9e%98%ec%96%b4-%ed%91%9c%ea%b8%b0%eb%b2%95/%ea%b8%b0%ed%83%80-%ec%96%b8%ec%96%b4-%eb%9d%bc%ed%8b%b4%ec%96%b4-%ea%b7%b8%eb%a6%ac%ec%8a%a4%ec%96%b4/#i-3">그리스어 표기 원칙</a>을 비롯하여 정식으로 고시된 적이 없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82%A4%EB%B0%B1%EA%B3%BC:%EC%99%B8%EB%9E%98%EC%96%B4_%ED%91%9C%EA%B8%B0%EB%B2%95/%EA%B7%B8%EB%A6%AC%EC%8A%A4%EC%96%B4_%EC%8B%9C%EC%95%88">그리스어 표기 시안</a>에도 σ(s)를 경우에 따라 &#8216;즈&#8217;로 적는다는 규정은 없다. 기존 용례에도 현대 그리스 인명 가운데 Κοσμίδης(Kosmídis) [kozˈmiðis]를 &#8216;코스미디스&#8217;로 적은 것이 있다.</p>
<h2>결론</h2>
<p>이와 같이 /s/와 별도로 /z/를 나타내는 글자가 따로 없는 에스파냐어와 이탈리아어는 물론 /z/를 나타내는 글자가 따로 있는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현대 그리스어에서도 유성 자음 앞에서 [z]로 실현되는 s는 &#8216;스&#8217;로 적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포르투갈어의 s가 유성 자음 앞에서 [ʒ] 또는 [z]로 발음되더라도 &#8216;스&#8217;로 통일해서 적는 것으로 표기 규정을 바꾸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즉 Lisboa, Gusmão, Venceslau, Estanislau, Cosmo, Quaresma는 각각 &#8216;리스보아&#8217;, &#8216;구스망&#8217;, &#8216;벤세슬라우&#8217;, &#8216;이스타니슬라우&#8217;, &#8216;코스무&#8217;, &#8216;쿠아레스마&#8217;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자는 것이다.</p>
<p>포르투갈어에서 유성 자음 앞의 s를 &#8216;즈&#8217;로 적는다는 규칙처럼 외래어 표기 규정 가운데 표기 용례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용례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 전에 그 규정이 과연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다른 언어의 표기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래서 잘 지켜지지 않으면서 계속 존속시킬 근거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규정은 과감히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이 규정에 따른 표기와 실제 쓰는 표기의 간극을 좁히는 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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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지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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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Jan 2026 10:42:20 +0000</pubDate>
				<category><![CDATA[미분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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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국 지명 가운데는 아나폴리스(Annapolis),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와 같이 &#8216;-폴리스(-polis)&#8217;로 끝나는 것이 몇 개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8216;도시&#8217;를 뜻하는 πόλις(pólis) &#8216;폴리스&#8217;에서 나온 요소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폴리스는 보통 독립된 정치체 즉 도시 국가였는데 &#8216;열 개의 도시&#8217;를 뜻하는 데카폴리스(Δεκάπολις Dekápolis), &#8216;열두 개의 도시&#8217;를 뜻하는 도데카폴리스(Δωδεκάπολις Dōdekápolis) 등이 폴리스 연맹이나 여러 폴리스를 아우르는 지역 이름으로 쓰이기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a href="https://www.facebook.com/kkeutsori/posts/pfbid02zmcvpdmVo6FeFADcwTLMe1yA5joeoFEzCHF2ZWniDRFcX2NmybWUU3U2MjX4XGy1l">여기</a>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p>
<p>미국 지명 가운데는 아나폴리스(Annapolis),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와 같이 &#8216;-폴리스(-polis)&#8217;로 끝나는 것이 몇 개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8216;도시&#8217;를 뜻하는 πόλις(pólis) &#8216;폴리스&#8217;에서 나온 요소이다.</p>
<p>고대 그리스인들의 폴리스는 보통 독립된 정치체 즉 도시 국가였는데 &#8216;열 개의 도시&#8217;를 뜻하는 데카폴리스(Δεκάπολις Dekápolis), &#8216;열두 개의 도시&#8217;를 뜻하는 도데카폴리스(Δωδεκάπολις Dōdekápolis) 등이 폴리스 연맹이나 여러 폴리스를 아우르는 지역 이름으로 쓰이기는 했어도 폴리스 이름 자체에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일은 드물었다.</p>
<p>하지만 오늘날 리비아와 레바논에는 &#8216;세 개의 도시&#8217;를 뜻하는 트리폴리스(Τρίπολις Trípolis)에서 이름이 유래하는 도시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어 형태인 트리폴리(Tripoli)로 흔히 알려져 있고 문어체 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طرابلس Ṭarābulus)라고 한다. 원래 세 개의 도시가 합쳐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오늘날 그리스 본토에도 현대 그리스어 민중어 형태로 트리폴리(Τρίπολη Trípoli)라고 부르는 도시가 있는데 고대부터 이어지는 이름은 아니고 원래의 이름이 변형되어 재해석된 것으로 보인다.</p>
<p>고대 그리스인들이 주변 이민족의 도시를 부를 때는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태양신 라(Ra)와 창조신 아툼(Atum)을 융합하여 섬기는 신전이 있던 이집트 도시는 &#8216;태양의 도시&#8217;라는 뜻으로 헬리우폴리스(Ἡλίου πόλις Hēlíou pólis)라고 불렀다. 라틴어 형태는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이다. 원래의 고대 이집트어 이름은 Jwnw였는데 모음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은 알기 어렵지만 *ʔa:wnu &#8216;아우누&#8217; 정도로 재구하기도 한다. 후대 콥트어로는 ⲱⲛ Ōn &#8216;온&#8217;이라고 불렀다.</p>
<p>오늘날의 이란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의 도시 파르사(Pārsa)는 페르세폴리스(Περσέπολις Persépolis)라고 불렀다. 라틴어 형태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이다. 고대 페르시아어 Pārs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8216;페르시아&#8217;를 뜻하는 Περσίς(Persís) &#8216;페르시스&#8217;, &#8216;페르시아인&#8217;을 뜻하는 Πέρσης(Pérsēs) &#8216;페르세스&#8217;의 어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8216;-폴리스&#8217;를 붙여서 도시를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나타냈다.</p>
<p>고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와 흑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세운 도시에도 &#8216;-폴리스&#8217;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반도에는 &#8216;새 도시&#8217;라는 뜻의 네아폴리스(고대 그리스어: Νεάπολις Neápolis, 라틴어: Neapolis)를 세웠다. 이는 오늘날 이탈리아어 나폴리(Napoli)로 이어진다. 흑해의 크림반도에는 &#8216;모으다&#8217;를 뜻하는 συμφέρω(symphérō) &#8216;심페로&#8217;와 &#8216;-폴리스&#8217;를 결합한 심페루폴리스(Συμφερούπολις Sympheroúpolis)를 세웠다. 라틴어로는 심페로폴리스(Sympheropolis)이다. 1784년에 러시아 제국이 크림 한국을 정복하고 세운 도시에 붙인 이름인 심페로폴(러시아어: Симферополь Simferopol&#8217;, 우크라이나어 Сімферополь Simferopol&#8217;)은 여기서 땄지만 고대의 심페로폴리스와는 장소가 다르다.</p>
<p>&#8216;아름다운 도시&#8217;를 뜻하는 칼리폴리스(고대 그리스어: Καλλίπολις Kallípolis, 라틴어: Callipolis)는 여러 도시의 이름으로 쓰였는데 여기서 나온 이름으로 오늘날의 이탈리아의 갈리폴리(Gallipoli)와 튀르키예의 겔리볼루(Gelibolu)를 꼽을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여 군사 작전을 벌인 곳으로 유명한 갈리폴리는 튀르키예의 겔리볼루를 이탈리아어식으로 부른 당시의 이름이다.</p>
<p>고대 그리스어로 &#8216;도시 주변&#8217;을 뜻하는 이름인 암피폴리스(Ἀμφίπολις Amphipolis)는 오늘날 그리스에 속하지만 원래는 아테네인들이 에게해 북쪽 기슭인 트라키아 지방에 식민지로 건설한 도시였다. 현대 그리스어 민중어 형태는 암피폴리(Αμφίπολη Amfípoli)이다. 현대 그리스어 지명은 고대 그리스어를 흉내낸 이른바 순수어(Καθαρεύουσα Katharévousa &#8216;카타레부사&#8217;) 형태와 민중어(Δημοτική Dimotikí) 형태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1976년에 민중어가 순수어를 대신하여 그리스의 공용어로 정해진 이후 그리스 내부에서는 민중어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p>
<p>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Пловдив Plovdiv)는 고대에 고대 그리스어로 필리푸폴리스(Φιλιππούπολις Philippoúpolis), 라틴어로 필리포폴리스(Philippopolis)라고 불렀는데 보통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오늘날의 불가리아에 알렉산드루폴리스(Ἀλεξανδρούπολις Alexandroúpolis) 또는 알렉산드로폴리스(Alexandraopolis)라는 도시를 세웠다고 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그리스령 트라키아 지방에 동명의 도시가 있는데 이는 1920년에 당시 그리스 왕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현대 그리스어 민중어 형태는 알렉산드루폴리(Αλεξανδρούπολη Alexandroúpoli)이다.</p>
<p>그리스를 정복한 고대 로마에서도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간 그리스어식 이름을 붙이는 일이 많았다. 나중에 로마 제국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로 즉위하게 되는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 한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기원전 29년에 그리스 서부의 악티움 근처에 &#8216;승리의 도시&#8217;라는 뜻으로 니코폴리스(고대 그리스어: Νικόπολις Nikópolis, 라틴어: Nicopolis)를 세웠다. 2세기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트라키아 지방의 오레스티아스(고대 그리스어: Ὀρεστιάς Orestiás, 라틴어: Orestias)를 다시 세우면서 &#8216;하드리아누스의 도시&#8217;라는 뜻으로 하드리아누폴리스(고대 그리스어: Ἁδριανούπολις Hadrianoúpolis) 또는 하드리아노폴리스(라틴어: Hadrianopoli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오늘날의 튀르키예 에디르네(Edirne)에 해당된다.</p>
<p>마찬가지로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로마 제국의 새 수도가 된 보스포루스 해협의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 Byzántion)은 &#8216;콘스탄티누스의 도시&#8217;라는 뜻으로 콘스탄티누폴리스(고대 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Kōnstantinoúpolis) 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틴어: Constantinopolis)로 이름이 바뀌었다. 동로마 제국, 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지만 1923년 튀르키예의 건국과 함께 앙카라에 수도 지위를 잃었고 1930년에는 공식적으로 튀르키예어 이름인 이스탄불(İstanbul)로 이름이 바뀌었다.</p>
<p>이스탄불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8216;도시에&#8217;를 뜻한 중세 그리스어 στην Πόλιν(stin Pólin) &#8216;스틴 폴린&#8217; 또는 στην Πόλι(stin Póli) &#8216;스틴 폴리&#8217; 같이 &#8216;폴리스&#8217;를 포함한 말에서 나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대 그리스어에서 /n/ 뒤의 /p/는 [b]로 유성음화하는데 이 현상은 단어 경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니 실제 발음은 &#8216;스틴볼린&#8217;, &#8216;스틴볼리&#8217;에 더 가까웠을지 모른다. İstanbul의 첫머리에 붙은 모음은 튀르크어에서 어두 자음군을 발음하기 쉽게 하기 위해 삽입된 것으로 프랑스어 station [stasjɔ̃] &#8216;스타시옹&#8217;을 튀르키예어에서 istasyon &#8216;이스타시온&#8217;으로 받아들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p>
<p>근대에 들어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의 작명법을 흉내내어 지명에 &#8216;-폴리스&#8217;를 붙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러시아 제국은 크림 한국을 정복한 땅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대 지명을 딴 심페로폴 외에 &#8216;꿀의 도시&#8217;를 뜻하는 멜리토폴리스(Μελιτόπολις Melitópolis)와 &#8216;존경받는 도시&#8217;를 뜻하는 세바스토폴리스(Σεβαστόπολις Sebastópolis)에서 각각 따온 멜리토폴(러시아어: Мелитополь Melitopol&#8217;, 우크라이나어: Мелітополь Melitopol&#8217;), 세바스토폴(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Севастополь Sevastopol&#8217;) 등 그리스어식 이름을 새로 지어 붙이기도 했다.</p>
<p>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섬에 있던 프랑스의 식민지 생도맹그(Saint-Domingue [sɛ̃-dɔmɛ̃ɡ]), 즉 오늘날의 아이티에는 1764년에 독일계 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이탈리아계 독일인 후원자 봄바르다(Bombarda [bɔmˈbaʁda])의 이름을 따서 봉바르도폴리스(프랑스어: Bombardopolis [bɔ̃baʁdɔpɔlis])라고 부른 도시가 있다.</p>
<p>영국은 1710년에 오늘날의 캐나다에 속하는 노바스코샤의 프랑스 정착지 포르루아얄(Port Royal [pɔʁ-ʁwajal])을 점령한 후 Annapolis Royal [əˈnæp<i>ə</i>lᵻs-ˈɹɔɪ̯<i>ə</i>l] &#8216;*아나폴리스로열&#8217;이라고 개명했다. 당시 영국의 앤(Anne [ˈæn]) 여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에 앞서 1694년에는 오늘날의 미국에 있던 영국의 정착지 앤어런들스타운(Anne Arundel&#8217;s Towne [ˈæn-əˈɹʌnd<small>(ə)</small>lz-ˈtaʊ̯n])이 메릴랜드 식민지의 새 수도로 정해지면서 당시 왕위에 오르기 전이었던 앤 공주의 이름을 따서 아나폴리스(Annapolis)로 이름이 바뀌었다.</p>
<p>미국이 독립한 후 인디애나주에서 원주민 델라웨어족과 마이애미족을 몰아내고 새 주도를 건설하면서 1821년에 &#8216;인디언의 도시&#8217;라는 뜻으로 Indianapolis [ɪndiəˈnæp<i>ə</i>lᵻs] &#8216;*인디애나폴리스&#8217;라는 이름을 붙였다. 1852년에는 미네소타주에서 원주민 다코타족을 쫓아낸 자리에 세운 도시에 Minnehaha [ˌmɪnᵻˈhɑːhɑː] &#8216;미네하하&#8217;의 첫부분을 따서 Minneapolis [ˌmɪniˈæp<i>ə</i>lᵻs] &#8216;*미니애폴리스&#8217;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코타어로 mní &#8216;므니&#8217;는 &#8216;물&#8217;을 뜻하며 미네하하는 다코타어로 &#8216;급물살&#8217;을 뜻하는 mníȟaȟa &#8216;므니하하&#8217;, 미네소타(Minnesota [ˌmɪnᵻˈsoʊ̯tə])는 다코타어로 &#8216;흐린 물&#8217;을 뜻하는 mní šóta &#8216;므니쇼타&#8217;에서 나왔다.</p>
<p>Annapolis [əˈnæp<i>ə</i>lᵻs], Indianapolis [ˌɪndiəˈnæp<i>ə</i>lᵻs], Minneapolis [ˌmɪniˈæp<i>ə</i>lᵻs]를 영어 발음에 따라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적으면 각각 &#8216;어내펄리스&#8217;, &#8216;인디어내펄리스&#8217;, &#8216;미니애펄리스&#8217;이다. -polis가 들어간 말은 그 바로 앞의 음절에 강세가 오기 때문에 영어에서는 강세가 없이 [pəlᵻs]로 약화되어 발음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쓰는 표준 표기는 각각 &#8216;*아나폴리스&#8217;, &#8216;*인디애나폴리스&#8217;, &#8216;*미니애폴리스&#8217;이다.<br />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도 이와 같이 &#8216;-폴리스&#8217;의 앞 음절에 강세가 주어졌다. 라틴어에서는 꼭 고대 그리스어의 강세 위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음절 구조에 따라 강세 위치가 정해지는데 마침 -polis에서는 o가 짧은 모음이라서 규칙적으로 그 바로 앞의 음절에 강세가 주어지게 되었다.</p>
<p>프랑스어에서는 강세가 없는 -polis의 모음이 아예 탈락하여 -ple [pl]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라틴어 Constantinopolis &#8216;콘스탄티노폴리스&#8217;는 프랑스어에서 Constantinople [kɔ̃stɑ̃tinɔpl] &#8216;콩스탕티노플&#8217;이 되었다. 영어에서도 프랑스어 형태를 그대로 받아들여 Constantinople [ˌkɒnstæntᵻˈnoʊ̯p<small>(ə)</small>l] &#8216;콘스탠티노플&#8217;로 발음한다. 이탈리아 나폴리를 부르는 이름으로 프랑스어에서는 라틴어 Neapolis &#8216;네아폴리스&#8217;에서 나온 Naples [napl] &#8216;나플&#8217;을, 영어에서는 Naples [ˈneɪ̯p<small>(ə)</small>lz] &#8216;네이플스&#8217;를 쓰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독일어에서도 마찬가지로 -polis가 -pol을 거쳐 -pel [pl̩]로 변하여 Konstantinopel [kɔnstantiˈnoːpl̩] &#8216;콘스탄티노펠&#8217;, Neapel [neˈ(ʔ)aːpl̩] &#8216;네아펠&#8217;과 같이 쓴다. 오늘날의 스웨덴 남부에는 Kristianopel &#8216;크리스티아노펠&#8217;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원래 덴마크 영토였을 때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4., 1577~1658)이 스웨덴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지은 요새로 왕세자 크리스티안(Christian)의 이름을 따서 독일어식 -pel을 붙인 이름이다.</p>
<p>그래서 영어에서는 라틴어 형태를 직접 가져온 -polis도 강세가 없이 [pəlᵻs]로 약화시킨다. 그러다 보니 앞에 들어가는 말의 강세 위치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Anne [ˈænə] &#8216;앤&#8217;, Anna [ˈænə] &#8216;애나&#8217;에서는 첫째 음절에 강세가 오지만 Annapolis [əˈnæp<i>ə</i>lᵻs] &#8216;어내펄리스&#8217;에서는 둘째 음절로 강세가 옮긴다. Indiana [ˌɪndiˈænə] &#8216;인디애나&#8217;에서는 첫째 a에 강세가 오지만 Indianapolis [ˌɪndiəˈnæp<i>ə</i>lᵻs] &#8216;인디어내펄리스&#8217;에서는 둘째 a로 강세가 옮긴다.</p>
<p>영어 접미사 가운데는 바로 앞 음절에 강세를 주게 만드는 것들이 있어서 이처럼 앞에 들어가는 말의 강세 위치가 바뀌고 그에 따라 모음 음가도 달라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parabola [pəˈɹæb<i>ə</i>lə] &#8216;퍼래벌라&#8217;, parameter [pəˈɹæmᵻtə<i>ɹ</i>] &#8216;퍼래미터&#8217;에 접미사 하나가 붙으면 parabolic [ˌpæɹəˈbɒlɪk] &#8216;패러볼릭&#8217;, parametric [ˌpæɹəˈmɛtɹɪk] &#8216;패러메트릭&#8217;과 같이 발음이 달라지는 식이다.</p>
<p>한국어 화자 입장에서는 이처럼 같은 형태소가 접미사에 따라서 발음이 달라지는 것을 한글 표기에도 반영하는 것이 어색하다. real [ˈɹiː<i>ə</i>l]을 &#8216;리얼&#8217;로 쓰고 irony [ˈaɪ̯ɹ<i>ə</i>ni]를 &#8216;아이러니&#8217;로 쓰니 reality는 &#8216;리얼리티&#8217;, ironical은 &#8216;아이러니컬&#8217;로 쓰는 것이 직관적이다(&#8216;리얼리티&#8217;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인정하는 표준 표기이다). 하지만 영어 발음을 따른다면 reality [ɹiˈælə⟮ᵻ⟯ti] &#8216;리앨리티&#8217;, ironical [aɪ̯ˈɹɒnɪk<small>(ə)</small>l] &#8216;아이로니컬&#8217;로 적어야 한다.</p>
<p>이런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한 방법은 영어의 무강세 모음이 [ə]로 약화되더라도 본래의 발음에 따라 적는 것이다. a는 [æ] &#8216;애&#8217;, [eɪ̯] &#8216;에이&#8217;, [ɑː] &#8216;아&#8217; 등 다양한 발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a [ə]의 본 발음을 고르기는 쉽지 않지만 o는 보통 [ɒ] &#8216;오&#8217;, [oʊ̯] &#8216;오&#8217; 등으로 발음되고 드물게 [ʌ] &#8216;어&#8217;로도 발음된다. 그런데 o가 [ʌ]로 발음되는 것은 color/colour [ˈkʌləɹ] &#8216;컬러&#8217; 같은 일부 예를 제외하면 보통 om, on 조합에 한정되므로 다른 자음 앞에서는 o [ə]를 &#8216;오&#8217;로 적는 것이 무난하다.</p>
<p>propose [pɹəˈpoʊ̯z]는 1993년 1월 19일 제5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표준 표기가 &#8216;프러포즈&#8217;로 심의되었는데 proposition [ˌpɹɒpəˈzɪʃ<small>(ə)</small>n]은 규칙에 따르면 &#8216;프로퍼지션&#8217;으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o [ə]를 &#8216;오&#8217;로 적기로 하면 각각 &#8216;프로포즈&#8217;, &#8216;프로포지션&#8217;으로 표기가 비슷하게 된다.</p>
<p>polis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ˈpɒlᵻs] &#8216;폴리스&#8217;로 발음된다. Maryland [ˈmɛə̯ɹᵻlənd] &#8216;메릴랜드&#8217;에서 볼 수 있듯이 지명의 요소로 쓰이는 -land는 [lənd]로 발음되더라도 단독으로 쓰일 때의 [ˈlænd]에 따라서 &#8216;-랜드&#8217;로 적는 것처럼 지명에 등장하는 -polis도 &#8216;-폴리스&#8217;로 표기를 통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규칙으로 삼으면 Minneapolis를 &#8216;미니애폴리스&#8217;로 적는 것은 규칙 표기가 된다.</p>
<p>영어 지명 Annapolis를 &#8216;아나폴리스&#8217;로 적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프랑스어 발음 [anapɔlis]에 따른 표기는 &#8216;아나폴리스&#8217;이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의 아나폴리스로열 주변에는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어 화자가 남아있고 프랑스어는 영어와 함께 캐나다 국가 공용어로 쓰이니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적을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국 메릴랜드주의 아나폴리스가 이보다 오래된 지명이라는 점은 있다.</p>
<p>&#8216;*리앨리티&#8217;에서 볼 수 있듯이 앞 음절에 강세를 주게 만드는 접미사 때문에 익숙한 형태소의 마지막 모음이 강세를 받는 [æ] &#8216;애&#8217;로 변하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drama [ˈdɹɑːmə]는 &#8216;드라마&#8217;로 적는데 dramatic [dɹəˈmætɪk]은 &#8216;드러매틱&#8217;으로 적는 것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8216;리얼리티&#8217;에서처럼 본말의 형태를 간직한 불규칙적인 표기 &#8216;드라마틱&#8217;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정하는 표준 표기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rotameter [ˌɹoʊ̯ˈtæmᵻtə<i>ɹ</i>]를 &#8216;로태미터&#8217; 대신 &#8216;로터미터&#8217;로 쓴 표제어도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원어 발음을 잘못 파악한 표기 같다.</p>
<p>그래도 &#8216;미니애폴리스&#8217;에서는 발음에 따라 -polis 앞의 [æ]를 &#8216;애&#8217;로 적으니 아나폴리스와 인디애나폴리스도 실제 발음에 따라 각각 &#8216;어내폴리스&#8217;, &#8216;인디어내폴리스&#8217;로 표기를 고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p>
<p>미국에는 이밖에도 Cannon [ˈkænən] &#8216;캐넌&#8217; 직물 회사의 이름을 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Kannapolis [kəˈnæp<i>ə</i>lᵻs] &#8216;커내폴리스&#8217;, &#8216;일리노이&#8217;의 이름을 딴 일리노이주의 Illiopolis [ˌɪliˈɒp<i>ə</i>lᵻs] &#8216;일리오폴리스&#8217;, 현지 주요 광물인 구리의 영어 이름에서 딴 캘리포니아주의 Copperopolis [ˌkɒpəˈɹɒp<i>ə</i>lᵻs] &#8216;코퍼로폴리스&#8217; 등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지명이 꽤 있다. &#8216;아나폴리스&#8217;, &#8216;인디애나폴리스&#8217; 등은 관용 표기로 삼는다고 해도 다른 지명도가 낮은 이름들은 실제 발음에 따라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p>
<p>오늘날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지명이 가장 많은 곳은 단연 브라질일 것이다. 브라질에서 인구가 10만 이상인 도시 가운데 여덟 개 이름에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간다. 사람 이름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 플로리아노폴리스(Florianópolis)는 1891년부터 1894년까지 브라질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플로리아누 페이쇼투(Floriano Peixoto, 1839~1895)의 이름을 땄다. 닐로폴리스(Nilópolis)는 브라질 제7대 대통령 닐루 페사냐(Nilo Peçanha, 1867~1924), 페트로폴리스(Petrópolis)는 브라질 제2대 황제 페드루 2세(Pedro II, 1825~1891), 테레조폴리스(Teresópolis)는 페드루 2세의 황후 테레자 크리스치나(Teresa Cristina, 1822~1889), 혼도노폴리스(Rondonópolis)는 군인이자 탐험가 칸지두 혼동(Cândido Rondon, 1865~1958), 에우나폴리스(Eunápolis)는 정치가 에우나피우 지 케이로스(Eunápio de Queirós, 1905~1998)의 이름을 각각 땄다.</p>
<p>종교적인 의미로 붙인 이름도 있다. 아나폴리스(Anápolis)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녀 안나의 이름을 땄으며 지비노폴리스(Divinópolis)는 신성한 성령(Divino Espírito Santo)이란 호칭에 들어가는 &#8216;신성한&#8217;을 뜻하는 Divino &#8216;지비누&#8217;에서 이름을 땄다.</p>
<p>그 외에도 특히 20세기에야 본격적으로 도시 개척이 시작된 브라질 중부 내륙 지역에는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지명이 수두룩하다. &#8216;예수의 도시&#8217;를 뜻하는 제주폴리스(Jesúpolis), 무퉁(mutum)이라는 현지 새의 이름을 딴 무투노폴리스(Mutunópolis), 야자수를 뜻하는 palmeira &#8216;파우메이라&#8217;에서 이름을 딴 파우메이로폴리스(Palmeirópolis), 에스파냐 출신 주민들이 도시를 둘러싸는 산맥을 피레네산맥이라고 부른 데서 이름을 딴 피레노폴리스(Pirenópolis) 등 흥미로운 이름이 많다.</p>
<p>이런 이름은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지어졌는데 브라질 상류층에서 고전 그리스·로마 문화를 중시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브라질에서 아가멤농(Agamemnon), 에르쿨리스(Hércules) 같은 그리스어식 이름이 흔한 것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p>
<p>예로부터 &#8216;-폴리스&#8217;가 들어가는 지명은 새로 건설한 도시나 정복한 도시의 새 이름으로 흔히 쓰였는데 그 과정에서 옛 주민이 원래 쓰던 이름은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오늘날의 미니애폴리스를 원주민인 다코타족은 &#8216;여러 호수의 고을&#8217;이라는 뜻으로 Bde Óta Othúŋwe &#8216;브데오타오퉁웨&#8217;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미니애폴리스라는 이름의 첫 요소도 원주민인 다코타족의 언어에서 따온 것이니 그나마 그 장소의 역사가 이름에 남아있는 예라고 볼 수 있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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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다이바 부인과 고디바 초콜릿</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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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Aug 2017 07:49:1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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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고디바&#8217;라는 벨기에 고급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 그 상징인 말을 탄 나체 여인 그림은 전설의 고다이바 부인(영어: Lady Godiva)을 나타낸다.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조제프 드랍스(프랑스어: Joseph Draps [ʒozɛf dʁaps])가 설립한 드랍스 초콜릿 회사가 1956년 브뤼셀에 첫 매장을 열면서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에서 이름을 따서 상호를 &#8216;고디바&#8217;로 바꿨다. 프랑스어로는 Godiva를 [ɡɔdiva] &#8216;고디바&#8217;라고 발음한다. 전설에 따르면 고다이바 부인은 오늘날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span style="font-size:0.9em; color:#5C78C6;">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span><br>
<span style="color:#C5D2DB">—</span>
<figure id="attachment_107247"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47" style="width: 6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47"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d782a435.jpg" alt="" width="600" height="483"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d782a435.jp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d782a435-300x242.jp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47" class="wp-caption-text">존 콜리어(John Collier)의 《고다이바 부인》. 1897년경. 허버트 미술관 소장.</figcaption></figure>
<p>&#8216;고디바&#8217;라는 벨기에 고급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 그 상징인 말을 탄 나체 여인 그림은 전설의 고다이바 부인(영어: Lady Godiva)을 나타낸다.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조제프 드랍스(프랑스어: Joseph Draps [ʒozɛf dʁaps])가 설립한 드랍스 초콜릿 회사가 1956년 브뤼셀에 첫 매장을 열면서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에서 이름을 따서 상호를 &#8216;고디바&#8217;로 바꿨다. 프랑스어로는 Godiva를 [ɡɔdiva] &#8216;고디바&#8217;라고 발음한다.</p>
<figure id="attachment_10724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48" style="width: 6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48"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eac259df.png" alt="" width="600" height="428"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eac259df.pn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eac259df-300x214.pn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48" class="wp-caption-text">고디바 초콜릿 로고.</figcaption></figure>
<p>전설에 따르면 고다이바 부인은 오늘날 영국의 일부인 잉글랜드 코번트리에 살았다. 그는 영주인 남편이 책정한 터무니 없이 높은 세금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남편에게 여러 차례 애원했다. 결국 남편은 고다이바 부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길거리에 나가면 이를 들어주겠다고 답했다. 물론 설마 부인이 이를 따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성의 주민들에게 실내에 머물고 창을 가리라고 명한 뒤 정말로 나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의 길거리를 지나가 백성들을 향한 애정을 증명했다고 한다.</p>
<p>고다이바 부인이든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이든 Godiva의 프랑스어 발음은 [ɡɔdiva] &#8216;고디바&#8217;이지만 영어로는 /ɡəˈdaɪ̯və/ &#8216;거다이바&#8217;로 발음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8216;고다이바&#8217;가 전설의 귀족 부인을 뜻하는 표제어로 나온다. [ə]로 발음되는 o를 철자에 이끌려 &#8216;오&#8217;로 적는 관습을 인정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에서 [ə]로 발음되는 어말의 a는 &#8216;아&#8217;로 적도록 하고 있지만 다른 위치에서는 철자에 상관 없이 &#8216;어&#8217;로 적는 것이 원칙이니 엄밀히 말하면 &#8216;거다이바&#8217;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ə]로 발음되는 o를 &#8216;오&#8217;로 적는 경우가 매우 많다. chocolate도 영어 발음 /ˈʧɒk<small>(ə)</small>lᵻt/을 따르면 &#8216;초컬릿&#8217;으로 써야 하지만 &#8216;초콜릿&#8217;이 표준 표기로 인정되었다. &#8216;초코렛&#8217;, &#8216;초콜렛&#8217; 등 &#8216;에&#8217;로 발음하는 관습이 있는 마지막 모음은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8216;이&#8217;로 적으면서도 가운데 음절의 모음만은 &#8216;오&#8217;로 적는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한 것이다.</p>
<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2025. 12. 30. 추가 내용: 요즘 생각은 영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음절말의 철자 o가 [ə]를 나타내는 경우 &#8216;오&#8217;로 적도록 표기 방식을 고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 Godiva [ɡəˈdaɪ̯və]도 문제 없이 &#8216;고다이바&#8217;로 적을 수 있다.</p>
<p>나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의 길거리에 나섰다는 것은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11세기 잉글랜드 머시아 백작 레프릭(Leofric)의 아내였던 실존 인물이다. 머시아(영어: Mercia /ˈmɜː<i>ɹ</i>siə, ˈmɜː<i>ɹ</i>ʃ<i>i</i>ə/)는 10세기 초 잉글랜드의 통일 이전에 존재했던 앵글로색슨 소왕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고다이바 부인이 활약했던 11세기에는 잉글랜드 왕국의 주였다. 백작 Leofric은 영어로 /ˈlɛfɹɪk/ &#8216;레프릭&#8217; 외에도 /ˈleɪ̯əfɹɪk/ &#8216;레이어프릭&#8217;, /ˈliːəfɹɪk/ &#8216;리어프릭&#8217;, /liˈɒfɹɪk/ &#8216;리오프릭&#8217;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된다.</p>
<figure id="attachment_10724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49" style="width: 356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49"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ee356066.jpg" alt="" width="356"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ee356066.jpg 356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ee356066-178x300.jpg 178w" sizes="auto, (max-width: 356px) 100vw, 356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49" class="wp-caption-text">머시아를 포함한 앵글로색슨 소왕국들을 나타낸 지도.</figcaption></figure>
<p>이처럼 영어 발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Leofric이 고대 영어 이름으로 현대 영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이름이며 현대 영어 화자 입장에서 봤을 때 고대 영어는 완전히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그 발음만 해도 f가 유성음 사이에서 [v]로 실현되고 c, g가 경우에 따라 오늘날의 ch, y처럼 [ʧ], [j]로 실현되는 등 현대 영어 화자에게는 낯선 부분이 많다.</p>
<p>원래의 고대 영어 발음은 [ˈleːovriːʧ] &#8216;레오브리치&#8217;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오늘날 고대 영어 교재 등에서는 원래의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부호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Leofric은 Lēofrīċ으로 쓴다. 여기서 e와 i가 장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줄을 그었고 c가 현대 영어에서 ch로 적는 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점을 찍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어 화자들은 고대 영어의 발음을 잘 모르니 Leonard /ˈlɛnə<i>ɹ</i>d/ &#8216;레너드&#8217;, leopard /ˈlɛpə<i>ɹ</i>d/ &#8216;레퍼드&#8217; 등에서 유추하여 /ˈlɛfɹɪk/ &#8216;레프릭&#8217;으로 발음하거나 앞서 열거한 다양한 발음을 쓰는 것이다. Lēofrīċ는 &#8216;사랑스러운&#8217;을 뜻하는 lēof &#8216;레오프&#8217;와 &#8216;권력&#8217;, &#8216;왕국&#8217; 등을 뜻하는 rīċe &#8216;리체&#8217;가 합친 이름인데 Leonard의 leon-과 leopard의 leo-는 각각 고대 고지 독일어와 라틴어·고대 그리스어에서 &#8216;사자&#8217;를 뜻하니 어원상으로는 Leofric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p>
<figure id="attachment_107250"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50" style="width: 42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50"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b56cd3d9e.jpg" alt="" width="421"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b56cd3d9e.jpg 421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b56cd3d9e-211x300.jpg 211w" sizes="auto, (max-width: 421px) 100vw, 421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50" class="wp-caption-text">상단에서 머시아 백작 레프릭과 참회왕 에드워드가 성찬식 빵에 예수의 얼굴이 나타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잉글랜드 토지 대장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의 13세기 요약본.</figcaption></figure>
<p>Godiva는 원래 고대 영어 이름인 Godgifu를 라틴어식으로 적은 것이다. 둘째 g가 오늘날의 y처럼 발음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점을 찍어 Godġifu와 같이 쓸 수 있으며 그 발음은 [ˈɡodjivu] &#8216;고드이부&#8217;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다. &#8216;신&#8217;을 뜻하는 god &#8216;고드&#8217;와 &#8216;선물&#8217;을 뜻하는 ġifu &#8216;이부&#8217;가 합친 이름이다. 중세 라틴어식으로 ġi [ji]는 그냥 i로 흉내내고 f [v]는 v로 적어 Godiv-가 된 것이며 라틴어에서 여성 이름이 흔히 -a로 끝나므로 이를 따라 Godiva가 된 것이다. 11세기 당시 고대 영어 발음에서는 어차피 Godġifu의 마지막 모음이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p>
<p>조금 드문 노르웨이어 여자 이름 가운데 Synnøve [²synːøvə] &#8216;쉰뇌베&#8217;가 있는데 1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노르웨이로 건너갔다는 성인 Sunniva &#8216;순니바&#8217;에서 나온 현대 노르웨이어 이름이다. 이 이름은 &#8216;태양&#8217;을 뜻하는 sunne &#8216;순네&#8217;와 ġifu &#8216;이부&#8217;가 합친 고대 영어 이름 Sunnġifu &#8216;순이부&#8217;가 고대 노르드어 Sunnifa &#8216;순니바&#8217;를 거쳐 중세 라틴어 Sunniva &#8216;순니바&#8217;가 된 것이다(고대 노르드어에서도 유성음 사이의 f가 [v]로 발음된다). 여기서도 고대 영어 이름의 -ġifu가 라틴어 -iva에 해당한다.</p>
<figure id="attachment_107251"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51" style="width: 27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51"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1016f97.jpg" alt="" width="270" height="598"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1016f97.jpg 27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1016f97-135x300.jpg 135w" sizes="auto, (max-width: 270px) 100vw, 27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51" class="wp-caption-text">노르웨이의 한 교회 제단 장식으로 조각된 성 순니바 상. 1520년대. 베르겐 박물관 소장. 출처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tSunniva.jpg">Wikimedia</a>: Nina Aldin Thune, CC-BY SA 3.0.</figcaption></figure>
<p>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13세기 중세 잉글랜드의 연대기 《플로레스 히스토리아룸(Flores Historiarum)》에 처음 등장했다. &#8216;역사의 꽃들&#8217;을 뜻하는 라틴어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라틴어로 쓰인 연대기이다.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는 고대 영어로 쓰인 문서가 꽤 많았지만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노르만 왕조가 들어선 후 영어는 한동안 문자 언어로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노르만어/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주로 쓰였다(이 시점을 기준으로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를 나눈다).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라틴어식 이름인 Godiva가 오늘날 영어에서 쓰는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신 Lēofrīċ의 라틴어식 형태인 Leuricus &#8216;레우리쿠스&#8217; 또는 Leofricus &#8216;레오프리쿠스&#8217;는 잊혀지고 고대 영어 형태인 Leofric을 쓰는 것이다. Godġifu는 중세 잉글랜드에서 꽤 흔한 여자 이름이었지만 후대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여기서 나온 Goodeve /ˈɡʊdiːv/ &#8216;구디브&#8217;가 성으로 드물게 쓰인다.</p>
<p>중세 잉글랜드에서 쓰인 Godiva의 라틴어 발음은 [ɡoˈdiːva] &#8216;고디바&#8217;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세 영어 후기에 해당되는 15세기에 시작되어 근대 영어 시기까지 계속된 대모음 추이(Great Vowel Shift)로 영어 장모음의 음가가 심한 변화를 겪었다. 중세 영어에서는 단모음 i /i/와 가까운 음가였던 장모음 i /iː/는 대모음 추이를 통해 현대 영어의 /aɪ̯/ &#8216;아이&#8217;로 변했다. 거기에 영어 발음의 특징인 모음 약화 때문에 원래의 /o/와 /a/가 불분명한 무강세 모음 [ə]로 변해 오늘날 Godiva의 영어 발음은 /ɡəˈdaɪ̯və/ &#8216;거다이바&#8217;가 된 것이다. &#8216;침&#8217;을 뜻하는 라틴어 saliva &#8216;살리바&#8217;가 영어에서 /səˈlaɪ̯və/ &#8216;설라이바&#8217;가 된 것도 같은 이치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7252"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52" style="width: 6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52"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323b293.png" alt="" width="600" height="49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323b293.pn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323b293-300x245.pn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52" class="wp-caption-text">영어의 대모음 추이를 나타낸 표. 출처 Wikimedia: Olaf Simons, CC-BY 3.0.</figcaption></figure>
<p>&#8216;거다이바&#8217;는 너무 어색하다고 느낀 것인지 아니면 중간의 /aɪ̯/ &#8216;아이&#8217; 발음은 들었지만 나머지 모음은 [ə]로 약화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정한 표기인지는 몰라도 &#8216;고다이바&#8217;가 전설의 부인 이름의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초콜릿 브랜드 Godiva는 프랑스어권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왔으므로 프랑스어 발음을 따라 &#8216;고디바&#8217;로 적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쓰는 상호도 &#8216;고디바&#8217;이다. 프랑스어로는 고다이바 부인도 Dame Godiva &#8216;담 고디바&#8217;라고 하고 영어로는 고디바 초콜릿도 Godiva chocolate &#8216;고다이바 초콜릿&#8217;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에서는 &#8216;고다이바 부인&#8217;, &#8216;고디바 초콜릿&#8217;으로 표기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p>
<p>중세 잉글랜드의 라틴어식 인명이고 당시에는 &#8216;고디바&#8217;로 발음했을 테니 &#8216;고디바 부인&#8217;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중세 잉글랜드 인물 가운데 라틴어식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7~8세기에 활약한 성직자이자 라틴어로 《잉글랜드인들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를 쓴 역사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8216;비드&#8217;로 실려있다. 그가 쓴 라틴어 이름 Beda &#8216;베다&#8217; 대신 영어 이름 Bede /ˈbiːd/를 따라 &#8216;비드&#8217;로 쓴 것이다. 아무래도 중세 잉글랜드 인물 가운데 그나마 알려진 인물들은 많이 쓰는 영어식 이름이 따로 있어 굳이 라틴어 이름을 쓸 이유가 없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학계에서 라틴어보다는 고대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p>
<figure id="attachment_10725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253" style="width: 45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253"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576dd42.jpg" alt="" width="450" height="57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576dd42.jpg 45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9a7af576dd42-237x300.jpg 237w" sizes="auto, (max-width: 450px) 100vw, 45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253" class="wp-caption-text">뉘른베르크판 《리베르 크로니카룸(Liber Chronicarum &#8216;연대기&#8217;)》의 비드 삽화. 1493년.</figcaption></figure>
<p>이미 언급한 앵글로색슨 소왕국 머시아의 이름은 머시아 사람을 일컫는 고대 영어 Mierċe &#8216;미에르체&#8217; 또는 Myrċe &#8216;뮈르체'(본뜻은 &#8216;변경 사람&#8217;)를 라틴어식으로 어미 -ia를 추가한 Mercia로 적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 읽으면 &#8216;메르키아&#8217;이다. 하지만 고대 영어의 표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라틴어에서 전설 모음 앞의 c는 잉글랜드에서 파찰음을 거쳐 결국 [s]로 변했기 때문에 &#8216;메르치아&#8217;가 당시 발음에 더 가까울 것이고 이게 현대 영어에서 &#8216;머시아&#8217;가 된 것이다.</p>
<p>또 다른 앵글로색슨 소왕국으로 Northumbria도 있는데 고대 영어 Norþhymbra &#8216;노르스휨브라&#8217;에서 온 라틴어명이다. 고대 영어 철자의 þ는 현대 영어의 th 음에 해당하며 위치에 따라 무성 치 마찰음 [θ] 또는 유성 치 마찰음 [ð]로 발음되었다. 그러니 이를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 읽어 &#8216;노르툼브리아&#8217;로 표기하기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보통 현대 영어 발음 /nɔː<i>ɹ</i>ˈθʌmbɹiə/에 따라 &#8216;노섬브리아&#8217;라고 적는다.</p>
<p>이처럼 중세 잉글랜드식 라틴어 발음에 어울리게 표기하려면 손봐야 할 부분이 몇몇 있기 때문에 라틴어 발음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라틴어 이름이라도 아예 현대 영어식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그러니 Godiva 하나만 따지면 &#8216;고디바&#8217;로 적는 것이 무난하더라도 중세 잉글랜드의 라틴어식 고유 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을 하나로 통일하라면 현대 영어 발음을 따르는 것이 제일 쉬워보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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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대 영어로 읽는 〈루돌프 사슴 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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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3 Dec 2016 18:11:2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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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20;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하겠지&#8221; 빨갛게 빛나는 코 때문에 다른 사슴(정확히는 순록)들에게 놀림을 받다가 산타클로스의 부탁으로 성탄절 이브에 썰매를 이끌게 된 후 사랑을 받게 된다는 루돌프의 이야기는 1939년 미국의 로버트 메이(Robert L. May)가 쓴 책자에 처음 등장한다.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라는 시카고의 한 유통 업체에서 성탄절마다 판촉을 위해 책자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span style="font-size:0.9em; color:#5C78C6;">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span><br>
<span style="color:#C5D2DB">—</span>
<p>&#8220;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하겠지&#8221;</p>
<p>빨갛게 빛나는 코 때문에 다른 사슴(정확히는 순록)들에게 놀림을 받다가 산타클로스의 부탁으로 성탄절 이브에 썰매를 이끌게 된 후 사랑을 받게 된다는 루돌프의 이야기는 1939년 미국의 로버트 메이(Robert L. May)가 쓴 책자에 처음 등장한다.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라는 시카고의 한 유통 업체에서 성탄절마다 판촉을 위해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고는 했는데 돈을 절약하려고 외부 책자를 사들이는 대신 메이에게 써달라고 해서 <i>Rudolph the Red-Nosed Reindeer</i> (《빨간 코 순록 루돌프》)가 탄생한 것이다.</p>
<p>1949년에는 메이의 매부이자 작곡가로 이미 활동을 하고 있던 조니 마크스(Johnny Marks)가 루돌프 이야기를 소재를 노래를 지었고 이를 가수 진 오트리(Gene Autry)가 불러 첫 성탄절 시즌에만 175만 장 정도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루돌프 사슴 코〉는 이를 번안한 곡으로 원래의 영어 제목은 책자 제목과 같이 &#8220;Rudolph the Red-Nosed Reindeer&#8221; (〈빨간 코 순록 루돌프〉)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7177"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177" style="width: 6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177"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f0f59dd9.jpg" alt="" width="600" height="434"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f0f59dd9.jp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f0f59dd9-300x217.jp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177" class="wp-caption-text">1890년~1900년경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에서 순록이 이끄는 썰매를 타는 모습을 포토크롬(Photochrom) 인쇄술로 표현한 채색 사진(<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changel_reindeer3.jpg">Wikimedia</a>, Public Domain)</figcaption></figure>
<p>산타클로스의 썰매를 하늘을 나는 순록이 이끈다는 설정은 1821년에 나온 동시에 처음 등장했고 1823년에는 &#8220;A Visit from St. Nicholas&#8221; (〈성 니콜라우스의 방문〉)이라는 시에 순록 여덟 마리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은 대셔(Dasher), 댄서(Dancer), 프랜서(Prancer), 빅슨(Vixen), 코밋(Comet), 큐피드(Cupid), 던더(Dunder), 블릭섬(Blixem)이다. 네덜란드어로 &#8216;천둥&#8217;을 뜻하는 말에서 온 Dunder는 현대 네덜란드어 형태인 Donder나 독일어 형태인 Donner로 쓰기도 하고 네덜란드어로 &#8216;번개&#8217;를 뜻하는 말(현대 네덜란드어 철자는 Bliksem)에서 온 Blixem은 Blixen으로 쓰기도 하고 독일어 형태인 Blitzen으로 쓰기도 한다.</p>
<p>그러니 루돌프는 다른 순록들이 처음 나타난지 백 년도 더 지나고서 뒤늦게 산타클로스와 순록 전설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고도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순록이 되어버렸다.</p>
<p>그런데 루돌프 이야기가 앵글로색슨어, 즉 고대 영어(대략 5세기~11세기)로 쓰여진 시에 나온다면? 일단 시를 고대 영어로 감상하자. Incipit로 시작하는 첫 줄은 라틴어로 되어 있다. 고대 영어에는 Ð/ð (eth)와 Þ/þ (thorn)라는 글자가 현대 영어에서 th로 나타내는 유성 치 마찰음 [ð]와 무성 치 마찰음 [θ]를 나타냈는데 어느 글자를 유성음에 쓰고 어느 글자를 무성음에 쓰는지는 별다른 규칙이 없었다.</p>
<p style="padding-left: 40px;">Incipit gestis Rudolphi rangifer tarandus</p>
<p style="padding-left: 40px;">Hwæt, Hrodulf readnosa hrandeor—<br />
Næfde þæt nieten unsciende næsðyrlas!<br />
Glitenode and gladode godlice nosgrisele.<br />
Ða hofberendas mid huscwordum hine gehefigodon;<br />
Nolden þa geneatas Hrodulf næftig<br />
To gomene hraniscum geador ætsomne.<br />
Þa in Cristesmæsseæfne stormigum clommum,<br />
Halga Claus þæt gemunde to him maðelode:<br />
&#8220;Neahfreond nihteage nosubeorhtende!<br />
Min hroden hrædwæn gelæd ðu, Hrodulf!&#8221;<br />
Ða gelufodon hira laddeor þa lyftflogan—<br />
Wæs glædnes and gliwdream; hornede sum gegieddode<br />
&#8220;Hwæt, Hrodulf readnosa hrandeor,<br />
Brad springð þin blæd: breme eart þu!&#8221;</p>
<p>같이 소개되는 현대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p>
<p style="padding-left: 40px;"><i>Here begins the deeds of Rudolph, Tundra-Wanderer</i></p>
<p style="padding-left: 40px;"><i>Lo, Hrodulf the red-nosed reindeer—</i><br />
<i>That beast didn’t have unshiny nostrils!</i><br />
<i>The goodly nose-cartilage glittered and glowed.</i><br />
<i>The hoof-bearers taunted him with proud words;</i><br />
<i>The comrades wouldn’t allow wretched Hrodulf</i><br />
<i>To join the reindeer games.</i><br />
<i>Then, on Christmas Eve bound in storms</i><br />
<i>Santa Claus remembered that, spoke formally to him:</i><br />
<i>&#8220;Dear night-sighted friend, nose-bright one!</i><br />
<i>You, Hrodulf, shall lead my adorned rapid-wagon!&#8221;</i><br />
<i>Then the sky-flyers praised their lead-deer—</i><br />
<i>There was gladness and music; one of the horned ones sang</i><br />
<i>&#8220;Lo, Hrodulf the red-nosed reindeer,</i><br />
<i>Your fame spreads broadly, you are renowned!&#8221;</i></p>
<p>이를 비슷한 풍으로 한국어로 옮겨보았다.</p>
<p style="padding-left: 40px;">툰드라의 방랑자 루돌푸스의 업적 이야기를 시작하노라</p>
<p style="padding-left: 40px;">들으라,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br />
그 짐승은 콧구멍이 흐리지 않더라!<br />
좋은 코 연골이 반짝이고 빛을 냈더라.<br />
굽을 가진 자들이 그를 오만한 말로 조롱하며<br />
그 동료들은 비참한 흐로둘프가<br />
순록의 놀이에 같이하게 허락하지 않았더라.<br />
후에 폭풍에 묶인 성탄절 전야에<br />
성 클라우스가 이를 기억하고 그에게 가로되:<br />
&#8220;밤눈이 밝은 친구여, 밝은 코를 가진 이여!<br />
너 흐로둘프가 나의 날랜 수레를 이끄리라!&#8221;<br />
그 후에 하늘을 나는 이들이 그들의 우두머리 사슴을 칭송하니<br />
기쁨과 음악이 있더라; 뿔이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노래하더라<br />
&#8220;들으라,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br />
네 명성은 널리 퍼지며 너는 유명한지라!&#8221;</p>
<p>물론 루돌프 이야기에 진짜 고대 영어 원전이 있는 것은 아니고 1996년에 미국의 필립 채프먼벨(Philip Chapman-Bell)이 루돌프 노래를 고대 영어로 쓴 패러디(Hrodulf Harndeor: An Old English Poem by Philip Chapman-Bell)이다. <a href="https://web.archive.org/web/20021222195108/http://www.georgetown.edu/faculty/ballc/oe/rudolph.html">여기</a>에 보존된 그의 옛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로 치면 루돌프 노래를 《용비어천가》 풍의 중세 국어로 쓴 셈이겠다.</p>
<p>고대 영어 문학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영어권에서는 대표작인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Beowulf)》를 학교에서 배우는 일이 흔하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영어는 오늘날의 영어 화자들이 따로 공부하지 않고는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만큼 현대 영어와 다르다. 4백 년 전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영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천 년 전의 고대 영어는 아예 외국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066년 노르망디 공이었던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프랑스어로는 Guillaume le Conquérant &#8216;정복왕 기욤&#8217;)이 이끄는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잉글랜드가 노르만어(프랑스어와 가까운 노르만족의 언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이들에게 지배를 받는 단절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5세기에야 다시 영어가 프랑스어 대신 공문서에서 쓰이기 시작했다.</p>
<p>영어권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한 《베오울프》의 첫 문장은 아마도 고대 영어로 된 문장 가운데 가장 유명할 것이다.</p>
<p style="padding-left: 40px;">Hwæt. We Gar-Dena in gear-dagum, þeod-cyninga, þrym gefrunon, hu ða æþelingas ellen fremedon.<br />
<i>Lo! We have heard of the glory of the kings of the people of the Spear-Danes in days of yore—how those princes did valorous deeds!</i> (존 R. 클라크 홀(John R. Clark Hall) 번역)<br />
들으라! 우리는 지난날에 창의 덴마크인들과 그들의 왕들의 큰 영예, 그 왕자(또는 귀족)들이 이룬 용맹스러운 업적에 대해 들어왔다.</p>
<figure id="attachment_10717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178" style="width: 35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178"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d0cbc38d.jpg" alt="" width="358" height="6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d0cbc38d.jpg 35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d0cbc38d-179x300.jpg 179w" sizes="auto, (max-width: 358px) 100vw, 35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178" class="wp-caption-text">대영 도서관 소장 《베오울프》 필사본 코튼 MS 비텔리우스 A XV (Cotton MS Vitellius A XV)의 첫 장. w 대신에 옛 글자인 Ƿ/ƿ (wynn)을 썼다(<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eowulf_Cotton_MS_Vitellius_A_XV_f._132r.jpg">Wikimedia</a>, Public Domain).</figcaption></figure>
<p>고대 영어의 hwæt는 현대 영어 what의 어원이며 원 뜻도 what처럼 &#8216;무엇&#8217;인데 전통적으로 《베오울프》의 첫 문장에서는 보통 듣는 이(원래 구전되는 시였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감탄사로 간주되어 현대 영어로 &#8220;Lo!&#8221; 외에도 &#8220;Hear me!&#8221;, &#8220;Listen!&#8221; 등으로 번역되었다. 2000년 아일랜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의 번역에서는 &#8220;So!&#8221;로 옮긴다. 이 hwæt가 어찌나 유명한 단어인지 위 패러디에서도 두 번이나 등장한다.</p>
<p>그런데 최근 케임브리지 대학의 조지 워크던(George Walkden) 교수는 고대 영어 문헌에 쓰이는 hwæt를 조사한 끝에 단독으로는 쓰이는 감탄사가 아니라 감탄문의 첫 단어로 쓰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8220;<a href="http://www.isle-linguistics.org/resources/walkden2011.pdf">The status of <i>hwæt</i> in Old English</a>&#8220;, 2011). 이 결론이 맞다면 지금까지 《베오울프》의 첫 문장은 오역되었던 것이다. &#8220;Lo! We have heard&#8221;가 아니라 &#8220;How we have heard&#8221;인 것이다. 감탄문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면 &#8220;아, 우리는 지난날에 창의 덴마크인들과 그들의 왕들의 큰 영예, 그 왕족들이 이룬 용맹스러운 업적에 대해 들어왔다!&#8221; 정도로 옮기면 된다. 어순을 무시하면 감탄사 &#8220;아&#8221; 대신 &#8220;~얼마나 들어왔는가!&#8221; 정도로 옮기면 좋을 것이다. 또 위 패러디에서도 해석은 &#8220;들으라,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8221;보다 &#8220;아,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8221;가 나을 것이다. 어순에 구애받지 않고 매끄럽게 옮기려면 &#8220;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 / 그 짐승은 콧구멍이 어찌나 흐리지 않던가&#8221; 정도일 텐데 Næfde &#8216;가지지 않았다&#8217;와 unsciende &#8216;반짝이지 않는&#8217;의 이중 부정 형태라서 이런 형태의 감탄문으로 바꾸기는 약간 무리이다.</p>
<p>고대 영어 시는 두운 반복과 묘사적 완곡어법을 즐겨 쓴다. 《베오울프》의 첫 문장에서 <strong>G</strong>ar-Dena와 <strong>g</strong>ear-dagum, <strong>þ</strong>eod-cyninga와 <strong>þ</strong>rym에서 두운 반복을 볼 수 있다. 고대 영어 시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낱말을 연상시키는 낱말 두 개를 조합하여 돌려 표현하는 시적 완곡어법을 많이 썼는데 같은 게르만어 계통인 고대 노르드어(고대 아이슬란드어) 시에서 폭넓게 쓰이므로 이를 아이슬란드어 이름에 따라 &#8216;켄닝그(kenning)&#8217; 또는 영어식 발음에 따라 &#8216;케닝&#8217;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몸을 banhus (ban &#8216;뼈&#8217; + hus &#8216;집&#8217;)라고 부른다던지 바다를 hronrad (hron &#8216;고래&#8217; + rad &#8216;길&#8217;)라고 부르는 식이다. 덴마크인들을 &#8216;창의 덴마크인&#8217;이라는 뜻인 Gar-Dene (gar &#8216;창&#8217; + Dene &#8216;덴마크인&#8217;, 속격은 Gar-Dena)로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묘사적 어법이다.</p>
<p>루돌프(흐로둘프)에 관한 위의 시에서도 <strong>Hr</strong>odulf와 <strong>hr</strong>andeor, <strong>N</strong>æfde와 <strong>n</strong>ieten, <strong>n</strong>æsðyrlas 등에서 두운 반복을 볼 수 있다. 또 &#8216;순록&#8217;을 hofberend (굽을 가진 자), &#8216;썰매&#8217;를 hrædwæn (날랜 수레)으로 표현하는 등의 완곡어법을 통해 고대 영어 시를 능숙하게 패러디했다.</p>
<p>Rudolph는 게르만어계 이름으로 게르만 조어로는 *Hrōþiwulfaz로 복원할 수 있다. &#8216;명성&#8217;을 뜻하는 *hrōþiz와 &#8216;이리&#8217;를 뜻하는 *wulfaz가 결합한 것이다. 고대 영어에서는 이게 Hrōþwulf/Hrōðwulf 또는 Hrōþulf/Hrōðulf가 되었는데 위의 시에서는 Hrodulf로 쓴 것이 살짝 아쉽다. 영어에서는 이 이름이 별로 쓰이지 않았고 후에 독일어 Rudolf &#8216;루돌프&#8217;, 네덜란드어 Roedolf &#8216;루돌프&#8217; 등 및 라틴어형 Rudolphus &#8216;루돌푸스&#8217; 등의 영향으로 다시 Rudolph로 소개된 것이다. 역사 인물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 1552년~1612년), 나치 독일의 정치가 루돌프 헤스(Rudolf Heß, 1894년~1987년) 등이 유명하며 뉴욕의 전 시장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의 본명도 루돌프(Rudolph)이다.</p>
<p>게르만어계 이름에는 &#8216;이리&#8217;를 뜻하는 *wulfaz에 해당하는 요소가 흔히 등장하는데 《베오울프》의 주인공 이름인 Beowulf에서도 볼 수 있다. 정확한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첫 요소가 &#8216;벌&#8217;을 뜻하는 고대 영어의 beo라면 Beowulf는 &#8216;벌이리&#8217;를 뜻하는 것이 된다. 꿀을 좋아하는 곰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p>
<p>라틴어로 된 첫 문장에 나오는 Rangifer tarandus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가 정한 순록의 학명이기도 한데 원문에서 Tundra-Wanderer &#8216;툰드라의 방랑자&#8217;로 번역했지만 근거는 없어 보인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콘라트 게스너(Conrad Gesner, 1516년~1565년)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 라틴어에서 순록을 rangifer 또는 raingus라고 불렀는데 라프족, 즉 스칸디나비아 북부의 원주민 사미족은 reen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사미어에서 순록을 이르는 단어는 방언에 따라 puäʒʒ, boazu, boatsoj, båtsoj, bovtse 등이니(<a href="http://languagelog.ldc.upenn.edu/nll/?p=29702#comment-1524219">출처</a>) 오히려 순록을 이르는 고대 노르드어 hreinn에서 유래한 중세 스칸디나비아어 형태를 사미어로 잘못 안 것일 수 있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갈라져 나온 스웨덴어에서는 순록을 ren이라고 한다. 고대 노르드어 hreinn은 아마도 &#8216;뿔&#8217;, &#8216;머리&#8217;를 뜻하는 인도유럽조어 어근 *ḱer-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p>
<p>한편 tarandus는 테오프라스토스(Θεόφραστος <i>Theóphrastos</i>),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 <i>Aristotélēs</i>) 등 고전 그리스 학자들이 언급한 고대 그리스어로 τάρανδος <i>tárandos</i>라고 부르는 동물에서 따왔다. 소만한 크기의 사슴으로 색을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만약 순록을 이르는 것이 맞다면 철에 따라 털갈이를 하는 것이 와전된 것일 수 있다.</p>
<figure id="attachment_10717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179" style="width: 6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179"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aeb5bf25.jpg" alt="" width="600" height="233"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aeb5bf25.jp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85d3aeb5bf25-300x117.jp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179" class="wp-caption-text">대영 도서관 소장 필사본 할리 MS 3244 (Harley MS 3244) ff 36r-71v의 동물우화집(bestiarum)에 나오는 parandrus는 tarandus와 같은 동물로 보인다(<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randrus_3244.jpg">Wikimedia</a>, Public Domain).</figcaption></figure>
<p>영어에서 순록을 reindeer &#8216;레인디어&#8217;라고 하는데 &#8216;고삐&#8217;를 뜻하는 영어 단어 rein &#8216;레인&#8217;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앞서 언급한 고대 노르드어 hreinn은 &#8216;짐승&#8217;을 뜻하는 dýr와 합쳐서 hreindýri로 쓰이기도 했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나온 또 다른 언어인 현대 아이슬란드어의 hreindýr &#8216;흐레인디르&#8217;는 여기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스웨덴어에서도 같은 원리로 rendjur &#8216;렌유르&#8217;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어의 reindeer는 중세 영어에서 이와 비슷한 중세 스칸디나비아어 형태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대 영어에서부터 이미 위의 시에서 쓴 hrandeor를 쓴 것 같지는 않다.</p>
<p>원래 고대 영어의 deor는 그에 대응되는 고대 노르드어의 dýr처럼 사슴에 한정되지 않은 &#8216;짐승&#8217;을 뜻했다(그러니 위의 시에서 laddeor는 &#8216;우두머리 사슴&#8217;보다는 &#8216;우두머리 짐승&#8217;으로 쓰는 것이 사실 정확하다). 그러다가 중세를 거치면서 영어의 deer는 &#8216;사슴&#8217;으로 의미가 축소되었으니 영어에서 사슴과에 속하는 순록의 이름인 reindeer에 사슴을 뜻하는 deer가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이다. 순록을 이르는 독일어의 Rentier, 네덜란드어의 rendier도 영어처럼 중세 스칸디나비아어에서 따온 말인데 독일어의 Tier, 네덜란드어의 dier는 그냥 &#8216;짐승&#8217;을 뜻한다.</p>
<p>보너스로 〈루돌프 사슴 코〉 시조 버전:</p>
<p style="padding-left: 40px;">루돌프 사슴 코는 빨갛게 빛이 나서<br />
나머지 사슴들의 놀림거리 되었으나<br />
산타의 썰매 이끈 후 명성 널리 떨치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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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황 레오 14세가 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title>
		<link>https://pyogi.kkeutsori.com/2025/05/09/10686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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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9 May 2025 06:11:3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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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프랑스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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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시카고 출신으로 오랫동안 페루에서 선교 생활을 하면서 페루 국적도 취득한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ˈɹɒbəɹt ˈfɹæˑnsᵻs ˈpɹiːvoʊ̯st], 1955~)가 레오 14세라는 이름으로 새 교황이 된 것이다. 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에 아메리카주 출신 둘째 교황이자 최초의 아우구스티노회 출신 교황이기도 하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a href="https://www.facebook.com/kkeutsori/posts/pfbid0ufwvPs47ekoLnYfxXGG3iajtKfkXuZHZUdLDVfr8JEAPZP72Mmh4mDv8jCKmMHgGl?__cft__[0]=AZU74N-uBnrF9sR666PDVA6EDTPMGiTHnIsg7qCwJwfMCWHBjUK_BCMb3xKoYH17vrOJRkBsmoJ_y6xHoz3j7DfPWYGepuvARyfnC5eZsdKcl18bWNIPmYJ7t8kpm-UbUoMbF6QxXZrH6kvNy4TMCDfONb8U-08322oxMyeoFzR0zQ&amp;__tn__=%2CO%2CP-R">여기</a>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p>
<p>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시카고 출신으로 오랫동안 페루에서 선교 생활을 하면서 페루 국적도 취득한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ˈɹɒbə<i>ɹ</i>t ˈfɹæˑnsᵻs ˈpɹiːvoʊ̯st], 1955~)가 레오 14세라는 이름으로 새 교황이 된 것이다. 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에 아메리카주 출신 둘째 교황이자 최초의 아우구스티노회 출신 교황이기도 하다.</p>
<p>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른 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인파 앞에 나온 프랑스 출신 도미니크 망베르티(Dominique Mamberti [dɔminik mɑ̃bɛʁti]) 추기경이 라틴어로 선언문을 낭독했다.</p>
<p>Annuntio vobis gaudium magnum:<br />
Habemus Papam<br />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Robertum Franciscum, Sanctae Romane Ecclesiae Cardinalem Prevost, qui sibi nomen imposuit Leonem Decimum Quartum</p>
<p>여러분에게 큰 기쁨을 전합니다.<br />
우리는 교황님을 모셨습니다.<br />
거룩한 로마 교회의 가장 저명하고 공경하는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께서는 스스로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p>
<div class="ast-oembed-container " style="height: 100%;"><iframe loading="lazy" title="2025.05.0 Habemus Papam: Leo XIV, PREVOST Card. Robert Francis, O.S.A." width="1362" height="766" src="https://www.youtube.com/embed/E57t_CUjBmk?start=30&#038;feature=oembed"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div>
<p>이후 새 교황 레오 14세가 나와 이탈리아어로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중간에 에스파냐어로도 인사를 하면서 페루에서 섬겼던 치클라요(Chiclayo) 교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영어와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외에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도 구사하며 라틴어와 독일어도 독해할 수 있다고 한다.</p>
<p>망베르티는 선언문을 라틴어로 낭독하면서 Robertum Franciscum Prevost를 교회 라틴어식으로 &#8216;로베르툼 프란치스쿰 프레보스트&#8217;로 발음했다. 이 이름은 대격형으로 주격형은 Robertus Franciscus Prevost &#8216;로베르투스 프란치스쿠스 프레보스트&#8217;가 된다. 천주교에서 쓰는 성인 이름 표기에 따라 적으면 &#8216;로베르토 프란치스코 프레보스트&#8217;로 쓸 수 있겠다.</p>
<p>원래의 영어 이름은 Robert Francis Prevost [ˈɹɒbə<i>ɹ</i>t ˈfɹæˑnsᵻs ˈpɹiːvoʊ̯st] &#8216;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8217;이다. 그런데 그의 교황 선출을 보도한 영어권 언론에서도 Prevost의 발음에 대한 혼란을 볼 수 있었다.</p>
<p>한 BBC 방송 기자는 [ˈpɹɛvɔːst] &#8216;프레보스트&#8217;라고 <a href="https://youtu.be/P5q1y_ls2OM?t=111">발음했다</a>.</p>
<p>또 CBS 시카고 방송 진행자는 [ˈpɹeɪ̯voʊ̯st] &#8216;프레이보스트&#8217;라고 <a href="https://youtu.be/WZrM-WSqhxc?t=52">발음했다</a>(다만 이 발음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개음절 e가 [eɪ̯]로 발음되는 것은 &#8216;에&#8217;로 적어서 &#8216;프레보스트&#8217;로 표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p>
<p>그러나 본인이 쓰는 발음은 [ˈpɹiːvoʊ̯st] &#8216;프리보스트&#8217;인 듯하다. 아직까지 본인 발음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동영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의 선출 직후 CBS 보스턴 방송과 인터뷰를 가진 옛 급우는 <a href="https://youtu.be/6fQZxZeJMqY?t=25">이 발음을 쓴다</a>.</p>
<p>또 시카고 지역에 사는 그의 친형 존 프리보스트(John Prevost [ˈʤɒn ˈpɹiːvoʊ̯st])를 인터뷰한 WGN 방송 기자도 <a href="https://youtu.be/e4xGjErDdbE?t=84">이 발음을 쓴다</a>.</p>
<p>플로리다주에 사는 다른 친형 루 프리보스트(Lou Prevost [ˈluː ˈpɹiːvoʊ̯st])를 인터뷰한 CBS 탬파베이 방송 기자도 <a href="https://youtu.be/fIpkIF22y1U?t=57">같은 발음을 쓴다</a>.</p>
<p>그러니 본인 발음에 따른 표기는 &#8216;프리보스트&#8217;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p>
<span style="color: #5C78C6;">내용 추가: 본인이 이름을 [ˈpɹiːvoʊ̯st] &#8216;프리보스트&#8217;로 발음하는 동영상도 찾았다.</span>
<div class="ast-oembed-container " style="height: 100%;"><iframe loading="lazy" title="Old Video of New Pope Leo XIV- Greeting from Bishop of Chiclayo, Mons. Robert Prevost Martínez (OSA)" width="1362" height="766" src="https://www.youtube.com/embed/YKDP4e0ekvc?start=5&#038;feature=oembed"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div>
<p>그의 성은 프랑스어 Prévost [pʁevo] &#8216;프레보&#8217;에서 나왔을 것이다. 레오 14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계와 프랑스계라고 한다. 이 성을 쓴 인물로는 &#8216;프레보 신부&#8217;라는 뜻의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 [abe pʁevo])라고 흔히 불리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신부인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데그질(Antoine François Prévost-d&#8217;Exiles [ɑ̃twan fʁɑ̃swa pʁevo-dɛɡzil], 1697~1763),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레보(Marcel Prévost [maʁsɛl pʁevo], 1862~1941), 프랑스 소설가 장 프레보(Jean Prévost [ʒɑ̃ pʁevo], 1901~1944) 등이 유명하다.</p>
<p>Prévost는 원래 라틴어로 &#8216;앞에 배치된 이&#8217;를 뜻하는 책임자 칭호 praepositus &#8216;프라이포시투스&#8217;에서 나왔다. 예전에는 프랑스어에서도 &#8216;프레보스트&#8217;로 발음되었겠지만 s와 t가 차례로 묵음이 되면서 발음이 [pʁevo] &#8216;프레보&#8217;가 되었다. 현대 프랑스어에서 일반 명사로 쓰는 철자는 prévôt [pʁevo] &#8216;프레보&#8217;이며 ô를 써서 o 뒤에 s가 탈락했다는 것을 나타낸다.</p>
<p>한편 레오 14세의 어머니는 혼인 전 성이 마티네즈(Martinez [mɑː<i>ɹ</i>ˈtiːnɛz])였는데 에스파냐어 Martínez &#8216;마르티네스&#8217;에서 나왔다. 그의 아버지, 즉 레오 14세의 외할아버지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었고 그의 어머니, 즉 레오 14세의 외할머니는 미국 뉴올리언스 크리올인으로 원래 성은 Baquié,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bakje] &#8216;바키에&#8217;였다. 같은 성을 쓰는 미국인의 영어 발음은 [ˈbɑːkieɪ̯] &#8216;바키에이&#8217;로 <a href="https://youtu.be/WFzTDledDC0">관찰된다</a>(다만 한글로 표기한다면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어말 é [eɪ̯]는 &#8216;에&#8217;로 적어서 &#8216;바키에&#8217;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둘 다 흑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었다.</p>
<p>Prevost는 프랑스어에서 나온 이름이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원어를 흉내내어 [ˈpɹiːvoʊ̯] &#8216;프리보&#8217; 또는 [ˈpɹeɪ̯voʊ̯] &#8216;프레이보&#8217;로 발음하는 것도 흔한데 레오 14세에 대한 보도에서는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새 교황 선출을 선언한 프랑스 출신 추기경은 이를 라틴어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8216;프레보스트&#8217;라고 발음했고 설령 프랑스어로 했다고 해도 영어 발음을 존중하여 [pʁevɔst] &#8216;프레보스트&#8217; 정도의 발음을 썼을 것이다.</p>
<p>한국 언론에서는 새 교황 발표 직후 Prevost의 표기가 &#8216;프레보스트&#8217;와 &#8216;프리보스트&#8217;가 혼용되었지만 아마도 앞으로 &#8216;프리보스트&#8217;로 통일될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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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제타와 필레: 고대 이집트 지명에서 이름을 딴 혜성 탐사선</title>
		<link>https://pyogi.kkeutsori.com/2015/06/23/%eb%a1%9c%ec%a0%9c%ed%83%80%ec%99%80-%ed%95%84%eb%a0%88-%ea%b3%a0%eb%8c%80-%ec%9d%b4%ec%a7%91%ed%8a%b8-%ec%a7%80%eb%aa%85%ec%97%90%ec%84%9c-%ec%9d%b4%eb%a6%84%ec%9d%84-%eb%94%b4-%ed%98%9c%ec%84%b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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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끝소리]]></dc:creator>
		<pubDate>Tue, 23 Jun 2015 14:22:57 +0000</pubDate>
				<category><![CDATA[표기 용례]]></category>
		<category><![CDATA[고대그리스어]]></category>
		<category><![CDATA[그리스어]]></category>
		<category><![CDATA[독일어]]></category>
		<category><![CDATA[라틴어]]></category>
		<category><![CDATA[아랍어]]></category>
		<category><![CDATA[영어]]></category>
		<category><![CDATA[이집트]]></category>
		<category><![CDATA[이탈리아어]]></category>
		<category><![CDATA[프랑스어]]></category>
		<category><![CDATA[현대그리스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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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4년 11월 유럽우주국(ESA)의 혜성 탐사선 로제타(Rosetta)호에 실린 탐사 로봇 필레(Philae)가 추류모프·게라시멘코(Churyumov–Gerasimenko) 혜성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국립국어원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이하 외심위)에서는 시사성이 있는 외래어의 규범 표기를 신속하게 결정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무소위원회를 갖는다. &#8216;로제타&#8217;와 &#8216;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8217;은 2014년 11월 24일 발표한 2014년도 제31차 실무소위원회 결정 사항 가운데 포함되었으나 언론에서 &#8216;필레이&#8217;, &#8216;필라이&#8217;, &#8216;필레&#8217;로 다양하게 쓰던 탐사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본 글은 원래 발음 관련 웹사이트 Pronouncer에 올렸다가 그림을 추가하여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p>
<p>2014년 11월 유럽우주국(ESA)의 혜성 탐사선 로제타(Rosetta)호에 실린 탐사 로봇 필레(Philae)가 추류모프·게라시멘코(Churyumov–Gerasimenko) 혜성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다.</p>
<p>국립국어원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이하 외심위)에서는 시사성이 있는 외래어의 규범 표기를 신속하게 결정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무소위원회를 갖는다. &#8216;로제타&#8217;와 &#8216;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8217;은 2014년 11월 24일 발표한 2014년도 제31차 실무소위원회 결정 사항 가운데 포함되었으나 언론에서 &#8216;필레이&#8217;, &#8216;필라이&#8217;, &#8216;필레&#8217;로 다양하게 쓰던 탐사 로봇 Philae의 표기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외심위 본회의로 넘어가게 되었고 2014년 12월 3일 제118차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본회의에서 비로소 &#8216;필레&#8217;로 결정되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30"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0" style="width: 192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107030 size-full"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s_Philae_touchdown.jpg" alt="" width="1920" height="108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s_Philae_touchdown.jpg 192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s_Philae_touchdown-300x169.jpg 3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s_Philae_touchdown-1024x576.jpg 1024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s_Philae_touchdown-768x432.jpg 76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s_Philae_touchdown-1536x864.jpg 1536w" sizes="auto, (max-width: 1920px) 100vw, 192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0" class="wp-caption-text">필레의 혜성 착륙 상상도(&#8220;<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setta%27s_Philae_touchdown.jpg#/media/File:Rosetta%27s_Philae_touchdown.jpg">Rosetta&#8217;s Philae touchdown</a>&#8221; by DLR, CC-BY 3.0. Licensed under <a href="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de/deed.en">CC BY 3.0 de</a> via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Wikimedia Commons</a>.)</figcaption></figure>
<p>로제타호는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 &#8216;로제타석&#8217;에서 이름을 땄다. 로제타석은 두 종류의 이집트 문자와 그리스 문자가 함께 적힌 비문으로 &#8216;로제타&#8217;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아랍어로는 라시드(رشيد‎ Rashīd [raʃiːd])로 불리는 지명을 이탈리아어로는 Rosetta [roˈzetta]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iPI"><small>DiPI</small></a> &#8216;로세타&#8217;로 부르는데 이것을 영어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8216;로제타&#8217;라는 한글 표기는 영어 발음 [ɹoʊ̯ˈzɛtə]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EPD"><small>EPD</small></a>,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LPD"><small>LPD</small></a> 를 따른 것이다. 오늘날의 표준 이탈리아어 발음에서 동일 형태소 내부의 모음 사이 s는 [z]로 발음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8216;ㅅ&#8217;으로 적기 때문에 Rosetta에 이탈리아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8216;로제타&#8217;가 아니라 &#8216;로세타&#8217;가 된다. 이탈리아어에서 모음 사이의 s는 [s] 또는 [z]로 발음되는데 그 분포는 전통 발음과 오늘날의 발음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도 차이가 나며 여러 단어에서 [s]와 [z]가 둘 다 가능하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철자 s를 언제나 &#8216;ㅅ&#8217;으로 통일해서 적는다. 프랑스어로는 Rosette [ʁɔzɛt] &#8216;로제트&#8217;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PF"><small>DPF</small></a>, 독일어로는 Rosette [ʁoˈzɛtə]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uden"><small>Duden</small></a>,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Aw"><small>DAw</small></a> &#8216;로제테&#8217; 또는 [ʁoˈzɛt]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uden"><small>Duden</small></a> &#8216;로제트&#8217;로 부른다.</p>
<figure id="attachment_107031"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1" style="width: 218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31"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scaled.jpg" alt="" width="2188" height="256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scaled.jpg 218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256x300.jpg 256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875x1024.jpg 875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768x899.jpg 76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1313x1536.jpg 1313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Rosetta_Stone-1750x2048.jpg 1750w" sizes="auto, (max-width: 2188px) 100vw, 218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1" class="wp-caption-text">로제타석(&#8220;<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setta_Stone.JPG#/media/File:Rosetta_Stone.JPG">Rosetta Stone</a>&#8221; by © Hans Hillewaert. Licensed under <a href="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CC BY-SA 4.0</a> via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Wikimedia Commons</a>.)</figcaption></figure>
<p>혜성 착륙 모듈 필레도 마찬가지로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도움을 준 &#8216;필레 오벨리스크&#8217;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가 발견된 필레는 고대 이집트의 사원을 포함한 유적지가 있는 나일강의 섬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Φίλαι(Phílai) &#8216;필라이&#8217;라고 했고 Philae &#8216;필라이&#8217;는 여기에서 따온 라틴어명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한글 표기에 대한 규정은 지금까지 고시된 외래어 표기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된 후 발간된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의 &#8216;일러두기&#8217;란에 &#8216;라틴어의 표기 원칙&#8217;과 &#8216;그리스어의 표기 원칙&#8217;이 포함되었으며 국립국어원은 2007년경 그리스어의 표기를 고전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로 나누어 더 자세하게 다루는 그리스어 표기법 시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식으로 고시된 것은 아니지만 국립국어원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표기를 심의할 때 따르므로 외래어 표기법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다.</p>
<figure id="attachment_107032"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2" style="width: 32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32"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58960f828a50.jpg" alt="" width="320" height="47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58960f828a50.jpg 32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58960f828a50-200x300.jpg 200w" sizes="auto, (max-width: 320px) 100vw, 32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2" class="wp-caption-text">필레 오벨리스크(&#8220;<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ograph-1789450-by-Eugene-Birchall.jpg#/media/File:Geograph-1789450-by-Eugene-Birchall.jpg">Geograph-1789450-by-Eugene-Birchall</a>&#8221; by Eugene Birchall. Licensed under <a href="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CC BY-SA 2.0</a> via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Wikimedia Commons</a>.)</figcaption></figure>
<p>라틴어의 표기 원칙에서 ae는 &#8216;아이&#8217;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는 ae가 고전 라틴어 발음에서 이중모음을 나타내었기 때문인데 Aëtius &#8216;아에티우스&#8217;, Laërtes &#8216;라에르테스&#8217;, Danaë &#8216;다나에&#8217;처럼 a와 e가 독립적으로 발음될 때는 물론 &#8216;아에&#8217;로 적어야 할 것이다(본 사이트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라틴어의 ae가 이중모음이 아닐 경우 aë로 적는다). 고대 그리스어의 αι(ai)도 &#8216;아이&#8217;로 적는다. 그러니 Philae를 라틴어 이름으로 보면 &#8216;필라이&#8217;로 적어야 하며 고대 그리스어 이름인 Φιλαί(Philaí)도 &#8216;필라이&#8217;로 적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외심위에서는 &#8216;필레&#8217;로 표기를 정했을까?</p>
<p>먼저 라틴어의 ae를 왜 &#8216;아이&#8217;로 적는지부터 살펴보자. 초기 라틴어(기원전 75년 이전)에서는 ae에 해당하는 음을 ai로 적었으며 이에 따라 발음은 [ai̯]로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고전 라틴어에 와서는 철자가 ae로 바뀌었는데 발음은 [aɛ̯] 정도였을 것이다. [i] 같은 고모음부로 끝나는 이중모음은 덜 분명하게 발음하면 [i]를 못 미치고 [e]나 [ɛ] 정도에서 끝날 수 있는데 라틴어의 발음은 이런 식의 변화를 겪은 듯하다. 영어와 독일어의 이중모음 [aɪ̯]도 실제 발음은 [ɪ]에 못 미친다며 정밀 전사에서는 [ae̯]나 [aɛ̯]로 적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a href="https://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Aw">데그로이터 독일어 발음 사전</a>》은 [aɛ̯]를 쓴다. 그러니 고전 라틴어의 [aɛ̯]는 우리가 &#8216;아이&#8217;로 적는 영어와 독일어의 [aɪ̯]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영어로 된 고전 라틴어 발음 설명에서는 흔히 ae의 발음을 영어의 [aɪ̯]로 묘사한다는 것도 라틴어의 ae를 &#8216;아이&#8217;로 쓰게 된 이유일 것이다.</p>
<p>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라틴어의 ae가 고대 그리스어에서 들어온 말에서 원어의 이중모음 αι(ai)를 적기 위해 쓰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문자의 &#8216;알파&#8217; α(a)는 따로 쓰일 때 [a], &#8216;요타&#8217; ι(i)는 따로 쓰일 때 [i]를 나타낸다. 고전 시기(기원전 5~4세기)의 그리스어에서 αι(ai)는 [ai̯] 정도의 이중모음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고전 시기 이후에는 대체로 단순모음으로 발음하게 되었지만 후대에도 고전 그리스어를 흉내낸 학구적인 발음에서는 원래의 이중모음 발음을 의도적으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46년 코린트 전투를 기점으로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의 문화, 특히 수세기 전의 고전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로마의 엘리트 계층은 이런 보수적인 학구적 발음을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어의 αι(ai)를 라틴어의 ae로 받아들였을 것이다.</p>
<p>고대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은 사실 실제 그리스어에서 쓰였던 발음을 나타낸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전 시기 직후에 이미 단순모음으로 발음하기 시작하여 로마 시대 초에는 완전히 단순모음으로만 변한 αι(ai)는 &#8216;아이&#8217;로 적으면서 수세기가 지난 중세 그리스어에서야 [y]에서 [i]로 변한 &#8216;입실론&#8217; υ(y)는 &#8216;이&#8217;로 적는 것은 모순으로 보인다. 즉 αι(ai)를 &#8216;아이&#8217;로 적는다면 υ(y)는 &#8216;위&#8217;로 적고 υ(y)를 &#8216;이&#8217;로 적는다면 αι(ai)는 &#8216;에&#8217;로 적어야 앞뒤가 맞는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은 고전 라틴어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받아들일 때 쓴 발음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하면 수수께끼가 풀린다.</p>
<p>당시 υ(y)의 그리스어 발음은 원순모음 [y]였으나 라틴어에는 [y] 음이 없었다. 원래는 υ(y)의 그리스어 발음이 [u]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초기 라틴어에서는 이를 u로 흔히 적었지만 그리스어 발음이 [y]로 바뀌고 난 후에 로마인들은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어휘에서 이 음을 적기 위해 새로운 글자인 y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소문자가 없었고 u와 v의 구분이 없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u는 V, y는 Y이다. 이렇게 해서 라틴 문자의 일부가 된 대문자 Y는 그리스 문자에서 입실론 υ(y)의 대문자 Υ와 형태가 같다.</p>
<p>그리스어를 배운 로마의 엘리트 층은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어휘에서 y를 [y]로 발음했겠지만 원래 라틴어에서 쓰이던 음이 아니다보니 보통 [i]로 발음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그리스어를 외국어로 배운 라틴어 화자들 가운데는 αι(ai)는 &#8216;아이&#8217;와 비슷한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면서 υ(y)는 &#8216;이&#8217;와 비슷한 비원순 모음으로 발음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은 이런 이들의 그리스어 발음, 즉 라틴어의 음운 체계에 맞게 단순화시킨 고전 시기 이후의 학구적 그리스어 발음을 따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p>
<p>Φίλαι(Phílai)의 기원전 5세기경 고전 아티카 발음은 [ˈpʰílai̯] 정도였을 것이다(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지방의 방언이 가장 영향력이 컸다). 로마의 엘리트 계층이 배운 학구적 발음도 비슷했을 것이다. 이는 고전 라틴어에서 Philae [ˈpʰilaɛ̯]가 되었다.</p>
<p>그런데 이미 언급한대로 그리스어의 αι(ai)는 고전 시기 이후에 단순모음으로 바뀌어 [ɛ]를 거쳐 [e]로 발음이 변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인 코이네 그리스어 발음에서 Φίλαι(Phílai)는 [ˈpʰilɛ]가 되었고 오늘날의 현대 그리스어에서 Φίλαι(Fílai)는 [ˈfile]로 발음한다. 그리스어 표기법 시안에서도 현대 그리스어의 Φίλαι(Fílai)는 &#8216;필레&#8217;로 적는다.</p>
<p>라틴어에서도 원래 이중모음을 나타내던 ae는 속라틴어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전 후기(3~6세기경)에는 [ɛ]로 발음이 바뀌었다. 그래서 중세 라틴어와 르네상스 이후의 신라틴어에서는 원래의 ae를 e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æ로 적기도 한다. 생물학에서 쓰이는 학명 등 과학 분야에서 쓰이는 라틴어는 신라틴어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지질 시대인 팔레오세의 &#8216;팔레오&#8217;는 고대 그리스어의 παλαιός(palaiós)에서 온 신라틴어 접두사 palaeo-에 해당한다.</p>
<p>외래어 표기 용례를 보면 Palestina를 &#8216;팔레스티나&#8217;로 적고 라틴어 표기법을 따른 것으로 표시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의 Παλαιστίνη(Palaistínē) &#8216;팔라이스티네&#8217;에서 유래한 이 지명은 고전 라틴어로 Palaestina &#8216;팔라이스티나&#8217;라고 했으며 Palestina는 신라틴어 형태이다. 지금은 영어 이름인 Palestine [ˈpælɨstaɪ̯n]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EPD"><small>EPD</small></a>,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LPD"><small>LPD</small></a> 의 통용 표기인 &#8216;팔레스타인&#8217;을 주로 쓴다(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원래 &#8216;팰리스타인&#8217;으로 쓰는 것이 원칙이나 &#8216;팔레스타인&#8217;을 관용 표기로 인정한다). 또 라틴어 표기법을 따랐다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고대 그리스어의 Αἰθιοπία(Aithiopía) &#8216;아이티오피아&#8217;에서 유래한 국명 Ethiopia는 &#8216;에티오피아&#8217;로 적는다. 고전 라틴어로는 Aethiopia &#8216;아이티오피아&#8217;라고 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3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3" style="width: 118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33"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1865_Spruner_Map_of_Arabia_and_Egypt_in_Antiquity_-_Geographicus_-_Arabia-spruner-1865.jpg" alt="" width="1188" height="8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1865_Spruner_Map_of_Arabia_and_Egypt_in_Antiquity_-_Geographicus_-_Arabia-spruner-1865.jpg 118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1865_Spruner_Map_of_Arabia_and_Egypt_in_Antiquity_-_Geographicus_-_Arabia-spruner-1865-300x227.jpg 3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1865_Spruner_Map_of_Arabia_and_Egypt_in_Antiquity_-_Geographicus_-_Arabia-spruner-1865-1024x775.jpg 1024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1865_Spruner_Map_of_Arabia_and_Egypt_in_Antiquity_-_Geographicus_-_Arabia-spruner-1865-768x581.jpg 768w" sizes="auto, (max-width: 1188px) 100vw, 118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3" class="wp-caption-text">Aethiopia 등 라틴어 지명을 쓴 카를 폰 슈프루너(Karl von Spruner)의 1865년작 역사 지도(<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1865_Spruner_Map_of_Arabia_and_Egypt_in_Antiquity_-_Geographicus_-_Arabia-spruner-1865.jpg">via Wikimedia Commons</a>)</figcaption></figure>
<p>외래어 표기 용례 중에 원 철자를 ae로 주면서 신라틴어 발음을 따라 &#8216;에&#8217;로 적은 예는 이보다도 많다. 고대 그리스어의 Ἀθῆναι(Athênai)에서 온 라틴어 Athenae는 &#8216;아테네&#8217;로, Θῆβαι(Thêbai)에서 온 Thebae는 &#8216;테베&#8217;로, Μυκῆναι(Mykênai)에서 온 Mycenae는 &#8216;미케네&#8217;로, Θερμοπύλαι(Thermopýlai)에서 온 Thermopylae는 &#8216;테르모필레&#8217;로, Νίκαια(Níkaia)에서 온 Nicaea는 &#8216;니케아&#8217;로, Ἀχαιμένης(Achaiménēs)에서 온 Achaemenes는 &#8216;아케메네스&#8217;로 적는다. 원어를 영어인 Aegean으로 표시한 &#8216;에게 해&#8217;도 Αἰγαί(Aigaí)에서 온 Aegae를 원어로 본다면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p>
<p>참고로 테베는 그리스의 지명이자 오늘날 룩소르의 일부에 해당하는 이집트의 고대 도시 이름이기도 한데 이와 같이 고대 이집트의 지명은 고대 그리스어 이름에서 온 라틴어 이름의 형태로 알려진 것이 많다. 이집트 고왕국의 수도였던 Memphis &#8216;멤피스&#8217;는 Μέμφις(Mémphis) &#8216;멤피스&#8217;에서 왔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Alexandria &#8216;알렉산드리아&#8217;는 Ἀλεξάνδρεια(Alexándreia) &#8216;알렉산드레(이)아&#8217;에서, 카이로의 북서쪽에 있는 Heliopolis &#8216;헬리오폴리스&#8217;는 Ἡλιούπολις(Hēlioúpolis) &#8216;헬리우폴리스&#8217;에서, 아스완의 유적지 Elephantine &#8216;엘레판티네&#8217;섬은 Ελεφαντίνη(Elephantínē) &#8216;엘레판티네&#8217;에서 왔다.</p>
<p>국명인 에티오피아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를 비롯한 정착된지 오래되고 지명도가 높은 이름에서 라틴어의 ae를 &#8216;에&#8217;로 적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ae를 단순모음으로 발음한 속라틴어로부터 발달한 로망 제어(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등)는 물론 현대 유럽의 언어에서는 하나같이 고전 라틴어의 ae에 해당하는 음을 전통적으로 단순모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로 아테네는 Atene [aˈtɛːne]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iPI"><small>DiPI</small></a> &#8216;아테네&#8217;, 테베는 Tebe [ˈtɛːbe]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iPI"><small>DiPI</small></a> &#8216;테베&#8217;이다. 고전 라틴어 발음을 따른다고 ae를 &#8216;아이&#8217;로 적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서 Caesar &#8216;카이사르&#8217; 등 고대 로마와 관련된 어휘는 표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고대 로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명과 지명은 ae를 &#8216;에&#8217;로 적던 기존의 표기를 그대로 둔 것이 대부분이다.</p>
<p>Philae의 경우 이탈리아어로는 File [ˈfiːle]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iPI"><small>DiPI</small></a> &#8216;필레&#8217;, 독일어로는 Philae [ˈfiːlɛ]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Aw"><small>DAw</small></a> 또는 Philä [ˈfiːlɛ]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uden"><small>Duden</small></a> &#8216;필레&#8217;, 프랑스어로는 Philæ [file]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DPF"><small>DPF</small></a> &#8216;필레&#8217;로 부른다. 영어에서는 전통적으로 Philae [ˈfaɪ̯liː] <a href="http://pronouncer.org/pronunciation-resources/#MWGD"><small>MWGD</small></a> &#8216;파일리&#8217;로 부르지만 Philae 자체가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라서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발음이다. 영어는 <a href="http://ko.wikipedia.org/wiki/%EB%8C%80%EB%AA%A8%EC%9D%8C_%EC%B6%94%EC%9D%B4">대모음 추이</a>의 결과로 라틴어에서 온 이름을 전통적으로 발음하는 방식이 다른 유럽 언어에 비해 원래의 라틴어 발음에서 상당히 멀어져 철자만 보고 라틴어계 어휘의 발음을 짐작하는 것이 꽤 까다롭다. 그래서인지 혜성 착륙 시도를 보도한 방송에서는 물론 유럽우주국 직원들도 다른 유럽 언어에서 쓰이는 발음을 흉내내어 영어로 [ˈfiːleɪ̯] &#8216;필레이&#8217;로 흔히 발음하는 듯하다. 영어에서는 어말에 [ɛ]가 올 수 없으므로 한글로 &#8216;필레&#8217;로 적는 발음은 영어로 불가능하다.</p>
<p>유럽우주국의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으며 관제 센터는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다. 유럽우주국의 공용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이며 탐사 로봇 필레의 제작에는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스위스, 아일랜드, 에스파냐,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캐나다,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가 참여했다. 그러니 특별히 Philae의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할 필요는 없고 프랑스어와 독일어에서 쓰는 발음에 따른 표기가 &#8216;필레&#8217;라는 것이 외심위의 최종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수가 있다.</p>
<p>참고로 미 항공우주국의 Apollo &#8216;아폴로&#8217; 계획은 영어 발음인 [əˈpɒloʊ̯] EPD, LPD 에 따르면 &#8216;어폴로&#8217; 계획으로 써야 하니 &#8216;아폴로&#8217;는 라틴어 이름으로 본 표기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 제정 이전인 1960~70년대 당시 썼던 것을 그대로 인정한 것으로 원래 영어 대신 라틴어 발음을 고려해서 정한 표기였다고 보기 어렵다. Apollo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Ἀπόλλων(Apóllōn) &#8216;아폴론&#8217;을 로마 신화에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쓴 라틴어 이름이다.</p>
<p>지금까지 여러 언어에서 쓰이는 Philae의 발음을 살펴보았는데 한글 표기는 어느 언어의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먼저 이집트의 지명으로서의 Philae부터 살펴보자.</p>
<figure id="attachment_107034"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4" style="width: 12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34"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S03_06_01_018_image_2377.jpg" alt="" width="1200" height="1151"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S03_06_01_018_image_2377.jpg 12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S03_06_01_018_image_2377-300x288.jpg 3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S03_06_01_018_image_2377-1024x982.jpg 1024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S03_06_01_018_image_2377-768x737.jpg 768w" sizes="auto, (max-width: 1200px) 100vw, 12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4" class="wp-caption-text">이집트의 필레 섬(&#8220;<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03_06_01_018_image_2377.jpg#/media/File:S03_06_01_018_image_2377.jpg">Egypt &#8211; Scene, Phylae</a>&#8220;. Brooklyn Museum Archives, Goodyear Archival Collection. Via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Wikimedia Commons</a>.)</figcaption></figure>
<p>외래어 표기법에서 지명의 표기는 원지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제3국의 발음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르도록 한다. 오늘날 이집트는 아랍어 사용국이므로 Philae는 현지어 이름이 아니다(아랍어 이름은 فيله‎ Fīlah [fiːla] &#8216;필라&#8217;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은 영어의 Philae &#8216;파일리&#8217;, 독일어의 Philae/Philä &#8216;필레&#8217;, 프랑스어의 Philæ &#8216;필레&#8217;, 이탈리아어의 File &#8216;필레&#8217; 등 라틴어의 Philae &#8216;필라이&#8217;에서 기원한 것들이다. 물론 현대 그리스어 Φίλαι(Filai) &#8216;필레&#8217;는 라틴어를 거치지 않은 고대 그리스어의 Φίλαι(Phílai) &#8216;필라이&#8217;의 직계손인데 그리스어 표기 시안을 보면 지명은 원칙적으로 현대 그리스어 표기법을 적용하게 되어있으니 그리스어로 표기한다 해도 &#8216;필레&#8217;가 맞다. 그러니 영어를 제외한 여러 언어에서 Philae 및 그 변형들은 한글로는 &#8216;필레&#8217;로 표기된다. Philae를 &#8216;필레&#8217;로 적는 것은 아테네, 테베, 미케네 등의 신라틴어식 표기 방식과도 일치한다. 그러니 이집트의 지명 Philae는 &#8216;필레&#8217;로 적을만한 근거가 충분하다.</p>
<p>로제타호가 지명 로제타의 한글 표기를 그대로 따른 것처럼 지명 Philae를 따른 탐사 로봇도 같은 한글 표기를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명의 표기를 잠시 제쳐두고 탐사 로봇의 이름 표기만 생각해보자. 우선 라틴어 이름으로 보고 표기한다면 실제 외래어 표기 용례에서 라틴어의 표기 원칙의 적용 범위는 고대 로마 관련된 표기에 한정되고 과학 분야에서 쓰이는 라틴어는 이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할만하다. 과학 분야의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 발음이 아니라 신라틴어 발음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유럽우주국의 세 공용어 가운데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기준으로 해도 &#8216;필레&#8217;이고 심지어 영어에서도 Philae의 전통적 발음인 &#8216;파일리&#8217; 대신 프랑스어와 독일어 발음을 흉내낸 &#8216;필레이&#8217;를 흔히 쓴다는 점이 탐사 로봇의 표기를 &#8216;필레&#8217;로 정하는 과정에서 고려되었을 수 있다.</p>
<p>외심위의 결정은 탐사 로봇의 이름인 Philae을 &#8216;필레&#8217;로 표기한다는 것이지 그 이름의 근원인 이집트의 지명 Philae의 표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지명 Philae도 &#8216;필레&#8217;로 적는 것이 합리적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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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 몽골 황제를 만나다: 중세 유럽인 이름 표기의 어려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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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끝소리]]></dc:creator>
		<pubDate>Thu, 15 Oct 2015 16:30:0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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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마르코 폴로(이탈리아어: Marco Polo [ˈmarko ˈpɔːlo], 1254년~1324년) 이전에도 몽골 제국의 황제를 만난 유럽인들이 있었다. 칭기즈 칸(Činggis Qaγan 칭기스 카간, 1162년경~1227년)이 세운 몽골 제국의 정복 활동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몽골 제국의 사한국(四汗國) 가운데 하나인 킵차크한국의 시조 바투 칸(Batu Qan, 1207년경~1255년)이 이끄는 몽골군은 1240년 동유럽의 키예프 대공국을 멸망시키고 이듬해에는 헝가리 평원을 휩쓸었다. 오스트리아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본 글은 원래 발음 관련 웹사이트 Pronouncer에 올렸다가 그림을 추가하여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p>
<p>마르코 폴로(이탈리아어: Marco Polo [ˈmarko ˈpɔːlo], 1254년~1324년) 이전에도 몽골 제국의 황제를 만난 유럽인들이 있었다.</p>
<p>칭기즈 칸(Činggis Qaγan 칭기스 카간, 1162년경~1227년)이 세운 몽골 제국의 정복 활동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몽골 제국의 사한국(四汗國) 가운데 하나인 킵차크한국의 시조 바투 칸(Batu Qan, 1207년경~1255년)이 이끄는 몽골군은 1240년 동유럽의 키예프 대공국을 멸망시키고 이듬해에는 헝가리 평원을 휩쓸었다. 오스트리아의 빈을 코앞에 둔 몽골군의 서진을 멈춘 것은 유럽인들의 저항이 아니라 본국에서 제2대 황제 오고타이 칸(Ögödei/Ögedei Qaγan &#8216;오고데이/오게데이 카간&#8217;, 1186년경~1241년)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바투 칸은 전통에 따라 다음 황제를 뽑기 위한 회의에 참여하러 정복 활동을 멈추고 수도 카라코룸(Qara Qorum, 오늘날의 몽골 중부)으로 돌아갔다.</p>
<p>이로 인해 유럽인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몽골군은 그들에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이들이 어디서 왔으며 언제 다시 돌아올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 4세(라틴어: Innocentius IV)는 몽골 제국에 여러 사절을 보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프란치스코회 수사 조반니 다피안 델카르피네(이탈리아어: Giovanni da Pian del Carpine [ʤoˈvanni da ˈpjan del ˈkarpine], 1185년경~1252년)는 카라코룸에서 제3대 황제 귀위크 칸(Güyüg Qaγan &#8216;구유그 카간&#8217;, 재위 1246년~1248년)의 즉위식을 지켜보고 침략과 살육의 중단을 요청하는 교황의 친서를 그에게 전달했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에서 서한을 보냈다는 것 외에는 교황이 어떤 존재인지 알 리가 없는 귀위크 칸은 교황과 휘하 군주들이 직접 그를 찾아와 복종을 맹세할 것을 강요하는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교황의 서한은 라틴어로, 귀위크 칸의 답장은 페르시아어로 썼다.</p>
<p>도미니크회 수사 롱쥐모의 앙드레(프랑스어: André de Longjumeau [ɑ̃dʁe də lɔ̃ʒymo] &#8216;앙드레 드 롱쥐모&#8217;, 1200년경~1271년경)도 같은 시기 인노첸시오 4세의 사절로서 몽골 제국을 방문, 오늘날의 이란 북서부의 타브리즈(Tabriz 페르시아어: تبریز Tabrīz [tæbˈriːz])까지 여행하여 거기서 만난 몽골 장군에게 교황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몇 년 후에 앙드레는 제7차 십자군 원정(1248년~1254년)을 주도한 프랑스의 &#8216;성왕(聖王)&#8217; 루이 9세(프랑스어: Louis IX [lwi nœf] &#8216;루이 뇌프&#8217;, 재위 1226년~1270년)의 사절로 몽골 제국을 다시 찾아 1249~50년의 겨울에 카라코룸 또는 그 근처로 추정되는 몽골 궁전까지 이르렀으나 귀위크 칸은 이미 죽고 그의 황후 오굴 카이미시(Oγul Qaimiš, 1251년 사망)가 섭정을 하고 있었다. 황후는 루이 9세의 서한을 알아서 복종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해마다 금과 은을 조공으로 보낼 것을 요구하는 답장을 보냈다. 루이 9세는 오굴 카이미시의 오만한 서한에 충격을 받고 사절을 보낸 것을 크게 후회했다.</p>
<h2>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의 몽골 제국 여행</h2>
<p>하지만 얼마 후 몽골 제국의 유럽 침공군을 이끌었던 바투 칸의 장남 사르타크(Sartaq, 1256년 사망)가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루이 9세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그와 연락을 취하고자 했다. 대신 앞선 사절단을 통해 받은 굴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왕이 보내는 정식 사절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플랑드르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프랑스어: Guillaume de Rubrouck [ɡijoːm də ʁybʁuk] &#8216;기욤 드 뤼브루크&#8217;, 네덜란드어: Willem van Rubroek [ˈʋɪləm vɑn ˈryːbruk] &#8216;빌럼 판 뤼브룩&#8217;, 1220년경~1293년경, 이하 &#8216;기욤/빌럼&#8217;)에게 비공식적으로 친서와 선물을 딸려 보냈다. 루이 9세가 머무르고 있던 아크레(라틴어: Acre, 오늘날의 이스라엘 북부 아코 ʻAkko עַכּוֹ)에서 먼저 콘스탄티노폴리스(라틴어: Constantinopolis, 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 İstanbul)로 간 기욤/빌럼은 현지에서 왕의 사절 자격으로가 아니라 프란치스코회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선교의 여행을 스스로의 의지로 동방으로 떠나는 것이라는 설교를 하는 등 공식 사절로 비쳐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580"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uck.jpg" alt="" width="760" height="324"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uck.jpg 76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uck-300x128.jpg 300w" sizes="auto, (max-width: 760px) 100vw, 760px" />1253년~1255년 몽골 제국을 방문한 기욤/빌럼의 여행 경로(출처: University of Washington)</p>
<p>12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출발한 기욤/빌럼의 일행은 정식 사절단이 아닌 탓에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를 거쳐 러시아 남부 볼가강 근처 사르타크의 주둔지에 이르렀다. 네스토리우스교 신자인 사르타크의 신하 한 명(기욤/빌럼은 그의 이름을 Coiac &#8216;코야크&#8217;로 적는다)이 기욤/빌럼을 사르타크에 소개해주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동방 기독교를 흔히 이르는 이름이다. 431년 에페수스(라틴어: Ephesus, 오늘날의 터키 에페스 Efes) 공의회에서 당시의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라틴어: Nestorius, 386년~450년)의 그리스도에 관한 이론을 이단으로 결정하고 그를 파문시켰을 때 페르시아의 교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페르시아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퍼진 기독교의 교파를 네스토리우스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교회 분열의 원인이 어찌되었든 이들 지역의 기독교가 꼭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을 따른 것은 아니며 &#8216;네스토리우스교&#8217;는 서방 기독교의 입장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해서 오늘날 학자들은 &#8216;동방 기독교&#8217;와 같은 중립적인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욤/빌럼이 쓴 용어인 &#8216;네스토리우스교&#8217;를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오늘날 동방 기독교는 이슬람교 등의 세력에 밀려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서남해안 일부 정도에만 남아 있지만 13세기 당시에는 서방 기독교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으며 신자 수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몽골 제국의 지도층에도 동방 기독교의 영향이 상당해서 칭기즈 칸의 막내 며느리이자 후에 원 세조가 되는 쿠빌라이 칸을 비롯한 네 아들을 모두 황제로 키운 소르칵타니(Sorqaqtani, 1252년 사망)는 독실한 네스토리우스교 신자였다.</p>
<p>사르타크는 기욤/빌럼에게 축복을 받고 그가 가지고 온 성경과 십자가를 살펴본 후 루이 9세의 친서를 확인했다. 기욤/빌럼은 라틴어로 된 원본을 미리 아랍어와 시리아어(Syriac, 서남아시아의 공통어로 쓰이던 중세 아람어)로 번역해왔지만 사르타크는 세 언어 모두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의 궁중에 아랍어와 시리아어를 하는 이들이 있어 서한의 내용을 몽골어로 설명해주었다. 사르타크는 자신의 권한만으로는 서한에 답할 수 없다며 아버지인 바투 칸에게 기욤/빌럼의 일행을 보냈다. 기욤/빌럼을 떠나보내면서 코야크와 서기 몇 명은 그에게 사르타크가 기독교인이라고 보고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사르타크는 기독교인도 타타르인도 아니고 몽골인이라는 것이었다(타타르인은 원래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간 튀르크계 부족 가운데 하나인 타타르족에 속한 이들을 이르지만 이에 무지한 유럽인들은 몽골인들도 타타르인으로 부르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8216;기독교인&#8217;을 종족 이름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욤/빌럼은 이를 눈치챘으면서도 사르타크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결론은 받아들인 듯하다. 사르타크가 그리스도를 믿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으로 볼 때 기독교인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대의 다른 기록들로 볼 때 사르타크는 실제 네스토리우스교 신자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기욤/빌럼은 서방 기독교인으로서의 편견 때문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다.</p>
<p>기욤/빌럼 일행은 볼가 강을 가로질러 바투 칸을 만나고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서한의 내용에 대한 답변은 수도 카라코룸에서 결정해야 한다며 또다시 떠넘겨졌다. 그래서 기나긴 여정 끝에 마침내 마르코 폴로가 태어난 해인 1254년, 카라코룸 근처에서 몽골 제국의 제4대 황제이자 칭기즈 칸의 손자인 몽케 칸(Möngke Qaγan &#8216;몽케 카간&#8217;, 재위 1251년~1259년)을 알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약 7개월 간 몽케 칸과 함께 머물면서 카라코룸에도 입성하고 네스토리우스교·불교·이슬람교 신자들과 함께 황제 앞에서 종교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황제를 개종시키는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1255년 유럽에 돌아온 후에 루이 9세에게 바친 그의 여정에 대한 기록은 몽골 제국의 지리와 문화, 특히 종교에 대한 상세한 사실 위주의 묘사로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p>
<p>이 기록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 아래 있던 서유럽과 중부 유럽의 공통어이던 라틴어로 썼으며 한 사본에 붙은 제목은 <em>Itinerarium fratris Willelmi de Rubruquis de ordine fratrum Minorum, Galli, anno grat. 1253 ad partes orientales</em>, 즉 《프랑스의 작은형제회 수도사 Willelmus de Rubruquis의 1253년 동방으로의 여정》이다. &#8216;작은형제회&#8217;는 프란치스코회의 다른 이름이며 Willelmi는 기욤/빌럼의 라틴어 이름인 Willelmus의 속격(屬格) 형태이다. 보통 우리가 라틴어 이름을 논할 때는 주격(主格) 형태를 기본형으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라틴어 이름 가운데는 제2변화 남성 단수형의 주격 어미인 -us &#8216;우스&#8217;로 끝나는 것이 많다(Julius &#8216;율리우스&#8217;, Augustus &#8216;아우구스투스&#8217; 등). 왜 우리가 &#8216;기욤&#8217; 또는 &#8216;빌럼&#8217;이라고 부르는 이름이 라틴어로 Willelmus인지는 뒤에 자세하게 설명한다.</p>
<p>뒤의 de Rubruquis는 기욤/빌럼의 출신지를 나타낸다. 성(姓)이 흔하지 않던 중세 인물은 흔히 출신지 또는 활동지로 구별한다. 기욤/빌럼이 속한 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의 창립자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이탈리아어: Francesco d&#8217;Assisi [franˈʧesko dasˈsiːzi] 프란체스코 다시시, 1181년경~1226년)는 아시시(오늘날의 이탈리아 중부) 출신이어서 그렇게 부른다(《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8216;프란체스코회&#8217;로 쓰지만 여기서는 천주교 통용 표기인 &#8216;프란치스코회&#8217;를 따른다). 또 잉글랜드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오컴의 윌리엄(영어: William of Ockham [ˈwɪl.jəm əv ˈɒk.əm] &#8216;윌리엄 오브 오컴&#8217;, 1287년경~1347년)은 영국 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오컴 출신이다. 이 지명의 현 철자는 Ockham이지만 오컴의 윌리엄의 저서에 나오는 유명한 원리인 &#8216;오컴의 면도날&#8217;은 옛 철자를 써서 Occam&#8217;s razor로 흔히 부른다. 한편 프랑스의 성직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프랑스어: Bernard de Clairvaux [bɛʁnaːʁ də klɛʁvo] &#8216;베르나르 드 클레르보&#8217;, 1090년~1153년)는 프랑스의 클레르보 수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었으니 출신지보다는 활동지가 이름이 된 경우이다.</p>
<h2>프랑스령 플랑드르의 뤼브루크/뤼브룩</h2>
<p>그러면 de Rubruquis가 의미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8220;~로부터&#8221;를 뜻하는 라틴어의 전치사 de의 목적어는 탈격(奪格) 형태가 쓰이므로 Rubruquis는 탈격형이다. 라틴어의 격변화에서 제1변화와 제2변화의 복수 탈격형에 어미 -is가 쓰인다. 그런데 이 여행기는 사본마다 저자를 나타내는 철자가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아서 Willelmi de Rubruquis 대신 Guillelmi de Rubrock, Willelmi de Rubruc, Willielmi de Rubruquis, Guilelmi de Rubruquis 등 다양한 표기가 쓰인다. 여기서 Rubrock, Rubruc 등에서는 그의 출신지를 탈격 어미 없이 썼다.</p>
<p>오늘날 프랑스 북부 노르(Nord [nɔːʁ]) 주에는 뤼브루크(프랑스어: Rubrouk [ʁybʁuk], 네덜란드어: Rubroeck [ˈryːbruk] &#8216;뤼브룩&#8217;)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12세기와 13세기 문헌에서 이 지명은 Rubruc, Ruburch, Rubrouch, Rubroc, Rubroec, Rubruech 등의 철자로 등장한다(출처). 그러므로 de Rubruquis는 이 마을 출신을 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기욤/빌럼의 출신지는 바로 이 뤼브루크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지명의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발음은 거의 비슷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 프랑스어의 어말 무성 파열음은 &#8216;으&#8217;를 붙여 적는데 네덜란드어의 어말 무성 파열음은 짧은 모음 뒤에서 받침으로 적는다는 규정 차이 때문에 한글 표기가 각각 &#8216;뤼브루크&#8217;와 &#8216;뤼브룩&#8217;으로 나뉜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581"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ouck_musee.jpg" alt="" width="1143" height="9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ouck_musee.jpg 1143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ouck_musee-300x236.jpg 3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ouck_musee-1024x806.jpg 1024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Rubrouck_musee-768x605.jpg 768w" sizes="auto, (max-width: 1143px) 100vw, 1143px" />프랑스 뤼브루크에 있는 뤼브루크의 기욤 박물관(Musée Guillaume de Rubrouck; 출처: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ubrouck_musee.jpg">Wikimedia Commons</a>)</p>
<p>네덜란드어에서는 간혹 그를 &#8216;라위스브룩의 빌럼(Willem van Ruysbroeck [ˈʋɪləm vɑn ˈrœy̯zbruk] &#8216;빌럼 판 라위스브룩&#8217;)&#8217;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Ruysbroeck은 오늘날의 브뤼셀 인근 마을인 라위스브룩(Ruisbroek [ˈrœy̯zbruk])의 옛 철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당시 라위스브룩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한 브라반트(네덜란드어: Brabant [ˈbraːbɑnt]) 공국령으로 만일 기욤/빌럼이 이곳 출신이었다면 자신을 &#8216;프랑스의 작은형제회 수도사&#8217;로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8216;라위스브룩의 빌럼&#8217;이라고 부르는 것은 &#8216;뤼스브룩의 얀(Jan van Ruusbroec [ˈjɑn vɑn ˈryːzbruk] &#8216;얀 판 뤼스브룩&#8217;, 1293년경~1381년)&#8217; 또는 &#8216;라위스브룩의 얀(Jan van Ruysbroeck [ˈjɑn vɑn ˈrœy̯zbruk] &#8216;얀 판 라위스브룩&#8217;)&#8217;으로 알려진 이곳 출신의 신비주의 신학자와의 혼동으로 인한 실수로 보인다.</p>
<p>한편 프랑스어에서는 그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라틴어의 탈격형을 아예 이름처럼 써서 &#8216;뤼브뤼키스(Rubruquis [ʁybʁykis])&#8217;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스파냐어에서도 &#8216;루브루키스(Rubruquis [ruˈbɾukis])&#8217;라고 흔히 부른다. 이와 비슷하게 피렌체 공화국의 빈치(이탈리아어: Vinci [ˈvinʧi], 오늘날의 이탈리아) 출신이라서 &#8216;빈치의 레오나르도&#8217;라는 뜻으로 &#8216;레오나르도 다빈치(이탈리아어: Leonardo da Vinci [leoˈnardo da ˈvinʧi], 1452년~1519년)&#8217;라고 불리는 화가이자 과학자, 발명가를 &#8216;다빈치&#8217;로 부르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다빈치는 성이 아니라 그냥 그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연구가들은 이름인 &#8216;레오나르도&#8217;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마찬가지로 출신지를 나타내는 말인 &#8216;뤼브뤼키스/루브루키스&#8217;보다는 이름인 &#8216;기욤/빌럼&#8217;으로 부르는 것이 나을 듯하다.</p>
<p>그런데 백과사전이나 역사책에서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을 소개할 때는 그를 프랑스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플랑드르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뤼브루크가 프랑스령 플랑드르(프랑스어: La Flandre française [la flɑ̃ːdʁ fʁɑ̃sɛːz → laflɑ̃dʁəfʁɑ̃sɛːz] &#8216;라 플랑드르 프랑세즈&#8217;, 네덜란드어: Frans-Vlaanderen [ˈfrɑns ˈvlaːndərə<em>n</em> → ˌfrɑnsˈflaːndərə<em>n</em>] &#8216;프란스플란데런&#8217;)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플랑드르는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을 이르는 이름으로 주로 쓰이지만 중세의 플랑드르는 프랑스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이 북해와 만나는 지역, 즉 지금의 벨기에 북서부와 여기에 맞닿은 프랑스 북부·네덜란드 남서부에 있던 백작령이었다. 플랑드르 백작은 프랑스 왕의 신하였으나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양쪽으로부터 봉토를 받았으며 별 간섭 없이 영지를 다스렸다. 플랑드르 백작령은 명목상 프랑스 왕국에 속했지만 실질적인 독립국이었는데 모직물 산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번창했기 때문에 이를 탐낸 프랑스 왕과 맞서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1297년~1305년 프랑스·플랑드르 전쟁) 그 후 백년 전쟁(1337년~1453년)에서도 잉글랜드 편이 되어 프랑스 왕과 다시 맞서 싸웠다. 왕과 신하가 서로 전쟁을 치른 셈인데 잉글랜드 왕도 당시에는 프랑스에 봉토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자국의 왕인 동시에 프랑스 왕의 신하였으니 봉건 시대의 중세 유럽은 오늘날의 국가 관계에 대한 상식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582"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1ef041cc.png" alt="" width="600"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1ef041cc.pn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1ef041cc-300x300.png 3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1ef041cc-150x150.png 15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플랑드르 백작부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잔/요하나(Jeanne de Constantinople/Johanna van Constantinopel) 시대(1200년~1244년)의 플랑드르 백작령과 에노(Hainaut) 백작령(출처: Wikimedia Commons)</p>
<p>플랑드르 백작령은 1369년 부르고뉴 공국에 합병되어 독립적인 영지의 지위를 상실한 뒤에도 명목상으로는 존속되어 신성 로마 제국,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 밑에 들어가는 복잡한 역사를 겪었으며 프랑스 혁명 전쟁 때인 1795년에 프랑스군에 점령되어 프랑스에 할양되면서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1815년 빈 회의에서 옛 플랑드르 백작령의 대부분은 네덜란드 연합왕국에 들어갔으며 벨기에의 분리독립 이후에는 대부분이 벨기에에 들어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한편 프랑스의 루이 14세(프랑스어: Louis XIV [lwi katɔʁz] &#8216;루이 카토르즈&#8217;, 재위 1643년~1715년)는 에스파냐와의 전쟁 끝에 1659년 피레네 조약을 통해 현재의 프랑스령 플랑드르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으며 계속된 영토 확장 활동을 통해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프랑스령 플랑드르 전체가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이 프랑스령 플랑드르를 제외한 플랑드르 백작령은 중세 프랑스 봉토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날의 프랑스에 속하지 않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중세 역사를 다룰 때 유독 플랑드르는 프랑스와 구별해서 다루며 그 출신 인물은 프랑스인이라기보다는 플랑드르인으로 보통 소개한다. 플랑드르 백작령의 남서부가 명목상의 프랑스 봉토를 넘어서 프랑스의 일부가 된 것은 후대에야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p>
<p>역사적으로 플랑드르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은 이웃하는 옛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던 지역과 함께 네덜란드어 방언을 쓰는 주민이 많았다. 그래서 14세기부터는 플랑드르와 브라반트 지역에서 쓰는 네덜란드어를 플랑드르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브라반트 지역에서 쓴 언어는 16세기경에 시작된 표준 네덜란드어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표준 네덜란드어라고 하면 오늘날의 네덜란드 영토에서만 발달했다고 여기기가 쉽지만 오늘날 브라반트 지역의 대부분은 벨기에에 속한다.</p>
<p>19세기에는 벨기에에서 사용 언어에 따라 지역을 구분할 때 옛 플랑드르 백작령과 옛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던 지역은 물론 옛 론(네덜란드어: Loon [ˈloːn])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까지 아울러 플랑드르라고 흔히 부르기 시작하였다. 옛 론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은 림뷔르흐(네덜란드어: Limburg [ˈlɪmbʏr<small>(ə)</small>x]) 주가 되었는데 이 이름은 중세의 림부르크(독일어: Limburg [ˈlɪmbʊrk])/랭부르(프랑스어: Limbourg [lɛ̃buːʁ])/림뷔르흐 공국에서 따왔다. 벨기에의 림뷔르흐 주의 동쪽에 접하는 네덜란드의 주도 같은 이름의 림뷔르흐 주인데 정작 중세의 림부르크/랭부르/림뷔르흐 공국의 중심부는 오늘날의 벨기에 남쪽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에 있었고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림뷔르흐 주와 거의 영토가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 역사를 따지면 잘 들어맞지 않는 이름이지만 어쨌든 오늘날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림뷔르흐 주를 합쳐 림뷔르흐라고 한다. 중세의 림부르크/랭부르/림뷔르흐 공국의 수도는 오늘날 프랑스어권의 마을인 랭부르(Limbourg)이므로 한글 표기에서는 지역을 일컫는 림뷔르흐와 마을을 일컫는 랭부르를 혼동할 염려가 없다. 림뷔르흐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언어는 표준 네덜란드어와 마찬가지로 고대 저지 프랑크어에서 유래했지만 이웃하는 독일, 룩셈부르크에서 쓰는 중부 프랑크어 방언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림뷔르흐어를 네덜란드어의 방언이 아닌 독자적인 지역 언어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벨기에를 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의 3개 언어권으로 나눌 때 림뷔르흐는 네덜란드어권으로 분류된다. 그러니 오늘날에는 원래의 플랑드르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 뿐만이 아니라 브라반트, 림뷔르흐도 아울러 플랑드르라고 하는 것이다.</p>
<p>한편 수도 랭부르를 포함하여 중세 림부르크/랭부르/림뷔르흐 공국의 남서쪽에서는 전통적으로 프랑스어와 비슷한 왈롱어(프랑스어: Wallon [ʽwalɔ̃])라는 언어를 썼다. 예전에는 왈롱어를 프랑스어의 일개 방언 정도로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지역 언어로 본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등지에서 쓰이는 로망어(통속 라틴어에서 분화한 언어)의 한 갈래를 갈리아로망어라고 하는데 프랑스어와 왈롱어가 둘 다 여기 속한다. 오늘날의 벨기에 남부 대부분에서 왈롱어가 쓰였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역시 갈리아로망어 계통의 피카르디어, 로렌어, 샹파뉴어 등이 쓰였지만 1795년 현 벨기에 영토가 프랑스에 합병되면서 다른 갈리아로망어계 지역 언어들이 프랑스어에 밀리기 시작하였으며 공교육의 언어로 프랑스어가 자리잡으면서 오늘날에는 젊은 층에서 전통 지역 언어를 듣기 힘들다. 하지만 &#8216;왈롱&#8217;은 갈리아로망어(오늘날에는 주로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인을 이르는 이름으로 계속 쓰이며 오늘날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을 &#8216;플랑드르&#8217;라고 부르는 것처럼 벨기에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은 왈로니(프랑스어: Wallonie [ʽwalɔni])라고 부른다.</p>
<p>《프란다스의 개》 또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으로 흔히 알려진 소설이 있다. 영국 소설가 위다(영어: Ouida [ˈwiːd.ə], 1839년~1908년)의 1872년 작품으로 원 제목은 A Dog of Flanders이다. &#8216;프란다스/플란다스&#8217;는 플랑드르의 영어 이름인 플랜더스(영어: Flanders [ˈflæˑnd.ə<em>ɹ</em>z])가 일본어 중역을 통해서 들어온 표기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벨기에 안트베르펜(네덜란드어: Antwerpen [ˈɑntʋɛr<small>(ə)</small>pə<em>n</em>]; 네덜란드어 표기법을 따르면 &#8216;안트베르펀&#8217;이지만 아직까지 표준 표기는 이전의 &#8216;안트베르펜&#8217;) 근처의 작은 마을인데 안트베르펜은 원래 플랑드르 백작령이 아니라 브라반트 공국에 속한 도시였다. 즉 중세 백작령을 가리키던 &#8216;플랑드르&#8217;라는 지명의 기준이 변하여 같은 네덜란드어권인 이웃 지역도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p>
<p>그래서 오늘날 플랑드르어(네덜란드어: Vlaams [ˈvlaːms] 플람스, 프랑스어: flamand [flamɑ̃] 플라망, 영어: Flemish [ˈflɛm.ɪʃ] 플레미시)라고 하면 벨기에에서 쓰는 네덜란드어를 이른다. 그러니 한국어에서는 이 지역을 이를 때 네덜란드어 이름인 &#8216;플란데런(네덜란드어: Vlaanderen [ˈvlaːndərə<em>n</em>])&#8217; 대신 프랑스어 형태를 딴 &#8216;플랑드르(프랑스어: Flandre [flɑ̃ːdʁ])&#8217;를 쓰는 것은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어는 제2외국어로도 많이 배우고 한글 표기도 오래 전부터 정립된 반면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은 2005년에야 외래어 표기법에 추가되었다. &#8216;플랑드르&#8217;가 표준 표기로 정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p>
<p>또 네덜란드어 표기법이 추가되었다 하더라도 전통 표준 발음에서 멀어진 네덜란드식 신형 발음에 지나치게 치우쳐 벨기에의 고유명사 표기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점도 있다. 어두의 /v/를 예로 들자면 전통 표준 발음에서는 언제나 [v]로 발음되었고 옛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아직도 어두에서 거의 완전한 유성음 [v]로 발음된다. 벨기에의 나머지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에서는 음성학적으로 어두에서 약간의 무성음화가 관찰되며 이는 [v̥]로 나타낼 수 있고 아직은 [f]와 구별이 가능하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는 북쪽으로 갈수록 무성음화가 진전되어 어두에서 [f]와 합쳐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북부 프리슬란트 발음에 이르러는 어두 뿐많이 아니라 어중에서도 [f]로 발음되는 경향이 강해 /v/ 음소가 아예 /f/와 합쳐진 상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어권 전체를 보았을 때 이는 지역에 따라 같은 음소 /v/가 위치에 따라 실현되는 변이음의 차이로 봐야 하며 네덜란드어 사전에 쓰이는 발음 표시에서는 아직도 전통 표준 발음에 따라 모든 위치에서 [v]와 [f]를 구별한다. 그런데 네덜란드어 표기법에서는 네덜란드 일부에서 쓰이는 발음 형태를 기준으로 삼았는지 어두의 v는 &#8216;ㅍ, 프&#8217;로 적고 그 외에는 모두 &#8216;ㅂ, 브&#8217;로 적도록 하였다. 그래서 Vlaanderen [ˈvlaːndərə<em>n</em>]을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8216;블란데런&#8217;이 아니라 &#8216;플란데런&#8217;이다(Frans-Vlaanderen [ˈfrɑns ˈvlaːndərə<em>n</em> → ˌfrɑnsˈflaːndərə<em>n</em>] 프란스플란데런 에서는 앞 자음의 영향으로 /v/가 [f]로 무성음화한다).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어두의 마찰음 [f, s]가 [v, z]로 유성음화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의 어두 [v]는 다른 언어의 [f]에 대응되는 경우가 많다. Vlaanderen에서는 어두의 v-가 이웃 언어에서는 f-로 대체되어 프랑스어로는 Flandre, 영어로는 Flanders로 부르니 &#8216;플란데런&#8217;으로 적는 것이 그런데로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네덜란드어 표기법의 추가로 네덜란드어 이름에 흔히 등장하는 전치사 van [vɑn]을 &#8216;반&#8217; 대신 &#8216;판&#8217;으로 적게 한 것은 부작용이 더 많지 않나 한다. 화가 Vincent van Gogh [ˈvɪnsɛnt vɑn ˈɣɔχ → ˈvɪnsɛntfɑŋˈɣɔχ]는 &#8216;*고흐, 빈센트 반&#8217;으로 쓰는 관용 표기를 표준 표기로 인정하여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어 표기법을 적용하지 않았다(여기서 van [vɑn]은 앞뒤 자음에 동화하여 [fɑŋ]으로 발음된다). 벨기에의 전 총리 Herman Van Rompuy [ˈɦɛɾmɑn vɑn ˈrɔmpœy̯]는 2009년 3월 25일 제83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라 &#8216;판롬파위, 헤르만&#8217;으로 정했다가 벨기에 대사관의 요청으로 2010년 9월 15일 제92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벨기에에서 쓰이는 발음에 더 가까운 &#8216;반롬푀이, 헤르만&#8217;으로 고쳤다.</p>
<p>프랑스령 플랑드르의 언어 상황은 어땠을까? 전통적으로 됭케르크(프랑스어: Dunkerque [dœ̃kɛʁk], 네덜란드어: Duinkerke [ˈdœy̯ŋkɛr<small>(ə)</small>kə] 다윙케르커)를 중심으로 한 북부에서는 플랑드르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어 방언이 쓰였으며 릴(프랑스어: Lille [lil], 네덜란드어: Rijsel [ˈrɛi̯səl] 레이설)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는 프랑스어와 비슷한 갈리아로망어 계통의 피카르디어 방언이 쓰였다. 뤼브루크/뤼브룩은 네덜란드어권인 북부에 속한다. 그러니 이곳 출신인 기욤/빌럼의 모어는 중세 네덜란드어 방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파리에서도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프랑스 왕을 섬겼으니 고대 프랑스어도 구사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뤼브루크/뤼브룩은 프랑스령이므로 프랑스어에 따른 표기인 &#8216;뤼브루크&#8217;로 써야 하겠지만 중세에는 네덜란드어 방언이 우세한 플랑드르 백작령의 일부였으니 13세기의 시대적 배경에 맞는 표기는 네덜란드어를 따른 &#8216;뤼브룩&#8217;일 것이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583"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275d0bdb.png" alt="" width="483"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275d0bdb.png 483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4/05/f0074568_561fd275d0bdb-242x300.png 242w" sizes="auto, (max-width: 483px) 100vw, 483px"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 프랑스령 플랑드르의 언어 상황을 나타낸 지도. 됭케르크(Dunkerque)를 포함한 북부는 네덜란드어 방언을, 릴(Lille)을 포함한 남부는 프랑스어와 가까운 피카르디어 방언을 썼다(출처: Wikimedia Commons).</p>
<h2>기욤과 빌럼, 윌리엄과 윌렐무스</h2>
<p>프랑스어의 기욤(Guillaume [ɡijoːm]), 네덜란드어의 빌럼(Willem [ˈʋɪləm])은 고대 고지 독일어의 willo와 helm이 결합한 Willahelm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Willahelm은 Wilhelm이 되어 현대 독일어의 빌헬름(Wilhelm [ˈvɪlhɛlm])으로 이어진다. 독일어에서 철자 w의 발음이 양순 연구개 접근음 [w]에서 순치 마찰음 [v]로 바뀐 것은 17세기경이니 Willahelm~Wilhelm의 첫 자음은 원래 [w]였다. 갈리아로망어에서는 게르만어 이름 Willahelm~Wilhelm을 Willelmu라는 형태로 받아들였다. 중세에 흔히 쓴 라틴어 형태 가운데 하나인 Willelmus도 여기서 나왔다.</p>
<p>갈리아로망어 가운데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쓰인 고대 노르만어(Old Norman)에서는 이것이 다시 Williame과 같은 형태로 변했다(노르만족은 흔히 프랑스어를 썼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그들의 언어인 고대 노르만어는 독자적인 갈리아로망어 계통의 언어이다). 이 이름은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잉글랜드 왕이 된 노르망디 공 &#8216;정복왕&#8217;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ˈwɪl.jəm ðə ˈkɒŋk.əɹ.ə<em>ɹ</em>] &#8216;윌리엄 더 콩커러&#8217;, 재위 1066년~1087년)의 영향으로 고대 영어(앵글로색슨어)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오늘날 영어에서는 윌리엄(William [ˈwɪl.jəm])이란 형태로 쓴다. 고대 영어에서도 처음에는 이 이름을 Willelm과 같은 형태로 썼지만 잉글랜드 지배층의 언어가 된 고대 노르만어의 영향으로 차츰 William으로 통일된 것이다.</p>
<p>영어와 중세 노르만어에서는 원래의 [w] 음이 보존되었지만 파리 중심으로 쓰인 중앙 프랑스어에서는 이 음소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ɡʷ~ɡw]로 대체되었다. 이는 이후 [ɡ]로 단순화되어 현대 프랑스어의 기욤(Guillaume [ɡijoːm])이 된 것이다. 다른 로망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 같은 이름이 이탈리아어로는 굴리엘모(Guglielmo [ɡuʎˈʎɛ⟮e⟯lmo]), 에스파냐어로는 기예르모(Guillermo [ɡiˈʎeɾmo]), 포르투갈어로는 길례르므(Guilherme [ɡiˈʎɛɾmɨ]), 카탈루냐어로는 길롐(Guillem [ɡiˈʎɛm])이 되었다. 로망어에서 차용어의 [w]를 [ɡʷ~ɡw]로 대체한 예는 이 밖에도 많다. 예를 들어 신대륙에 분포한 초식 도마뱀 몇 종을 가리키는 이름인 &#8216;이구아나&#8217;도 카리브 해 원주민의 언어인 타이노어(Taino) 단어 iwana를 에스파냐어에서 &#8216;이과나(iguana [iˈɣ̞wana])&#8217;로 받아들인 결과이다.</p>
<p>여담으로 영어에는 [w]를 쓴 고대 노르만어 형태와 [ɡʷ~ɡw]를 쓴 중앙 프랑스어 형태가 공존하는 예가 더러 있다. 노르만어계 warden과 프랑스어계 guardian, warranty와 guarantee, wile과 guile, wage와 gauge 등을 들 수 있다. 1154년 중앙 프랑스어권인 앙주(Anjou [ɑ̃ʒu])의 백작이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여 헨리 2세(Henry II [ˈhɛn.ɹi ðə ˈsɛk.<em>ə</em>nd] 헨리 더 세컨드, 재위 1154년~1189년)로 즉위하고 중앙 프랑스어가 잉글랜드 왕실의 언어가 되면서 중세 영어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p>
<p>한편 네덜란드어에서는 [w]가 대부분의 환경에서 순치 접근음 [ʋ]로 바뀌었기 때문에 빌럼(Willem [ˈʋɪləm])이 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v]에 가까운 음으로 보고 &#8216;ㅂ&#8217;으로 적도록 했지만 사실 순치음인 [v]와 접근음인 [w]의 중간음에 가깝고 네덜란드어에서 w /ʋ/와 v /v/는 서로 구별되는 음소이기도 하다. 또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발음에서는 보통 양순 접근음 [β̞]로 발음되며 전설모음 /i, ɪ, e/ 앞에서는 변이음 [ɥ]도 흔히 관찰되므로 &#8216;윌럼&#8217;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p>
<p>그러니 기욤, 빌럼, 윌리엄 등은 원래 같은 이름에서 온 것이다. 물론 현대에는 이들이 각각 다른 이름이다. Guillaume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프랑스어권 출신의 사람은 다른 언어권에 가도 Guillaume으로 불린다. 심지어 프랑스어권 출신이 아니라도 프랑스어식 이름인 Guillaume으로 불릴 수도 있다.</p>
<p>하지만 중세 인물의 이름, 특히 왕족이나 교황의 이름은 흔히 각 언어에 맞는 번역명을 사용한다. 그래서 같은 인물을 프랑스어로는 Guillaume de Rubrouck, 네덜란드어로는 Willem van Rubroek, 영어로는 William of Rubruck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왕족과 교황의 이름은 번역명을 쓰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현 교황 프란치스코(라틴어: Franciscus)는 이탈리아어로는 프란체스코(Francesco [franˈʧesko]), 영어로는 프랜시스(Francis [ˈfɹæˑns.ɨs]), 프랑스어로는 프랑수아(François [fʁɑ̃swa]) 등으로 부른다. 마치 중국의 역사 인명을 동아시아 각국에서 각각의 한자음을 써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한자 문화권에서 군주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묘호 太宗은 한국에서는 &#8216;태종&#8217;으로 부르고 표준 중국어에서는 &#8216;타이쭝(Tàizōng)&#8217;, 일본어에서는 &#8216;다이소(たいそう Taisō)&#8217;, 베트남어에서는 &#8216;타이똥(Thái Tông)&#8217;으로 부른다.</p>
<p>그러니 역사 인물을 다룬 글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는 이에 주의하여 각 이름에 어울리는 원 언어를 골라야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라파엘로(이탈리아어: Raffaello [raffaˈɛllo], 1483년~1520년)를 영어 이름인 Raphael에 이끌려 &#8216;라파엘&#8217;로 쓰거나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프랑스어: Jean Calvin [ʒɑ̃ kalvɛ̃], 1509년~1564년)을 영어 이름인 John Calvin에 이끌려 &#8216;존 캘빈/칼빈&#8217;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p>
<p>대신 중세의 인물 가운데는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의 경우처럼 오늘날의 국가 구분의 기준에 명쾌하게 들어맞지 않아 원 언어를 무엇으로 잡을지 정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의 출신지인 뤼브루크는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어권이며 13세기에는 네덜란드어가 주로 쓰인 실질적인 독립국인 플랑드르 백작령의 일부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원어를 네덜란드어로 간주하고 &#8216;뤼브룩의 빌럼&#8217;으로 쓰는 것이 좋겠지만 오늘날 그의 출신지는 프랑스에 속해있으며 그가 프랑스 왕을 섬겼다는 점, 또 국제적으로 프랑스어가 네덜란드어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 본 글에서는 프랑스어식 표기와 네덜란드어식 표기를 병기하되 프랑스어식 표기를 우선시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네덜란드어식 명칭을 우선시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p>
<p>그러면 그가 라틴어로 여행기를 기록했으니 아예 라틴어 이름 Willelmus에 따라 &#8216;윌렐무스&#8217;로 적는 것은 어떨까? 중세 인물의 이름을 라틴어 이름에 따라 적은 전례로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8216;토마스 아퀴나스(라틴어: Thomas Aquinas, 이탈리아어: Tommaso d&#8217;Aquino [tomˈmaːzo daˈkwiːno] &#8216;톰마소 다퀴노&#8217;, 1225년~1274년)&#8217;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기욤/빌럼의 경우 라틴어 이름이 통일되어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의 저서에도 Willelmus, Willielmus, Guillelmus, Guilelmus 등 사본마다 그의 이름 표기가 달라지기 일쑤였다. 또 오늘날 프랑스어의 기욤, 네덜란드어의 빌럼, 영어의 윌리엄, 이탈리아어의 굴리엘모 등에 해당하는 이름은 라틴어로 이탈리아어에 가깝게 &#8216;굴리엘무스(Gulielmus)&#8217;로 주로 통일해서 쓰니 본래의 형태와 차이가 있다.</p>
<p>설령 라틴어 이름에 따라 적는다고 해도 중세 유럽의 라틴어 표기는 까다로운 문제가 많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에 포함된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 가운데 라틴어의 표기 원칙이 있지만 몇몇 글자의 표기에 대해서만 쓴 정도이고 고전 라틴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중세 유럽의 인명에 적용하기는 어색하다. 당장 Willelmus의 w는 고전 라틴어에는 없던 글자이니 당연히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고전 라틴어에서 v는 자음으로 쓰일 때는 [w]로 발음되었으나 라틴어의 표기 원칙에서는 &#8216;ㅂ&#8217;으로 적는다(원래 라틴어에는 모음 글자 u와 자음 글자 v의 구별이 없고 둘 다 V 같이 생긴 글자로 나타냈다). 하지만 중세 라틴어에서는 자음 글자 v가 [v]로 발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게르만어 등 다른 언어에 나타나는 [w] 음을 적기 위해 w라는 글자를 새로 도입했다. 그러니 당대의 발음을 따른다면 Willelmus는 &#8216;윌렐무스&#8217;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p>
<p>하지만 라틴어 이름을 현대 유럽 언어의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살펴본대로 w로 적는 음의 발음은 후에 네덜란드어에서 [ʋ], 독일어에서 [v]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Willelmus의 현대 네덜란드어식 발음을 따르면 &#8216;빌렐뮈스&#8217;, 현대 독일어식 발음을 따르면 &#8216;빌렐무스&#8217;가 된다. 실제로 근세 이후 유럽의 라틴어식 이름은 보통 현대 유럽 언어의 발음대로 흔히 표기한다. 예를 들어 라틴어 이름으로만 알려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Desiderius Erasmus (1466년~1536년)는 네덜란드어 발음 [deziˈdeːrijʏ⟮ə⟯s eˈrɑsmʏ⟮ə⟯s])에 따라 &#8216;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8217;로 적는 것이 네덜란드어 표기법이 고시된 후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 대신 예전에 쓰던 라틴어식 표기인 &#8216;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8217;도 여전히 널리 쓰인다.</p>
<p>그나마 기욤/빌럼의 출신지는 현재의 프랑스 뤼브루크라는 것에 큰 이견이 없어 상대적으로 수월한 경우이다.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유럽 음악을 지배한 이른바 플랑드르 악파의 음악가들은 출신지가 어디인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도 수두룩하다. 작곡가 요하네스 오케헴(네덜란드어: Johannes Ockeghem [joˈɦɑnəs ˈɔkəɣɛm], 프랑스어: Jean Ockeghem [ʒɑ̃ ɔkəɡɛm] &#8216;장 오크겜&#8217;, 1420년경~1497년)은 한때 플랑드르 지방, 특히 오늘날 오케헴(네덜란드어: Okegem [ˈoːkəɣɛm])으로 알려진 마을이 있는 현재의 벨기에 북부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1993년 발견된 옛 문서에 의하면 그는 사실 옛 에노(프랑스어: Hainaut [ʽɛno]) 백작령에 속한 현재의 벨기에 남부의 생길랭(프랑스어: Saint-Ghislain [sɛ̃ ɡilɛ̃])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게 맞다면 그는 네덜란드어권이 아니라 피카르디어권 출신이다. 피카르디어는 프랑스어에 가깝고 오늘날의 생길랭은 프랑스어권이니 출신지를 따지자면 프랑스어식 이름을 기준으로 &#8216;장 오크겜(Jean Ockeghem)&#8217;으로 불러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예전부터 플랑드르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식 이름으로 이미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프랑스어에서도 그를 네덜란드어식 이름인 Johannes로 부르는 일이 더 흔하다.</p>
<p>참고로 네덜란드어 Johannes는 2음절 이상의 단어에서 마지막 음절의 e를 &#8216;어&#8217;로 적도록 하는 표기 규정에 따라 최근에 &#8216;요하너스&#8217;로 심의된 예도 있지만 기존 용례에서는 대체로 관용 표기를 인정한 &#8216;요하네스&#8217;로 쓰므로 여기서도 &#8216;요하네스&#8217;로 썼다. 대신 Ockeghem [ˈɔkəɣɛm], Okegem [ˈoːkəɣɛm]은 마지막 음절의 e가 [ə]가 아니라 [ɛ]로 발음되므로 기존 표기 용례 &#8216;위트레흐트(Utrecht [ˈyːtrɛxt])&#8217;에서처럼 &#8216;오케험&#8217; 대신 &#8216;오케헴&#8217;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p>
<h2>몽골어 표기에 관하여</h2>
<p>본 글에서 몽골 제국 관련 인명과 지명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기를 따르고 괄호 안에 몽골 문자 표기를 블라디미르초프·모스타르트(Vladimirtsov–Mostaert) 표기법에 따라 로마자로 옮겨 적는다. 원래의 몽골 문자 표기는 글꼴 지원 문제로 생략하였다. 현대 몽골어는 독립국 몽골의 표준어인 할하어(Khalkh, 몽골어 키릴 문자: Халх &#8216;할흐&#8217;)와 중국에 속한 내몽골 자치구의 표준어인 차하르어(몽골 문자 전사: Čaqar &#8216;차카르&#8217;, 몽골어 병음: Qahar &#8216;차하르&#8217;)가 공존한다. 몽골의 할하어는 키릴 문자로 표기하며 중국의 차하르어는 몽골 문자로 표기한다. 몽골 문자는 1204년경 위구르 문자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그 철자법은 13세기의 중세 몽골어 발음을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 현대 몽골어 발음과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현재로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중세 몽골어나 현대 몽골어 표기 규정이 없고 특히 중세 몽골어의 경우 기존 표기 용례에서도 완전한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여기서 괄호 안에 로마자로 쓴 중세 몽골어 형태 옆에 작은 글씨로 쓴 한글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는 언어들에 적용되는 원칙을 최대한 따랐으며 γ, q는 각각 &#8216;ㄱ, ㅋ&#8217;으로, ö, ü는 각각 &#8216;오, 우&#8217;로 썼다. 유럽 언어의 표기에서 ö, ü는 보통 전설 모음을 나타내며 &#8216;외, 위&#8217;로 적는데 실제로 기존 학설에서는 중세 몽골어에서 ö, ü, o, u가 각각 /ø, y, o, u/를 나타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현대 몽골어계 언어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발음을 들어 각각 /o, u, ɔ, ʊ/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741년에 간행된 조선 시대의 몽골어 교본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에서는 ö, ü, o, u를 각각 &#8216;워, 우, 오, 오&#8217;로 썼다는 점도 ö, ü가 전설 모음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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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성 탐사선 주노와 그리스·로마 신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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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끝소리]]></dc:creator>
		<pubDate>Mon, 01 Aug 2016 15:44:53 +0000</pubDate>
				<category><![CDATA[표기 용례]]></category>
		<category><![CDATA[그리스신화]]></category>
		<category><![CDATA[라틴어]]></category>
		<category><![CDATA[로마신화]]></category>
		<category><![CDATA[영어]]></category>
		<category><![CDATA[유노]]></category>
		<category><![CDATA[이탈리아어]]></category>
		<category><![CDATA[주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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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1년 8월 5일 발사된 미국 항공 우주국의 목성 탐사선 &#8216;주노&#8217;가 5년 가까운 여정 끝에 미국 시각으로 지난 7월 4일 밤 목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국내 보도에서 하나같이 쓰고 있는 표기 &#8216;주노&#8217;는 영어 이름 Juno [ˈʤuːnoʊ̯]를 따른 것이다. 이 이름은 로마 신화의 유노(라틴어: Juno)에서 왔다. 즉 탐사선 이름은 라틴어 발음에 따른 표기인 &#8216;유노&#8217; 대신 영어 발음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span style="font-size:0.9em; color:#5C78C6;">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span><br>
<span style="color:#C5D2DB">—</span>
<p>2011년 8월 5일 발사된 미국 항공 우주국의 목성 탐사선 &#8216;주노&#8217;가 5년 가까운 여정 끝에 미국 시각으로 지난 7월 4일 밤 목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국내 보도에서 하나같이 쓰고 있는 표기 &#8216;주노&#8217;는 영어 이름 Juno [ˈʤuːnoʊ̯]를 따른 것이다. 이 이름은 로마 신화의 유노(<small>라틴어:</small> Juno)에서 왔다. 즉 탐사선 이름은 라틴어 발음에 따른 표기인 &#8216;유노&#8217; 대신 영어 발음에 따른 표기인 &#8216;주노&#8217;로 쓰고 있는 것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7085"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85" style="width: 108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85"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JUNO_-_PIA13746.jpg" alt="" width="1080" height="9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JUNO_-_PIA13746.jpg 108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JUNO_-_PIA13746-300x250.jpg 3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JUNO_-_PIA13746-1024x853.jpg 1024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JUNO_-_PIA13746-768x640.jpg 768w" sizes="auto, (max-width: 1080px) 100vw, 108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85" class="wp-caption-text">목성 궤도에 진입한 주노 탐사선을 그린 상상도(<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UNO_-_PIA13746.jpg">출처</a>)</figcaption></figure>
<p>로마 신화의 유노는 그리스 신화의 우두머리 여신인 헤라(<small>고대 그리스어:</small> Ἥρα <i>Hḗra</i>)에 해당한다. 헤라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small>고대 그리스어:</small> Ζεύς <i>Zeús</i>)의 누이이자 아내이다. 제우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유피테르(<small>라틴어:</small> Juppiter)라고 부른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신들의 이름만 그에 대응되는 로마 신들의 이름으로 바꾸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86"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86" style="width: 24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86"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af407d65.jpg" alt="" width="248"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af407d65.jpg 24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af407d65-124x300.jpg 124w" sizes="auto, (max-width: 248px) 100vw, 24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86" class="wp-caption-text">2세기경 로마에서 제작된 유노의 대리석상. 코·입·목·팔·발 등은 후대에 복원한 것으로 천문의 여신인 우라니아(<small>고대 그리스어:</small> Οὐρανία <i>Ouranía</i>, <small>라틴어:</small> Urania)인 것처럼 한 손에 구체를 든 모습도 추가되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uno_Louvre_Ma485.jpg">출처</a>).</figcaption></figure>
<p>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조는 그리스 신화라는 것을 인정하여 신들의 이름도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따라 &#8216;제우스&#8217;, &#8216;헤라&#8217;로 부르는 것이 친숙하지만 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는 오랫동안 라틴어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로마식 이름을 주로 썼다. 그래서 이런 로마식 이름은 대개 현대 유럽 언어, 특히 영어를 통해 접하기 마련이고 영어식 발음으로 친숙한 것이 많다. 미와 사랑의 여신은 고대 그리스어 이름에 따라 &#8216;아프로디테(Ἀφροδίτη <i>Aphrodítē</i>)&#8217;라고 부르거나 영어 이름에 따라 &#8216;비너스(Venus [ˈviːnəs])&#8217;라고 부르지 라틴어 이름에 따라 &#8216;베누스(Venus)&#8217;로 부르는 것은 낯설다. 사실 고전 라틴어에서 v의 발음은 [w]이었으니 &#8216;웨누스&#8217;로 쓰는 것이 원래의 발음에 가깝겠지만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 가운데 포함된 라틴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는 라틴어의 v의 표기를 &#8216;ㅂ&#8217;으로 통일하였다. 그의 아들인 사랑의 신은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따른 &#8216;에로스(Ἔρως <i>Érōs</i>)&#8217; 또는 영어 이름을 따른 &#8216;큐피드(Cupid [ˈkjuːpᵻd])&#8217;로 친숙하지 라틴어 이름인 &#8216;쿠피도(Cupido)&#8217;는 처음 듣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p>
<p>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 언어에서 목성은 유피테르와 이름이 같다. 영어의 Jupiter [ˈʤuːpᵻtə<i>ɹ</i>] <small>주피터</small>, 독일어의 Jupiter [ˈjuːpitɐ] <small>유피터</small>, 프랑스어의 Jupiter [ʒypitɛʁ] <small>쥐피테르</small> 등은 로마 신의 이름인 동시에 목성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라틴어에서는 Juppiter로 주로 쓰였지만 현대 유럽 언어에서는 보통 p가 하나인 형태로 쓰인다.</p>
<p>로마 시대에 알려져 있던 나머지 행성들도 로마 신의 이름을 땄다. 수성은 그리스 신화의 전령신 헤르메스(Ἑρμῆς <i>Hermês</i>)에 해당하는 메르쿠리우스, 금성은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베누스, 화성은 전쟁의 신 아레스(Ἄρης <i>Árēs</i>)에 해당하는 마르스, 토성은 농경의 신인 티탄족 크로노스(Κρόνος <i>Krónos</i>)에 해당하는 사투르누스로 불렀다.</p>
<p>1781년에 발견된 천왕성은 예외적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Οὐρανός <i>Ouranós</i>)를 라틴어화한 Uranus로 이름지어졌다. 그리스 신화의 우라노스에 대응하는 로마 신은 카일루스(<small>라틴어:</small> Caelus)이다.</p>
<p>그 후에는 다시 행성에 로마 신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부활되어 1846년 발견된 해왕성은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Ποσειδῶν <i>Poseidôn</i>)에 해당하는 로마 신인 넵투누스의 이름을 땄고 지금은 왜행성으로 분류되지만 1930년 발견된 후 오랫동안 행성으로 여겨졌던 명왕성도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ᾍδης <i>Hāídēs</i> <small>하이데스</small>)에 해당하는 로마 신인 플루토의 이름을 땄다. 고전 그리스어 이름을 따르면 &#8216;하이데스&#8217;로 써야 하지만 긴 이중모음 ᾳ(āi)의 발음이 변하여 나중에 α(a)와 합쳐졌기 때문에 이를 라틴어화한 Hades를 따라 &#8216;하데스&#8217;로 쓰는 것이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표준국어대사전》 기준).</p>
<table border="1" width="100%" cellspacing="0" cellpadding="4">
<tbody>
<tr valign="top">
<td></td>
<td>라틴어</td>
<td>영어</td>
<td>독일어</td>
<td>프랑스어</td>
</tr>
<tr valign="top">
<td>수성</td>
<td>Mercurius <small>메르쿠리우스</small></td>
<td>Mercury [ˈmɜː<i>ɹ</i>kju⟮ə⟯ɹi] <small>머큐리</small></td>
<td>Merkur [mɛʁˈkuːɐ̯] <small>메르쿠어</small></td>
<td>Mercure [mɛʁkyʁ] <small>메르퀴르</small></td>
</tr>
<tr valign="top">
<td>금성</td>
<td>Venus <small>베누스</small></td>
<td>Venus [ˈviːnəs] <small>비너스</small></td>
<td>Venus [ˈveːnʊs] <small>베누스</small></td>
<td>Vénus [venys] <small>베뉘스</small></td>
</tr>
<tr valign="top">
<td>화성</td>
<td>Mars <small>마르스</small></td>
<td>Mars [ˈmɑː<i>ɹ</i>z] <small>마스</small></td>
<td>Mars [ˈmaʁs] <small>마르스</small></td>
<td>Mars [maʁs] <small>마르스</small></td>
</tr>
<tr valign="top">
<td>목성</td>
<td>Jupitter <small>유피테르</small></td>
<td>Jupiter [ˈʤuːpᵻtə<i>ɹ</i>] <small>주피터</small></td>
<td>Jupiter [ˈjuːpitɐ] <small>유피터</small></td>
<td>Jupiter [ʒypitɛʁ] <small>쥐피테르</small></td>
</tr>
<tr valign="top">
<td>토성</td>
<td>Saturnus <small>사투르누스</small></td>
<td>Saturn [ˈsætɜː⟮ə⟯<i>ɹ</i>n] <small>새턴</small></td>
<td>Saturn [zaˈtʊʁn] <small>자투른</small></td>
<td>Saturne [satyʁn] <small>사튀른</small></td>
</tr>
<tr valign="top">
<td>천왕성</td>
<td>Uranus <small>우라누스</small></td>
<td>Uranus [ˈjʊə̯ɹ<i>ə</i>nəs] <small>유러너스</small></td>
<td>Uranus [ˈuːʁanʊs] <small>우라누스</small></td>
<td>Uranus [yʁanys] <small>위라뉘스</small></td>
</tr>
<tr valign="top">
<td>해왕성</td>
<td>Neptunus <small>넵투누스</small></td>
<td>Neptune [ˈnɛpt<i>j</i>uːn] <small>넵튠</small></td>
<td>Neptun [nɛpˈtuːn] <small>넵툰</small></td>
<td>Neptune [nɛptyn] <small>넵튄</small></td>
</tr>
<tr valign="top">
<td>명왕성</td>
<td>Pluto <small>플루토</small></td>
<td>Pluto [ˈpluːtoʊ̯] <small>플루토</small></td>
<td>Pluto [ˈpluːto] <small>플루토</small></td>
<td>Pluton [plytɔ̃] <small>플뤼통</small></td>
</tr>
</tbody>
</table>
<p>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small>이탈리아어:</small> Galileo Galilei [ɡaliˈlɛˑo ɡaliˈlɛˑi])는 1610년 1월경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찰하여 그 주변에 위성 네 개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늘날에는 목성을 공전하는 67개의 위성이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네 개의 위성들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하여 &#8216;갈릴레이 위성&#8217;이라고 부른다.</p>
<figure id="attachment_107087"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87" style="width: 42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87"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906c355.jpg" alt="" width="420" height="5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906c355.jpg 42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906c355-210x300.jpg 210w" sizes="auto, (max-width: 420px) 100vw, 42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87" class="wp-caption-text">목성과 갈릴레이 위성을 동일 축척으로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복합도. 위성은 위에서부터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upiter_and_the_Galilean_Satellites.jpg">출처</a>).</figcaption></figure>
<p>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천문학자 시몬 마리우스(<small>라틴어:</small> Simon Marius <small>독일어:</small> [ˈziːmɔn ˈmaːʁi̯ʊs] <small>지몬 마리우스</small>, 본명은 지몬 마이어 <small>독일어:</small> Simon Mayr [ˈziːmɔn ˈmaɪ̯ɐ])도 독자적으로 같은 위성 네 개를 발견하였다. 오늘날 이들은 갈릴레이가 아니라 마리우스가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우스는 새로 발견한 위성들을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small>독일어:</small> Johannes Kepler [joˈhanə⟮ɛ⟯s ˈkɛplɐ])의 제안을 따라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유피테르(제우스)의 연인들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하여 이오(<small>라틴어:</small> Io), 유로파(<small>라틴어:</small> Europa 에우로파), 가니메데(<small>라틴어:</small> Ganymedes <small>가니메데스</small>), 칼리스토(<small>라틴어:</small> Callisto)의 이름이 붙여졌다. 각각 그리스 신화의 이오(Ἰώ <i>Iṓ</i>), 에우로페(Εὐρώπη <i>Eurṓpē</i>), 가니메데스(Γανυμήδης <i>Ganymḗdēs</i>), 칼리스토(Καλλιστώ <i>Kallistṓ</i>)에 해당하며 모두 제우스가 연정을 품었던 주인공들이다. 주요 신이 아닌 인물들이라 로마식 이름이 따로 없고 단지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라틴어식으로 옮겼다.</p>
<p>이오와 칼리스토는 라틴어 이름에 따른 표기이지만 유로파는 Europa의 영어 발음인 [juˈɹoʊ̯pə]에 따른 표기이다. 가니메데는 영어 이름인 Ganymede [ˈɡænᵻmiːd] <small>개니미드</small>를 라틴어식으로 읽은 것일 테지만 우연히도 이탈리아어 이름인 Ganimede [ɡaniˈmɛːde]를 한글로 표기한 것과 형태가 일치한다. 그래도 신화 인물을 이를 때는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형태를 따른 가니메데스로 쓰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서는 목성의 위성과 신화 인물의 이름이 달라지는 결과가 되었다.</p>
<p>로마 신화에서 이름을 딴 천체의 이름의 표기는 라틴어 이름에 따라 한글 표기를 통일했으면 좋을지 몰라도 유로파나 가니메데처럼 이 기준에 맞지 않는 표기로 굳어져 관용으로 인정되는 예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름도 유로파처럼 영어 발음에 따라 표기한다고 치면 이오는 &#8216;아이오([ˈaɪ̯oʊ̯])&#8217;, 가니메데는 &#8216;개니미드&#8217;, 칼리스토는 &#8216;컬리스토/캘리스토([kə⟮æ⟯ˈlɪstoʊ̯])&#8217;가 되는 등 형태가 많이 달라져 오히려 혼란이 증가한다.</p>
<p>신화의 틀로 보면 이런 유피테르/제우스의 연인들로 둘러싸인 목성에 그의 아내 유노/헤라의 이름을 딴 탐사선이 찾아간다는 것도 재미있다. Juno는 영어와 라틴어 이름의 형태가 같다. 원래 고전 라틴어에는 i와 j, u와 v의 구별이 없이 각각 I, V의 형태로 적었다(당시에는 대소문자의 구별도 없어서 글자의 형태는 오늘날의 대문자와 비슷했다). 그 후 중세 라틴어에서 음절초 자음으로 발음되는 경우에 j, v로 적고 나머지는 i, u로 적어 구별하기 시작했다. 원래 고전 라틴어에서 [w]로 발음되던 v는 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 [v]로 변했고 반자음 [j]로 발음되던 j는 언어에 따라 [j], [ʒ], [ʤ] 등으로 다양하게 변했는데 j를 보통 [ʤ]로 발음하는 영어권에서는 이런 전통 표기 방식을 따르면 고전 라틴어 발음과 너무 달라진다며 j를 모두 i로 적는 경우도 있다. Juno, Juppiter 대신 Iuno, Iuppiter로 쓰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이들도 보통 u와 v의 구별은 전통대로 지킨다. 라틴어의 한글 표기에서는 j를 반모음으로 처리하여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한 음절로 적기 때문에 i, j의 구별은 전통대로 지키는 것이 편하다. Iuno로 적으면 &#8216;유노&#8217;인지 &#8216;*이우노&#8217;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Juno로 적으면 &#8216;유노&#8217;가 맞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p>
<p>탐사선 이름 Juno는 로마 신화의 유노에서 이름을 딴 것이지만 영어식으로 &#8216;주노&#8217;로 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국 항공 우주국의 탐사선이니 원어를 영어로 볼 수 있으며 &#8216;유노&#8217;라는 이름이 친숙하다면 몰라도 굳이 라틴어식으로 적을 필요가 없다.</p>
<p>미국 최초의 인간 우주 비행 계획 이름인 Mercury는 영어 발음인 [ˈmɜː<i>ɹ</i>kju⟮ə⟯ɹi]에 따라 &#8216;머큐리&#8217;로 적는다. Mercury는 앞서 본 것처럼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신이자 수성의 라틴어 이름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의 영어 형태이다. 이 경우에는 영어와 라틴어 형태가 다르니 우주 비행 계획 이름은 라틴어가 아니라 영어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하다.</p>
<p>1990년에서 2009년까지 임무를 수행한 태양 관측용 무인 탐사선 율리시스(Ulyss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Ὀδυσσεύς <i>Odysseús</i>)의 라틴어식 영어 이름을 딴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 방언형 Οὐλίξης Oulíxēs가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로마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라틴어로 울릭세스(Ulixes)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둔갑했는데 이게 후기 라틴어에서 Ὀδυσσεύς <i>Odysseús</i>에 해당하는 라틴어형 Odysseus의 영향을 받아 울리세스(Ulysses)라는 형태로도 흔히 쓰이게 된 것이 영어 이름의 어원이다. 영어 발음 전통적으로 둘째 음절에 강세가 오는 [juˈlɪsiːz]이지만 요즘에는 첫째 음절에 강세가 오는 [ˈjuːlᵻsiːz]가 흔히 쓰이며 한글 표기는 강세와 상관없이 둘 다 &#8216;율리시스&#8217;이다. 《율리시스》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small>영어:</small> [ˈʤeɪ̯mz ˈʤɔɪ̯s], 1882년~1941년)가 1922년 발표한 영어 소설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탐사선 이름도 영어 발음에 따라 &#8216;율리시스&#8217;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p>
<figure id="attachment_10708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88" style="width: 46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88"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b3ea7d3.jpg" alt="" width="468" height="6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b3ea7d3.jpg 46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b3ea7d3-234x300.jpg 234w" sizes="auto, (max-width: 468px) 100vw, 46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88" class="wp-caption-text">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 초판 표지(<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yceUlysses2.jpg">출처</a>).</figcaption></figure>
<p>이렇듯 우주 탐사에 쓰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온 라틴어 어원의 영어 이름은 영어 발음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미국 우주 항공국의 2인승 유인 우주 계획이었던 Gemini 계획, 달을 탐사한 Apollo 계획은 영어 발음이 각각 [ˈʤɛmᵻnaɪ̯], [əˈpɒloʊ̯]로 이에 따라 적으면 &#8216;제미나이&#8217;, &#8216;어폴로&#8217;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표준 표기는 &#8216;제미니&#8217;, &#8216;아폴로&#8217;이다.</p>
<p>게미니(Gemini)는 쌍둥이자리를 뜻하는 라틴어 이름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스토르(Κάστωρ ‎Kástōr)와 폴리데우케스(Πολυδεύκης ‎Poludeúkēs, 라틴어식으로는 Polydeuces)를 이른다. 이들의 라틴어 이름은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이며 gemini는 라틴어로 단순히 &#8216;쌍둥이&#8217;를 뜻하는 geminus 게미누스의 남성 복수형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708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89" style="width: 24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89"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e3b2c8a.png" alt="" width="241" height="24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e3b2c8a.png 241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79f6be3b2c8a-150x150.png 150w" sizes="auto, (max-width: 241px) 100vw, 241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89" class="wp-caption-text">제미니 계획 표식(<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miniPatch.png">출처</a>).</figcaption></figure>
<p>Gemini를 고전 라틴어 발음을 따르면 &#8216;게미니&#8217;이지만 후기 통속 라틴어가 로망 어군에 속하는 여러 언어로 바뀌면서 i, e 등 전설 모음 앞의 g는 음가가 원래의 [ɡ]에서 [ʤ], [ʒ], [x] 등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들 언어의 발음을 따르면 한글 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 Gemini는 [ˈʤɛːmini]로 발음되며 이에 따른 한글 표기는 &#8216;제미니&#8217;이다. 영어는 거기에 대모음 추이로 인한 모음 발음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Gemini의 전통 발음은 [ˈʤɛmᵻnaɪ̯] <small>제미나이</small>가 된 것이다. 대모음 추이는 bite 같은 단어에서 중세 영어의 [iː]가 오늘날의 [aɪ̯]로 변하고 mate 같은 단어에서 [aː]가 [eɪ̯]로 변하는 등 영어의 모음 체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말한다.</p>
<p>그런데 실제 영어에서 쓰이는 라틴어 어휘의 발음은 꽤 혼란스럽다. 20세기 중반, 대모음 추이를 겪은 전통 발음이 원래의 라틴어 발음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는 것을 인식한 영어권의 라틴어 교육자들은 전통 발음 대신 유럽 대륙에서 흔히 쓰는 이탈리아식 교회 라틴어나 복원된 고전 라틴어 발음을 흉내낸 발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라틴어 낱말도 전통 발음, 교회 라틴어식 발음, 고전 라틴어식 발음 등 여러 발음으로 쓰이는 예가 나타났다.</p>
<p>단적으로 원래 라틴어에서 &#8216;젖먹이&#8217;, &#8216;유아&#8217;를 뜻하였고 영어에서 &#8216;졸업생&#8217;, &#8216;동문&#8217;을 뜻하게 된 alumnus (라틴어로는 &#8216;알룸누스&#8217;, 영어 발음은 [əˈlʌmnəs] <small>얼럼너스</small>)의 남성 복수형인 alumni (라틴어로는 &#8216;알룸니&#8217;)는 전통 발음으로 [əˈlʌmnaɪ̯] <small>얼럼나이</small>, 여성 복수형인 alumnae (라틴어로는 &#8216;알룸나이&#8217;)는 전통 발음으로 [əˈlʌmni] <small>얼럼니</small>이지만 고전 라틴어 발음을 흉내낸 발음에서는 정반대로 alumni가 [əˈlʌmni] <small>얼럼니</small>, alumnae가 [əˈlʌmnaɪ̯] <small>얼럼나이</small>이다. 어느 발음 방식을 따르느냐에 따라 남성형과 여성형이 뒤바뀌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 라틴어를 흉내낸 발음에서는 alumni가 [əˈlʌmni] <small>얼럼니</small>, alumnae가 [əˈlʌmneɪ̯] <small>얼럼네이</small>로 발음된다. 그러니 alumnae는 영어 발음이 세 가지나 된다. 오늘날에는 라틴어를 배우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어차피 남성형, 여성형을 제대로 구별하는 영어 화자는 찾기 힘들고 쉽게 alum [əˈlʌm] <small>얼럼</small>으로 줄여 쓰거나 심지어 남성 복수형인 alumni를 성과 수에 상관없이 불변형인 것처럼 쓰는 것이 보통이다.</p>
<p>Gemini의 경우 전통 발음인 [ˈʤɛmᵻnaɪ̯] <small>제미나이</small> 외에도 -i를 고전 라틴어나 교회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ˈʤɛmᵻni] <small>제미니</small>, 심지어 고전 라틴어를 흉내내어 어두 자음도 [ɡ]로 발음하는 [ˈɡɛmᵻni] <small>게미니</small>도 같이 쓰인다. 그러니 &#8216;제미니&#8217;는 전통 발음은 아니지만 영어에서도 가능한 발음을 따른 표기이다. 실제로 제미니 계획을 이를 때는 보통 &#8216;제미니&#8217;라는 발음을 쓴다.</p>
<p>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과 시, 예언을 주관하는 태양의 신 아폴론(Ἀπόλλων <i>Apóllōn</i>)의 라틴어 이름이다. 어미만 라틴어식으로 바꾸었지 그리스어 형태와 거의 같다. 하지만 &#8216;아폴로&#8217;는 라틴어 이름이라고 인식하고 표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영어 이름을 따른 관습 표기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영어의 관습적인 표기에서 무강세 음절의 [ə]로 발음되는 a는 &#8216;아&#8217;로 흔히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ə]는 &#8216;어&#8217;로 적으며 어말의 [ə]로 발음되는 -a만 &#8216;아&#8217;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은 1969년이니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고시되기 이전부터 &#8216;아폴로&#8217;로 표기가 굳어졌다. America [əˈmɛɹᵻkə] <small>어메리카</small>를 &#8216;아메리카&#8217;로 적는 것도 마찬가지로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한 예이다. 물론 America를 라틴어나 이탈리아어 이름으로 보면 &#8216;아메리카&#8217;로 적는 것이 맞지만 영어에서만 쓰이는 형용사형 American [əˈmɛɹᵻk<i>ə</i>n] <small>어메리컨</small>도 &#8216;아메리칸&#8217;으로 적는 것을 보면 &#8216;아메리카&#8217;와 &#8216;아메리칸&#8217;은 영어 단어를 적은 관습적인 표기가 맞다.</p>
<figure id="attachment_107090"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90" style="width: 1192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90"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Aldrin_Apollo_11_original.jpg" alt="" width="1192" height="1199"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Aldrin_Apollo_11_original.jpg 1192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Aldrin_Apollo_11_original-298x300.jpg 29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Aldrin_Apollo_11_original-1018x1024.jpg 1018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Aldrin_Apollo_11_original-150x150.jpg 15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Aldrin_Apollo_11_original-768x773.jpg 768w" sizes="auto, (max-width: 1192px) 100vw, 1192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90" class="wp-caption-text">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을 달 표면에서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찍은 사진(<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drin_Apollo_11_original.jpg">출처</a>).</figcaption></figure>
<p>영어는 광범위한 모음 약화와 대모음 추이로 인해 라틴어에서 온 어휘의 발음이 다른 유럽 언어에서 쓰는 발음과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여러가지 다른 발음 방식이 쓰이고 있으니 한글 표기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Juno는 영어 발음에 따라 &#8216;주노&#8217;로 적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지만 우주 탐사에 쓰이는 라틴어에서 온 영어 이름의 표기는 간단한 규칙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다.</p>
<p><a href="https://pyogi.kkeutsori.com/2015/06/23/%eb%a1%9c%ec%a0%9c%ed%83%80%ec%99%80-%ed%95%84%eb%a0%88-%ea%b3%a0%eb%8c%80-%ec%9d%b4%ec%a7%91%ed%8a%b8-%ec%a7%80%eb%aa%85%ec%97%90%ec%84%9c-%ec%9d%b4%eb%a6%84%ec%9d%84-%eb%94%b4-%ed%98%9c%ec%84%b1/">지난 글</a>에서 다룬 유럽우주국(ESA)의 탐사 로봇 필레(Philae)의 표기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Philae는 이집트의 고대 그리스어식 지명의 라틴어 형태인데 유럽우주국은 공용어가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며 본부가 프랑스에 있고 관제 센터가 독일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한글 표기를 프랑스어 발음 [file]와 독일어 발음 [ˈfiːlɛ]를 따른 &#8216;필레&#8217;로 정했다. Philae의 전통 영어 발음은 [ˈfaɪ̯liː] <small>파일리</small>, 교회 라틴어식 발음은 [ˈfiːleɪ̯] <small>필레이</small>인데 유럽우주국 직원들은 영어로 말할 때 후자를 주로 쓰는 것 같다. Philae가 친숙한 이름이 아니라서 전통 영어 발음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어와 독일어 발음과 비슷한 교회 라틴어식 발음을 쓰는 것이다.</p>
<p>고대 로마의 신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짝퉁 정도로 여겨져 원래의 라틴어 발음을 따른 표기로는 우리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지만 우주 탐사라는 뜻밖의 분야를 통해서 &#8216;주노&#8217;, &#8216;머큐리&#8217; 등 영어식으로 발음한 로마 신들의 이름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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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르군디아(부르고뉴/부르군트)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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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3 Jan 2016 22:36:40 +0000</pubDate>
				<category><![CDATA[표기 용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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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보다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해왔으며 지금도 계속 혼란을 초래하는 지명은 대기 어려울 것이다. It would be hard to mention any geographical name which &#8230; has caused, and continues to cause, more confusion. 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브라이스(영어: James Bryce [ˈʤeɪ̯mz ˈbɹaɪ̯s], 1838년~1922년)가 1862년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을 쓰면서 특별히 단 주 &#8220;On the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본 글은 원래 발음 관련 웹사이트 Pronouncer에 올렸다가 그림을 추가하여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p>
<blockquote><p>이보다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해왔으며 지금도 계속 혼란을 초래하는 지명은 대기 어려울 것이다.<br />
It would be hard to mention any geographical name which &#8230; has caused, and continues to cause, more confusion.</p></blockquote>
<p>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브라이스(<small>영어:</small> James Bryce [ˈʤeɪ̯mz ˈbɹaɪ̯s], 1838년~1922년)가 1862년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을 쓰면서 특별히 단 주 &#8220;On the Burgundies (부르군디아들에 관해)&#8221;에 나오는 말이다. 영어로 버건디(Burgundy [ˈbɜː<i>ɹ</i>ɡ<i>ə</i>ndi])로 불리고 프랑스어로 부르고뉴(Bourgogne [buʁɡɔɲ]) 또는 역사 지명에 한정하여 뷔르공디(Burgondie [byʁɡɔ̃di]), 독일어로 부르군트(Burgund [bʊʁˈɡʊnt]), 이탈리아어로 보르고냐(Borgogna [borˈɡoɲɲa]), 네덜란드어로 부르혼디어(Bourgondië [burˈɣɔndijə]) 등으로 불리는 지명을 두고 한 말이다. 본 글에서는 르네상스(<small>프랑스어:</small> Renaissance [ʁənɛsɑ̃s]) 시대까지는 라틴어 이름이자 다른 이름들의 어원인 부르군디아(Burgundia)로 통일하고 근대 이후로는 각각의 경우에 맞게 프랑스어 이름인 부르고뉴와 독일어 이름인 부르군트를 쓰도록 한다.</p>
<p>브라이스의 글은 영국의 역사가 노먼 데이비스(<small>영어:</small> Norman Davies [ˈnɔː<i>ɹ</i>mən ˈdeɪ̯vᵻs], 1939년생)의 2011년작 <i>Vanished Kingdoms: The History of Half-Forgotten Europe</i> (사라진 왕국들: 반쯤 잊혀진 유럽의 역사) 가운데 제3단원 &#8220;Burgundia: Five, Six or Seven Kingdoms (c. 411–1795) (부르군디아: 다섯 혹은 여섯, 일곱 개의 왕국(411년경~1795년))&#8221;에 인용되었다. 이 책은 제1단원에서 5세기에 서고트족(<small>라틴어:</small> Visigothi <small>비시고티</small>)이 지금의 프랑스 남부에 세운 톨로사(<small>라틴어:</small> Tolosa) 왕국으로부터 시작하여 1991년 해체된 마지막 제15단원의 소련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다루었는데 848쪽이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에 난해한 역사 지명과 인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탓에 조만간 한국어 번역을 접하기는 힘들 듯하다.</p>
<p>브라이스는 &#8220;On the Burgundies&#8221;에서 부르군디아로 불린 적이 있는 나라 또는 행정 단위를 열 개나 열거했는데 데이비스는 이것도 너무 짧은 목록이라며 부르군디아는 최소 열세 개, 최대 열여섯 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역사적 영토만해도 시기에 따라 오늘날의 독일·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룩셈부르크·벨기에·네덜란드 등에 걸쳐있었다. <a href="https://pyogi.kkeutsori.com/2015/10/16/%eb%a4%bc%eb%b8%8c%eb%a3%a8%ed%81%ac%ec%9d%98-%ea%b8%b0%ec%9a%a4-%eb%a4%bc%eb%b8%8c%eb%a3%a9%ec%9d%98-%eb%b9%8c%eb%9f%bc-%eb%aa%bd%ea%b3%a8-%ed%99%a9%ec%a0%9c%eb%a5%bc-%eb%a7%8c%eb%82%98%eb%8b%a4/">지난 글</a>에서 중세의 플랑드르 백작령을 다루면서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 오늘날의 국가 구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중세의 고유명사 표기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는데 부르군디아는 그보다도 심한 셈이다.</p>
<p>오늘날 부르고뉴는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한 프랑스의 중동부의 레지옹(<small>프랑스어:</small> région [ʁeʒjɔ̃], 지방 행정 구역 최상위 단위) 이름 정도로만 보통 알고 있다. 그런데 데이비스는 부르군디아에 관한 단원을 엉뚱하게도 발트해 스웨덴 연안의 덴마크령 섬인 &#8216;발트해의 진주&#8217; 보른홀름(덴마크어: Bornholm [b̥ɒnˈhʌlˀm])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때 덴마크에 속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최남단이 스웨덴에게로 넘어가면서 덴마크령으로 남은 보른홀름섬은 덴마크 본토보다는 스웨덴에 더 가까워졌는데 여담으로 현지 방언인 보른홀름어(덴마크어: Bornholmsk [b̥ɒnˈhʌlˀmsɡ̊] <small>보른홀름스크</small>)는 표준 덴마크어나 스웨덴어와 상당한 차이가 있어 언어학적 관점에서 흥미를 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3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8" style="width: 35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38"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bf95db1c9.png" alt="" width="350" height="304"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bf95db1c9.png 35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bf95db1c9-300x261.png 300w" sizes="auto, (max-width: 350px) 100vw, 35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8" class="wp-caption-text">보른홀름섬의 위치</figcaption></figure>
<p>보른홀름의 고대 노르드어 이름은 부르군다홀므르(Burgundaholmr)였다. 책에는 *Burgundarholm으로 나왔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도 많이 쓰지만 잘못으로 보인다. 주격어미 -r를 생략하더라도 Burgundaholm이어야 한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홀므르(holmr)는 &#8216;작은 섬&#8217;을 뜻한다. 여기서 주격어미 -r만 떨어져나간 현대 덴마크어의 홀름(holm [ˈhʌlˀm])도 같은 뜻이다. 부르군다(Burgunda)는 &#8216;부르군트족 사람&#8217;을 뜻하는 부르군드르(Burgundr)의 복수 속격형으로 부르군다홀므르는 &#8216;부르군트족 사람들의 작은 섬&#8217;, 즉 &#8216;부르군트족의 섬&#8217;을 뜻하는 셈이다. 종족을 가리킬 때는 복수 주격형인 부르군다르(Burgundar)를 쓰는데 *Burgundarholm으로 쓰는 이들은 이 때문에 헷갈린 듯하다.</p>
<p>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쓰는 용어인 &#8216;부르군트족&#8217;은 지명인 부르군디아의 독일어 형태인 부르군트에 족(族)을 붙인 것이다. 부족 이름인 부르군트족은 독일어로 부르군더(Burgunder [bʊʁˈɡʊndɐ])라고 한다. 프랑스어로는 뷔르공드(Burgondes [byʁɡɔ̃d]), 라틴어로는 부르군디이(Burgundii) 또는 부르군디오네스(Burgundiones), 영어로는 버건즈(Burgunds [ˈbɜː<i>ɹ</i>ɡ<i>ə</i>ndz]) 또는 버건디언스(Burgundians [bə⟮ɜː⟯<i>ɹ</i>ˈɡʌndiənz])라고 한다. 모두 부르군드(Burgund)와 비슷한 어근 또는 거기서 파생된 형용사형에 복수 어미를 붙인 형태이다. 독일이 생기기 훨씬 전에 유럽 전역을 떠돈 부족이라 특별히 독일어 형태를 쓸 이유가 없으니 그냥 &#8216;부르군드족&#8217;이라고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p>
<p>어쨌든 부르군디아라는 지명은 부르군트족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이들은 로마 제국을 위협한 게르만 부족 가운데 하나로 자세한 여정은 파악하기 힘들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 남하하여 오늘날의 폴란드를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발트해를 건너면서 보른홀름섬에 잠시라도 머물렀기 때문에 &#8216;부르군트족의 섬&#8217;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부르군트족의 언어인 부르군트어는 역시 북유럽 출신인 고트족의 언어 고트어처럼 동게르만어군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료가 부족해 확실하지는 않다. 이들이 쓴 이름들을 봐서는 게르만어계 언어인 것만은 확실하다. 부르군트족의 지도자 이름에 흔히 등장하는 gund-는 &#8216;싸움, 전투&#8217;를 뜻하는 게르만어계 어근이며 이를테면 군도바드(Gundobad, <small>라틴어:</small> Gundobadus 군도바두스)는 &#8216;싸움에서 용감한&#8217;, 군도마르(Gundomar, <small>라틴어:</small> Gundomarus <small>군도마루스</small>)는 &#8216;싸움으로 이름난&#8217;으로 해석할 수 있다(참고로 본 글에서는 부르군트족 인명의 표기는 라틴어에서 격어미 -us 등을 뗀 형태를 기준으로 한다).</p>
<p>데이비스가 열거한 열다섯 개의 부르군디아는 다음과 같다.</p>
<ol>
<li>410년~436년: 군다하르의 부르군디아 제1왕국</li>
<li>451년~534년: 군디오크의 부르군디아 제2왕국</li>
<li>590년경~734년: 프랑크 왕국의 부르군디아 제3왕국</li>
<li>843년~1384년: 프랑스의 부르군디아 공작령</li>
<li>879년~933년: 저지 부르군디아 왕국</li>
<li>888년~933년: 고지 부르군디아 왕국</li>
<li>933년~1032년: 두 부르군디아의 연합왕국(아를 왕국)</li>
<li>1000년경~1678년: 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자유백작령(프랑슈콩테)</li>
<li>1032년~?: 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디아 왕국</li>
<li>1127년~1218년: 신성 로마 제국의 소(小)부르군디아 공작령</li>
<li>1127년~: 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디아 방백령</li>
<li>1384년~1477년: 부르군디아 결합국</li>
<li>1477년~1791년: 프랑스의 부르고뉴주</li>
<li>1548년~1795년: 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트 제국권</li>
<li>1982년~: 프랑스의 부르고뉴 레지옹</li>
</ol>
<p>데이비스가 쓴 단원의 내용을 간추려 부르군디아의 복잡한 역사를 소개한다.</p>
<h2>군다하르의 부르군디아 제1왕국(410년~436년)</h2>
<p>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부르군디아는 군다하르(Gundahar, <small>라틴어:</small> Gundaharius <small>군다하리우스</small> 또는 Gundicharius <small>군디카리우스</small> 또는 Guntharius <small>군타리우스</small>, <small>독일어:</small> Gundahar [ˈɡʊndahaʁ] <small>군다하르</small> 또는 Gundikar [ˈɡʊndikaʁ] <small>군디카르</small>, <small>프랑스어:</small> Gondicaire [ɡɔ̃dikɛʁ] <small>공디케르</small> 또는 Gonthaire [ɡɔ̃tɛʁ] <small>공테르</small> 또는 Gonthier [ɡɔ̃tje] <small>공티에</small>)라는 부르군트족 지도자가 410년 라인강 중류의 서쪽 유역에 세운 왕국이다. 수도는 옛 켈트족(<small>라틴어:</small> Celtae <small>켈타이</small>) 정착촌이었던 보르베토마구스(<small>라틴어:</small> Borbetomagus, 오늘날의 독일 남서부 보름스 <small>독일어:</small> Worms [ˈvɔʁms])로 삼았으며 영토는 남쪽으로 노비오마구스(<small>라틴어:</small> Noviomagus, 오늘날의 독일 남서부 슈파이어 <small>독일어:</small> Speyer [ˈʃpaɪ̯ɐ])와 아르겐토라툼(<small>라틴어:</small> Argentoratum, 오늘날의 프랑스 동북부 스트라스부르 <small>프랑스어:</small> Strasbourg [stʁasbuʁ])까지 뻗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3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39" style="width: 6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39"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be8ca85e6.png" alt="" width="600" height="45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be8ca85e6.png 600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be8ca85e6-300x225.pn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39" class="wp-caption-text">부르군디아 제1왕국(410년~436년)과 제2왕국(451년~534년)의 위치</figcaption></figure>
<p>그 당시 이 지역은 로마 제국의 갈리아(<small>라틴어:</small> Gallia)주의 일부였다. 갈리아주는 오늘날의 독일의 라인강 서쪽 부분을 비롯하여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스위스 대부분, 네덜란드 일부 등에 해당했으며 원래 켈트족의 땅이었는데 4세기 무렵 시작된 민족의 대이동으로 부르군트족을 비롯한 게르만 부족들이 들어와 갈리아인, 즉 로마화한 켈트족 사이에 살고 있었다.</p>
<p>군다하르는 알란족(<small>라틴어:</small> Alani <small>알라니</small>)의 지도자 고아르(Goar, <small>라틴어:</small> Goarus <small>고아루스</small>)와 함께 현지의 갈리아인 원로원 의원 요비누스(<small>라틴어:</small> Jovinus)가 로마에 반기를 들고 모군티아쿰(<small>라틴어:</small> Moguntiacum, 오늘날의 독일 남서부 마인츠 <small>독일어:</small> Mainz [ˈmaɪ̯nʦ])에서 자칭 로마 황제로 옹립되는 것을 도왔다. 이 대가로 요비누스는 부르군트족을 로마의 동맹자(<small>라틴어:</small> Foederatus <small>포이데라투스</small>)로 선포하였으며 군다하르는 명목상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땅에 부르군트족의 왕국을 세울 수 있었다.</p>
<p>그러나 군다하르와 고아르가 세운 꼭두각시 황제 요비누스는 2년 만에 죽임을 당했고 평정을 되찾은 로마 조정은 군다하르도 제거하려고 뜻을 굳혔다. 그래서 부르군디아 제1왕국도 20여년 밖에 더 버티지 못했다. 436년 로마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small>라틴어:</small> Flavius Aëtius) 장군이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목표로 아틸라(<small>라틴어:</small> Attila)가 이끄는 훈족(<small>라틴어:</small> Hunni <small>훈니</small>)을 불러들여 부르군디아 왕국을 멸망시키게 한 것이다.</p>
<p>부르군트족 2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하는 이 사건은 전설을 넘어 게르만족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군다하르는 북유럽 신화의 《볼숭그르 일족의 사가(고대 노르드어: Vǫlsunga saga <small>불숭가 사가</small>)》에서는 군나르(고대 노르드어: Gunnarr)로, 독일의 《니벨룽의 노래(<small>독일어:</small> Nibelungenlied [ˈniːbəlʊŋənˌliːt] <small>니벨룽겐리트</small>)》에는 군터(<small>독일어:</small> Gunter [ˈɡʊntɐ])로 등장한다.</p>
<h2>군디오크의 부르군디아 제2왕국(451년~534년)</h2>
<p>제1왕국의 멸망 후 살아남은 부르군트족의 일부는 훈족 밑에, 일부는 로마 밑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부르군디아 제1왕국을 멸망시킬 때에는 같은 편이었던 로마와 훈족은 451년의 카탈라우눔(<small>라틴어:</small> Catalaunum) 평원 전투에서 서로 맞붙었는데 이때 양 진영에 부르군트족 병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작전상 승리로 이끈 아에티우스는 군디오크(Gundioch, <small>라틴어:</small> Gundiochus <small>군디오쿠스</small> 또는 Gundevechus <small>군데베쿠스</small>, <small>독일어:</small> Gundioch [ˈɡʊndi̯ɔx] <small>군디오흐</small> 또는 Gundowech [ˈɡʊndovɛç] <small>군도베히</small>, <small>프랑스어:</small> Gondioc [ɡɔ̃djɔk] <small>공디오크</small>)라는 로마 진영의 부르군트족 지도자에게 알프스 지방의 사파우디아(<small>라틴어:</small> Sapaudia 또는 Sabaudia <small>사바우디아</small>)라는 곳에 왕국을 세우는 것을 허락했다(아마도 부르군트족이 이미 이 지역으로 터전을 옮긴 후였을 것이다). 사파우디아는 훗날 프랑스어로 사부아(Savoie [savwa]), 이탈리아어로 사보이아(Savoia [saˈvɔja])로 알려지게 되는 지명의 어원이다. 이것이 제2 부르군디아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0"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0" style="width: 512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0"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8d09680f.png" alt="" width="512" height="522"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8d09680f.png 512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8d09680f-294x300.png 294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0" class="wp-caption-text">부르군디아 제2왕국(<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p_Burgundian_Kingdom_EN.png">출처</a>)</figcaption></figure>
<p>게나바(<small>라틴어:</small> Genava, 오늘날의 스위스 서부 제네바 <small>프랑스어:</small> Genève [ʒənɛv] <small>주네브</small>)를 중심으로 출발한 부르군디아 제2왕국은 곧 아루스강(Arus, 오늘날의 손강 <small>프랑스어:</small> Saône [son])과 로다누스강(Rhodanus, 오늘날의 론강 <small>프랑스어:</small> Rhône [ʁon])이 만나는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 그리하여 10년 이내에 루그두눔(<small>라틴어:</small> Lugdunum, 오늘날의 프랑스 남부 리옹 <small>프랑스어:</small> Lyon [ljɔ̃]), 디비오(<small>라틴어:</small> Divio, 오늘날의 프랑스 남부 디종 Dijon [diʒɔ̃]), 베손티오(<small>라틴어:</small> Vesontio, 오늘날의 프랑스 남부 브장송 Besançon [bəzɑ̃sɔ̃]) 등이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p>
<p>부르군디아 제2왕국은 5대를 이어갔으나 내부 분열로 약해지고 6세기초 계속된 전쟁 끝에 제5대 군도마르(Gundomar, <small>라틴어:</small> Gundomarus <small>군도마루스</small> 또는 Gundimarus <small>군디마루스</small> 또는 Godomarus <small>고도마루스</small>, <small>독일어:</small> Godomar [ˈɡoːdomaʁ] <small>고도마르</small>, <small>프랑스어:</small> Gondemar [ɡɔ̃dəmaʁ] <small>공드마르</small>)왕 때인 534년 갈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프랑크 왕국에 패배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p>
<h2>프랑크 왕국의 부르군디아 제3왕국(590년~734년)</h2>
<p>프랑크족(<small>라틴어:</small> Franci <small>프랑키</small>, <small>프랑스어:</small> Francs [fʁɑ̃] <small>프랑</small>, <small>독일어:</small> Franken [ˈfʁaŋkn̩] <small>프랑켄</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Franken [ˈfraŋkə<i>n</i>] <small>프랑컨</small>)은 라인강 중하류에서 처음 역사에 등장한 서게르만의 일파이다. 클로비스(<small>프랑스어:</small> Clovis [klɔvis], <small>라틴어:</small> Chlodovechus <small>클로도베쿠스</small>, <small>독일어:</small> Chlodwig [ˈkloːtvɪç] <small>클로트비히</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Clovis [ˈkloːvɪs] <small>클로비스</small>, 재위 481년~511년)라는 지도자가 최초로 모든 프랑크족의 소왕국들을 통일하여 파리시우스(<small>라틴어:</small> Parisius,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파리 <small>프랑스어:</small> Paris [paʁi])를 수도로 하는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메로빙거(<small>독일어:</small> Merowinger [ˈmeːʁovɪŋɐ], <small>라틴어:</small> Merovingi <small>메로빙기</small>, <small>프랑스어:</small> Mérovingiens [meʁɔvɛ̃ʒjɛ̃] <small>메로뱅지앵</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Merovingen [meˈroːvɪŋə<i>n</i>] <small>메로빙언</small>) 왕조의 창시자가 되었다. 클로비스는 부르군디아 제2왕국의 왕녀 클로틸드(<small>프랑스어:</small> Clotilde [klɔtild], <small>라틴어:</small> Clotildis <small>클로틸디스</small>, <small>독일어:</small> Clothilde [kloˈtɪldə] <small>클로틸데</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Clothilde [kloˈtɪldə] <small>클로틸더</small>)를 둘째 아내로 맞았는데 클로틸드는 남편을 설득시켜 가톨릭교로 개종하게 하였다. 이때까지만해도 프랑크족과 서고트족을 비롯한 갈리아 지역의 게르만족 대부분은 325년의 제1차 니케아(<small>라틴어:</small> Nicaea <small>니카이아</small>, 오늘날의 튀르키예 서북부 이즈니크 튀르키예어: İznik [ˈiznik])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포된 아리우스(<small>라틴어:</small> Arius, 336년 사망)의 가르침을 따른 아리우스파(<small>라틴어:</small> Ariani) 기독교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클로비스의 개종은 후에 가톨릭교가 서유럽을 지배하는 계기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부르군디아 궁정에도 아리우스파가 많았지만 클로틸드는 가톨릭교인으로 자라났다.</p>
<p>클로틸드는 클로비스가 죽은 후에도 아들들을 부추겨 부르군디아 제2왕국을 멸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부르군디아의 왕이었던 클로틸드의 아버지 킬페리크(Chilperic, <small>라틴어:</small> Chilpericus <small>킬페리쿠스</small>, <small>독일어:</small> Chilperich [ˈçɪlpəʁɪç] <small>힐페리히</small>, <small>프랑스어:</small> Chilpéric [ʃilpeʁik] <small>실페리크</small>)는 공동 왕이었던 동생 군도바드(Gundobad, <small>라틴어:</small> Gundobadus <small>군도바두스</small>, <small>독일어:</small> Gundobad [ˈɡʊndobat] <small>군도바트</small>, <small>프랑스어:</small> Gondebaud [ɡɔ̃dbo] <small>공드보</small>)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클로틸드는 아들들을 통해 이 원한를 갚으려 한 것이다.</p>
<p>프랑크족은 원래 서게르만어계 언어인 프랑크어를 썼지만 문자 생활은 보통 당시의 국제어인 라틴어로 했기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프랑크어는 표준화되지 않았다. 북해 인근의 저지대에서 쓴 프랑크어 방언은 후에 네덜란드어의 뿌리가 되며 라인강 유역의 프랑크어 방언들은 오늘날에는 국경에 따라 독일어의 방언이나 네덜란드어의 방언으로 간주되는 여러 방언들의 뿌리가 된다. 이 가운데 룩셈부르크에서 쓰이는 방언은 20세기에야 뒤늦게 룩셈부르크어로 표준화되어 1984년 프랑스어와 독일어와 함께 공용어의 지휘를 획득한다. 표준 독일어는 오늘날의 독일 중부 지역의 비(非)프랑크어계 고지 독일어 방언들이 원 토대가 되었지만 이웃하는 프랑크어계 방언들의 영향도 꽤 받았다.</p>
<p>한편 수도 파리를 비롯한 서쪽의 프랑크족은 프랑크어를 잊고 갈리아 지방의 통속 라틴어를 쓰게 되는데 이는 고대 프랑스어로 이어진다. 그래서 프랑스어는 어휘나 문법, 발음에서 프랑크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라틴어에서 나왔으면서도 이탈리아어나 에스파냐어 같은 다른 로망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실린 프랑크 왕국과 관련된 이름들은 메로빙거, 카롤링거처럼 독일어 형태나 클로비스, 샤를마뉴처럼 프랑스어 형태를 쓴 것이 대부분이다. 본 글에서는 이를 굳이 통일하지 않고 잘 알려진 형태를 따른다.</p>
<p>프랑크 왕국의 지배하에서도 부르군디아라는 영토 단위는 보존되었으며 메로빙거 왕들은 스스로 프랑키아와 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Francia et Burgundia)의 왕 또는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Neustria et Burgundia)의 왕으로 칭하고는 했다. 프랑키아는 프랑크족의 땅을 뜻하는 라틴어 이름으로 프랑스(<small>프랑스어:</small> France [fʁɑ̃s])의 어원이며 네우스트리아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크 왕국 북서부의 옛 이름이다.</p>
<p>클로비스의 손자 중 한 명인 군트람(<small>독일어:</small> Guntram [ˈɡʊntʁam], <small>라틴어:</small> Gontranus <small>곤트라누스</small> 또는 Gunthramnus <small>군트람누스</small> 또는 Gunthchramnus <small>군트크람누스</small>, <small>프랑스어:</small> Gontran [ɡɔ̃tʁɑ̃] <small>공트랑</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Gunthram [ˈɣʏntrɑm] <small>휜트람</small>, 재위 561년~592년)은 프랑크 왕국 가운데 부르군디아 지역을 물려받고 왕이 되어 부르군디아 왕국(<small>라틴어:</small> Regnum Burgundiae <small>레그눔 부르군디아이</small>), 즉 부르군디아 제3왕국을 세웠다. 당시 프랑크 왕국에서는 왕이 죽으면 나라를 여러 아들들에게 나누어주는 분할 상속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군트람은 왕국의 일부만 다스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프랑크 왕국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프랑크 왕국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 여러 왕들이 각자의 영토를 다스리는 형태였다. 군트람의 부르군디아 왕국은 전성기인 587년에는 보르도(<small>프랑스어:</small> Bordeaux [bɔʁdo], 오늘날의 프랑스 서남부), 렌(<small>프랑스어:</small> Rennes [ʁɛn], 오늘날의 프랑스 서북부), 파리를 포함한 갈리아 대부분을 지배하기도 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1"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1" style="width: 589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1"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93c5e265.png" alt="" width="589" height="6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93c5e265.png 589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93c5e265-295x300.png 295w" sizes="auto, (max-width: 589px) 100vw, 589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1" class="wp-caption-text">프랑크 왕국 내의 부르군디아 왕국(<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p_Burgundian_Kingdom_2_EN.png">출처</a>)</figcaption></figure>
<p>그러나 8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궁재이자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샤를 마르텔(<small>프랑스어:</small> Charles Martel [ʃaʁl maʁtɛl], <small>라틴어:</small> Carolus Martellus <small>카롤루스 마르텔루스</small>, <small>독일어:</small> Karl Martell [ˈkaʁl maʁˈtɛl] <small>카를 마르텔</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Karel Martel [ˈkaːrəl mɑrˈtɛl] <small>카럴 마르텔</small>, 741년 사망)이 프랑크 왕국을 다시 통일하면서 부르군디아 제3왕국은 사라진다.</p>
<h2>서프랑크 왕국/프랑스의 부르군디아 공작령(843년~1384년)</h2>
<p>샤를 마르텔의 손자 샤를마뉴(<small>프랑스어:</small> Charlemagne [ʃaʁləmaɲ] <small>샤를르마뉴</small>, <small>라틴어:</small> Carolus Magnus <small>카롤루스 마그누스(=위대한 카롤루스)</small>, <small>독일어:</small> Karl der Große [ˈkaʁl deːɐ̯ ˈɡʁoːsə] <small>카를 데어 그로세(=위대한 카를)</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Karel de Grote [ˈkaːrəl də ˈɣroːtə] <small>카럴 더 흐로터(=위대한 카럴)</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Carlo Magno [ˈkarlo ˈmaɲɲo] <small>카를로 마뇨(=위대한 카를로)</small>, 814년 사망)는 프랑크 왕국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로마 교황에 의해 로마 황제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샤를마뉴가 속한 왕조는 샤를 마르텔(카롤루스 마르텔루스)의 후손들이라 해서 카롤링거(<small>독일어:</small> Karolinger [ˈkaːʁolɪŋɐ], <small>라틴어:</small> Carolingi <small>카롤링기</small>, <small>프랑스어:</small> Carolingiens [kaʁɔlɛ̃ʒjɛ̃] <small>카롤랭지앵</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Karolingen [kaˈroːlɪŋə<i>n</i>] <small>카롤링언</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carolingi [karoˈlinʤi] <small>카롤린지</small>) 왕조라고 한다.</p>
<p>샤를마뉴가 이룩한 제국은 843년에 이르러 그의 세 손자들이 물려받으면서 서프랑크 왕국·중프랑크 왕국·동프랑크 왕국으로 나누어졌다. 서프랑크 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로 이어지고 동프랑크 왕국은 독일로 이어졌는데 오늘날 중프랑크 왕국의 영토를 온전히 간직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후대의 관점에서는 중프랑크 왕국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를 차지한 이는 샤를마뉴의 세 손자들 가운데 장남이자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은 로타르(<small>독일어:</small> Lothar [ˈloːtaʁ], <small>라틴어:</small> Lotharius <small>로타리우스</small>, <small>프랑스어:</small> Lothaire [lɔtɛʁ] <small>로테르</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Lotharius [loˈtaːrijʏ⟮ə⟯s] <small>로타리위스</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Lotario [loˈtaːrjo] <small>로타리오</small>, 795년~855년)였다.</p>
<p>중프랑크 왕국은 로타르의 사후 다시 셋으로 나누어졌다. 북해에서 메스(<small>프랑스어:</small> Metz [mɛs], 오늘날의 프랑스 동북부)까지 이르는 북쪽 부분은 로타르의 이름을 따서 로타링기아(<small>라틴어:</small> Lotharingia, <small>프랑스어:</small> Lotharingie [lɔtaʁɛ̃ʒi] <small>로타랭지</small>, <small>독일어:</small> Lothringen [ˈloːtʁɪŋən] <small>로트링겐</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Lotharingen [ˈloːtarɪŋə<i>n</i>] <small>로타링언</small>)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이 변하여 오늘날의 로렌(<small>프랑스어:</small> Lorraine [lɔʁɛn], 오늘날의 프랑스 동북부)이 된다. 또 중프랑크 왕국의 남쪽 부분은 이탈리아 반도를 따라 남쪽으로 로마까지 내려갔다. 나머지 가운데 부분은 대략 부르군디아와 프로방스(<small>프랑스어:</small> Provence [pʁɔvɑ̃s], <small>라틴어:</small> Provincia <small>프로빙키아</small>, 오늘날의 프랑스 동남부)에 해당되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2"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2" style="width: 587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2"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9d8089a4.png" alt="" width="587" height="6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9d8089a4.png 587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9d8089a4-294x300.png 294w" sizes="auto, (max-width: 587px) 100vw, 587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2" class="wp-caption-text">9~10세기의 부르군디아. 서북부가 서프랑크 왕국의 부르군디아 공작령, 동북부가 고지 부르군디아, 남부가 저지 부르군디아(<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arte_Hoch_und_Niederburgund_EN.png">출처</a>)</figcaption></figure>
<p>옛 부르군디아 왕국의 땅은 대부분 로타르의 중프랑크 왕국에 들어갔으나 약 8분의 1 정도인 북서쪽의 손강 상류 일대가 서프랑크 왕국에 들어갔다. 이 지역에는 군트람 시대에 중심지였던 샬롱(<small>프랑스어:</small> Chalon [ʃalɔ̃], 오늘날의 프랑스 동부)이 포함되었으며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처음에는 서프랑크 왕국의 옛 부르군디아 땅에 특별한 지위가 없었으나 880년대에 서프랑크 왕국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르군디아는 공작령이 되었다. 이게 서프랑크 왕국(후에 프랑스)의 부르군디아 공작령의 시초이다. 오툉(<small>프랑스어:</small> Autun [otœ̃], 오늘날의 프랑스 동부) 백작 출신인 판관공 리샤르(<small>프랑스어:</small> Richard le Justicier [ʁiʃaʁ lə ʒystisje] <small>리샤르 르 쥐스티시에</small>, <small>라틴어:</small> Richardus Justitiarius <small>리카르두스 유스티티아리우스</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Riccardo il Giustiziere [rikˈkardo il ʤustitˈʦjɛːre] <small>리카르도 일 주스티치에레</small>, <small>독일어:</small> Richard der Gerichtsherr [ˈʁɪçaʁt deːɐ̯ ɡəˈʁɪçʦhɛʁ] <small>리하르트 데어 게리히츠헤어</small>, 850년경~921년)는 이 지역의 변경공으로 봉해졌고 나중에는 공작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리샤르의 후손들이 계속 부르군디아 공작으로 있다가 1004년에 프랑스 왕이 공작령의 직접 지배권을 차지했으며 그 후로는 봉토로 주어지거나 프랑스 왕이 직접 부르군디아 공작위를 맡았다. 편의상 카롤링거 왕조 대신 카페(<small>프랑스어:</small> Capet [kapɛ]) 왕조가 다스리기 시작한 987년부터 서프랑크 왕국 대신 프랑스라고 부르기로 한다.</p>
<p>지체가 있었지만 부르군디아 공작령의 행정 중심지는 결국 디종이 되었다. 부르군디아 공작령은 클뤼니(<small>프랑스어:</small> Cluny [klyni]), 시토(<small>프랑스어:</small> Cîteaux [sito]) 등의 수도원으로도 유명한데 부르군디아 공작령의 수도사들은 고장 특산품인 포도주 생산을 부흥시키기도 했다.</p>
<p>시대에 따라 부르군디아 공작령은 실질적인 독립국처럼 행동했다 하여 부르군디아 공국이라고도 하는데 후에 프랑스 왕의 지배 밑에 들어갔을 때에도 공작령은 존속되었으므로 본 글에서는 구별하지 않고 공작령으로 통일해서 쓴다. 유럽 언어에서는 공국과 공작령의 구별이 없어 예를 들어 라틴어에서는 둘 다 두카투스(ducatus)라고 부른다.</p>
<h2>저지 부르군디아 왕국(879년~933년)과 고지 부르군디아 왕국(888년~933년)</h2>
<p>한편 중프랑크 왕국에 들어간 옛 부르군디아 왕국 땅 가운데 리옹과 비엔(<small>프랑스어:</small> Vienne [vjɛn], <small>라틴어:</small> Vienna <small>비엔나</small>, 오늘날의 프랑스 동남부)을 포함한 남쪽과 남서쪽 부분은 프로방스 왕국(<small>라틴어:</small> Regnum Provinciae <small>레그눔 프로빙키아이</small>)에 합쳐졌다. 그래서 이를 저지 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Burgundia Inferior <small>부르군디아 인페리오르</small>) 왕국이라고도 한다. 문화적으로 부르군디아와 프로방스가 반반이었으며 프랑코프로방스어(<small>프랑스어:</small> francoprovençal [fʁɑ̃kopʁɔvɑ̃sal] <small>프랑코프로방살</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francoprovenzale [fraŋkoprovenˈʦaːle] <small>프랑코프로벤찰레</small>)라는 독특한 언어가 탄생하는 배경이 된다. 프랑스어와 프로방스어의 특징을 둘 다 간직하고 있지만 프랑스어 방언도 아니고 프로방스어 방언도 아니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프랑스어와 프로방스어가 혼합된 언어라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오늘날에는 아르피타니아어(<small>프랑스어:</small> arpitan [aʁpitɑ̃] <small>아르피탕</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arpitano [arpiˈtaːno] <small>아르피타노</small>)라는 이름이 힘을 얻고 있다.</p>
<p>행정 중심지는 아렐라테(<small>라틴어:</small> Arelate, 오늘날의 프랑스 남부 아를 <small>프랑스어:</small> Arles [aʁl])이었다. 판관공 리샤르의 형인 보종(<small>프랑스어:</small> Boson [bo⟮ɔ⟯zɔ̃], <small>라틴어:</small> Boso <small>보소</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Bosone [boˈzoːne] <small>보소네</small>, <small>독일어:</small> Boso [boːzo] <small>보조</small>, 재위 879년~887년) 백작이 18개월만에 서프랑크 왕국의 왕 두 명이 죽은 혼란기에 현지 주교들과 귀족들을 설득하여 스스로 왕으로 선출된 것이 왕국이 세워진 배경이었다. 저지 부르군디아 왕국의 영토에는 번영하는 론강 유역의 무역 지대, 또 대륙 내부와 지중해의 주요 출입구가 포함되었다.</p>
<p>얼마 안 가서 옛 부르군디아 왕국 땅의 북동쪽 부분도 왕국이 되었는데 고지 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Burgundia Superior <small>부르군디아 수페리오르</small>) 왕국이라고 부른다. 거기서는 오세르(<small>프랑스어:</small> Auxerre [ɔ⟮o⟯sɛʁ], 오늘날의 프랑스 중북부) 백작의 아들 로돌프(<small>프랑스어:</small> Rodolphe [ʁɔdɔlf], <small>라틴어:</small> Rudolphus <small>루돌푸스</small>, <small>독일어:</small> Rudolf [ˈʁuːdɔlf] <small>루돌프</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Rodolfo [roˈdɔ⟮o⟯lfo] <small>로돌포</small>, 859~912년)가 본거지인 아가우눔(<small>라틴어:</small> Agaunum, <small>프랑스어:</small> Agaune [aɡon] <small>아곤</small>, 오늘날의 스위스 서남부 생모리스 프랑스어: Saint-Maurice [sɛ̃-mɔ⟮o⟯ʁis])에서 &#8216;부르군디아의 왕&#8217;으로 선출되었다.</p>
<p>고지 부르군디아 왕국의 행정 중심지는 생모리스였고 강역은 오늘날의 스위스 발레(<small>프랑스어:</small> Valais [valɛ])주, 보(<small>프랑스어:</small> Vaud [vo])주, 뇌샤텔(<small>프랑스어:</small> Neuchâtel [nøʃɑtɛl]), 제네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친 사부아/사보이아 지방, 프랑스 남동부의 도피네(<small>프랑스어:</small> Dauphiné [dofine]) 북부까지 포함했다. 쥐라산맥(<small>프랑스어:</small> Jura [ʒyʁa], 오늘날의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동쪽에 영토 대부분이 있다고 해서 &#8216;쥐라 저편의 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Burgundia Transjurensis <small>부르군디아 트란스유렌시스</small>, <small>프랑스어:</small> Bourgogne Transjurane [buʁɡɔɲ tʁɑ̃sʒyʁan] <small>부르고뉴 트랑스쥐란</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Borgogna Transgiurana [borˈɡoɲɲa tranzʤuˈraːna] <small>보르고냐 트란스주라나</small>)&#8217;라고 불러 부르군디아 공작령을 이르는 &#8216;쥐라 이편의 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Burgundia Cisjurensis <small>부르군디아 키스유렌시스</small>, <small>프랑스어:</small> Bourgogne Cisjurane [buʁɡɔɲ sisʒyʁan] <small>부르고뉴 시스쥐란</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Borgogna Cisgiurana [borˈɡoɲɲa ʧizʤuˈraːna] <small>보르고냐 치스주라나</small>)&#8217;와 구별하기도 하는데 사실 쥐라산맥 양쪽 비탈에 걸쳐 있었으므로 정확히 들어맞는 이름은 아니다.</p>
<p>고지 부르군디아 왕국의 주민들은 고집이 세고 본능적으로 외부인을 경계하는 전형적인 고지인이었으며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공국이나 외부의 영향에 더 쉽게 노출된 저지대보다는 고지 부르군디아 왕국이 옛 부르군디아의 자유로운 영혼을 더 잘 간직했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혹자는 훗날 역사에 등장하는 스위스의 뿌리를 고지 부르군디아 왕국에서 찾기도 한다.</p>
<h2>두 부르군디아의 연합왕국(아를 왕국)(933년~1032년)</h2>
<p>고지 부르군디아의 2대 왕이자 오세르의 로돌프의 아들인 로돌프 2세(937년 사망)는 923년 랑고바르드인의 왕(<small>라틴어:</small> rex Langobardorum <small>렉스 랑고바르도룸</small>), 즉 이탈리아 왕으로도 즉위하여 한동안 생모리스와 이탈리아의 파비아(<small>이탈리아어:</small> Pavia [paˈvia]) 사이를 오갔다.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로돌프 2세에 등을 돌리고 저지 부르군디아의 섭정이던 아를의 위그(<small>프랑스어:</small> Hugues [yɡ], <small>독일어:</small> Hugo [ˈhuːɡo] <small>후고</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Ugo [ˈuːɡo] <small>우고</small>)를 대신 이탈리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자 933년 로돌프와 위그는 기막힌 해결책을 찾았다. 로돌프가 위그를 이탈리아의 왕으로 인정하는 대신 위그는 로돌프를 고지와 저지 부르군디아의 연합 왕국의 왕으로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부르군디아의 연합왕국이 탄생하였다.</p>
<p>이탈리아 북부의 상황을 언제나 주시하고 있던 독일에서는 위그와 로돌프의 거래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작센 공이자 독일 왕이며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첫 황제가 되는 오토(<small>독일어:</small> Otto [ˈɔto]) 1세는 로돌프 2세가 죽자 그의 15세 아들 콩라드(<small>프랑스어:</small> Conrad [kɔ̃ʁad], <small>독일어:</small> Konrad [ˈkɔnʁaːt] <small>콘라트</small>, <small>이탈리아어:</small> Corrado [korˈraːdo] <small>코라도</small>)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부르군디아를 침공하고 이탈리아의 위그가 부르군디아마저 물려받는 것을 막았다. 그리하여 두 부르군디아의 연합왕국은 존속이 허용되었으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3" style="width: 587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3"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b1f1270d.png" alt="" width="587" height="60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b1f1270d.png 587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b1f1270d-294x300.png 294w" sizes="auto, (max-width: 587px) 100vw, 587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3" class="wp-caption-text">두 부르군디아의 연합 왕국(아를 왕국)과 프랑스의 부르군디아 공작령(<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p_Kingdom_Arelat_EN.png">출처</a>)</figcaption></figure>
<p>두 부르군디아의 연합왕국은 수도가 아를이었기 때문에 아를 왕국, 독일어로는 아렐라트(Arelat [aʁeˈlaːt])라고 한다. 강역은 빙하로부터 바다까지 펼쳐진 론강 유역이었다. 북으로는 &#8216;부르군디아의 문(<small>독일어:</small> Burgundische Pforte [bʊʁˈɡʊndɪʃə ˈp͜fɔʁtə] <small>부르군디셰 포르테</small>)&#8217;으로도 알려진 벨포르(<small>프랑스어:</small> Belfort [bɛlfɔʁ]) 통로를 통해 라인란트(<small>독일어:</small> Rheinland [ˈʁaɪ̯nlant]) 지방으로 진출이 가능했으며 남쪽의 항구 아를과 마르세유(<small>프랑스어:</small> Marseille [maʁsɛj])를 통해 이탈리아와 이베리아 반도에 왕래할 수 있었다.</p>
<p>아를에 있는 왕의 지배는 멀리 떨어진 내륙 지방까지 제대로 미치지 못해서 백작·주교·도시 등이 각각의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비에누아(<small>프랑스어:</small> Viennois [vjɛnwa], 오늘날의 프랑스 동남부) 지역에서는 알봉(<small>프랑스어:</small> Albon [albɔ̃])을 근거지로 한 백작들이 활약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인 기그(<small>프랑스어:</small> Guigues [ɡiɡ], 1030년 사망)는 몽스니산(<small>프랑스어:</small> Mont-Cenis [mɔ̃-s<i>ə</i>ni], <small>이탈리아어:</small> Moncenisio [monʧeˈniːzjo] <small>몬체니시오</small>, 오늘날의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 국경 근처)까지 이르는 작은 제국을 이룩했다. 그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 문장(紋章)으로 돌고래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알봉 백작들은 비에누아의 도팽(<small>프랑스어:</small> dauphin [dofɛ̃], <small>라틴어:</small> delphinus <small>델피누스</small>, &#8216;돌고래&#8217;를 뜻함)이라는 독특한 칭호를 얻게 되었다. 알봉 백작·비에누아 도팽이 다스리는 땅은 도피네(<small>프랑스어:</small> Dauphiné [dofine], <small>라틴어:</small> Delphinatus <small>델피나투스</small>)라는 이름이 붙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4"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4" style="width: 20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4"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c96d83ec.png" alt="" width="200" height="220"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4" class="wp-caption-text">도피네의 돌고래 모양 문장(<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auphin_of_Viennois_Arms.svg">출처</a>)</figcaption></figure>
<h2>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자유백작령(프랑슈콩테)(982년~1678년)</h2>
<p>브장송을 중심으로 한 고지 부르군디아 변경 지역의 궁정백작(<small>프랑스어:</small> comte palatin [kɔ̃t palatɛ̃] <small>콩트 팔라탱</small>)들은 알사티아(<small>라틴어:</small> Alsatia, 오늘날의 프랑스 동북부 알자스 <small>프랑스어:</small> Alsace [alzas])와 수에비아(<small>라틴어:</small> Suebia, 오늘날의 독일 남서부 슈바벤 <small>독일어:</small> Schwaben [ˈʃvaːbn̩])의 독일인들에 맞서 방어하는 대가로 특혜를 누렸다.</p>
<p>982년에는 이탈리아의 왕 아달베르토(<small>이탈리아어:</small> Adalberto [adalˈbɛrto], <small>프랑스어:</small> Aubert [obɛʁ] <small>오베르</small> 또는 Adalbert [adalbɛʁ] <small>아달베르</small>, <small>독일어:</small> Adalbert [ˈaːdalbɛʁt] <small>아달베르트</small>)의 아들인 오트기욤(<small>프랑스어:</small> Otte-Guillaume [ɔt-ɡijom], <small>이탈리아어:</small> Ottone Guglielmo [otˈtoːne ɡuʎˈʎɛ⟮e⟯lmo] <small>오토네 굴리엘모</small>, <small>독일어:</small> Otto Wilhelm [ˈɔto ˈvɪlhɛlm] <small>오토 빌헬름</small>)이 초대 궁정백작으로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부르군디아 궁정백작(후에 자유백작)은 36대에 걸쳐 17세기까지 이어졌다.</p>
<p>오트기욤은 1002년에 프랑스의 부르군디아 공작령도 물려받았으나 2년만에 프랑스 왕이 침공하여 공작령을 차지하는 바람에 아를 왕국의 궁정백작령만 남았다. 한편 오트기욤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아를 왕 로돌프 3세는 독일의 왕 하인리히(<small>독일어:</small> Heinrich [ˈhaɪ̯nʁɪç]) 2세(재위 1014년~1024년)의 보호를 요청했으며 대신 자신이 후계자 없이 죽으면 그에게 왕국 전체를 물려주기로 했다. 오트기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였으며 하인리히 2세가 궁정백작령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막았다.</p>
<p>하인리히 2세가 1024년에 먼저 죽고 오트기욤이 1026년에 뒤를 이었다. 1032년 로돌프 3세가 결국 후계자 없이 죽자 그의 사촌인 블루아(<small>프랑스어:</small> Blois [blwa]) 백작 외드(<small>프랑스어:</small> Eudes [ød], <small>독일어:</small> Odo [ˈoːdo] <small>오도</small>) 2세와 하인리히 2세의 아들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콘라트 2세가 아를 왕국의 왕위를 서로 주장하였다. 외드의 주군인 프랑스 왕이 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궁정백작령을 포함한 아를 왕국은 결국 신성 로마 제국의 소유가 되었다.</p>
<h2>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디아 왕국(1032년~?)과 소(小)부르군디아 공국(1127년~1218년), 부르군디아 방백령(1127년~)</h2>
<p>아를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에 들어온 뒤 부르군디아 왕국으로 개명되었다. 그리하여 신성 로마 제국은 1032년 이후 독일 왕국(<small>라틴어:</small> Regnum Teutonicum <small>레그눔 테우토니쿰</small>), 이탈리아 왕국(<small>라틴어:</small> Regnum Italiae <small>레그눔 이탈리아이</small>), 부르군디아 왕국(<small>라틴어:</small> Regnum Burgundiae <small>레그눔 부르군디아이</small>)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브라이스는 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디아 왕국을 아를 왕국의 연속으로 보았지만 데이비스는 정치적 맥락과 영토가 많이 바뀌었다며 제7왕국으로 따로 친다.</p>
<p>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멀리 떨어진 부르군디아 왕국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독일어는 부르군디아 왕국에 별로 파고들어가지 못하고 현대 아르피타니아어의 조상인 프랑스·프로방스어가 일상어로 계속 쓰였다.</p>
<p>독일의 체링겐(<small>독일어:</small> Zähringen [ˈʦɛːʁɪŋən]) 귀족 가문에 속한 콘라트 1세는 프라이부르크(<small>독일어:</small> Freiburg [ˈfʁaɪ̯bʊʁk], 오늘날의 독일 남서부)를 세워 통합된 지방 행정을 개척한 공로를 황제로부터 인정받아 1127년 부르군디아 왕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새로 지은 소(小)부르군디아(<small>라틴어:</small> Burgundia Minor <small>부르군디아 미노르</small>, <small>독일어:</small> Klein Burgund [ˈklaɪ̯n bʊʁˈɡʊnt] <small>클라인 부르군트</small>) 공작령을 수여받았다. 소부르군디아 공작령의 강역은 쥐라산맥 동쪽으로 펼쳐진 지대로 오늘날 스위스의 프랑스어권과 대체로 일치한다.</p>
<p>이 소부르군디아 공작령에 속한 방백령(<small>독일어:</small> Landgrafschaft [ˈlantɡʁaːfʃaft] <small>란트그라프샤프트</small>)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부르군디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부르군디아 방백령의 강역은 툰(<small>독일어:</small> Thun [ˈtuːn], 오늘날의 스위스 중서부)과 졸로투른(<small>독일어:</small> Solothurn [ˈzoːlotʊʁn], 오늘날의 스위스 서북부) 사이 아르강(<small>독일어:</small> Aar [ˈaːɐ̯])의 양안에 해당된다. 어쩌면 졸로투른을 조금 지나 있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왕가의 발원지, 합스부르크(<small>독일어:</small> Habsburg [ˈhaːpsbʊʁk] <small>하프스부르크</small>) 성까지 부르군디아 방백령에 속했을 수도 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5"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5" style="width: 53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5"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d566a80e.png" alt="" width="531" height="48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d566a80e.png 531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d566a80e-300x271.png 300w" sizes="auto, (max-width: 531px) 100vw, 531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5" class="wp-caption-text">부르군디아 방백령(<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ndgrafschaft_Burgund.png">출처</a>)</figcaption></figure>
<p>체링겐 가문은 총독이자 공작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며 프리부르(<small>프랑스어:</small> Fribourg [fʁibuʁ]), 부르크도르프(<small>독일어:</small> Burgdorf [ˈbʊʁkdɔʁf]), 무르텐(<small>독일어:</small> Murten [ˈmʊʁtn̩], <small>프랑스어:</small> Morat [mɔʁa] <small>모라</small>), 라인펠덴(<small>독일어:</small> Rheinfelden [ˈʁaɪ̯nfɛldn̩]), 툰 등의 도시를 세웠다(이들은 모두 오늘날 스위스에 있다). 체링겐 가문에서도 특히 적극적으로 활동한 백작 베르톨트(<small>독일어:</small> Berthold [ˈbɛʁt<small>(h)</small>ɔlt]) 5세는 툰성을 세우고 1191년에는 베른(<small>독일어:</small> Bern [ˈbɛʁn])시를 세웠다. 그러나 그가 1218년에 후계자 없이 죽은 후 소부르군디아 공국은 사라졌다.</p>
<p>신성 로마 제국 황제 가운데 유일하게 부르군디아 왕국에 깊숙이 관여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small>독일어:</small> Friedrich Barbarossa [ˈfʁiːdʁɪç baʁbaˈʁɔsa]), <small>프랑스어:</small> Frédéric Barberousse [fʁedeʁik baʁbəʁus] <small>프레데리크 바르브루스</small>, 이탈리아어어: Federico Barbarossa [fedeˈriːko barbaˈrossa] <small>페데리코 바르바로사</small>)는 1152년 아헨에서 독일의 왕, 1154년 파비아에서 이탈리아의 왕으로 각각 즉위한지 한참 지나 1173년에야 아를에서 부르군디아의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부르군디아 궁정백작의 상속녀 베아트리스(<small>프랑스어:</small> Béatrice [beatʁis])를 둘째 아내로 맞은 후 부르군디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궁정백작령을 직접 통치하고 부르군디아 왕국 내의 다툼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내세울만한 성과를 보지 못했고 1190년 십자군 원정길에 성지에 이르지도 못하고 죽었다.</p>
<p>교황과 황제가 대립한 서임권 투쟁은 양쪽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분열에 일조했다. 부르군디아 왕국은 특히 지배력의 약화에 취약했다. 산악 지형 때문에 거기서 벌이는 군사 작전마다 불확실성을 내포했다. 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려면 먼저 독일의 왕으로 즉위해야 했기 때문에 독일이 자동적으로 우선시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교황이 있는 이탈리아가 중요시되었다. 부르군디아 왕국은 상대적으로 황제의 관심 밖에 날 수 밖에 없었다.</p>
<p>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 부르군디아 왕국의 영토는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나갔다. 프로방스가 먼저 부르군디아 왕국에서 떨어져나갔고 콩타 브네생(<small>프랑스어:</small> Comtat Venaissin [kɔ̃ta vənɛsɛ̃])과 리옹, 도피네가 뒤를 이었다.</p>
<p>1127년 프로방스의 마지막 상속녀는 바르셀로나 백작인 남편에게 상속권을 넘겼다. 그리하여 프로방스는 카탈루냐의 지배권 안에 들어가고 신성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권 밖에 놓이게 되었다. 1246년에는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가 프랑스 앙주 왕가에 속한 남편에게 상속권을 넘겨 이후 프로방스는 프랑스 왕의 가신인 프로방스 백작이 다스리게 되었다.</p>
<p>한편 프랑스는 13세기 초 알비 십자군을 통해 랑그도크(<small>프랑스어:</small> Languedoc [lɑ̃ɡdɔk])를 정복하여 론강 우안까지 진출하였다. 알비 십자군은 가톨릭 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카타리파(<small>라틴어:</small> Cathari, <small>프랑스어:</small> cathares [kataʁ] <small>카타르</small>)를 상대로 일으킨 십자군으로 알비(<small>프랑스어:</small> Albi [albi]) 시와 그 주변에 카타리파가 많다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 1274년에는 론강 맞은편의 콩타 브네생 백작이 후계자가 없어 영지를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1348년에는 콩타 브네생에 둘러싸인 아비뇽(<small>프랑스어:</small> Avignon [aviɲɔ̃])이 유배된 교황에게 팔렸다.</p>
<p>론강 유역의 중심 도시인 리옹은 상업도시로 번영하였으며 매우 중요한 대주교구로 가톨릭 교회의 공의회가 두 차례 리옹에서 열렸다. 1245년 제1차 리옹 공의회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했다. 아직도 명목상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한 리옹에 황제가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행사할 수 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리옹은 대주교와 리오네포레(<small>프랑스어:</small> Lyonnais-Forez [ljɔnɛ-fɔʁɛ]) 백작, 리옹의 부호들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으로 1311년 들어온 프랑스 군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넘어갔다.</p>
<p>프랑스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의 요충지 도피네에도 마찬가지로 눈독을 들였는데 알봉 백작·비에누아 도팽들은 도피네를 계속 붙들고 있다 1349년 비로소 프랑스 왕에게 사적으로 매각했다. 그 후로 도피네를 다스리는 알봉 백작의 칭호였던 도팽은 프랑스 왕의 후계자의 작위가 되었다.</p>
<p>이렇게 부르군디아 왕국에서 프랑스를 접한 부분이 차츰 신성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1264년의 콘라트 4세 이후의 황제들은 부르군디아의 왕이라는 칭호를 더이상 공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p>
<p>고위 성직자들은 흔히 실질적인 독립국의 수장인 이른바 대공주교의 지위를 획득했다. 시옹(<small>프랑스어:</small> Sion [sjɔ̃])과 제네바의 주교들은 초기에 독립했고 다른 이들도 뒤따랐다.</p>
<p>북부의 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에서는 이미 르노(<small>프랑스어:</small> Renaud [ʁəno], <small>독일어:</small> Rainald [ˈʁaɪ̯nalt] <small>라이날트</small>) 3세(1148년 사망) 때에 이미 작은 제국을 결성하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이웃하는 프랑스 부르고뉴 공작령의 마콩(<small>프랑스어:</small> Mâcon [makɔ̃]) 백작령을 상속받은 후 스스로 황제의 종주권에서 벗어난 &#8216;자유백작(<small>프랑스어:</small> franc comte [fʁɑ̃ kɔ̃t] <small>프랑 콩트</small>, <small>독일어:</small> Freigraf [ˈfʁaɪ̯ɡʁaːf] <small>프라이그라프</small>)&#8217;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신성 로마 제국은 벌로 그의 영지 대부분을 빼앗았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결혼한 베아트리스는 바로 르노 3세의 딸이었으며 르노의 &#8216;자유백작령&#8217;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p>
<p>1178년에는 르노 3세의 손자인 브장송의 대주교가 교구를 이른바 제국도시(<small>독일어:</small> Reichsstadt [ˈʁaɪ̯çsʃtat]) <small>라이히스슈타트</small>)로 만들어 궁정백작령에 봉토 부담금을 내지 않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수십 년 후 바젤(<small>독일어:</small> Basel [ˈbaːzl̩])의 주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공주교국을 세워 교구 뿐만이 아니라 한때 르노 3세로부터 압수되었던 주변 지역까지도 다스리게 되었다.</p>
<p>훗날 스위스를 이루는 땅의 상당 부분은 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디아 왕국의 땅에서 나왔다. 13세기 초 발레 지역 시옹 주교령의 농민 일부가 오늘날의 스위스 동부에 있는 그라우뷘덴(<small>독일어:</small> Graubünden [ɡʁaʊ̯ˈbʏndn̩])으로 이주하여 그들이 가지고 온 교량 건축 기술에 힘입어 쇨레넨(<small>독일어:</small> Schöllenen [ˈʃœlənən]) 협곡을 지나는 통로를 개설, 이탈리아로 진입하는 귀중한 무역로를 열었다. 1291년 8월 이 통로를 관리하는 우리(<small>독일어:</small> Uri [ˈuːʁi]), 슈비츠(<small>독일어:</small> Schwyz [ˈʃviːʦ]), 운터발덴(<small>독일어:</small> Unterwalden [ˈʊntɐvaldn̩]) 지방의 주민들은 외부의 간섭을 저지하기로 맹세했다. 이것이 스위스 연맹의 시초이다.</p>
<p>당대에는 상속지가 국경을 무시하고 서로 다른 정치권으로 넘어가거나 혼인을 통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1156년에는 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이 독일의 호엔슈타우펜(<small>독일어:</small> Hohenstaufen [ˌhoːənˈʃtaʊ̯fn̩]) 왕가에게로 넘어갔으며 1208년에는 바이에른의 안덱스(<small>독일어:</small> Andechs [ˈandɛks]) 가문에게로, 1315년에는 프랑스 왕가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1330년에 프랑스 부르고뉴 공작의 부인인 프랑스의 잔 3세가 어머니로부터 부르고뉴 궁정백작령을 물려받은 후 프랑스에 속한 부르고뉴 공작령과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한 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의 연합이 가시화되었다. 프랑스 왕의 딸인 동시에 부르군디아 궁정백작이 된 마르그리트(<small>프랑스어:</small> Marguerite [maʁɡəʁit], 1310년~1382년)는 이 연합을 재촉하고자 별다른 근거 없이 1366년부터 &#8216;부르군디아 백작령&#8217; 대신 &#8216;프랑스콩테(<small>프랑스어:</small> France-Comté [fʁɑ̃s-kɔ̃te])&#8217;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앞서 르노 3세가 쓴 프랑 콩트, 즉 &#8216;자유백작&#8217;이라는 칭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마르그리트의 사후 오늘날 쓰는 이름인 &#8216;프랑슈콩테(<small>프랑스어:</small> Franche-Comté [fʁɑ̃ʃ-kɔ̃te])&#8217;, 즉 &#8216;자유백작령&#8217;이라는 형태로 굳어지게 된다.</p>
<h2>부르군디아 결합국(1384년~1477년)</h2>
<p>14세기 중반 프랑스 왕국과 부르군디아 공작령·궁정백작령에서 동시에 계승에 관련된 위기가 찾아왔다. 부르군디아 공작인 루브르의 필리프(<small>프랑스어:</small> Philippe de Rouvres [filip də ʁuvʁ] <small>필리프 드 루브르</small>, 1347년~1361년)는 플랑드르 백작령(<small>프랑스어:</small> Flandre [flɑ̃dʁ], <small>네덜란드어:</small> Vlaanderen [ˈvlaːndərə<i>n</i>] <small>플란데런</small>, 오늘날의 벨기에 서북부와 프랑스 북부)의 상속녀 당피에르(<small>프랑스어:</small> Dampierre [dɑ̃pjɛʁ])의 마르그리트(<small>프랑스어:</small> Marguerite de Dampierre [maʁɡəʁit də dɑ̃pjɛʁ] <small>마르그리트 드 당피에르</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Margaretha van Male [mɑrɣaˈreːta vɑn ˈmaːlə] <small>마르하레타 판 말러(말러의 마르하레타)</small>)를 아내로 맞았는데 1361년 후계자 없이 단명했다. 복잡한 계승 절차를 통해 프랑스 왕 장(<small>프랑스어:</small> Jean [ʒɑ̃]) 2세가 부르군디아 공작 지위를 상속받고 공작령을 프랑스 왕 직영지로 합병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얼마 안 되어 1364년에 세상을 떴다.</p>
<p>복잡하게 얽힌 계승 문제는 장자 상속권이 무시되고 장 2세의 넷째이자 막내 아들로서 이미 십 대의 나이에 1356년의 푸아티에(<small>프랑스어:</small> Poitiers [pwatje])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흑태자를 상대로 전투에 참가했던 용담공 필리프(<small>프랑스어:</small> Philippe le Hardi [filip lə aʁdi] <small>필리프 르 아르디(=용감한 필리프)</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Filips de Stoute [ˈfilɪps də ˈstʌu̯tə] <small>필립스 더 스타우터(=대담한 필립스)</small>, <small>독일어:</small> Philipp der Kühne [ˈfiːlɪp deːɐ̯ ˈkyːnə] <small>필리프 데어 퀴네(=대담한 필리프)</small>)에게 부르고뉴 공작령이 돌아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더구나 용담공 필리프는 루브르의 필리프의 미망인 당피에르의 마르그리트를 아내로 맞았는데 양 부르군디아와 아르투아 백작령(<small>프랑스어:</small> Artois [aʁtwa],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등 용담공 필리프가 물려받은 영지와 플랑드르 백작령을 비롯 양쪽이 물려받은 기타 영지를 모두 합치니 북해의 불로뉴(<small>프랑스어:</small> Boulogne [bulɔɲ],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에서 검은 숲(<small>독일어:</small> Schwarzwald [ˈʃvaʁʦvalt] <small>슈바르츠발트</small>, 오늘날의 독일 남서부)에 이르는 제법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 후로도 필리프와 마르그리트의 후손들은 브라반트(<small>네덜란드어:</small> Brabant [braːbɑnt], 오늘날의 네덜란드 남부와 벨기에 북부·중부) 공국, 룩셈부르크(<small>독일어:</small> Luxemburg [ˈlʊksm̩bʊʁk], <small>프랑스어:</small> Luxembourg [lyksɑ̃buʁ] <small>뤽상부르</small>, 룩셈부르크어: Lëtzebuerg [ˈləʦəbuɐ̯ɕ] <small>레체부어시</small>, 오늘날의 룩셈부르크와 그 주변) 공국 등을 물려받아 영토를 늘려갔다. 프랑스는 1337년 시작된 잉글랜드와의 백 년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은 통일된 제국 헌법을 도입하고 선거제를 개정한 1356년의 금인칙서의 후폭풍으로 각각 홍역을 치르던 틈을 타서 프랑스도 독일도 아닌 부르군디아라는 실체가 다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그 뒤에는 오래 전에 사라진 나라인 로타링기아를 부활시킨다는 낭만적인 생각이 깔려있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6"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6" style="width: 545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6"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deeaa175.png" alt="" width="545" height="768"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deeaa175.png 545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deeaa175-213x300.png 213w" sizes="auto, (max-width: 545px) 100vw, 545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6" class="wp-caption-text">무모공 샤를 시대의 부르군디아 결합국(<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arte_Haus_Burgund_4_EN.png">출처</a>)</figcaption></figure>
<p>이 새로운 부르군디아 복합체를 흔히 부르고뉴 공국이라고 하고 용담공 필리프와 그 자손들이 프랑스의 발루아 왕가(<small>프랑스어:</small> Valois [valwa])에 속했다고 해서 발루아 부르고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부르군디아 공작령과 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 및 다른 여러 영토가 동군연합으로 합친 것이므로 부르군디아 제국(諸國, 즉 &#8216;나라들&#8217;; <small>프랑스어:</small> États bourguignons [eta buʁɡiɲɔ̃] <small>에타 부르기뇽</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Bourgondische landen [burˈɣɔndisə ˈlɑndə<i>n</i>] <small>부르혼디서 란던</small>, <small>독일어:</small> Burgundischen Länder [bʊʁˈɡʊndɪʃn̩ ˈlɛndɐ] <small>부르군디셴 렌더</small>) 또는 부르군디아 결합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수장은 공작인 동시에 백작인 &#8216;공백작&#8217;이었다. 그러나 왕은 아니었다. 당시 왕관은 교황이 수여했는데 공백작이 다스리는 모든 영토는 명목뿐이지만 프랑스 왕이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속했으므로 이들의 노여움을 무릅쓰고 부르군디아 왕을 승인할 교황은 없었다. 하지만 궁정의 화려함과 도시의 부, 적극적인 문화 후원 활동은 당대의 거의 모든 왕들을 능가했다. 부르군디아의 공백작은 공식 칭호만 없을 뿐 사실상 왕이었다.</p>
<p>부르군디아 결합국의 영토 기반은 이전의 다른 부르군디아와는 상당히 달랐다. 부르군디아 공작령과 백작령이 중심이 되었지만 멀리 북쪽의 해안 지방이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고 결정적으로 역사적인 부르군디아 지방의 대부분은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 브루게(<small>네덜란드어:</small> Brugge [ˈbrʏɣə] <small>브뤼허</small>, 오늘날의 벨기에 북서부)에서 태어난 당피에르의 마르그리트의 상속지는 남편의 상속지보다 훨씬 크고 부유했다.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역(<small>프랑스어:</small> Picardie [pikaʁdi])에 해당하는 옛 프랑스 백작령인 베르망두아(<small>프랑스어:</small> Vermandois [vɛʁmɑ̃dwa])와 퐁티외(<small>프랑스어:</small> Ponthieu [pɔ̃tjø])로부터 각각 오늘날의 네덜란드 서부와 동부에 있었던 옛 신성 로마 제국 백작령 홀란트(<small>네덜란드어:</small> Holland [ˈɦɔlɑnt])와 헬데를란트(<small>네덜란드어:</small> Gelderland [ˈɣɛldərlɑnt])까지 펼쳐졌으며 아미앵(<small>프랑스어:</small> Amiens [amjɛ̃]), 아라스(<small>프랑스어:</small> Arras [aʁas], 이상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브루게, 겐트(<small>네덜란드어:</small> Gent [ˈɣɛnt] <small>헨트</small>), 브뤼셀(<small>프랑스어:</small> Bruxelles [bʁysɛl], 이상 오늘날의 벨기에), 암스테르담(<small>네덜란드어:</small> Amsterdam [ˌɑmstərˈdɑm], 오늘날의 네덜란드) 등 저지대 나라들의 대도시를 모두 포함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던 위트레흐트(<small>네덜란드어:</small> Utrecht [ˈytrɛxt], 오늘날의 네덜란드 중부)와 캉브레(<small>프랑스어:</small> Cambrai [kɑ̃bʁɛ],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의 주교령, 리에주(<small>프랑스어:</small> Liège [ljɛʒ], 오늘날의 벨기에 동부) 대주교령, 뤽쇠이(<small>프랑스어:</small> Luxeuil [lyksœj], 오늘날의 프랑스 동부) 교구 등도 부르군디아의 영향권에 놓여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다.</p>
<p>부르군디아 결합국의 영토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북부와 독일 서북부 일부에 걸친 북쪽 부분을 &#8216;이쪽 나라들(<small>프랑스어:</small> les pays de par-deçà [le pɛ⟮e⟯i də paʁ-dəsa] <small>레 페이 드 파르드사</small>)&#8217;라고 불러 부르군디아 공작령과 백작령이 중심이 된 남쪽의 &#8216;저쪽 나라들(<small>프랑스어:</small> les pays de par-delà [le pɛ⟮e⟯i də paʁ-dəla] <small>레 페이 드 파르들라</small>)&#8217;과 구별했다. 공백작이 북부에서 지낼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나온 이름인데 물론 이 이름을 쓰는 이의 관점에 따라 이쪽 나라들과 저쪽 나라들이 뒤바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부르군디아 결합국의 북쪽 영토를 이르기 위해 &#8216;이쪽 나라들&#8217; 대신 &#8216;낮은 나라들&#8217; 또는 &#8216;저지대 나라들(<small>프랑스어:</small> les pays bas [le pɛ⟮e⟯i ba] <small>레 페이 바</small>)&#8217;이라는 표현이 생겼고 이게 네덜란드어로는 &#8216;더 라허 란던(de Lage landen [də ˈlaːɣə ˈlɑndə<i>n</i>])&#8217; 또는 &#8216;더 네데를란던(de Nederlanden [də ˈneːdərlɑndə<i>n</i>])&#8217;으로 표현되었다. 후자인 &#8216;네데를란던&#8217;은 그 후로 이 지방을 이르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는데 여기서 이름을 딴 오늘날의 네덜란드를 이르는 영어 이름인 &#8216;더 네덜런즈(the Netherlands [ðə ˈnɛðə<i>r</i>ləndz])&#8217;가 나왔고 프랑스어로는 원래의 표현을 그대로 써서 &#8216;레 페이바(les Pays-Bas [le pɛ⟮e⟯i-ba])&#8217;라고 한다. 즉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역사적 습관 때문에 오늘날의 네덜란드를 복수형을 써서 &#8216;저지대 나라들&#8217;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정작 네덜란드어에서는 단수형인 &#8216;네데를란트(Nederland [ˈneːdərlɑnt])&#8217;를 쓴다. 단 &#8216;네덜란드 왕국&#8217;은 복수형인 &#8216;네데를란던&#8217;을 써서 &#8216;코닝크레이크 데르 네데를란던(Koninkrijk der Nederlanden [ˈkoːnɪŋkrɛi̯k dɛr ˈneːdərlɑndə<i>n</i>])이라고 하는데 이는 유럽의 네덜란드 본토 이외에 카리브해의 영토도 포함한다고 해서 &#8216;네덜란드들의 왕국&#8217;이란 뜻으로 쓰는 것이다. 영어와 네덜란드어에서는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구별하기 위해 역사 지명으로 쓰인 &#8216;네덜런즈&#8217;와 &#8216;네데를란던&#8217;을 각각 &#8216;더 로 컨트리스(the Low Countries [ðə ˈloʊ̯ ˈkʌntɹiz])&#8217;와 &#8216;더 라허 란던(de Lage landen)&#8217;으로 흔히 바꿔 부르는데 프랑스어에서는 딱히 여기에 해당되는 표현이 없다. 여기에는 오늘날의 네덜란드 뿐만이 아니라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독일 일부 등도 포함되며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에도 쓰인 지명이므로 둘을 구별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확립된 용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 글에서는 &#8216;저지대 나라들&#8217;로 통일한다. 프랑스어의 페이(pays [pɛ⟮e⟯i]), 네덜란드어의 란트(land [ˈlɑnt]), 영어의 컨트리(country [ˈkʌntɹi]) 등은 에타(état [eta])/스타트(staat [ˈstaːt])/스테이트(state [ˈsteɪ̯t])와 달리 꼭 정치체를 이르는 것이 아니므로 번역어로는 &#8216;국가&#8217;보다는 &#8216;나라&#8217;가 적절하다.</p>
<p>15세기는 중세 도시의 전성기였다. 부르군디아 결합국에 속한 저지대 나라들은 이탈리아 북부와 함께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부르군디아의 도시들은 예술과 학문과 상업이 같이 번영하는 무대가 되었다. 로베르 캉팽(<small>프랑스어:</small> Robert Campin [ʁɔbɛʁ kɑ̃pɛ̃], 1378년경~1444년), 얀 판에이크(<small>네덜란드어:</small> Jan van Eyck [ˈjɑn vɑn-ˈɛi̯k], 1390년경~1441년), 로히르 판데르베이던(<small>네덜란드어:</small> Rogier van der Weyden [roˈɣiːr vɑn-dɛr-ˈʋɛi̯də<i>n</i>], 1400년경~1464년), 한스 멤링(<small>독일어:</small> Hans Memling [ˈhans ˈmɛmlɪŋ], 1430년경~1494년) 등 이른바 &#8216;북방 르네상스&#8217;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화풍의 거장들은 부르군디아 궁정의 후원을 받고 활동하였다.</p>
<p>음악도 발전했다. 이른바 부르군디아 악파는 디종의 공작 궁정 예배실에서 시작되어 부르군디아 전역, 특히 저지대 나라들에서 번창했으며 브라반트인 기욤 뒤페(<small>프랑스어:</small> Guillaume Dufay [ɡijom dyfɛ] 또는 [—dyfai] <small>뒤파이</small>, 1397년~1470년)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그 뒤를 이은 프랑스·플랑드르 악파도 다성음악의 대가 조스캥 데프레(<small>프랑스어:</small> Josquin des Prez [ʒɔskɛ̃ de-pʁe], 1450년경~1520년)를 중심으로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하였다.</p>
<p>문학과 철학도 번창했다.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로테르담(<small>네덜란드어:</small> Rotterdam [ˌrɔtərˈdɑm])의 에라스뮈스(<small>네덜란드어:</small> Erasmus [eˈrɑsmʏ⟮ə⟯s], <small>라틴어:</small> Erasmus <small>에라스무스</small>, 1466년~1536년)도 부르군디아 결합국 사람이었다. 부르군디아 결합국에서는 라틴어와 더불어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같이 발전했다.</p>
<p>그러나 부르군디아의 공백작들의 최대 관심사는 아무래도 정치였으며 프랑스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와 백 년 전쟁을 간헐적으로 벌이고 있던 프랑스의 조정은 아르마냐크(<small>프랑스어:</small> Armagnac [aʁmaɲak])의 백작이 수령이 된 &#8216;아르마냐크파&#8217;와 부르군디아 및 잉글랜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8216;부르고뉴파&#8217; 사이의 내분에 휘말렸으며 이는 치열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플랑드르의 모직 산업은 잉글랜드의 양모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플랑드르인들은 자연히 잉글랜드에 우호적이었고 백 년 전쟁에서도 잉글랜드의 편을 들었다. 플랑드르를 차지한 부르군디아 공백작들은 프랑스 군의 지원으로 친잉글랜드파 플랑드르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이들 역시 잉글랜드와 적대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p>
<p>용담공 필리프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어 부르군디아 공백작이 된 용맹공 장(<small>프랑스어:</small> Jean sans Peur [ʒɑ̃ sɑ̃ pœʁ] <small>장 상 푀르(=두려움 없는 장)</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Jan zonder Vrees [ˈjɑn zɔndər ˈvreːs] <small>얀 존더르 프레이스(=두려움 없는 얀)</small>, <small>독일어:</small> Johann Ohnefurcht [ˈjoːhan ˈoːnəˈfʊʁçt] <small>요한 오네푸르히트(=두려움 없는 요한)</small>)은 아르마냐크파와 부르고뉴파 사이의 내전에 개입하여 1418년 파리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용맹공 장은 이듬해 프랑스 왕태자의 추종자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이에 부르군디아는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었다. 힘을 얻은 잉글랜드의 프랑스 내 세력권은 수 년 내에 최고점에 달했다. 그러다가 1435년 부르군디아 편이던 잉글랜드 왕자가 죽자 부르군디아는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파리를 프랑스 왕에게 돌려주었다. 그 후 프랑스 왕은 동맹을 잃은 잉글랜드를 상태로 영토를 수복하여 백 년 전쟁은 1453년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p>
<p>부르군디아 결합국의 시대는 용담공 필리프의 증손자인 무모공 샤를(<small>프랑스어:</small> Charles le Téméraire [ʃaʁl lə temeʁɛʁ] <small>샤를 르 테메레르(=무모한 샤를)</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Karel de Stoute [ˈkaːrəl də ˈstʌu̯tə] <small>카럴 더 스타우터(=대담한 카럴)</small>, <small>독일어:</small> Karl der Kühne [ˈkaʁl deːɐ̯ ˈkyːnə] <small>카를 데어 퀴네(=대담한 카를)</small>) 대에 막을 내린다. 샤를은 그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공백작위를 물려받기 전인 1466년에 이미 디낭(<small>프랑스어:</small> Dinant [dinɑ̃], 오늘날의 벨기에 중남부) 시가 반란을 꾀하고 자신과 어머니를 모욕했다며 주민 모두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학살할 것을 명하여 무자비한 성격을 여실히 드러냈다.</p>
<p>야심에 가득 찬 샤를은 1471년 프랑스 왕의 종주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왕이 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1473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에게서 그를 기존 영토는 물론 로렌 공국, 사부아/사보이아 공국, 클레베 공국(<small>독일어:</small> Kleve [ˈkleːvə], <small>네덜란드어:</small> Kleef [ˈkleːf] <small>클레이프</small>, 오늘날의 독일 서부와 네덜란드 동부) 등의 종주권을 가지는 왕으로 인정하겠다는 동의마저 얻어냈으나 프리드리히 3세는 그를 왕으로 봉하기 전에 마음을 바꾸었다.</p>
<p>샤를은 영토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결국 사방에 적을 만들었고 이들은 1474년~1477년 일련의 부르군디아 전쟁에서 샤를에 맞서 연합하게 된다. 서쪽으로는 프랑스 왕 루이 11세, 동쪽으로는 로렌 공국과 신성 로마 제국, 스위스가 부르군디아를 압박하게 된 것이다.</p>
<p>이미 옛 고지 부르군디아의 상당 부분을 흡수한 스위스는 부르군디아 결합국의 천적으로 드러났다. 스위스 군과 맞선 세 차례의 큰 전투에서 샤를은 굴욕적으로 참패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전투는 1477년 로렌 공국의 수도 낭시(<small>프랑스어:</small> Nancy [nɑ̃si], 오늘날의 프랑스 동북부)에서 로렌 공국과 스위스의 연합군을 상대로 벌였는데 여기서 샤를은 전사하고 만다. 이 전투에 대해서 기록한 부르군디아인 역사가 필리프 드 코민(<small>프랑스어:</small> Philippe de Commynes [filip də kɔmin])은 무모공 샤를이 유럽의 절반을 얻어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라고 혹평했다.</p>
<h2>프랑스 부르고뉴주(1477년~1791년)와 신성 로마 제국의 부르군트 제국권(1548년~1795년)</h2>
<p>수 년 이내에 부르군디아 결합국의 땅은 흩어졌다. 부르군디아 공작령은 프랑스가 재빨리 다시 차지하였으며 부르군디아 궁정백작령, 즉 프랑슈콩테는 얼마 후 신성 로마 제국에게 돌아갔다. 공작령과 저지대 나라들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샤를의 19세 딸 마리(<small>프랑스어:</small> Marie [maʁi], <small>네덜란드어:</small> Maria [maˈriːa] <small>마리아</small>, <small>독일어:</small> Maria [maˈʁiːa] <small>마리아</small>, 1457년~1482년)는 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되는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small>독일어:</small> Maximilian von Habsburg [maksiˈmiːli̯aːn fɔn ˈhaːpsbʊʁk] <small>막시밀리안 폰 하프스부르크</small>, 1459년~1519년)과 결혼하여 공작령을 제외한 부르군디아의 영토는 당시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가 차지하게 되었다.</p>
<p>그리하여 부르군디아 공작령은 나머지 부르군디아 영토와 완전히 갈라졌다. 부르군디아 공작령은 프랑스 왕국에 되돌려져 부르고뉴라는 이름의 주(<small>프랑스어:</small> province [pʁɔvɛ̃s] <small>프로뱅스</small>)가 되었다. 그런데 헷갈리기 딱 좋게 합스부르크 왕가는 공작령을 잃었으면서도 부르군트 공작이라는 칭호는 계속 썼다. 그래서 1477년부터 1795년까지 합스부르크 황제들이 쓴 부르군트 공작이라는 칭호는 이전의 황제들이 썼던 부르군디아 왕이라는 칭호와 가리키는 영토가 다르다.</p>
<p>궁정백작령, 즉 프랑슈콩테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1477년에는 프랑스가 차지했으나 16년 후 상리스(<small>프랑스어:</small> Senlis [sɑ̃lis],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 반환되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부르군트 상속지에 더해졌다.</p>
<p>이 무렵 신성 로마 제국은 수많은 구성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여러 구성 영토를 묶은 제국 크라이스(<small>독일어:</small> Reichskreis [ˈʁaɪ̯çskʁaɪ̯s] <small>라이히스크라이스</small>, <small>라틴어:</small> circulus imperii <small>키르쿨루스 임페리이</small>)라는 행정 단위를 도입했다. 제국 크라이스의 번역명은 확립된 것이 없고 관구라고 쓰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가톨릭 교회의 행정 구역명과 같고 &#8216;원, 동그라미&#8217;를 뜻하는 크라이스의 원 뜻을 살리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제국권(帝國圈)이라고 쓰도록 한다. 참고로 오늘날에도 독일에서는 비슷한 용어인 란트크라이스(<small>독일어:</small> Landkreis [ˈlantkʁaɪ̯s]) 또는 크라이스(<small>독일어:</small> Kreis [ˈkʁaɪ̯s])가 쓰이는데 이 경우는 대한민국의 군(郡)에 대응되는 하위 행정 구역이다.</p>
<p>신성 로마 제국의 옛 부르군디아 영토 대부분은 1548년에 부르군트 제국권(<small>독일어:</small> Burgundischer Reichskreis [bʊʁˈɡʊndɪʃɐ ˈʁaɪ̯çskʁaɪ̯s] <small>부르군디셔 라이히스크라이스</small>, <small>네덜란드어:</small> Bourgondische Kreits [burˈɣɔndisə ˈkrɛi̯ts] <small>부르혼디서 크레이츠</small>, <small>프랑스어:</small> Cercle de Bourgogne [sɛʁkl də buʁɡɔɲ] <small>세르클 드 부르고뉴</small>, <small>라틴어:</small> Circulus Burgundiae <small>키르쿨루스 부르군디아이</small>)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의 계속된 싸움으로 부르군트 제국권의 영토는 차츰 줄어들었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7"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7" style="width: 49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107047 size-full"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e5e5f5a6.png" alt="" width="491" height="48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e5e5f5a6.png 491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e5e5f5a6-300x293.png 300w" sizes="auto, (max-width: 491px) 100vw, 491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7" class="wp-caption-text">16세기 초의 부르군디아 제국권(<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cator_Burgundian_Circle.svg">출처</a>)</figcaption></figure>
<p>1555년에는 제국권의 대부분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파가 다스리는 에스파냐에 넘어갔다. 그러나 25년 내에 그 절반 가량이 &#8216;일곱 개의 연합한 저지대 나라들의 공화국(<small>네덜란드어:</small> Republiek der Zeven Verenigde Nederlanden [repyˈblik dɛr ˈzeːvə<i>n</i> vəˈreːnɪɣdə ˈneːdərlɑndə<i>n</i>] <small>레퓌블릭 데르 제번 페레니흐더 네데를란던</small>)&#8217;, 즉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네덜란드의 전신이다. 그리하여 1715년 에스파냐에서 오스트리아로 반환되었을 때 원래의 20개 주 가운데 여덟 개만 남아있었다.</p>
<p>프랑슈콩테도 1555년 대부분이 에스파냐의 지배에 들어갔으나 수도 브장송만은 제국도시로 남았다가 1651년에야 프랑슈콩테(에스파냐어로는 엘 콘다도 프랑코 El Contado Franco [el konˈtað̞o ˈfɾaŋko])의 수도로 복귀했다. 그러나 1678년 네이메헌(<small>네덜란드어:</small> Nijmegen [ˈnɛi̯ˌmeːɣə<i>n</i>], 오늘날의 네덜란드 동부) 조약을 통해 백작령이 전부 프랑스에 넘어갔다. 그리하여 신성 로마 제국과 옛 부르군디아 왕국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졌다.</p>
<p>앙시앵 레짐(<small>프랑스어:</small> ancien régime [ɑ̃sjɛ̃ ʁeʒim]), 즉 1789년의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에서 최상위 행정 구역 단위는 프로뱅스, 즉 주였다. 루이 14세로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디종을 주도로 하는 부르고뉴주와 브장송을 주도로 하는 프랑슈콩테주가 나란히 프랑스 왕국 내에 존재하였다. 그러나 혁명 이후인 1791년 주(프로뱅스)를 비롯한 옛 행정 구역은 모두 폐지되었다. 옛 주에 대한 충성과 주에 따른 문화적 차이를 없애고 공화국에 충성하도록 국민을 통합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옛 주를 대체한 최상위 행정 구역 단위는 &#8216;분할된 것&#8217;을 뜻하는 데파르트망(<small>프랑스어:</small> département [depaʁtəmɑ̃])인데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고려 전혀 없이 프랑스 공화국을 단순히 행정의 편의을 위하여 나눈 것으로 예전에 쓰던 이름 대신 강, 산 등 자연 지물의 이름을 붙여 역사적 기억의 단절을 꾀했다. 데파르트망의 크기에도 제한을 두어 혁명 이전에 30여 개 주가 있었던 데에 반해 데파르트망의 수는 곧 백 개 가량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부르군디아/부르고뉴의 이름은 프랑스의 지도상에서 사라졌다.</p>
<h2>프랑스의 부르고뉴 레지옹(1982년~2015년)</h2>
<p>어쩌면 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된 프랑스에도 20세기에 변화가 찾아왔다. 1982년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데파르트망의 상위 단위인 레지옹이 도입되고 조금이나마 지방 분권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본토에 한정하더라도 백 개 가까이 되던 데파르트망 대신 22개의 레지옹이 지방 행정 구역 최상위 단위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에서 쓰는 용어에도 혼란이 생겼다. 보통 외국의 최상위 행정 구역은 &#8216;주(州)&#8217;로 번역하는 관습에 따라 1982년 이전에는 프랑스 지방 행정 구역의 최상위 단위였던 데파르트망을 &#8216;주&#8217;라고 했었다. 그래서 레지옹이 도입되자 이전처럼 데파르트망을 계속 &#8216;주&#8217;라고 하고 레지옹의 번역어를 따로 고를지, 아니면 이제부터는 레지옹을 &#8216;주&#8217;라고 하고 데파르트망은 &#8216;현(縣)&#8217; 같은 다른 번역어로 바꿀지 혼란이 생겼다. 아직 용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 본 글에서는 레지옹, 데파르트망을 번역하지 않고 쓴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8" style="width: 499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8"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ebf21498.png" alt="" width="499" height="48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ebf21498.png 499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ebf21498-300x289.png 300w" sizes="auto, (max-width: 499px) 100vw, 499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8" class="wp-caption-text">부르고뉴 레지옹(<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ourgogne_in_France.svg">출처</a>)</figcaption></figure>
<p>이를 통해 옛 프로뱅스 이름 상당수가 레지옹 이름으로 부활되었다. 부르고뉴와 프랑슈콩테도 레지옹 이름으로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레지옹을 만든 관료들은 혁명 직전의 지도만 참고한 듯 옛 공작령에게만 부르고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군디오크의 부르군디아 제2왕국부터 14세기 초까지 부르군디아의 핵심 영토이던 론강과 손강이 만나는 리옹 일대는 &#8216;론알프(<small>프랑스어:</small> Rhône-Alpes [ʁon-alp])&#8217;라고 이름붙인 레지옹에 포함시켰다. 관료들은 론알프 레지옹도 다른 어떤 레지옹 못지않게 부르고뉴(부르군디아)로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하다.</p>
<h2>프랑스의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레지옹(2016년~)</h2>
<p>데이비스의 부르군디아에 대한 단원은 여기서 끝을 맺지만 부르군디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2014년 프랑스의 총리가 된 마뉘엘 발스(<small>프랑스어:</small> Manuel Valls [manɥɛl vals])의 제안으로 기존 레지옹의 통합을 통해 수를 줄이는 지방 행정구역 개편이 기획되었다. 그러자 부르고뉴와 프랑슈콩테 두 레지옹의 지사는 4월 14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두 레지옹을 합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자발적으로 통합 의사를 밝힌 레지옹은 이 둘 뿐이다. 나머지 레지옹의 개편은 중앙 의회에서 논의하고 결정했는데 부르고뉴와 프랑슈콩테는 외부의 개입 없이 스스로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p>
<p>그리하여 2014년 12월 17일 프랑스 의회는 프랑스 본토의 레지옹을 기존의 22개에서 13개로 수를 줄이는 개편안을 확정 발표하였다. 새 지방 행정구역은 2016년 1월 1일 발효되었다. 가칭 부르고뉴프랑슈콩테(<small>프랑스어:</small> Bourgogne–Franche-Comté) 레지옹이 새로 생긴 것이다. 공식 명칭은 2016년 7월 1일까지 정하기로 했는데 아마도 부르고뉴의 이름이 들어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데이비스의 목록에 제16 부르군디아를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704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7049" style="width: 499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07049" src="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f19529eb.png" alt="" width="499" height="480" srcset="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f19529eb.png 499w, https://pyogi.kkeutsori.com/wp-content/uploads/2025/12/f0074568_5696cf19529eb-300x289.png 300w" sizes="auto, (max-width: 499px) 100vw, 499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7049" class="wp-caption-text">가칭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레지옹(<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ourgogne-Franche-Comt%C3%A9_region_locator_map.svg">출처</a>)</figcaption></figure>
<p>부르군디아의 역사적 핵심 영토 가운데 론강 유역은 빠졌지만 부르군디아 결합국의 북쪽 저지대 나라들을 제외한 &#8216;저쪽 나라들&#8217;이 다시 뭉치게 되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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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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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끝소리]]></dc:creator>
		<pubDate>Tue, 12 Mar 2024 05:01:24 +0000</pubDate>
				<category><![CDATA[미분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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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서양 음악의 혼성 4성부 합창단은 가장 음역이 높은 성부부터 소프라노(soprano), 알토(alto), 테너(tenor), 베이스(bass)로 구성된다. 보통 소프라노와 알토가 여성 성부이고 테너와 베이스가 남성 성부이다. 성악 음역을 논할 때는 알토라는 말을 쓰는 대신 여자 가수의 경우 소프라노 다음으로 높은 음역은 메조소프라노(mezzo-soprano)라고 하고 더 낮은 음역은 콘트랄토(contralto)라고 한다. 메조소프라노나 콘트랄토와 비슷한 음역대의 남자 가수의 경우 카운터테너(countertenor)라는 용어를 쓴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font-size:0.9em; color: #5C78C6;">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a href="https://www.facebook.com/kkeutsori/posts/pfbid0xMNhsNJvHx8rwzUb8Cuum7265E4TpqUWwjbiYnT84LJS1ab6UcNJGo8637RF4iw6l">여기</a>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p>
<p>서양 음악의 혼성 4성부 합창단은 가장 음역이 높은 성부부터 소프라노(soprano), 알토(alto), 테너(tenor), 베이스(bass)로 구성된다. 보통 소프라노와 알토가 여성 성부이고 테너와 베이스가 남성 성부이다.</p>
<p>성악 음역을 논할 때는 알토라는 말을 쓰는 대신 여자 가수의 경우 소프라노 다음으로 높은 음역은 메조소프라노(mezzo-soprano)라고 하고 더 낮은 음역은 콘트랄토(contralto)라고 한다. 메조소프라노나 콘트랄토와 비슷한 음역대의 남자 가수의 경우 카운터테너(countertenor)라는 용어를 쓴다. 또 남자 가수는 테너와 베이스 사이에 바리톤(baritone)이 들어간다. 그래서 성악가는 음역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 카운터테너, 테너, 바리톤, 베이스라고 부른다. 보통 성인 여자는 메조소프라노, 성인 남자는 바리톤이 평균적인 음역이다. 바리톤은 남성 성부를 더 세부적으로 나눈 합창단에서 성부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p>
<p>이들은 대체로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폴리포니(다성부) 음악에서 쓰인 용어가 이탈리아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성부 수와 구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쓰였다.</p>
<p>높은 음역의 성부는 흔히 라틴어로 &#8216;더 높은&#8217;을 뜻하는 superius &#8216;수페리우스&#8217;라고 부르고 밑을 받쳐주는 기본 선율을 맡은 성부는 라틴어로 &#8216;붙드는 이&#8217;를 뜻하는 tenor &#8216;테노르&#8217;라고 불렀다. tenor를 기준으로 더 높은 성부는 라틴어로 &#8216;높은&#8217;을 뜻하는 altus &#8216;알투스&#8217;, 더 낮은 성부는 라틴어로 &#8216;낮은&#8217;을 뜻하는 bassus &#8216;바수스&#8217;로 불렀다.</p>
<p>또 별개의 선율을 맡은 성부가 있으면 &#8216;노래&#8217;를 뜻하는 cantus &#8216;칸투스&#8217;라고 불렀고 여기에 조화되게 더 높은 음으로 부르는 성부는 접두사 dis-를 더해서 discantus &#8216;디스칸투스&#8217;라고 불렀다. 각 성부의 음역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cantus와 discantus는 보통 tenor보다는 높고 superius보다는 낮은 성부였다.</p>
<p>가장 높은 성부는 superius 대신 &#8216;세 겹&#8217;을 뜻하는 triplex &#8216;트리플렉스&#8217;로 부르기도 했다. 이는 원래 3성부 음악에서 가장 높은 성부를 이르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tenor와 triplex 사이의 성부는 &#8216;가운데의&#8217;를 뜻하는 medius &#8216;메디우스&#8217;로 불렀다. triplex의 동의어 triplus &#8216;트리플루스&#8217;가 고대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로 전해진 treble [ˈtɹɛb.(ə)l] &#8216;트레블&#8217;은 오늘날 보통 악기나 음향 기기 등에서 높은 음역을 이르는 말로 쓰이지만 주로 나이어린 합창단원의 고음 성부를 이르기도 한다.</p>
<p>그 밖에 기본 4성부에 추가된 제5의 성부, 제6의 성부라는 뜻으로 quintus &#8216;퀸투스&#8217;, sextus &#8216;섹스투스&#8217;가 쓰이기도 했는데 음역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이름이고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p>
<p>베네치아 공화국 출신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조세포 자를리노(Gioseffo Zarlino [ʤoˈzɛffo ʣarˈliːno], 1517~1590, 외래어 표기법 규범에 따른 표기는 &#8216;차를리노&#8217;)가 1558년에 펴낸 음악 이론서 《화성의 원리(Istitutioni harmoniche, 현대 이탈리아어 철자 Istituzioni armoniche)》에서 soprano &#8216;소프라노&#8217;, alto &#8216;알토&#8217;, tenore &#8216;테노레&#8217;, basso &#8216;바소&#8217;와 같은 이탈리아어식 성부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p>
<p>이탈리아어 soprano [soˈpraːno] &#8216;소프라노&#8217;는 라틴어로 &#8216;위에&#8217;를 뜻하는 super &#8216;수페르&#8217;에 접미사 -anus가 붙은 통속 라틴어 *superanus &#8216;수페라누스&#8217;에서 유래했다. superius도 super에서 파생된 말이니 비슷한 말로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으로 이 단어는 다른 언어에 전해져서 영어로는 [sə.ˈpɹæn.oʊ̯] &#8216;서프래노&#8217; 혹은 [sə.ˈpɹɑːn.oʊ̯] &#8216;서프라노&#8217;로 발음하고 독일어 Sopran [zoˈpʁaːn] &#8216;조프란&#8217;, 프랑스어 soprano [sɔpʁano] &#8216;소프라노&#8217; 등이 되었다.</p>
<p>&#8216;군주&#8217;를 뜻하는 영어의 sovereign [ˈsɒv.ɹᵻn, ˈsɒv.(ə)ɹ.ᵻn] &#8216;소버린&#8217;도 *superanus가 고대 프랑스어 soverain, souverein 등을 거쳐서 전해진 말이다. 이에 대응되는 현대 프랑스어는 souverain [suvʁɛ̃] &#8216;수브랭&#8217;이다.</p>
<p>alto [ˈalto] &#8216;알토&#8217;는 이탈리아어로 &#8216;높은&#8217;을 뜻하며 라틴어 altus &#8216;알투스&#8217;에서 나왔다. 인도·유럽 조어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어로 &#8216;오래된&#8217;을 뜻하는 old [ˈoʊ̯ld] &#8216;올드&#8217;와 동계어이다. 더 가까이는 &#8216;고도&#8217;를 뜻하는 영어 altitude [ˈælt.ᵻ.ˌtjuːd] &#8216;앨티튜드&#8217;가 altus에서 파생되어 &#8216;높이&#8217;를 뜻하는 라틴어 altitudo &#8216;알티투도&#8217;를 차용한 말이다. alto를 영어로는 보통 [ˈælt.oʊ̯] &#8216;앨토&#8217;로 발음하지만 [ˈɒlt.oʊ̯, ˈɔːlt-] &#8216;올토&#8217;, [ˈɑːlt.oʊ̯] &#8216;알토&#8217;도 가능하다. 독일어로는 Alt [ˈalt] &#8216;알트&#8217;라고 하는데 명사이기 때문에 첫머리를 대문자로 쓰는 것만 빼면 영어 old처럼 &#8216;오래된&#8217;을 뜻하는 동계어 alt와도 동형이다. 프랑스어로는 alto [alto] &#8216;알토&#8217;라고 한다.</p>
<p>&#8216;소프라노&#8217;와 &#8216;알토&#8217;는 한글 표기에서 이탈리아어 soprano와 alto를 이탈리아어 발음에 따라 적는데 &#8216;테너&#8217;와 &#8216;베이스&#8217;는 이탈리아어 tenore, basso가 아니라 영어 tenor, bass의 영어 발음에 따라 적은 것이다.</p>
<p>라틴어 tenor &#8216;테노르&#8217;는 이탈리아어에서는 tenore &#8216;테노레&#8217;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언어에서 원래의 라틴어 형태와 가깝게 쓴다. 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네덜란드어·덴마크어·노르웨이어·스웨덴어·폴란드어·체코어·헝가리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 등에서 모두 tenor &#8216;테노르&#8217;라고 부르고 독일어로는 Tenor [teˈnoːɐ̯] &#8216;테노어&#8217;, 프랑스어로는 ténor [tenɔːʁ] &#8216;테노르&#8217;이다. &#8216;테너&#8217;는 물론 영어 발음 [ˈtɛn.əɹ]에 따른 표기이다.</p>
<p>라틴어 tenor는 &#8216;취지&#8217;, &#8216;내용&#8217;이라는 뜻도 있었기 때문에 영어 tenor &#8216;테너&#8217; 역시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프랑스어에서는 &#8216;취지&#8217;, &#8216;내용&#8217;을 뜻하는 teneur [tənœːʁ] &#8216;트뇌르&#8217;와 성부를 이르는 ténor &#8216;테노르&#8217;의 형태가 구별되는데 전자는 라틴어 tenor에서 자연스러운 언어 변화를 거친 프랑스어 형태이고 후자는 라틴어 형태를 빌린 것이다. 프랑스어에서도 중세 다성부 음악에서 주 선율을 받쳐주는 성부를 이를 때는 teneur라고 한다.</p>
<p>basso [ˈbasso] &#8216;바소&#8217;는 이탈리아어로 &#8216;낮은&#8217;을 뜻하며 라틴어 bassus &#8216;바수스&#8217;에서 나왔다. 영어에서 &#8216;(특히 도덕적 수준이) 낮은&#8217;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쓰이는 base [ˈbeɪ̯s] &#8216;베이스&#8217;는 라틴어 bassus가 현대 프랑스어 bas [ba, bɑ] &#8216;바&#8217;에 해당하는 고대 프랑스어 bas를 통해 전해진 형태이다. &#8216;기초&#8217;, &#8216;바탕&#8217; 등을 뜻하는 영어 명사 base는 라틴어 basis &#8216;바시스&#8217;가 현대 프랑스어 base [baːz] &#8216;바즈&#8217;에 해당하는 고대 프랑스어 base를 통해 전해진 것인데 라틴어 bassus는 basis처럼 고대 그리스어 βάσις(básis) &#8216;바시스&#8217;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p>
<p>이탈리아어에서는 alto와 basso가 &#8216;높은&#8217;과 &#8216;낮은&#8217;의 뜻으로 짝을 이루는 일반적인 형용사이다. 에스파냐어 alto [ˈalto] &#8216;알토&#8217;와 bajo [ˈbaxo] &#8216;바호&#8217;, 포르투갈어 alto [ˈaɫtu] &#8216;알투'(포르투갈)/[ˈau̯tu] &#8216;아우투'(브라질)와 baixo [ˈbai̯ʃu] &#8216;바이슈&#8217; 역시 &#8216;높은&#8217;과 &#8216;낮은&#8217;을 뜻하는 일반적인 형용사이자 성부 이름으로 쓰인다. 다만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의 alto는 라틴어에서 자연스러운 언어 변화를 거친 형태가 아니라 후에 라틴어의 영향으로 대체된 형태이다.</p>
<p>그런데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처럼 통속 라틴어에서 유래한 로망어인 프랑스어에서는 &#8216;높은&#8217;과 &#8216;낮은&#8217;을 뜻하는 일반적인 형용사가 남성형은 haut [o] &#8216;오&#8217;, bas [ba, bɑ] &#8216;바&#8217;, 여성형은 haute [oːt] &#8216;오트&#8217;, basse [bas, bɑːs] &#8216;바스&#8217;이다(haut/haute는 라틴어 altus에서 나온 형태와 게르만 어파에 속하는 프랑크어 *hauh, *hōh가 혼합된 형태이다). 이미 알토 성부를 이르는 말로는 이탈리아어 형태를 빌린 alto [alto] &#8216;알토&#8217;를 쓴다는 것을 보았으니 &#8216;높은&#8217;을 뜻하는 일반적인 형용사와는 전혀 다르다.</p>
<p>재미있는 것은 베이스 성부를 프랑스어로는 basse [bas, bɑːs] &#8216;바스&#8217;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이탈리아어 basso &#8216;바소&#8217;를 빌린 것인데 프랑스어식으로 마지막 -o가 -e로 바뀐 형태가 프랑스어에 이미 존재하던 여성형 형용사 basse와 우연히 동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어에서 basse는 여성 명사로 재해석되었다. 남성 베이스 가수를 이를 때도 여성 명사이다.</p>
<p>독일어 Bass [ˈbas] &#8216;바스&#8217;, 노르웨이어 bass &#8216;바스&#8217;, 네덜란드어·덴마크어·스웨덴어·폴란드어·체코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 bas &#8216;바스&#8217; 등은 라틴어 bassus나 이탈리아어 basso에서 마지막 음절이 탈락한 형태이다. 루마니아어도 통속 라틴어에서 유래한 로망어이지만 altus와 bassus에서 유래한 말을 &#8216;높은&#8217;, &#8216;낮은&#8217;을 뜻하는 형용사로는 쓰지 않으니 성부 이름으로 쓰이는 alto &#8216;알토&#8217;, bas &#8216;바스&#8217;는 차용어이다. 대신 altus에 전치사 in이 붙은 형태에서 나온 înalt [ɨˈnalt] &#8216;으날트&#8217;가 루마니아어에서 &#8216;높은&#8217;을 뜻한다. 헝가리어는 특이하게 라틴어의 마지막 음절을 탈락시키지 않고 발음만 헝가리어식으로 하여 basszus [ˈbɒsːuʃ] &#8216;버수시&#8217;라고 쓴다.</p>
<p>영어에서는 라틴어 bassus에서 나온 base [ˈbeɪ̯s] &#8216;베이스&#8217;의 발음은 그대로 쓰면서 철자만 라틴어를 흉내내어 bass로 바꿨다. 그래서 철자로부터 발음을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철자가 같은 bass는 물고기의 하나인 &#8216;농어&#8217;를 뜻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 경우는 철자에서 예측할 수 있는 발음 [ˈbæs] &#8216;배스&#8217;를 쓴다.</p>
<p>메조소프라노는 어떨까? 라틴어 medius &#8216;메디우스&#8217;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 mezzo [ˈmɛdʣo]는 &#8216;반&#8217;, &#8216;가운데&#8217;를 뜻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탈리아어의 z는 &#8216;ㅊ&#8217;으로 적으므로 mezzo는 &#8216;메초&#8217;로 써야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이것이 들어간 음악 용어인 &#8216;메조^포르테(mezzo forte)&#8217;, &#8216;메조^피아노(mezzo piano)&#8217; 등에서 모두 &#8216;메조&#8217;로 적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mezzo의 여성형 mezza [ˈmɛdʣa]는 &#8216;메차^보체(mezza voce)&#8217;에서 &#8216;메차&#8217;로 적는다.</p>
<p>영어에서는 mezzo를 주로 [ˈmɛts.oʊ̯] &#8216;메초&#8217;라고 발음하지만 [ˈmɛdz.oʊ̯] &#8216;메조&#8217;도 혼용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8216;메조&#8217;라는 표기는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나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탈리아어에서 [ˈpitʦa] &#8216;피차&#8217;, 영어에서 [ˈpiːts.ə] &#8216;피차&#8217;로 발음되는 pizza를 &#8216;피자&#8217;로 적는 것이나 본인은 [ˈʃvɑːɹts.(ə)n‿ɛɡ.əɹ] &#8216;슈바츠네거&#8217;, 일반적인 영어 화자는 [ˈʃwɔːɹts.ə.nɛɡ.əɹ] &#8216;슈워처네거&#8217;로 발음하는 독일어식 영어 인명 Schwarzenegger의 한글 표기가 &#8216;슈워제네거&#8217;로 심의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원어 발음을 확인하지 않고 철자 z를 무조건 &#8216;ㅈ&#8217;으로 적은 결과일 수 있다.</p>
<p>영어에서 강세 음절의 첫소리를 이루는 무성 폐쇄음 [p, t, k]나 파찰음 [ʧ]는 보통 기식음을 동반하기 때문에 한국어의 거센소리 &#8216;ㅍ&#8217;, &#8216;ㅌ&#8217;, &#8216;ㅋ&#8217;, &#8216;ㅊ&#8217; 등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외의 위치에서는 기식음이 별로 없이 발음되기 때문에 얼핏 된소리 &#8216;ㅃ&#8217;, &#8216;ㄸ&#8217;, &#8216;ㄲ&#8217;, &#8216;ㅉ&#8217; 등을 약하게 발음한 것처럼 소리나기 쉽다. papa [ˈpɑːp.ə]는 사실 &#8216;파파&#8217;보다는 &#8216;파빠&#8217;에 가깝게 들린다.</p>
<p>영어에서 [ts]는 보통 강세 음절의 첫소리 위치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기식음이 별로 없어 한국어 화자에게는 &#8216;ㅊ&#8217;보다는 &#8216;ㅉ&#8217;에 가깝게 들리기 쉽다. 그러니 mezzo, pizza의 영어 발음 [ˈmɛts.oʊ̯], [ˈpiːts.ə]는 사실 &#8216;메초&#8217;, &#8216;피차&#8217;보다는 &#8216;메쪼&#8217;, &#8216;피짜&#8217;에 가깝게 들린다. &#8216;메조&#8217;, 피자&#8217; 등의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된소리 &#8216;ㅉ&#8217;는 피하면서 철자 z의 영향으로 &#8216;ㅊ&#8217; 대신 &#8216;ㅈ&#8217;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한다.</p>
<p>그런데 이탈리아어에서 z는 무성 파찰음 [ʦ]로 발음되기도 하고 이에 대응되는 유성 파찰음 [ʣ]로 발음되기도 한다. z는 원래 그리스 문자의 자모 제타(Ζ, ζ)에서 빌린 자모로서 로마자에 추가되었는데 그리스어에서 온 차용어에서는 [ʣ]로 발음된 듯하다. 라틴어 [dj], [gj]에서 유래한 파찰음 [ʣ]를 나타내는 철자로도 z가 활용되었다. 그래서 라틴어 medius [ˈmɛdɪʊs → ˈmɛdjʊs]에서 나온 [ˈmɛdʣo]는 mezzo로 적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Zarlino [ʣarˈliːno]에서도 z는 [ʣ]를 나타낸다.</p>
<p>한편 이탈리아어에서는 라틴어 [tj]에서 유래한 [ʦ]를 적는 데도 z가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8216;노래&#8217;를 뜻하는 canzone [kanˈʦoːne] &#8216;칸초네&#8217;는 라틴어 cantionem [kantɪˈoːnɛ̃ → kanˈtjoːnɛ̃] &#8216;칸티오넴&#8217;에서 유래했다. 차용어에서 쓰이는 [ʦ]도 z로 적었다. pizza는 중세 그리스어 πίτα(píta) &#8216;피타&#8217;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p>
<p>그러니 이탈리아어에서는 철자상 [ʦ]와 [ʣ]를 구별하지 않고 둘 다 z로 적는다. 즉 사전에서 발음을 찾아보지 않고는 이탈리아어의 철자 z가 [ʦ]인지 [ʣ]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또 치즈의 일종인 gorgonzola [ɡorɡonˈʣɔːla, -ˈʦɔːla] &#8216;고르곤졸라/고르곤촐라&#8217;나 스위스 지명인 Bellinzona [bellinˈʦoːna, -ˈʣoːna] &#8216;벨린초나/벨린조나&#8217;처럼 두 발음이 혼용되는 경우도 있다.</p>
<p>편의상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z는 &#8216;ㅊ&#8217;으로 통일한다. 어쩌면 Firenze [fiˈrɛnʦe] &#8216;피렌체&#8217;, Lazio [ˈlatʦjo] &#8216;라치오&#8217;, Venezia [veˈnɛtʦja] &#8216;베네치아&#8217; 등 주요 지명이나 Fabrizio [faˈbritʦjo] &#8216;파브리치오&#8217;, Lorenzo [loˈrɛnʦo] &#8216;로렌초&#8217;, Vincenzo [vinˈʧɛnʦo] &#8216;빈첸초&#8217; 등 흔한 이름에서 z가 [ʦ]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탈리아어에서는 [ʣ]를 쓰는 mezzo도 영어에서는 보통 [ts]를 쓴 [ˈmɛts.oʊ̯]로 흉내내는 것처럼 말이다(대신 영어에서는 이탈리아어의 z도 특히 겹자음 zz가 아닌 경우는 그냥 영어 철자식으로 [z]로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p>
<p>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이탈리아어의 z를 &#8216;ㅊ&#8217;으로 적는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Lorenzo &#8216;로렌초&#8217;는 영어식 발음 [lə.ˈɹɛnz.oʊ̯, lɒˑ-] &#8216;러렌조/로렌조&#8217;의 영향인지 &#8216;로렌조&#8217;로 적는 경우가 흔하고 이탈리아식 물소젖 치즈의 하나인 mozzarella [motʦaˈrɛlla]는 규범에 따른 &#8216;모차렐라&#8217;보다는 &#8216;모짜렐라&#8217;가 더 흔해 보인다.</p>
<p>번거롭더라도 이탈리아어의 z는 발음을 고려해서 [ʦ]로 발음되는 것은 &#8216;ㅊ&#8217;, [ʣ]로 발음되는 것은 &#8216;ㅈ&#8217;으로 구별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mezzo, mezza는 이탈리아어로 간주하더라도 &#8216;메조&#8217;, &#8216;메자&#8217;로 표기로 통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Zarlino는 규범상 &#8216;차를리노&#8217;로 적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발음에 따라 &#8216;자를리노&#8217;로 적었다.</p>
<p>영어에서는 보통 붙임표를 써서 mezzo-soprano라고 하고 이탈리아어에서는 그냥 mezzosoprano라고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원어를 mezzo-soprano로 제시하고 이탈리아어라고 설명했지만 실은 영어를 통해 전해진 형태라는 것이 들어난다. 이탈리아어식 어휘이니만큼 영어 발음도 &#8216;메초서프래노&#8217;, &#8216;메조서프래노&#8217;, &#8216;메초서프라노&#8217;, &#8216;메조서프라노&#8217; 등 다양하다.</p>
<p>초기 다성부 음악에서 이른바 받쳐주는 성부인 tenor에 대응하는 성부는 &#8216;대항하여&#8217;, &#8216;반대하여&#8217;를 뜻하는 라틴어 contra &#8216;콘트라&#8217;를 붙여서 contratenor &#8216;콘트라테노르&#8217;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그런 성부 둘을 쓰는 일이 흔해지면서 더 높은 성부는 contratenor altus &#8216;콘트라테노르 알투스&#8217;, 더 낮은 성부는 contratenor bassus &#8216;콘트라테노르 바수스&#8217;가 되었다. 이미 본 altus와 bassus는 여기서 나온 줄임말이다.</p>
<p>그런데 contratenor altus는 이탈리아어식 준말로 contralto [konˈtralto] &#8216;콘트랄토&#8217;가 되었으며 자를리노도 이 용어를 쓴다. 이 말은 프랑스어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 contralto [kɔ̃tʁalto] &#8216;콩트랄토&#8217;로 쓰고 영어에서는 contralto [kən.ˈtɹɑːlt.oʊ̯, kɒn-, -ˈtɹælt-] &#8216;컨트랄토/콘트랄토/컨트랠토/콘트랠토&#8217; 등으로 발음한다.</p>
<p>독일어에서는 성악 음역을 이를 때도 그냥 알토 성부와 마찬가지로 Alt &#8216;알트&#8217;라고 부른다. 아주 낮은 음역을 이르는 Kontraalt [ˈkɔntʁaʔalt] 또는 Kontra-Alt [ˈkɔntʁa ˈalt] &#8216;콘트라알트&#8217;라는 용어도 있지만 흔하지 않다.</p>
<p>프랑스어에서는 contratenor altus에서 나온 말인 haute-contre [oːt kɔ̃ːtʁ → otkɔ̃ːtʁ] &#8216;오트콩트르&#8217;가 17~18세기 오페라에서 높은 테너 음역을 이르는 말로 쓰였다. 대신 오늘날의 카운터테너처럼 가성을 쓰는 음역은 아니었다.</p>
<p>영어에서는 중세 프랑스어 contreteneur 또는 contre-teneur(현대 프랑스어 발음은 [kɔ̃tʁətənœːʁ] &#8216;콩트르트뇌르&#8217;)를 받아들이면서 라틴어 contra, 프랑스어 contre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에 대응되는 동계어 counter [ˈkaʊ̯nt.əɹ] &#8216;카운터&#8217;로 대체하여 countertenor [ˈkaʊ̯nt.əɹ.ˌtɛn.əɹ] &#8216;카운터테너&#8217;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이를 남자 가수가 가성을 써서 일반 테너보다 높게 부르는 음역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p>
<p>이 의미로 영어에서 프랑스어에 역수입되어 프랑스어에서 카운터테너는 contreténor 또는 contre-ténor [kɔ̃tʁətenɔːʁ] &#8216;콩트르테노르&#8217;라고 한다. 독일어에서도 흔히 그냥 영어 형태를 그대로 차용하여 Countertenor라고 쓰며 스웨덴어 등 다른 언어에서도 영어 형태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즉 &#8216;카운터테너&#8217;는 영어 용어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p>
<p>이탈리아어에서 contralto &#8216;콘트랄토&#8217;는 전통적으로 남녀 구별 없이 쓰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카운터테너, 즉 남자 가수의 경우 접미사 -ista를 붙여서 contraltista &#8216;콘트랄티스타&#8217;라고 부른다. countertenor나 라틴어 contratenor에 대응되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p>
<p>바리톤은 원래 15세기말 주로 프랑스의 교회 음악에서 쓰인 baritonans &#8216;바리토난스&#8217;라는 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보통 bassus보다도 더 낮은 음역의 성부를 이르는 말로 오늘날로 치면 베이스에 해당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8216;무거운 소리&#8217;를 뜻하는 βαρύτονος(barýtonos) &#8216;바리토노스&#8217;에서 유래한 말에 라틴어 접미사 -ans를 붙인 것처럼 보이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p>
<p>그런데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평균적인 남성 합창단원의 음역을 이르는 말로 뜻이 바뀌었다. 이탈리아어로는 baritono [baˈriːtono] &#8216;바리토노&#8217;라고 한다. 프랑스어로는 baryton [baʁitɔ̃] &#8216;바리통&#8217;, 독일어로는 Bariton [ˈba(ː)ʁitɔn] &#8216;바리톤&#8217;, 영어로는 baritone [ˈbæɹ.ᵻ.toʊ̯n] &#8216;배리톤&#8217;이다. 이들은 baritonans와 달리 그냥 고대 그리스어 barýtonos 또는 라틴어 barytonus/baritonus &#8216;바리토누스&#8217;에 접미사가 붙지 않은 형태에 해당된다. 네덜란드어·헝가리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 bariton &#8216;바리톤&#8217;, 폴란드어·체코어 baryton &#8216;바리톤&#8217;, 덴마크어·노르웨이어·스웨덴어 baryton &#8216;바뤼톤&#8217; 등도 마찬가지이다.</p>
<p>종합하자면 soprano &#8216;소프라노&#8217;와 alto &#8216;알토&#8217;, contralto &#8216;콘트랄토&#8217;는 이탈리아어 발음을, tenor &#8216;테너&#8217;와 bass &#8216;베이스&#8217;, countertenor &#8216;카운터테너&#8217;는 영어 발음을 따른 표기이다. mezzo-soprano는 이탈리아어 mezzosoprano를 발음에 따라 적은 &#8216;메조소프라노&#8217;를 쓴다(여기서 z는 [ʣ]로 발음되므로 &#8216;ㅈ&#8217;으로 쓴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 baritone &#8216;바리톤&#8217;의 한글 표기는 독일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서 쓰는 발음을 따른 것이다.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시하는 원어는 영어에서 쓰는 철자를 그대로 따랐으며 형태상으로는 영어에서 나온 차용어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조리 영어 발음까지 흉내내는 것은 아니다. 음악 용어 같은 국제 어휘의 한글 표기를 정할 때는 영어 같은 특정 언어에서 쓰는 발음을 충실하게 나타내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여러 언어에서 어떻게 발음하는지 폭넓게 고려하면서 적당한 한글 표기를 고르는 것이 무난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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